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성주받이 구경이나 가세. ” “뉘 집에서 성주를 받는다든가? ”
“어물전 주인 살림하는 집 문 앞에 황토 펴놓은 것 보지 못했나? ”
“황토를 펴놓았기루 꼭 성주를 받는지 어떻게 아나? ” “내가 아까 이
집 주인에게 물어봤네. ” “이 집 안주인이 어딜 가구 없나 했더니 성주받이
구경갔다네그려. ” “우리 가보세. ” 하고 행인들끼리 지껄인 다음에 “성주받
이 구경 안 가실라우? ” “우리 가서 무당년의 낯바대기나 보구 옵시다. ” “
자, 갑시다. 일어들 서시우. ” 하고 장교들을 끌었다. 행인 중의 늙은 사람 하나
와 장교 중의 조심 많은 사람 하나만 떨어지고 그 나머지 행인과 장교가 다 성
주받이 구경을 가는데, 짐꾼, 말꾼 몇 사람까지 함께 묻혀 갔다. 늙은 행인이 남
은 장교를 보고 “우리는 술이나 좀더 먹읍시다. ” 말하고 장교가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주인을 불러서 술을 가져오라고 일렀다. 주인이 술을 가져온 뒤에 장
교는 한두 사발 받아먹고 더 못 먹겠다고 누웠으나, 늙은 행인은 짐꾼, 말꾼 자
는 사람까지 잡아 일으켜놓고 술을 권하였다. 늙은 행인이 너무 기탄없이 떠드
는 것을 보고 장교가 “떠드는 소리가 사처방에 들리면 우리가 술 먹으려 떠드
는 줄루 아시기가 쉬우니 너무 떠들지 마시우. ” 하고 말까지 하였건만 늙은
행인은 “녜녜. ” 대답만 하고 짓떠들어서 마침내 김양달이 떠드는 소리를 듣
고 바깥방에를 다시 나오게 되었다. 김양달이 나오는 신발 소리에 장교부터 눈
을 감고 자는 체하고 짐꾼, 말꾼 중에는 자지도 않으면서 흉물스럽게 코까지 고
는 사람이 있었다. 김양달이 바깥방 앞에 와서 “이놈들아, 왜 자지 않구 떠드느
냐! ” 하고 방문을 왈칵 열어젖히니 주인은 분주히 술푼주와 술사발을 한옆으
로 치우고 늙은 행인은 얼른 일어나 문 앞에 향하고 서서 “황송합니다. ” 하
고 허리를 굽실하였다. “지금 떠든 사람들이 누구야? ” “저희들이 술잔간 먹
으면서 지껄였소이다. ” “장교들은 다 어디 갔노? 정녕 딴데루 술 먹으러 간
게지. ” “아니올시다. 성주받이 구경을 갔소이다. ” “성주받이란 게 무슨 구
경이야? ” “무당년들 뛰노는 구경입지요. 이 근방은 송도가 가까운 까닭에 송
도물이 들어서 사람들이 대체루 신귀두 밝읍지요만, 무당들이 원청간 타도 무당
들과 다릅니다. 이 근방 무당년들이 소리하구 뛰노는 건 기생 가무를 제쳐놓구
구경할 만합니다. ” 김양달이 늙은 행인의 말을 듣고 슬며시 성주받이 구경가
고 싶은 마음이 나서 “구경들 간 데가 어디쯤인가. 여기서 가까운가? ” 하고
물으니 늙은 행인은 한번 빙그레 웃고 “윗장터 어물전 집이올시다. 장구 소리
가 여기까지 들립니다. 가만히 들어 보십시오. 저기서 뚱땅뚱땅하는 소리가 거기
서 오는 것입니다. ” 하고 귀를 기울이며 말하였다. “이놈들이 밤늦도록 자지
않구 내일 길을 어떻게 갈라노? 그대로 내버려두면 언제까지 있을는지 모르지.
