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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탁류 (74) -채만식-

카지모도 2021. 6. 26.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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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봉이는 정녕코 형 초봉이가 죽었거니, 이 짐작이다.

“아이! 어서 좀 들어가 보세유! 안에서 야단이 났나 베유!”

계봉이는 식모가 하는 소리는 집어내던지듯 우당퉁탕 어느새 대문간을 한걸음에 안마당으로 뛰어든다. 뛰어드는데 그런데 또 의외다.

“언니!”

어떻게도 반갑던지, 고만 눈물이 쏟아지면서 엎드러지듯 건넌방으로 쫓아 들어간다.

꼭 죽어 누웠으려니 했던 형이, 저렇게 머리 곱게 빗고 새옷 깨끗이 입고, 열어 논 건넌방 앞문 문지방을 짚고 나서지를 않느냔 말이다. 또 송희도 아랫목 한편으로 뉜 채, 고이 자고 있고…….

“왜? 누가 어쨌나요”

승재는 계봉이의 뒤를 따라 들어가다가 말고, 잠깐 거기 모여 섰는 사람들더러 뉘게라 없이 떼어놓고 묻던 것이다.

계봉이와 마찬가지로 승재도 초봉이에게 대한 불길한 예감이 들기는 했으나 그러고도 현장으로 덮어놓고 달려들어가지 않고서 우선 밖에서 정황을 물어 보고 하는 것이 제법 계봉이보다 침착하게 군 소치더냐 하면 노상 그런 것도 아니요, 오히려 더 당황하여 두서를 차리지 못한 때문이었었다.

식모가 나서서 말대답을 했어야 할 것이지만, 이 낯선 사내사람을 경계하느라 비실비실 몸을 사린다.

승재는 그만두고 이내 그대로 대문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그들 중의 단 하나인 사내로 옆집 행랑 사람이 그래도 사내라서 텃세하듯,

“당신은 누구슈”

하고 나선다. 그들은 시방 이 변이 생긴 집에 다시 전에 못 보던 인물이 나타난 것이 새로운 흥미이기도 하던 것이다.

승재는 실상 여기서 물어 보고 무엇 하고 할 게 없는 걸 그랬느니라고 생각이 든 참이라 인제는 대거리하기도 오히려 긴찮아 겨우 고개만 돌린다.

“혹시 관청에서 오시나요”

그 사내는 가까이 오면서 먼저 같은 시비조가 아니고 말과 음성이 공순해서 묻는다.

관청에서 왔느냔 말은 순사냐는 그네들의 일종 존대엣말이다. 검정 양복에 아무튼 민 거나마 누렁 단추를 달았고, 하니 칼만 풀어 놓고 정모 대신 여느 사포를 쓴 순사거니, 혹시 별순검인지도 몰라, 이렇게 여긴대도 그들은 저희들이 방금 길 복판에다가 구루마를 놓았다거나, 술취해 야료를 부렸다거나 하지 않은 이상 순사 아닌 사람을 순사로 에누리해 보았은들, 하나도 본전 밑질 흥정은 아닌 것이다.

승재는 관청 운운의 그 어휘는 몰랐어도, 아무려나 면서기도 채 아닌 것은 사실인지라, 아니라면서 고개를 흔든다.

“네에! 그럼 이 집허구 알음이 있으슈”

그 사내는 뒷짐을 지고 서면서 제법 점잖이 이야기를 하잔다.

“네, 한고향이구…….”

“네에, 그렇거들랑 어서 들어가 보슈…… 아마 이 집에서 사람이 상했다 봅디다!”

“예? 사람이? 사람이 상했어요”

승재는 맨처음 제가 짐작했던 것은 어디다 두고, 뒤삐어지게 후닥닥 놀라서 들이 허둥지둥 야단이 난다.

단걸음에 안으로 뛰어들어가야 하겠는데 뛰어들어갈 생각은 생각대로 급한데, 그러자 비로소 제가 의사라는 걸, 의사이기는 하되 청진기 한 개 갖지 못한 걸 깨닫고 놀라, 자 이걸 어떡할까, 병원으로 자동차를 몰고 가서 채비를 차려 가지고 와야지, 아아니 상한 사람은 그새 동안 어떡하라구, 그러면 그대로 들어가 보아야겠군, 아아니 이 사람더러 아무 병원이라도 달려가서 아무 의사든지 청해 오게 할까, 아아니 그럴 게 아니라 가만있자 어떡하나 어떡할꼬…….

이렇게 당황해서 얼른 이러지도 못 하고 저러지도 못 하고 둘레둘레 허겁지겁 사뭇 액체라도 지릴 듯이 쩔쩔매기만 하고 있다. 그리고, 시방 사람이 상했다고 한 그 상했단 소리는 말뜻대로만 해석해 부상(負傷)인 줄만 알고 있던 것이다.

