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작년 가을에는, 내가 이럴 일이 아니라 차라리 벗어붙이고 노동을 해먹는 게 옳겠다고, 크게 용단을 내어 선창으로 나와서 짐을 져본 일이 있었다.
그러나 체면이라는 것 때문에 일껏 용기를 내어 가지고 덤벼든 막벌이 노동도 반나절을 못 하고 작파해 버렸다. 힘이 당해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반나절 동안 배에서 선창으로 퍼올리는 짐을 지다가 거진 죽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그 길로 탈이 난 것이, 십여 일이나 갱신 못 하고 앓았다. 집안에서들은, 여느 그저 몸살이거니 하고 걱정은 했어도, 그날 그러한 기막힌 내평이 있었다는 것은 종시 알지 못했다.
그런 뒤로부터 막벌이 노동을 해먹을 생심은 다시는 내지도 못했다. 못 하고 그저 창피하나따나, 벌이야 있으나 없으나, 종시 미두장의 방퉁이꾼으로 지냈고, 양식을 구하지 못하는 날은 처자식들을 데리고 앉아 굶고, 이렇게를 사는 참이다.
입만 가졌지 손발이 없는 사람…… 이것이 정주사다.
진도라고 하는 섬에서 나는 개〔珍島犬〕하며, 금강산의 만물상이며, 삼청동 숲속에서 울고 노는 새들이며, 이런 산수고 생물이고 간에 천연으로 묘하게 생긴 것이면 천연기념물(天然紀念物)’이라고 한다.
그럴 바이면 입만 가졌지 수족이 없는 사람, 정주사도 기념물 속에 들기는 드는데, 그러나 사람은 사람이니까 ‘천연기념물’은 못 되고 그러면 ‘인간기념물(人間紀念物)’이겠다.
정주사는 내키지 않는 걸음을 천천히 걸어 전주통(全州通)이라고 부르는 동녕고개를 지나 경찰서 앞 네거리에 이르렀다. 거기서 그는 잠깐 망설인다. 탑삭부리 한참봉(韓參奉)네 집 싸전가게를 피하자면, 좀 돌더라도 신흥동(新興洞)으로 둘러 가야 한다.
그러나 묵은 쌀값을 졸릴까 봐서 길을 피해 가고 싶던 그는 도리어, 약차하면 졸릴 셈을 하고라도 눈치를 보아 외상쌀이나 더 달래 볼까 하는 억지가 나던 것이다.
정주사는 요새 정거장으로부터 시작하여 새로 난 소화통이라는 큰길을 동쪽으로 한참 내려가다가 바른손편으로 꺾이어 개복동(開福洞) 복판으로 들어섰다. 예서부터가 조선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지금은 개복동과 연접된 구복동(九福洞)을 한데 버무려 가지고, 산상정(山上町)이니 개운정(開
運町)이니 하는 하이칼라 이름을 지었지만, 예나 시방이나 동네의 모양다리는 그냥 그 대중이고 조금도 개운(開運)은 되질 않았다. 그저 복판에 포도장치(鋪道粧置)도 안 한 십오 간짜리 토막길이 있고, 길 좌우로 연달아 평지가 있는 둥 마는 둥하다가 그대로 사뭇 언덕비탈이다.
그러나 언덕비탈의 언덕은 눈으로는 보이지를 않는다. 급하게 경사진 언덕비탈에 게딱지 같은 초가집이며 낡은 생철집 오막살이들이, 손바닥만한 빈틈도 남기지 않고 콩나물 길듯 다닥다닥 주어 박혀, 언덕이거니 짐작이나 할 뿐인 것이다. 그 집들이 콩나물 길 듯 주어 박힌 동네 모양새에서 생긴 이름인지, 이 개복동서 그 너머 둔뱀이〔屯栗里〕로 넘어가는 고개를 콩나물고개라고 하는데, 실없이 제격에 맞는 이름이다.
개복동, 구복동, 둔뱀이 그리고 이편으로 뚝 떨어져 정거장 뒤에 있는 ‘스래〔京浦里〕’, 이러한 몇 곳이 군산의 인구 칠만 명 가운데 육만도 넘는 조선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어깨를 비비면서 옴닥옴닥 모여 사는 곳이다. 면적으로 치면 군산부의 몇십분지 일도 못 되는 땅이다.
그뿐 아니라 정리된 시구(市區)라든지, 근대식 건물로든지, 사회시설이나 위생시설로든지, 제법 문화도시의 모습을 차리고 있는 본정통이나, 전주통이나, 공원 밑 일대나, 또 넌지시 월명산(月明山) 아래로 자리를 잡고 있는 주택지대나, 이런 데다가 빗대면 개복동이니 둔뱀이니 하는 곳은 한 세기나 뒤떨어져 보인다. 한 세기라니, 인제 한 세기가 지난 뒤라도 이 사람들이 제법 고만큼이나 문화다운 살림을 하게 되리라 싶질 않다.
