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화도 초봉이의 아담스러운 자태며, 말소리 그것이 바로 맘씨인 것같이 사근사근한 말소리에 마음이 끌려, 볼일을 보려 가게에 나오든지 또 가게 앞으로 지날 때라도 위정 들러서 시잠시
한담 같은 것을 하기를 즐겨 한다.
“우유는 누가 먹길래 늘 이렇게 사가세요”
초봉이는 행화가 달라는 대로 가루우유를 한 통 요새 새로 온 놈으로 골라 주면서, 궁금하던 것이라 마침 생각이 난 길에 지날 말같이 물어 본다.
“예? 누구 멕이는가고”
행화는 우유통을 받아 도로 초봉이한테 쳐들어 보이면서 장난꾼같이 웃는다.
“……우리 아들 멕이제!…… 우리 아들, 하하하하.”
“아들? 아들이 있어요”
초봉이는 기생이 아들이 있다는 것이 어쩐지 이상했으나, 되물어 놓고 생각하니, 기생이니까 되레 일찍이 아이를 둔 것이겠지야고 싶어,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거린다.
“와? 기생이 아들 있다니 이상해서? 하하하. 기생이길래 아들딸 낳기 더 좋지요? 서방이가 수두룩한걸, 하하하.”
초봉이는 말이 그만큼 노골적으로 나가니까, 얼굴이 붉어는 지면서도 같이 따라서 웃는다.
“아갸! 어짜문 저 입하구 턱하구가 저리두 이쁘노! 다른 데도 이쁘지만…… 예? 올게(올에) 몇
살이지요”
“스물한 살.”
“아이고오! 나는 열아홉이나, 내 동갑으루 봤더니…….”
“몇인데요? 스물”
“예.”
“네에! 그런데 아들을 났어”
“하하하…… 내 쇡였소. 우리 아들이 아니라, 내 동생이라요.”
“동생…… 어쩌믄!”
초봉이는 탄복을 한다. 기생이면 호화롭기나 하고 천한 것으로만 알던 초봉이는 기생에게서 그런 인정을 볼 수 있는 것이 놀라웠다. 그는 행화가 다시 한번 치어다보였다.
치어다보면서 곰곰이 생각하니, 인정이야 일반일 것이니 그렇다 하겠지만, 천한 기생이라면서 어린 몸으로 그만큼 집안을 꾸려 나간다는 것이 초봉이 자신에 비해서 사람이 장한 성싶었다.
마침 제약실에서 안으로 난 문이 열리더니, 제호의 아낙 윤희(允姬)가 나오는 것을 보고 행화는 눈을 째긋하면서 씽하니 나가 버린다.
“아직 안 오셨어”
윤희는 가시같이 앙상한 얼굴을 기다란 모가지로 연신 기웃거리면서,
“……어디 가서 무얼 허구 여태 안 오는 거야! 사람 속상해 죽겠네!…… 자동차에 치여 죽었나 또 기집년의 집에 가 자빠졌나”
아무래도 한바탕 짓거리가 나고라야 말 징조다.
십 년 전 제호는 어느 제약회사에 취직을 하고 있었고, 윤희는 ××여자전문학교에 다닐 때에, 이미 처자가 있고 나이 열한 살이나 맏인 제호와 윤희는 연애가 어울려서, 제호는 본처를 이혼하고 윤희는 개업할 자금을 내놓고, 두 사람은 결혼을 했었다. 그러나 달콤하던 것은 그 돈을 밑천삼아 이 군산으로 내려와서 제중당을 시작하던 그 당시 이삼 년이었지, 시방은 윤희한테는 가시 같은 히스테리가 남았을 뿐이요, 제호는 아낙이 죽기나 했으면 제발 덕분 시원할 지경이다.
그러한 판에 초봉이가 여점원 겸 사무원으로 와서 있는 담부터는 윤희의 신경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범사에 초봉의 일을 가지고 남편을 달달 볶아 댄다.
초봉이도 그러한 눈치를 잘 안다. 그래서 그는 털털하고도 시원스러운 제호한테는 턱 미더움이 생겨, 장차 몇 해고 약제사의 시험을 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는 날까지 붙어 있을 생각이었었고, 또 그리 할 결심이었지만, 요새 와서는 윤희로 해서 늘 불안이 생기고, 이러다가는 장래가 길지 못할 것 같아 낙심이 되기도 했다.
“그래 어디 갔는지두 몰른단 말이야”
윤희는 제 속을 못 삭여 색색하고 섰다가 초봉이더러 볼썽사납게 소리를 지르던 것이다.
“모르겠어요. 어디 가시면 가신다구 말씀을 하셔야지요”
초봉이는 괜한 일에 화풀이를 받기가 억울하나, 그렇다고 마주 성글 수도 없는 노릇이라 다소곳하고 대답이다.
