을미년 7월(1595년 7월)
7월 초1일 [양력 8월 6일] <壬申>
잠깐 비가 내렸다. 나라제삿날(인종의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홀로 다락 위 에 기대어 나라의 돌아가는 꼴을 생각하니, 위태롭기가 마치 아침 이슬과 같다.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만한 기둥같은 인재(동량)가 없고,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주춧돌같은 인물(주석)이 없으니, 모르겠다.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되어갈지. 마음이 괴롭고 어지러워서 종일 엎치락뒤치락하였다.
7월 초2일 [양력 8월 7일] <癸酉>
맑다. 오늘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신날이다. 슬픈 마음이 들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저녁 나절에 활 열 순을 쏘고, 또 철전 다섯 순·편전 세 순을 쏘았다.
7월 초3일 [양력 8월 8일] <甲戌>
맑다. 아침에 충청수사에게로 가서 문병하니 많이 나았다고 한다. 저녁 나절에 경상수사가 이곳에 와서 서로 이야기한 뒤에 활 열 순을 쏘았다. 밤 열 시쯤에 탐후선이 들어왔다.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하나 입맛이 없으시다고 한다. 몹시 걱정이다.
7월 초4일 [양력 8월 9일] <乙亥>
맑다. 나주판관이 배를 거느리고 진으로 돌아왔다. 이전 등이 산 일터에서 노 만들 나무를 가지고 와서 바쳤다. 식사를 한 뒤에 대청으로 나갔다. 미조항첨사·웅천현감이 와서 활을 쏘았다. 군관들은 내기로 환각궁을 쏘았는데 노윤발이 으뜸이었다. 저녁에 림영·조응복이 왔다. 양정언은 휴가를 얻어 돌아갔다.
7월 초5일 [양력 8월 10일] <丙子>
맑다. 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봤다. 저녁나절에 조방장 박종남 조방장 신호가 왔다. 방답첨사는 활을 쏘았다. 림영은 돌아갔다.
7월 초6일 [양력 8월 11일] <丁丑>
맑다. 정항·금갑도만호·영등포만호가 와서 봤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보고 활 여덟 순을 쏘았다. 종 목년이 곰내(고음 천)에서 와서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한다.
7월 초7일 [양력 8월 12일] <戊寅>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경상수사·두 조방장·충청수사가 왔다. 방답첨사·사도첨사 등을 편을 갈라 활을 쏘았다. 경상우병사에게서 임금님의 분부가 왔는데, "전쟁의 재앙이 나라에 참혹하게 만들고, 원수놈은 나라 안에 있어 귀신도 부끄러워 하고, 사람도 원통해 함이 천지에 사무쳤건만, 아직도 요망한 기운을 빨리 쓸어버리지 못하고, 원수놈과 한 하늘을 함께 이고 있음(불공대천)을 끊어버리지도 못하니 통분하다. 그러니 무릇 혈기가 있는 자로서 누가 팔을 부르걷고 마음을 썩히면서 원수놈의 그 살점을 저미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데 경은 적과 마주 진치고 있는 일선 장수로서 조정의 명령도 없이 함부로 적과 대면하여 감히 패역한 말을 지꺼리고, 또 여러번 사사로이 편지를 통하여 적의 기세를 높이고, 적에게 애교를 부릴 뿐더러, 수호·강화설이 명나라에까지 미쳐 부끄러럽게 하고, 흔단을 열어 놓기에 조금도 꺼리낌이 없도다. 생각건대 군율로 다스려도 아까울 것이 없을 것이지만, 오히려 관대히 용서하고 돈독히 타이르고 경계하도록 책망하기도 했다. 아닌게 아니라 오히려 고집을 부리고 스스로 죄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가니, 내가 보기에는 몹시 해괴하고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다. 이에 비변사의 낭청 김용을 보내어 구두로 나의 뜻을 전하니, 경은 그 마음을 고쳐서 정신을 가다듬어 후회할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니, 놀랍고도 죄송스러움을 가눌 길이 없다. 김응서란 어떠한 사람이기에 스스로 회개하여 다시 힘쓴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만약 쓸개라도 있는 자라면, 반드시 자살이라도 할 것이다.