내가 가서 몰아와야겠군. ” 김양달의 말이 입에서 떨어지자, 늙은 행인이 곧 주
인을 돌아보며 “여보게, 자네 좀 뫼시구 갔다오게. ” 하고 말을 일렸다. “손
님들 주무시거든 구경 갈라구 했더니 이왕 가면 아주 구경하구 오겠소. ” “저
나리는 이곳 성주받이를 처음 구경하실 테니 잠깐이라두 구경 좀 잘 시켜 드리
게. 무당들 쉬일 때 젊은 년 하나 붙들어다가 노랫가락이나 한마디 시켜서 들으
시두룩 하게. ” “내 수루 어떻게 젊은 년을 붙들어내우? ” “주변없는 사람
일세. 그 집 젊은 주인만 충동이면 대번 될 것 아닌가. ” 늙은 행인과 주인 사
이의 수작하는 말을 김양달이 잠자코 듣고 섰다가 주인을 보고 “쓸데없는 소리
고만두구 나를 거기까지 데려다만 주게. 나는 장교를 불러가지구 곧 올 텔세. ”
하고 말하는데 주인이 대답하기 전에 늙은 행인이 나서서 “그러실 것 무어 있
습니까. 기왕 가시면 한동안 구경하시다 오시지요. ” 하고 권하듯 말하니 김양
달이 증을 내며 “내야 구경을 하든 말든 웬 참견이야! ” 하고 늙은 행인을 무
안주었다. 김양달이 예방비장에게 말하고 나와서 주인을 앞세우고 성
주받이하는 집으로 간 뒤에 늙은 행인은 곧 “뒤보구 와서 잠이나 자야겠다. ”
혼잣말하고 밖으로 나왔다. 뒤보러 간다고 나온 늙은 행인이 쏜살로 주인한 집
뒷집에 와서 불 없는 방 하나를 열어보며 “여기들 있나? ” 하고 말하니 방안
에서 어느 사람이 “녜, 여기 있습니다. ” 하고 대답하였다. “가긴 갔네만 곧
올 모양이니 어떻게 하나. ” “우리두 지금 그런 줄 알구 공론하는 중인데 좋
은 수가 있습니다. ” “좋은 수가 무슨 수야? ” “잠깐 들어오십시오. ” 늙은
행인이 방안으로 들어간 뒤에 몇 사람의 쑥덕공론하는 소리가 나더니 쑥덕공론
이 끝나며 곧 늙은 행인은 도로 나와서 주인한 집으로 돌아왔다. 예방비장은 석
후에 바로 잠 한숨을 잤지만 편산서 하룻밤 통히 잠을 설친 까닭에 잠에 취하여
김양달이 장교 부르러 가는 것도 꿈속만 여겼다가 어떻게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서 봉물짐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김양달이 오기 전에 또 잠이 와서 머리를
벽에 기대고 깜빡깜빡 조는 중에 얼굴에 찬바람이 홱 끼쳐서 운을 언뜻 뜨고 본
즉 방안에 사람이 들어서고 방문이 열리었었다. 들어선 사람을 김양달인 줄만
생각하고 “문을 왜 열어놨어! ” 하고 나무라다가 짚신 감발한 것이 눈에 뜨이
어서 그 사람의 얼굴을 치어다보니 낯모를 사내가 흉증맞게 웃고 서 있다. “네
가 웬놈이냐? ” “아니꼽게 호령 말구 내 말 들어. 우리 대장이 할 말씀이 있
다구 잠깐 오라시니 가세. ” “대장이 누군데 나를 오란단 말이냐? ” “가보
면 자연 알 테니 어서 일어나. ” “가만 있거라. 대님이나 좀 매구. ” 예방비
장이 끌러놓은 대님을 찾는 체하고 슬며시 자리 옆에 놓아두었던 작은 환도를
찾아 쥐고 벌떡 일어서며 곧 칼날을 뽑아 앞으로 내밀면서 “이 도적놈아! ”
하고 큰소리를 질렀다. 그 사내는 미리 다 알고 기다린 것같이 슬쩍 대들어서
환도 쥔 팔을 잡아 환도를 뺏어버리고 품에서 긴 수건을 꺼내서 아갈잡이를 시
키고 또 활시위를 꺼내서 뒷결박을 지웠다. 예방비장이 아갈잡이와 뒷결박을 안
당하려고 항거하였으나, 그 사내는 마치 허수아비나 어린아이를 다루듯 하여 항
거하는 보람이 조금도 없었다. 예방비장이 주저앉아 일어나지 않는 것을 그 사
내가 멱살을 잡아 일으켜세우더니 끌어안아서 방 밖으로 내놓으며 “어서 와서
끌구들 가자. ” 하고 말하였다. 봉당 구석에서 그 사내의 부하 네댓 놈이 우 하
고 몰려나와서 예방비장에게 달려들었다. 앞에서 상투를 풀어잡고 끄는 놈에, 좌
우에서 팔죽지를 끼여들고 끄는 놈에, 뒤에서 등덜미를 짚어서 미는 놈에 예방
비장이 꼼짝 못하고 바깥 행길까지 끌려 나왔을 때 바깥방에서 장교와 말꾼, 짐
꾼 몇 사람이 쫓아나왔다. “이놈들, 웬놈들이냐! ” 장교의 고함치는 소리가
나고 “이놈아, 소리지르지 마라. 시끄럽다.
