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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9)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7. 1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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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훈시가 끝나자 재판장은 피고인석으로 얼굴을 돌렸다.

"시몬 카르틴킨, 일어서시오!"하고 말했다.

시몬은 신경질적으로 벌떡 일어섰다. 볼의 근육이 더욱 씰룩거렸다.

"이름은?"

"시몬 페트로프 카르틴킨입니다." 미리 대답하는 연습을 해두었는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막히지 않고 술술 대답했다.

"신분은?"

"농민입니다."

"출생지의 현과 군은?"

"툴라 현, 크라피벤스키 군, 쿠판스카야 면, 보르키 마을입니다."

"나이는?"

"서른넷, 태어난 해는 18..."

"종교는?"

"러시아 정교입니다."

"결혼은?"

"아직 안 했습니다."

"직업은?"

"마브리타니야 여관의 하인입니다."

"전과가 있소?"

"전혀 없습니다. 원래 저는 지금까지 저..."

"전과가 없단 말이오?"

"네, 절대 없습니다. 한 번도 없어요."

"기소장의 사본은 받았소?"

"네, 받았습니다."

"앉아도 좋아요. 예브피미야 이바노브나 보치코바!"하고 재판장은 다음 여피고인을 호명했다.

그러나 시몬은 여전히 서서 보치코바를 가로막고 있었다.

"카르틴킨, 앉아요!"

그러나 카르틴킨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카르틴킨, 앉으라니까요!"

그래도 계속 버티고 서 있자, 정리가 달려가서 목을 한쪽으로 기울이며 부자연스럽게 눈을 뜨면서 간절한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자, 앉아요. 앉으라잖소!"하고 말하자, 그제서야 자리에 앉았다.

카르틴킨은 일어설 때처럼 앉는 것은 재빨랐다. 그리고 죄수복 앞깃을 여미고는 또다시 소리도 없이 양쪽 볼을 씰룩거리기 시작했다.

"이름은?" 재판장은 피곤한 듯 한숨을 내쉬며 상대방은 보지도 않고, 앞에 놓인 서류를 뒤적이며 두 번째 피고에게 물었다. 재판장으로서는 이런 사건은 흔해빠진 것이었으므로 심리를 빨리 끝내기 위해서는 한꺼번에 두가지 사건이라도 다룰 수 있을 정도였다.

보치코바는 43세, 신분은 콜모므나 시의 시민, 직업은 같은 마브리타니야 여관의 하녀였다. 그녀도 전과가 없었으며 기소장의 사본도 역시 받았다. 보치코바는 매우 대담하게 답변했고, 한 마디 한 마디가 또렷또렷했다. "그래요. 세례명은 예브피미야고 성은 보치코바예요. 사본은 틀림없이 받았고요. 나는 조금도 수치스럽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나를 웃음거리로 취급하면 가만 있지 않겠어요."하고 대답했다. 보치코바는 '앉아도 좋아요.'하고 하기도 전에 심문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앉아 버렸다.

"당신 이름은?" 재판장은 특별히 친절한 말투로 세 번째 피고에게 물었다. 그는 항상 여자를 좋아했다. 그는 마슬로바가 앉은 채로 있는 것을 보자, "일어서야지요."하고 상냥한 어조로 덧붙였다.

마슬로바는 재빨리 일어서서 단단히 각오가 되어 있다는 표정으로 불룩한 젖가슴을 내밀면서, 대답도 하지 않고 약간 사팔뜨기의 검은 눈으로 교태를 보이면서 재판장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름은 뭐지요?"

"류보비예요."그녀는 재빨리 말했다.

한편 네플류도프는 코안경을 쓰고, 한 사람씩 심문을 받고 있는 피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하고 세 번째 피고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일까, 류보브라니?' 그녀의 이름을 듣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재판장은 더 심문을 계속하려 했으나 금테 안경을 쓴 배심 판사가 화가 난 듯이 무엇인가 속삭이며 가로막았다. 재판장은 알겠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이고는 다시 여자 피고 쪽으로 몸을 돌렸다.

"류보브라니 어떻게 된 거요?"하고 그가 말했다. "서류에는 그렇게 쓰여 있지 않는데."

피고는 잠자코 있었다.

"당신 본명이냐고 묻고 있는 거요."

"영세명이 뭐냐니까요?"하고 성미가 괄괄한 판사가 물었다.

