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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亂中日記 (38) -李舜臣-

카지모도 2021. 3. 4.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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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9월 (1595년 9월)

 

 

 

9월 초1일 [양력 10월 3일] <庚午>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했다. 탐후선이 들어왔다. 우후가 도양장에서 와서 영에 이르러 공문을 가치고 와 바치는데, 정사립을 해치는 뜻이 많이 있으니 우습다. 종사관(류공진)도 병을 돌아가서 조리하겠다고 하므로 결재해 보냈다.

 

9월 초2일 [양력 10월 4일] <辛未>

맑다. 새벽에 지휘선(상선)을 출항시켰다. 재목을 끌어내릴 군사 1283 명에게 밥을 먹이고서 끌고 내려왔다. 충청수사·우수사·경상수사·두 조방장과 함께 이르러 종일 이야기하고서 헤어졌다.

 

9월 초3일 [양력 10월 5일] <壬申>

맑으며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아우 여필과 아들 울과 유헌이 돌아갔다. 강응호가 도양장 추수할 일로 같이 돌아갔다. 정항·우수·이섬이 정탐하고 들어와서, "영등포 적진은 초이틀에 소굴을 비우고 누각과 모든 소굴을 불살라 버렸다."고 했다. 웅천의 적에게 투항하여 붙었던 사람 공수복 등 열일곱 명을 달래어 왔다.

 

9월 초4일 [양력 10월 6일] <癸酉>

맑다. 경상수사가 와 보기를 청하여 종일 이야기하고 돌아갔다. 아우 여필·아들 울 등이 잘 갔는지 알 수 없어 몹시 궁금하다.

 

9월 초5일 [양력 10월 7일] <甲戌>

맑다. 아침에 경상수사 권준이 소고기를 조금 보냈다. 충청수사·조방장 신호와 같이 식사를 하고 난 뒤에 신 조방장·충 청수사 선거이와 함께 같은 배로 경상수사 있는 곳으로 가서 종일 이야기하고 저물어서야 돌아왔다. 이 날 체찰사의 공문이 왔는데, 순천·광양·낙안·흥양이 갑오년(1594년)의 전세를 실어 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곧 답장했다.

 

9월 초6일 [양력 10월 8일] <乙亥>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충청수사가 술을 바치므로 우수사·두 조방장이 와서 같이 마셨다. 송덕일이 들어왔다.

 

9월 초7일 [양력 10월 9일] <丙子>

맑다. 식사를 한 뒤에 경상수사가 왔다. 충청도 병영의 배와 서산·보령의 배를 내어 보냈다.

 

9월 초8일 [양력 10월 10일] <丁丑>

맑다. 나라제삿날(세조의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식사를 한 뒤에 아들 회와 송덕일이 같은 배로 나갔다. 충청수사·두 조방장이 와서 이야기했다.

 

9월 초9일 [양력 10월 11일] <戊寅>

맑다. 우수사 및 여러 장수들이 일제히 모여서 영내의 군사들에게 떡 한 섬을 나누어 주고 초저녁에 끝내고 돌아갔다.

 

9월 초10일 [양력 10월 12일] <己卯>

맑다. 오후에 나는 충청수사 및 두 조방장과 함께 우수사 있는 데로 가서 같이 이야기하고 밤에 돌아왔다.

 

9월 11일 [양력 10월 13일] <庚辰>

흐렸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공무를 보지 못했다.

 

9월 12일 [양력 10월 14일] <辛巳>

흐렸다. 아침에 충청수사 및 두 조방장을 청해다가 같이 아침밥을 먹고 늦게 끝내고 돌아갔다. 저녁에 경상수사와 우후 및 정항이 술을 가지고 와서 같이 이야기하고서는 밤이 늦어서야 헤어졌다.

 

9월 13일 [양력 10월 15일] <壬午>

맑다. 다락에 기대어 혼자 앉았으니 마음이 불편하다.