” 방에 들어왔던 사내의 꾸짖는 소리가 난 뒤에 바로 쿵 소리가 나더니 “아이
쿠! ” 하고 장교가 길바닥에 나가자빠졌다. “이놈들, 모주리 동댕이를 쳐줄 테
니 이리들 오너라. ” 하고 기세 부리는 것은 그 사내요, “아니올시다. 아니올
시다. ” 하고 뒤를 빼는 것은 짐꾼, 말꾼 들이었다. 늙은 행인이 대담하게 앞으
로 나와서 예방비장을 가리키며 “이 양반을 무슨 일루 붙들어가우? ” 하고 물
으니 그 사내가 볼멘 소리로 “상관없는 사람은 저리 가라구. ” 하고 늙은 행
인을 한옆으로 따다밀었다. “떠다밀지 마우. 늙은 사람 자빠지우. ” “잔소리
말구 얼른 저리 비켜! ” “당신이 운달산 박대장패의 젊은 두목 아니시우? ”
“나를 언제 봤다구 운달산이니 박달산이니 하구 떠들어. ” “내가 연전에 당신
손에 혼난 일이 있는데 늙은 사람이 눈이 어듭기로서니 당신을 몰라보리까. ”
그 사내가 늙은 행인의 말을 듣고 “음. ” 하고 잠깐 생각하더니 “이 늙은 사
람을 두구 가면 우리 종적을 가르쳐주기 쉽다. 귀찮지만 붙들어가지구 가자. ”
하고 부하에게 분부하였다. 늙은 행인이 예방비장 뒤에 붙들려오며 운달산 박대
장패의 운자도 입밖에 내지 않을 터이니 놓아 달라고 그 사내에게 애걸하나, 그
사내는 검다 쓰다 말이 없었다. 예방비장은 늙은 행인의 말을 주워 듣고 ‘늙은
사람의 말을 들으니 운달산 화적패가 분명한데 어째서 나를 잡아갈까. 나를 잡
아다 놓구 봉물짐을 갖다 바치라구 할 셈인가. ’ 속으로 생각하고, 무섭기도 하
고 춥기도 하여 벌벌 떨며 끌려갔다.
김양달이가 성주받이하는 집에를 와서 보니 남녀노소 구경꾼들이 넓은 마당에
가뜩 들어섰는데 장교는 하나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데리고 온 객주 주인에게
찾아보라고 일러서 주인이 한두 사람더러 물어본 끝에 뜰아랫방에 들어앉았는
장교들을 불러냈다.
장교들은 같이 온 행인들의 주선으로 그 집 젊은 주인에게 주식대접 중이라 불려
나올 때 어떤 장교는 입에 음식을 꺼귀꺼귀 씹으며 나왔다. “일찍 자랬으면 잘
것이지 구경이 무슨 구경이냐! 내일 새벽길들을 어떻게 갈 테냐. ” 김양달이 책
망하는 말에 여러 장교들은 “녜, 곧 가겠습니다. ” “내일 첫새벽에 일어들 납
니다. 염려 맙시오. ” “나리께서 친히 부르러 오셨습니까, 황송합니다. ” 각인
각색으로 대답하고 뒤를 따라나온 행인들과 그 집 젊은 주인을 돌아보며 “우리
는 먼저 갈 테니 구경들 많이 하구 나중들 오시우. ” “잘들 먹구 가우. 이 다
음 또 뵙시다. ” 하고 갈 인사들을 지껄일 때 젊은 주인이 김양달이 앞에 나와
서 문안을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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