"전에는 예카테리나라고 했습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네플류도프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는 이 여자가 의심할 여지도 없이 바로 '그녀'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고모집에서 양녀겸 하녀로 기르고 있던 그 여자 말이다-그가 한때 욕정에 빠졌던 그 소녀, 그렇다. 미칠 듯한 열정으로 유혹했다가 그대로 내동댕이쳐 버린 그 소녀였다. 그는 그 후로는 한번도 그 여자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느데, 그것은 너무나 괴로운 추억이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그것은, 자기의 '고결함'을 스스로 자부하고 있던 그가 이 여자에 대해서 고결은 커녕 너무나도 비열한 짓을 한 비신사임을 증명케 하고 옛 상처를 들추어 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분명 그녀임에 틀림없다. 이제야 그는 한 사람의 인간을 똑바로 분간하고 그녀만이 가진 유일하고 신비로운 특징을 뚜렷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얼굴은 이상스럽게 희고 퉁퉁하게 살이 쪘음에도 불구하고, 저 특징, 누구에게도 비길 수 없는 그 그리운 특징만은 저 얼굴에도 입술에도 약간 사팔뜨기인 저 눈에도, 더구나 저 귀염성 있는 천진한 웃음을 머금은 눈매에도, 얼굴뿐만 아니라 몸 전체로 흐르고 있는 자연스러운 표정에도 나타나 있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어야 하는 거요."하고 나서 재판장은 다시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

"아버지의 이름은?"

"저는 사생아예요."하고 마슬로바는 말했다.

"그래도 대모가 있을 거 아니오. 그 이름이 뭔가요?"

"네, 미하일로브나입니다."

'도대체 저 여자가 무슨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네플류도프는 가까스로 숨을 몰아쉬면서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성은 무엇이오?" 재판장은 심문을 계속했다.

"어머니의 성을 따라 마슬로바라고 합니다."

"신분은?"

"평민입니다."

"종교는 정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직업은, 무슨 일을 하고 있었소?"

마슬로바는 잠자코 있었다.

"무슨 일을 하고 있었나요?"하고 재판장은 좀더 큰 소리로 다시 한 번 물었다.

"영업집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대답했다.

"어떤 집이지요?" 금테 안경을 쓴 판사가 위엄 있게 물었다.

"어떤 집인지 아시면서 뭘 그러세요?"하고 마슬로바는 방긋 웃엇다. 그러나 곧 주위를 둘러보고는 다시 재판장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에는 뭔지 이상스러운 빛이 어려 있었고 금방 입밖에 낸 말에도, 그 엷은 미소에도, 웃음을 머금고 법정 안을 힐끔 돌아본 빠른 눈길에도 무섭고도 애처로운 무엇이 서려 있었으므로 재판장은 그만 눈을 내리깔았다. 그 순간 법정 안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이 정적은 어느 방청객의 웃음으로 깨어졌으나, 누군가 '쉿'하고 나무라는 소리가 들렸다. 재판장은 머리를 들고 심문을 계속했다.

"전과가 있소?"

"없습니다." 마슬로바는 한숨 섞인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기소장의 사본은 받았소?"

"네, 받았습니다."

"앉아도 좋아요."하고 재판장은 말했다.

피고는 정장한 여인네들이 흔히 치맛자락을 매만질 때와 똑같은 동작으로 스커트 뒷자락을 살짝가 쳐들고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죄수복 소매 속에 자그마한 흰 두 손을 깍지낀 채 줄곧 재판장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다음에 증인의 호출이 시작되었다. 계속해서 증인의 퇴정, 법원의로 결정된 의사를 소환했다. 이윽고 서기가 일어나 기소장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또렷또렷하고 큰 소리로 읽었으나, 어찌나 빠른지 L과 R의 발음이 분명치 않을 정도였다. 재판관들은 안락 의자 팔걸이에 기대기도 하고, 때로는 테이블이나 의자 등받이에 기대기도 하며,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서 서로 수군거리기도 했다. 헌병 한 사람은 하품을 몇 번이나 참고 있었다.

세 사람의 피고 중에서 카르틴킨은 쉴 새 없이 볼을 실룩거리고 있었다. 보치코바는 침착하게 똑바로 앉은 채 가끔 스카프 속으로 손가락을 넣어 머리를 긁고 있었다.

마슬로바는 낭독하는 서기의 표정을 꼼짝도 않고 바라보고 있다가는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며 무언가 항의하려는 듯이 얼굴을 붉히기도 했지만 이윽고 한숨을 내쉬면서 두 손의 위치를 바꾸며 사방을 둘러보고 나선 다시 서기쪽에 시선을 멈추었다.

네플류도프는 맨 앞 줄 끝에서 두 번째의 의자에 앉아 코안경을 벗어든 채 마슬로바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복잡하고 괴로운 감정이 얽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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