7월 초8일 [양력 8월 13일] <己卯>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영등포만호·조방장 박종남이 와서 봤다. 우수사의 군관 배영수가 그 장수의 명령을 받고 와서 군량 스무 섬을 주고 갔다. 동래부사 정광좌가 와서 부임했다고 아뢰었다. 활 열 순을 쏘고 헤어졌다. 종 목년이 돌아왔다.
7월 초9일 [양력 8월 14일] <庚辰>
맑다. 오늘은 말복이다. 가을 기운이 서늘해지니, 회포가 많이 일어난다. 미조항첨사가 와서 보고 갔다. 웅천현감·거제현령이 활을 쏘고 갔다. 밤 열 시쯤에 바다 위의 달빛이 다락에 가득차니, 생각이 번거로와 다락 위를 어슬렁거렸다.
7월 초10일 [양력 8월 15일] <辛巳>
맑다. 몸이 몹시 불편하다. 저녁나절에 우수사를 만나 서로 이야기했다. 양식이 떨어져도 아무런 계책이 없다는 말을 많이 했다. 무척 답답하여 괴롭다. 조방장 박종남도 왔다. 술 두어 잔을 마셨더니, 몹시 취했다. 밤이 깊어 다락 위에 누었더니, 초생달 빛이 다락에 가득하여 마음을 억누를 수 없다.
7월 11일 [양력 8월 16일] <壬午>
맑다. 아침에 어머니 앞으로 편지를 쓰고, 여러 곳에도 편지를 써 보냈다. 무재·박영이 직접 일하러 나갔다. 나가 공무를 보고, 활 열 순을 쏘았다.
7월 12일 [양력 8월 17일] <癸未>
맑다. 아침식사를 한 뒤에 경상우수사가 와서 봤다. 그와 함께 활 열 순·철전 다섯 순을 쏘았다. 해질 무렵 서로 회포를 풀고 물러갔다. 가리포첨사도 와서 같이 했다.
7월 13일 [양력 8월 18일] <甲申>
맑다. 가리포첨사·우수사가 같이 와서 가리포첨사가 술을 바쳤다. 활 다섯 순·철전 두 순을 쏘았는데 나는 몸이 몹시 불편했다.
7월 14일 [양력 8월 19일] <乙酉>
저녁나절에 개었다. 군사들에게 휴가를 주었다. 녹도만호 송여종으로 하여금 사망한 군졸들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쌀 두 섬을 주었다. 이상록·태구련·공태원 등이 들어왔다. 어머니께서 병이 나아 펀안하시다고 한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7월 15일 [양력 8월 20일] <丙戌>
맑다. 저녁나절에 대청으로 나가니, 박·신 두 조방장과 방답첨사·여도만호· 녹도만호· 보령현감· 결성현감 및 이언준 등이 활을 쏘고 술을 마셨다. 경상수사도 와서 같이 이야기하고, 그로 하여금 씨름 내기를 했다. 정항이 왔다.
7월 16일 [양력 8월 21일] <丁亥>
맑다. 아침에 들으니, 김대복이 병세가 몹시 위태롭다고 한다. 매우 걱정스럽다. 곧 송희립·류홍근을 시켜 간호 치료케 했으나, 무슨 병인지를 알지 못하여 무척 답답하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순천부사 정석주·영광도훈도 주문상을 처벌했다. 저녁에 원수에게 가는 공문과 병사에게 갈 공문를 초잡아 주었다. 미조항첨사(성윤문)· 사도첨사(김완)가 휴가신청서를 제출하므로 성 첨사에게는 열흘, 김 첨사 에게는 사흘을 주어 보냈다. 녹도만호는 유임한다는 병조의 공문이 내려 왔다.