개복동 복판으로 들어서서 콩나물고개까지 거진 당도한 정주사는 길 옆 왼편으로 있는 탑삭부리 한참봉네 싸전가게를 넘싯 들여다본다. 실상은 눈치를 보자는 생각뿐이요, 정작 쌀 외상을 더 달라고 하리라는 다부진 배짱은 못 먹었기 때문에, 사리기부터 하던 것이다.
“정주사 안녕하시우”
탑삭부리 한참봉은 마침 쌀을 사러 온 아이한테 봉지쌀 한 납대기를 되어 주느라고 꾸부리고 있다가 힐끔 돌아다보고 인사를 한다는 것이 탑삭부리 수염에 푹 파묻힌 입에서 말이 한 개씩 한 개씩 따로따로 떨어져 나온다.
“네에, 재미 좋시우? 한참봉…….”
정주사는 기왕 눈에 뜨인 길이라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정주사는 이 싸전과 주인을 볼 때마다 샘이 나고 심정이 상한다.
정주사가 처음 군산으로 와서 ‘큰샘거리〔大井洞〕’서 살 때에 탑삭부리네는 바로 건너편에다가 쌀, 보리, 잡곡 같은 것을 동냥해 온 것처럼 조금씩 벌여 놓고, 오도카니 앉아 낱되질을 하고 있었다. 거래는 그때부터 생겼다.
그런데 그러던 것이, 소리도 없이 바스락바스락 일어나더니, 작년 봄에는 지금 이 자리에다가 가게와 살림집을 안팎으로 덩시렇게 지어 놓고, 겸해서 전화까지 때르릉때르릉 매어 놓고, 아주 한다 하는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제 말로도 한 일이만 원 잡았다고 하니까, 내숭꾸러기라 삼사만 원 좋이 잡았으리라고 정주사는 생각한다.
털보 한서방 혹은 탑삭부리 한서방이 ‘한참봉’으로 승차한 것도 돈을 그렇게 잡은 덕에 부지중 남이 올려 앉혀 준 첩지 없는 참봉이다.
이렇게 겨우 십여 년간에 남은 팔자를 고치리만큼 잘 되었는데 자기의 몰락된 것을 생각하면 나도 차라리 그때부터 천여 원의 그 밑천으로 장사나 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들어, 그래 샘이 나고 심정이 상하던 것이다.
정주사는 나도 장사를 했더면 꼭 수를 잡았으리라고 믿지, 어려서부터 상고판으로 돌아다닌 사람과, 걸상을 타고 앉아 붓대만 놀리던 ‘서방님’이 판이 다르다는 것은 생각하려고도 않는다.
“시장에서 나오시는군…… 그래 오늘은…….”
탑삭부리 한참봉은 방금 되어 준 쌀값 받은 돈을 가게 방문턱 안에 있는 나무궤짝 구멍으로 딸그랑 집어넣고, 손바닥을 탁탁 털면서 돌아선다. 이 사람은 돈은 모았어도, 손금고 한 개 사는 법 없고, 처음 장사 시작할 때에 쓰던 나무궤짝을 손때가 새까맣게 오른 채 그대로 쓰고 있다. 그놈을 가지고 돈을 모았대서 복궤라고 되레 자랑을 한다.
“……오늘은 재수가 좋아서, 우리집 묵은 셈이나 좀 해주게 되셨수”
“재순지 무언지, 말두 마시우!…… 거 원 기가 맥혀!”
정주사는 눈을 연신 깜짝깜짝하면서 아까 당한 일을 무심코 탄식한다.
“왜…… 또 빗맞었어”
“전 백 환이나 날린걸!”
정주사는 속으로 아뿔싸! 하고 슬끔 이렇게 둘러댄다. 그는 지금도 늘 몇백 석씩 쌀을 붙여 두고 미두를 하는 듯이 탑삭부리 한참봉을 속여 온다. 그래야만 다 체면이 차려진다는 것이다.
“허어! 그렇게 육장 손만 보아서 됐수!”
한참봉은 탑삭부리 수염 속에 가 내숭이 들어서 정주사의 형편이며 속을 빤히 알면서도 짐짓 속아 주는 것이다.
알고서 말로만 속는 담에야 해 될 것이 없는 줄을 그는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럴 뿐 아니라 정주사와는 십 년 넘겨서의 거래에, 작년 치 쌀 한 가마니 값과 또 금년 음력 정월에 준 쌀 두 말 값이 밀렸다고 그것을 양박스럽게 조를 수는 없는 처지다. 그래서 실상인즉 잘렸느니라고 속으로 기역자를 그어 논 판이요, 다만 장사하는 사람의 투로, 지날 결에 말이나 한번씩 비쳐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묵은 것은 받지 못하더라도, 다시는 더 외상을 달래지 못하는 이익이 있대서…….
“거 참!…… 그놈이 바루 맞기만 했으면 나두 셈평을 펴구, 한참봉 묵은 셈조두 닦어 디리구 했을 텐데…….”
정주사는 입맛을 다시고 눈을 깜짝거리다가 다시,
“……가만 계시우. 오래잖어서 다아 치러 주리다…… 설마 잊기야 하겠수? 아무 염려 마시구
…….”
