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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亂中日記 (37) -李舜臣-

카지모도 2021. 3. 3.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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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8월 (1595년 8월)

 

 

8월 초1일 [양력 9월 4일] <辛丑>

비바람이 세게 일었다. 어사(신식)와 같이 식사하고, 곧 배로 내려가 순천 등의 다섯 고을의 배를 점검했다. 저물어서 나는 어사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 같이 이야기했다.

 

8월 초2일 [양력 9월 5일] <壬寅>

흐렸다. 우도의 전선을 점고한 뒤에 그대로 남도포 막사에서 머물렀다. 나는 나가 앉아 충청수사와 함께 이야기했다.

 

8월 초3일 [양력 9월 6일] <癸卯>

맑다. 어사는 느지막이 경상도 진으로 가서 점고했다. 저녁에 경상도 진으로 가서 같이 이야기하는데, 몸이 불편하여 곧 돌아왔다.

 

8월 초4일 [양력 9월 7일] <甲辰>

비가 내렸다. 어사가 이곳에 왔기에, 여러 장수들을 모아 종일 이야기하고서 헤어졌다.

 

8월 초5일 [양력 9월 8일] <乙巳>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아침에 어사와 작별을 이야기하러 충청수사 있는 곳에 이르러 어 사를 전별하고 나니, 조방장 정응운이 아뢰고 돌아 갔다.

 

8월 초6일 [양력 9월 9일] <丙午>

비가 흠뻑 쏟아졌다. 우수사·경상수사·두 조방장이 모여 함께 종일 이야기하고서 헤어졌다.

 

8월 초7일 [양력 9월 10일] <丁未>

비가 내렸다. 아침에 아들 울과 허주 및 현덕린·우후(이몽구)가 같이 배를 타고 나갔다. 저녁나절에 두 조방장·충청수사가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에 표신을 가진 선전관 이광후가 임금의 분부를 가지고 왔다. "원수가 삼도 수군을 거느리고 바로 적의 소굴로 들어가라"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이야기하며 밤을 새웠다.

 

8월 초8일 [양력 9월 11일] <戊申>

비가 내렸다. 선전관이 나갔다. 경상수사·충청수사 및 두 조방장과 같이 이야기하다가 같이 저녁밥을 먹었다. 날이 저물어서 저마다 돌아갔다.

 

8월 초9일 [양력 9월 12일] <己酉>

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8월 초10일 [양력 9월 13일] <庚戌>

맑다. 몸이 불편한 것 같다. 홀로 다락 위에 앉았으니, 온갖 생각이 다 일어난다. 저녁나절에 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보고 난 뒤에 활 다섯 순을 쏘았다. 정제와 결성현감(손안국)이 같이 배로 나갔다.

 

8월 11일 [양력 9월 14일] <辛亥>

비가 오락가락 했다. 종 한경도 본영으로 갔다. 배영수·김응겸이 활쏘기를 겨루었다. 김응겸이 이겼다.

 

8월 12일 [양력 9월 15일] <壬子>

흐렸다. 일찍 나가 공무를 봤다. 저녁나절에 두 조방장과 함께 활을 쏘았다. 김응겸이 경상우수사에게 갔다가 돌아올 때에 우수사 (이억기)에게 들러서 뵙고 활쏘기 겨루기를 했는데, 배영수가 또 졌다고 했다.

 

8월 13일 [양력 9월 16일] <癸丑>

종일 비가 내렸다. 장계 초고를 고치고 공문을 결재했다. 독수가 왔는데, 도양장(고흥군 도양면)의 둔전 치는 일에 이기남이 하는 짓이 괴상한 것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우후가 달려가 부정사실을 조사하도록 공문을 만들어 보냈다.

 

8월 14일 [양력 9월 17일] <甲寅>

종일 비가 내렸다. 진해현감 정항 및 조계종(영등포만호)이 와서 이야기했다.

 

8월 15일 [양력 9월 18일] <乙卯>

새벽에 망궐례를 했다. 우수사(이억기)·가리포첨사(이응표)·임치현감(홍견) 등 여러 장수들이 함께 왔다. 오늘 삼도의 사수와 본도 잡색군을 먹이고, 종일 여러 장수들과 함께 같이 취했다. 오늘 밤 으스름 달빛이 다락을 비치니, 잠을 이룰 수 없어 밤새도록 휘파람불며 시를 읊었다.

 

8월 16일 [양력 9월 19일] <丙辰>

궂은비가 걷히지 않고 종일 부슬부슬 내렸다. 생각이 몹시 어지럽다. 두 조방장과 같이 이야기했다.

 

8월 17일 [양력 9월 20일] <丁巳>

가랑비가 오고 샛바람이 불었다. 새벽에 김응겸을 불러 일을 물었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두 조방장과 함께 이야기하고 활 열 순을 쏘았다.