7월 17일 [양력 8월 22일] <戊子>
비가 내렸다. 거제현령이 달려와서 보고하는데, "거제에 있던 왜적이 벌써 철수하여 돌아갔다"고 했다. 그래서 곧 정항을 시켜 정하여 보냈다. 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봤다. 내일 출항하여 나갈 일을 전령했다.
7월 18일 [양력 8월 23일] <己丑>
맑다. 아침에 대청으로 나가, 박·신 두 조방장과 같이 아침식사를 했다. 오후에 출항하여 지도(통영시 용남면)에 이르러 정박하고 밤을 지냈다. 한밤 자정에 거제현령이 와서 말하기를 장문포(거제시 장목면 장목리)의 왜적 소굴이 이미 텅텅 비어 버렸으며, 다만 서른 명 남짓 뿐 이라고 했다. 또 사냥하는 왜놈을 만나 활을 쏘아 한 놈은 목을 베고, 한 놈은 사로잡았다고 했다. 밤 두 시쯤에 출항하여 견내량으로 돌아왔다.
7월 19일 [양력 8월 24일] <庚寅>
맑다. 우수사·경상수사·충청수사·두 조방장과 함께 이야기하고서 헤어졌다. 오후 네 시쯤에 진으로 돌아왔다. 당포만호를 찾아서 잡아다 현신하지 않은 죄로 곤장을 쳤다. 김대복의 병세를 가서 보았다.
7월 20일 [양력 8월 25일] <辛卯>
흐렸다. 두 조방장과 함께 같이 아침식사를 했다. 느지막이 거제현령 및 전진해현감 정항이 왔다. 오후에 나가 공무를 보고 활 다섯 순·철전 네 순을 쏘았다. 좌병사의 군관이 편지를 가지고 왔다.
7월 21일 [양력 8월 26일] <壬辰>
바람이 세게 불고 비가 내렸다. 우후가 들어온다고 들었다. 식사를 한 뒤에 태구련·언복이 만든 환도를 충청수사·두 조방장에게 각각 한 자루씩 나누어 주었다. 저물 무렵에 아들 울·회와 우후가 같은 배로 섬 밖에 이르러 아들들만 들어왔다.
7월 22일 [양력 8월 27일] <癸巳>
흐리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이충일이 그의 부친의 별세 소식을 듣고 나갔다.
7월 23일 [양력 8월 28일] <甲午>
맑다. 저녁나절에 말달리는 일로 원두구미(통영시 한산면 염호리 역졸포)로 갔더니, 두 조방장 및 충청수사도 왔다. 저녁에 작은 배를 타고 돌아왔다.
7월 24일 [양력 8월 29일] <乙未>
맑다. 나라제삿날(도조의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충청수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7월 25일 [양력 8월 30일] <丙申>
맑다. 충청수사의 생일이라 음식을 마련하여 왔다. 우수사·경상수사 및 조방장 신호 등과 함께 취하여 마구 이야기했다. 저녁에 조방장 정응운이 왔다.
7월 26일 [양력 8월 31일] <丁酉>
맑다. 아침에 정영동·윤엽·이수원 등과 흥양현 감이 들어왔다. 식사를 한 뒤에 우수사와 충청수사도 와서 조용히 이야기했다.
7월 27일 [양력]
맑다. 어사의 공문이 들어왔다.
7월 28일 [양력 9월 2일] <己亥>
맑다. 아침식사를 한 뒤에 배로 내려가 삼도를 모아 포구 안에 진을 쳤다. 오후 두 시쯤에 어사 신식(1551-1631; 신숙주의 5세손) 이 진에 왔다. 곧 대청으로 내려가 마주하여 이야기하고, 각 수사 및 세 조방장을 청하여 같이 이야기했다.
7월 29일 [양력 9월 3일] <更子>
흐리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어사(신식)가 좌도 소속의 다섯 포구의 부정사실을 조사·점고했다. 저녁에 이곳에 와서 조용히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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