 

9월 14일 [양력 10월 16일] <癸未>

맑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우수사·경상우수사가 같이 와서 이별하는 술잔을 들고서 밤이 깊어서야 헤어졌다. 수사 선거이와 작별하며 준 시는 이러하다. 북쪽에 갔을 때도 같이 일하고, 남쪽에 와서도 죽사리 같이 하더니, 오늘 밤 이 달 아래 한 잔을 나누면, 내일이면 우리 서로 헤어져야 하리.

 

9월 15일 [양력 10월 17일] <甲申>

맑다. 수사 선거이가 와서 아뢰고 돌아가는데, 또 이별의 잔을 들고나서 헤어졌다.

 

9월 16일 [양력 10월 18일 ] <乙酉>

맑다. 나가 공무를 봤다. 장계 봉하는 것을 감시했다. 이 날 저물 무렵 일식을 하여 밤이 되어서야 밝아졌다.

 

9월 17일 [양력 10월 19일] <丙戌>

맑다. 식사를 한 뒤에 서울에 편지를 써 보냈다. 김희번이 장계를 가지고 나갔다. 유자 서른 개를 영의정에게 보냈다.

 

9월 18일 [양력 10월 20일] <丁亥>

저녁나절에 조방장 정응운이 들어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9월 19일 [양력 10월 21일] <戊子>

맑다. 조방장 정응운이 들어왔다가 돌아갔다.

 

9월 20일 [양력 10월 22일] <己丑>

밤 두 시쯤에 둑제를 지냈다. 사도첨사 김완이 헌관으로 행사했다. 아침에 우수사가 와서 봤다.

 

9월 21일 [양력 10월 23일] <庚寅>

맑다. 박·신 두 조방장과 같이 아침밥을 먹었다. 박 조방장을 작별하려 했으나, 그대로 경상수사를 작별하고서 갔다가 그만 날이 저 물었기 때문에 하지 못했다. 저녁에 이종호가 들어왔다. 다만 목화만 가져 왔기로 모두 나누어 주었다.

 

9월 22일 [양력 10월 24일] <辛卯>

맑다.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박자윤(종남의 자) 영감이 나갔다. 경상우 수사도 와서 전별했다.

 

9월 23일 [양력 10월 25일] <壬辰>

맑다. 나라제삿날(태조 신의왕후 한씨의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웅천 사람인데 사로잡혔던 박록수·김희수가 와서 알현하고 겸하여 적정을 보고했다. 그래서 무명 한 필 씩을 나누어 주어 보냈다.

 

9월 24일 [양력 10월 26일] <癸巳>

맑다. 아침에 각처에 편지 열 통 남짓 썼다. 아들 울·면과 방익순 및 온개 등과 함께 나갔다. 이 날 저녁에 우 수사·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9월 25일 [양력 10월 27일] <甲午>

맑다. 오후 두 시쯤에 녹도의 하인이 실수로 불을 내어 대청 다락방 등이 모두 타버렸다. 군량·화약·군기 등의 창고에는 불이 붙지 않았으나, 다락 위에 있던 장전과 편전 이백 여 개가 모두 타 버렸으니, 애석하다.

 

9월 26일 [양력 10월 28일] <乙未>

맑다. 홀로 온 종일 배 위에 앉아 있다가 앉았다 누웠다 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이언량(귀선장)이 재목을 깎아 가지고 왔다.

 

9월 27일 [양력 10월 29일] <丙申>

흐렸다. 안골포 사람으로 왜적에게 붙었던 자 이백서른 여 명이 왔다. 배는 스물두 척이라고 우수가 와서 보고했다. 식사를 한 뒤 에 불난 데로 올라가 집 지을 만한 터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였다.

 

9월 28일 [양력 10월 30일] <丁酉>

맑다. 식사를 한 뒤에 집 짓는 곳으로 올라갔다. 우수사·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아들 회·울이 기별을 듣고 들어왔다.

 

9월 29일 [양력 10월 31일] <戊戌>

맑다.

 

9월 30일 [양력 11월 1일] <己亥>

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