정주사는 언제고 외상값 이야기면 첫마디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지레 겁이 나서 미리 방패막이를 하느라고 애를 쓴다. 그는 갚을 돈이 없어 미안하다거나 걱정이라기보다도 졸리기가 괜히 무색해서 못 견디는 사람이다.
“……원, 요새 같을래서는 도무지, 세상이 귀찮어서…… 그놈 글쎄 번번이 시세가 빗맞어 가지굴랑 낭패를 보구 하니!…… 그러잖어두 자식들은 많구 살림은 옹색한데…….”
“허! 정주사는 그래두 걱정 없지요! 자손이 번족하겠다, 무슨 걱정이겠수”
“말두 마시우. 가난한 사람이 자식만 많으면 소용 있나요? 차라리 없는 게 맘이나 편치.”
“그런 말씀 마슈. 나는 돈냥 있는 것두 다아 싫으니, 자식이나 한개 두었으면 좋겠습디다.”
“아니야, 거 애여 자식 많이 둘 게 아닙디다.”
“사람이 자손 자미두 없이 무슨 맛으로 산단 말씀이오”
“건 속 모르는 말씀…….”
“거 참 모르는 말씀을 하시는군!…… 정주사두 지끔 자녀간 하나두 없어 보시우”
“허허…… 한참봉두 가난은 한데 쓸데없이 자식만 우쿠르르해 보시우…… 자식두 멕여 살려야
말이지…….”
둘이는 제각기 제게는 옳은 말이다. 그러나 제각기 저편이 하는 말은 속 답답한 소리다.
탑삭부리 한참봉은 나이 사십이 넘어 오십줄에 앉았으되, 자녀간 혈육이 없다. 그는 그래서, 돈 아까운 줄도 모르고 이삼 년 이짝은 첩을 얻어 치가를 하고 자주 갈아 세우고 해보아도 나이 점점 늙기만 하지 이내 눈먼 딸자식 하나 낳지 못했다.
“어디, 오래간만에 한수 배워 보실려우”
마침 심부름 나갔던 사환아이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우두커니 넋을 놓고 섰던 탑삭부리 한참봉이 시름을 싹 씻은 듯 정주사더러 장기를 청한다.
“참 한참봉, 그새 수나 좀 늘었수”
정주사는 그러잖아도, 장기나 두던 끝에 어물쩍하고 쌀 외상을 달래 볼까 싶어, 먼저 청하려던 차라 선뜻 응을 한다.
“정주사 장기야 하두 시언찮어서, 원.”
“죽은 차(車) 물러 달라구 떼나 쓰지 마시우.”
둘이는 이렇게 서로 장담을 하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겟방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안채로 난 널문이 열리면서 안주인 김씨(金氏)가, 곱게 단장을 한 얼굴을 들이민다.
“아이! 정주사 오셨군요!”
김씨는 눈이 먼저 웃으면서, 야불야불하니 예쁘장스럽게 생긴 온 얼굴에 웃음을 흩뜨린다.
정주사도 웃는 낯으로 인사를 하면서 곱게 다듬은 모시 진솔로 위아래를 날아갈 듯이 차리고 나선 김씨를 올려본다. 김씨는 남편보다도 나이 훨씬 처져 서른 살이 갓 넘었다. 그런데다가 얼굴 바탕이며 몸매가 이쁘장스럽고 맵시도 있거니와, 아기를 낳지 않아서 그런지 나이보다도 훨씬 앳되어 고작 스물사오 세밖에는 안 되어 보인다. 몸치장도 거기에 맞게 잘한다.
그래서 겉늙고 탑삭부리진 남편과 대해 놓고 보면 며느리나 소실 푼수밖에 안 된다.
“애기 어머니두 안녕허시구…… 그리구 참…….”
김씨는 깜빡, 긴한 생각이 나서 가겟방 앞으로 다가 들어온다.
“……댁에 큰애기가, 아이유 어쩌믄 그새 그렇게 아담스럽구 이뻐졌어요! 내 정주사를 뵈믄 추앙을 좀, 그리찮어두 흠씬 해드릴려던 참이랍니다!”
“거 무얼, 그저…….”
정주사는 좋기는 하면서도 어색해서 어물어물하고, 김씨는 들입다 흔감을,
“글쎄, 허기야 그 애기가 저어, 초봉이던가? 응 그래 초봉이야…… 어렸을 때두 이쁘기는 했지만, 어느결에 그렇게 곱게 피구 그랬어요? 나는 요전번에 이 앞으루 지내문서 인사를 하는데, 첨엔 깜박 몰라보았군요! 거저 다두욱다둑해 주구 싶게 이쁘더라니깐요…… 내가 아들이 있다믄 글쎄 억지루 뺏어다가라두 며누리를 삼겠어! 호호호.”
명랑하게 쌔불거리고 웃고 하는 데 섭쓸려 탑삭부리 한참봉도 정주사도 따라 웃는다.
“그러니 진작 아이를 하나 났으면 좋았지”
탑삭부리 한참봉이 웃으면서 일변 장기를 골라 놓으면서 농담삼아 아내를 구슬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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