그 사내는 남의 속도 몰라주고 늘어지게,

“네에, 분명 상했어요, 분명…….”

하다가 식모를 힐끔 돌아보면서,

“…… 이 집 바깥양반이 아마 분명…….”

“네, 바깥양반이, 그이 부인을, 말이지요”

승재가 숨가쁘게 묻는 말을 그 사내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면서,

“아아니죠!…… 이 집 아낙네가, 이 집 바깥양반을…….”

“네에!”

“바깥양반을 굳혔어요!”

“어!”

짧게 지르는 소리도 다 못 맺고 긴장이 타악 풀어지면서, 승재는 마치 선잠 깬 사람처럼 입안엣 말로 중얼거리듯,

“……다친 게 아니구? 응…… 이 집 부인이 다친 게 아니구…… 바깥양반이…… 죽 죽었……”

“네에! 아마 그랬나 봐요! 자센 몰라두 분명 그런가 봅니다…….”

승재는 멀거니 눈만 끄먹거리고 섰다.

가령 초봉이가 자살을 했다든지, 또 처음 알아들은 대로 장형보한테 초봉이가 다쳤다든지 그랬다면 놀라운 중에도 일변 있음직한 일이라서 한편으로 고개가 끄덕거려질 수도 있을 노릇이다.

그러나 천만 뜻밖이지, 초봉이가 장형보를 죽이다니, 도무지 영문을 모를 소리던 것이다.

잠깐 만에 승재가 정신을 차려 안으로 달려들어가자 바깥에 모인 세 남녀는 하품을 씹으면서 다시금 귀를 긴장시킨다.

 

18 내보살 외야차(內菩薩外夜叉)

 

조금 돌이켜 여덟시가 되어서다.

초봉이는 송희가 잠든 새를 타서 잠깐 저자에 다녀오려고, 여러 날째 손도 안 댄 머리를 빗는다,

나들이옷을 갈아입는다 하고 있었다.

윗목 책상 앞으로 앉아 수형조각을 뒤적거리던 형보가 아까부터 힐끔힐끔 곁눈질이 잦더니 마침내,

“어디 출입이 이대지 바쁘신구”

하면서 참견을 하잔다. 제가 없는 틈에 나다니는 것은 못 막지만, 눈으로 보면 으레 말썽을 하려고 들고 더욱이 밤출입이라면 생 비상으로 싫어한다.

“여편네라껀 밤 이실을 자주 맞어선 못쓰는 법인데! 끙.”

형보는 초봉이가 대거리도 안 해주니깐 영락없이 그놈 뱀모가지를 쳐들어 비위를 긁는다.

초봉이는 뒤저릴 일이 없지 않아 처음은 속이 뜨끔했으나 새침한 채 종시 거듭떠보지도 않고, 마악 나갈 채비로 송희를 한번 더 싸주고 다독거려 주고 하고 나서 돌아선다.

형보는 뽀루루 앞문 앞으로 가로막고 앉아, 고개를 발딱 젖히고 올려다보면서,

“어디 가? 어디”

“살 게 있어서 나가는데 어쨌다구 안달이야? 안달이.”

“인 줘, 내가 사다 주께”

형보는 제가 되레 누그러져 비쭉 웃으면서 손바닥을 궁상으로 내민다.

“일없어!”

“그러지 말구!”

“이게 왜 이 모양이야!…… 안 비낄 테냐”

“어멈을 시키던지”

“안 비껴”

초봉이는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형보의 등감을 내지르려고 발길을 들먹들먹 아랫입술을 문다.

“제에밀!”

형보는 못 이기는 체 두덜거리면서 비켜 앉는다. 그는 지지 않을 어거지와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러나 초봉이를 위하여 짐짓 져준다. 되도록이면 제 불편이나 제 성미는 참아 가면서 억제해 가면서 마주 극성을 부리지 말아서, 그렇게마다 초봉이를 마음 편안하게 해주고 싶은 정성,

진실로 거짓 아닌 정성이던 것이다. 그것이 물론 ‘뱀’의 정성인 데는 갈데없기야 하지만…….

“난 모르네! 어린년 깨애서 울어두”

“어린애만 울렸다 봐라! 배지를 갈라 놀 테니.”

초봉이는 송희를 또 한번 돌려다보고, 치맛자락을 휩쓸면서 마루로 나간다.

“제에밀! 장형보 배진 터져두 쌓는다!…… 아무튼 꼭 이십 분 안에 다녀와야만 하네”

“영영 안 들올걸!”

“흥! 담보물은 어떡허구”

형보는 입을 삐쭉하면서 아랫목의 송희를 만족히 건너다본다.