마침 그러자 전화가 때르르 하고 운다. 윤희는 괜히 질겁을 해서 놀랐다가,
“집엣 전화거든 날 주어.”
하면서 전화통을 떼어 드는 초봉이에게로 다가선다.
“네에, 제중당입니다.”
초봉이는 들은 체도 않고 전화를 받는다.
“……”
“네…… 네, ××은행에 계신…….”
“……”
“고 태 수 씨요? 네에 네.”
“××은행 고태수 아시지요”
저편에서는 상냥하게 되물어 준다.
“네에 압니다.”
초봉이는 ××은행에서 고태수라는 사람이 늘 약이며 화장품 같은 것을 전화로 주문해 가기 때문에 그, 사람이나 얼굴은 몰라도 ××은행에 다니는 고태수라는 성명은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저편의 태수는 전화로 주문해 가기도 하지만, 대개는 제가 가게에 와서 사간 적이 많았기 때문에, 그것만 여겨 ‘실물’인 고태수를 아느냐고 물은 것이요, 안다니까 역시 그 실물인 고태수를 안다는 말로 알아듣게 되었던 것이다.
“저어 향수 좋은 것 있어요”
저편에서는 ‘있어요’라고까지 말이 더 친숙해진다.
“네에, 향수요? 여러 가지 있습니다. 어떤 것을 찾으시는지…….”
“그저 좋은 것이면 아무거라두 좋습니다. 오리지나루 같은 거…….”
“네에! 오리지날이요?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썩 좋지는 못한데요…… 보통 많이들 쓰시기는 하지만…….”
“네에! 아아, 그런가요? 그러면…….”
저편에서는 이렇게 당황해하다가 다시,
“그럼 오리지나루가 아니라, 무어 좋은 걸루 한 가지 골라 주시지요.”
“그러시면 헤리오도로푸를 쓰시지요? 그것두 썩 고급품은 아니지만 그래두…….”
“네네…… 그럼 그, 그 헤 헤리…… 그 향수 한 병만 지금 곧 좀 보내 주시까요”
“네에 보내 디리겠습니다. ××은행 고태수 씨라구 그러셨지요”
이것을 다시 묻는 것은 저편에서 적지 않게 실망할 소리나, 그래서 네, 하는 저편의 대답이 대번 떫떫해졌지만 초봉이야 그런 기색을 알 턱이 없는 것이고…….
“그런데, 참…….”
초봉이가 깜박 생각이 나서 전화통으로 파고든다.
“……지금 배달하는 아이가 마침 나가구 없어서 시방 곧은 못 보내 드리겠는데요? 좀 더디어두 괜찮을까요”
“아, 그리세요? 그러면, 저어…….”
잠시 침음하다가 이어,
“……그러면 내가 오래 기대릴 수는 없으니까, 이렇게 해주시지요? 내 하숙집으루 좀 보내 주세요? 아이를 시켜서 보내면, 내가 없더래두 받아 두구서, 대금두 치러 줄 겝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댁이 어디신가요”
“바루 저 개복동서 둔뱀이루 넘어가자면, 고개까지 채 못 가서 있는, 한참봉네 싸전집입니다. 찾기 쉽습니다.”
“네에 네, 거기시면 잘 압니다. 그러면 글러루 보내 드리겠습니다.”
초봉이는 전화를 끊고 돌아서면서, 그 사람이 그 사람이구먼 하는 짐작이 들어 고개를 끄덕거린다. 집에서 누구한테서든가, 탑삭부리 한참봉네 집에, 어느 은행에 다니는 사람이 하숙을 하고있다는 말을 귓결에 들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초봉이는 아직도 그대로 지켜 섰는 윤희한테 또 시달림을 받기가 싫어서 분주한 체, 헤리오트로핀 한 병 있는 것을 진열장에서 꺼내다가, 싸개지로 싸고 다시 전표를 쓰고 막 그러고 나니까 또 전화가 온다.
윤희는 이번에도 제호의 전화거든 저를 달라고 따라온다.
초봉이는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수화기를 떼어 들면서,
“네에, 제중당입니다.”
“……”
초봉이는 저쪽에서 오는 소리를 듣자, 눈과 입가로 미소가 떠오르면서 금시로 귀밑이 빨개진다.
“초봉이어요.”
초봉이는 매달리듯 전화통으로 다가들면서 무심결에 뒤를 돌려다본다. 그것을 눈여겨보고 있던 윤희가 새파랗게 눈에서 쌍심지가 뻗쳐 나오면서,
“비껴나 이것!”
소리 무섭게 초봉이를 떠다박지르더니 수화기를 채어다가 귀에 대고는,
“아니, 이건 어떻게 하는 셈이요? 응”
여부없이 다짜고짜로 전화통에다가 터지라고 악을 쓰는 것이다.