 

8월 18일 [양력 9월 21일] <戊午>

궂은비가 걷히지 않았다. 신·박 두 조방장이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8월 19일 [양력 9월 22일] <己未>

날씨가 활짝 개었다. 두 조방장 및 방답첨사와 함께 활을 쏘았다. 밤 열 시쯤에 조카 봉·아들 회·울이 들어왔다."체찰사(이원익)가 21일 에 진주성에 이르러 군사에 관한 일을 묻고자 체찰사의 군관이 들어왔다."고 하였다.

 

8월 20일 [양력 9월 23일] <庚申>

맑다. 종일 체찰사의 전령을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경상수사 권준(권준)· 우수사(이억기)· 발포만호(황정록)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밤 열 시쯤에 전령이 들어왔다. 한밤 자정에 배를 타고 곤이도(통영시 산양면 곤리도)에 이르렀다.

 

8월 21일 [양력 9월 24일] <辛酉>

흐렸다. 저녁나절에 소비포(고성군 하이면 덕명포) 앞바다에 이르니, 전라 순찰사(홍세공)의 군관 이준이 공문을 가지고 왔다. 강응표·오계성이 같이 와서 함께 한 시간 남짓이 이야기했다. 경수(이억기의 자)·권언경·자윤(박종남의 자)· 언심(신호의 자)에게 편지를 썼다. 저물 무렵에 사천 땅 침도(침도: 삼천포 신수도?)에 이르러 잤다. 밤에 몸이 몹시 차갑고 마음이 쓸쓸하다.

 

8월 22일 [양력 9월 25일] <壬戌>

맑다. 이른 아침에 각종 공문을 만들어 체찰사에게 보냈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걸어서 사천현에 이르렀다. 오후에 진주 남강 가에 이르니, 체찰사는 벌써 진주에 들어왔다고 했다.

 

8월 23일 [양력 9월 26일] <癸亥>

맑다. 체찰사 있는 곳으로 가서 조용히 이야기하는 사이에 백성을 위해서 고통을 덜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났다. 호남순찰사는 헐뜯어 말하는 기색이 많으니, 한탄스럽다. 저녁나절에 나는 김응서와 같이 촉석루에 이르러 장병들이 패전하여 죽은 곳을 보니, 비통함을 이기지 못하였다. 이윽고 체찰사가 나더러 먼저 가라고 하므로 배를 타고 소비포로 돌아와 정박했다.

 

8월 24일 [양력 9월 27일] <甲子>

맑다. 새벽에 소비포 앞에 이르니, 고성현령 조응도가 와서 알현하고서 소비포 앞바다에서 잤다. 체찰사·부사(김륵)과 종사관 (노경임)도 잤다.

 

8월 25일 [양력 9월 28일] <乙丑>

맑다. 일찍이 식사를 한 뒤에 체찰사와 부사·종사관은 함께 내가 탄 배를 타고, 오전 여덟 시쯤에 출항하여, 같이 서서 여러 섬들과 여러 진을 합병할 곳과, 또 접전할 곳 등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면서 종일 의논했다. 곡포(남해군 이동면 화계리)는 평산포 (남면 평산리)에 합하고, 상주포(상주면 상주리)는 미조항(미조면 미조리)에 합하고, 적량(창선면 진동리 적량)은 삼천포(사천시 삼천포)에 합하고, 소비포(고성군 하이면 덕명포)는 사량(통영시 사량면 금평리)에 합하고, 가배량(거제시 도산면 노전동)은 당포(통영시 산양면 삼덕리)에 합하고, 지세포(일운면 지세포리)는 조라포(일운면 구조라리)에 합하고, 제포(진해시 웅천 1동 제덕동)는 웅천에 합하고, 율포(거제시 장목면 대금리)는 옥포(거제시 장승포시 옥포동)에 합하고, 안골포(진해시 안골동)는 가덕진(부산시 강서구 천가동)에 합치기로 결정했다. 저녁에 진중에 이르러 여러 장수들이 교서에 숙배하고 공사례를 한 다음 헤어졌다.

 

8월 26일 [양력 9월 29일] <丙寅>

맑다. 저녁에 부사(김륵)와 서로 만나 은밀히 이야기했다.

 

8월 27일 [양력 9월 30일] <丁卯>

맑다. 군사 5480 명에게 밥을 먹였다. 저녁에 상봉에 이르러 적진이 있는 곳과 적이 다니는 길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였다. 바람이 몹시 사납다. 밤을 틈타 도로 내려왔다.

 

8월 28일 [양력 10월 1일] <戊辰>

맑다. 이른 아침에 체찰사 및 부사·종사관이 같이 다락 위에 앉아 여러 가지 폐단되는 점을 의논했다. 식사를 하기 전에 배로 내려와 서 배를 타고 나갔다.

 

8월 29일 [양력 10월 2일] <己巳>

맑다. 일찍 나가 공무를 봤다. 경상수사가 체찰사 있는 곳에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