옛날에 한 사람이 있었다. 계집이 젖 먹는 자식을 버리고 간부와 배맞아 도망을 갔다. 어린 것은 어미를 찾고 보채다가 꼬치꼬치 말라죽었다. 사내는 어린것의 시체를 ×를 갈라, 소금에 절여서 자반을 만들었다. 그놈을 크막한 자물쇠 한 개와 얼러, 보따리에 싸서 짊어지고 계집을 찾아나섰다. 열두 해 만에 드디어 만났다. 사내는 계집의 젖통을 구멍을 푹 뚫고 자식의 자반시체를 자물쇠로 딸꼭 채워 주면서, 옜다, 인제는 젖 실컷 먹어라, 하고 돌아섰다.

형보는 고담을 한다면서, 이 이야기를 그새 몇 번이고 초봉이더러 했었다. 그런 족족 초봉이는 입술이 새파랗게 죽고, 듣다 못해 귀를 틀어막곤 했다.

그럴라치면 형보는 못 본 체 시치미를 떼고 앉았다가 더 큰 소리로,

“자식을 업구 도망가지”

해놓고는, 그 말을 제가 냉큼 받아,

“그러거들랑 아따, 자식을 산 채루…… 에미 젖통에다가 자물쇠루 채워 주지? 흥!”

초봉이는 이것이 노상 엄포만이 아니요, 형보가 족히 그 짓을 할 줄로 알고 있다.

그는 송희를 내버리고 도망할 생각이야 애당초에 먹지를 않지만, 하니 데리고나마 도망함직한 것도, 그 때문에 뒤를 내어 생심을 못 하던 것이다.

형보는 초봉이의 그러한 속을 잘 알고 있고, 그러니까 그가 도망 갈 염려는 않는다.

형보는 일반 사내들이, 제 계집의 나들이 (그 중에도 밤출입을) 덮어놓고 기하는 그런 공통된 ‘본능’ 이외에 또 한 가지의 독특한 기호를 이 ‘밤의 수캐’는 가지고 있으니, 전등불 밑에서는 반드시 초봉이를 지키고 앉았어야만 마음이 푸지고 좋고 하지 그러질 못하면 공연히 짜증이 나고 짜증이 심하면 광기가 일고 한다. 그래 시방도 일껏 도량 있이 내보내 주기는 하고서도, 막상 초봉이가 눈에 안 보이고 하니까는 아니나다를까 슬그머니 심정이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더구나 영영 안 들어올걸 하고 쏘아붙이던 소리가 아예 불길스런 압박을 주어, 단단히 심청이 부풀어 올라가던 것이었다.

초봉이는 동관 파주개에서 바로 길 옆의 양약국에 들러 항용 ×××라고 부르는 ‘염산×××’ 한 병을 오백 그램짜리째 통으로 샀다. 교갑도 넉넉 백 개나 샀다.

드디어 사약(死藥)을 장만하던 것이다.

오늘 아침 초봉이는 그렇듯 형보를 갖다가 처치할 생각을 얻었고, 그것은 즉 초봉이 제 자신의 ‘자살의 서광(曙光)’이었었다.

형보 때문에, 형보가 징그럽고 무섭고 그리고 정력에 부대끼고 해서 살 수가 없이 된 초봉이는 마치 차일귀신한테 덮친 것과 같았다.

차일귀신은 처음 콩알만하던 것이 주먹만했다가 강아지만했다가 송아지만했다가 쌀뒤주만했다가 이렇게 자꾸만 커가다가 마침내 차일처럼 휙하니 퍼져 사람을 덮어씌우고 잡아먹는다.

초봉이는 시방 그런 차일귀신한테 덮치어, 깜깜한 그 속에서 기력도 희망도 다 잃어버리고, 생명은 각각으로 눌려 찌부러들기만 했다. 방금 숨이 막혀 오고 그러하되 아무리 해도 벗어날 길은 없었다.

이렇게 거진 죽어 가는 초봉이는 그러므로 생명이란 건 한갓 무서운 고통일 뿐이지 아무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해방과 안식이 약속된 죽음이나 동경하지 않질 못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차라리 죽음을 자취하자던 초봉인데, 그런데 막상 죽자고를 하고서 본즉은, 그것 역시 형보로 인해 또한 뜻대로 할 수가 없게끔 억색한 사정이 앞을 막았다. 송희며 계봉이며의 위협이 뒤에 처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봉이가 절박하게 필요한 제 자신의 자살에 방해가 되는 형보를 처치하는 것은, 자살을 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한 개의 수단, 진실로 수단이요, 이 수단에 의한 자살이라야만 가장 완전하고 의의 있는 자살일 수가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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