“네에”
저편에서는 얼띤 목소리가 분명찮게 들려 온다.
“네에라께 다 무엇이 말라죽은 거야? 왜 남은 기다리다가 애가 말라죽게 하구서, 전방에 있는 계집애만 데리구 전화질만 하구 있는 게야? 이놈의 전방에다가 불을 싸놓는 꼴을 보구래야 말 테야? 응? 이, 천하에 행사가 개차반 같은 위인 같으니라구…….”
더 잇대어 해 퍼부을 것이지만 숨이 차서 잠깐 말이 끊긴다. 그 사이를 타서 저편의 말소리가 들려 온다.
“네? 왜 그리시나요…… 누구신데 무슨 일루 그리시나요”
비록 전화의 수화기로 들려는 올망정, 코에 걸리는 듯한 베이스 음성으로, 뜸직뜸직 저력 있게 울리는 이 말소리는 데데거리고 급한 제호의 말소리와는 얼토당토 않다.
“무엇이 어째”
윤희는 번연히 남편 제호가 아닌 것을 역력히 알아차렸으면서 상관 않고 대고 멋스린다.
윤희는 먼저는 저편이 제혼 줄 알고, 그래서 제호한테 초봉이가 전화를 받으면서 그런 아양을 떨고 하니까, 그만 강짜에 눈까지 뒤집혀 그 거조를 한 것인데, 저편이 제호가 아니고 생판 딴사람이고 보매, 이번에는 그것이 되레 부아가 났던 것이다.
“……당신이 그럼 박제호가 아니란 말요”
윤희는 여전히 서슬 있게 딱딱거리기는 해도 어쩔 줄을 모르고 쩔쩔맨다.
돌려다보니, 나서서 일을 모피해 주어야 할 초봉이는 모른 체하고 외면을 하고 있다. 그것이 속이 절여 터지게 밉다.
“여보세요…….”
저편에서는 밉광머리스럽게, 성도 내지 않고 좋은 말로 차근차근,
“……나는 박제호 씨가 아닙니다. 남승재(南勝在)라는 사람입니다. 여기는 금호병원(錦湖病院)
인데요, 여기 조수로 있는 사람입니다. 약을 주문하느라고…….”
이 무색한 꼴을 어떻게 건사할 길이 없다. 하니, 덮어놓고 기승을 피우는 게 차라리 속이라도 시원할 일이다.
“원 참, 별 빌어먹을 꼴두…….”
윤희는 수화기를 내동댕이를 치고 물러서서, 초봉에게로 잡아먹을 듯이 눈을 흘긴다.
“……아니거던 아니라구 진작 말해 주어야지!”
초봉이는 더 참을 수가 없어서 마주 퀄퀄하게 해대려고 고개를 번쩍 들었으나, 말은 목 안에서 잠겨 버리고 청하지도 않는 눈물만 솟아 글썽거린다.
“……전방에 두어 둘 제는 치레뽄으루 두어 두었나…… 무어야 대체? 모른 체허구 서서 남을 망신을 주구…… 전화나 가지구서 희학질이나 하믄 제일인가”
이 말을 하다가, 윤희는 초봉이가 아까 전화통 앞에서 아양을 부리는 양을 다시 생각하고 그러자니까 문득, 실로 문득, 초봉이가 정말로 제호한테도, 전화를 받을 때나 단둘이서 있을 때면은 그렇게 하려니, 그래서 제호를 후리려고 하고, 제호는 그것이 좋아서 침을 게질질 흘리면서 헤헤,헤헤 하려니…… 이러한 짐작이 선뜻 머리에 떠오르던 것이다.
등골이 오싹하도록 무섭게 초봉이를 노리고 섰던 윤희는 몸을 푸르르 떨면서 뽀드득 이를 갈아 붙인다. 만약 이때에 초봉이가 조그만큼만 더 윤희의 부아를 돋구어 주었다면, 윤희는 단박 달려들어 초봉이의 얄밉디얄밉게시리 이쁜 입과 턱을 싹싹 할퀴고, 물어뜯고 해주었을 것이다.
마침 배달 나갔던 아이가 자전거를 내리면서 들어서다가 전방 안의 살기등등한 공기를 보고 지레 겁을 내어 비실비실 한옆으로 피해 간다.
“선생님 어디 간지 몰라”
윤희는 아이한테다 대고 버럭 소리를 지른다.
“저는 몰라요, 어디 가신지…….”
아이는 행여 노염을 살세라고 조심하여 몸을 사린다.
“두구 보자! 모두들…….”
윤희는 혼자말같이 이렇게 씹어 뱉고는 통통거리고 제약실로 해서 안채로 들어가 버린다.
한편 구석에 가서 가만히 박혀 있던 아이가 그제야 윤희의 등뒤에다가 혀를 낼름 하고는 초봉이한테 연신 눈을 찌긋째긋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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