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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6권 (5)

카지모도 2023. 3. 16.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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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는 곧 서림이를 불러서 박유복이에게 인사를 시킨 뒤에 박유복이와 길막

봉이의 뒤를 따라 오가의 집으로 왔다. 손가가 서림이를 사랑 바깥마당에 세우

고 먼저 사랑에 들어가서 오가를 보고 다시 서림이의 일을 이야기하니 오가가

박유복이와 길막봉이를 돌아보며 “우리 그자를 불러서 말을 한번 자세히 들어

보세.” 말하고 곧 손가더러 불러들이라고 일렀다. 서림이가 사랑에 들어와서 오

가에게 절인사하고 무릎을 꿇고 앉으니 오가가 편히 앉으라고 말하고 나서 바로

“노형 뒤에 큰 재물이 있다니 그 재물이 지금 어디 있소?” 하고 물었다. “차

차 말씀하오리다.” “차차 말한다구 사람이 갑갑증이 나게 하지 말구 얼른 이

야기 좀 하우.” “그 재물이 지금은 평안 감영에 있습니다. 그러나 섣달 보름

안에 서울루 올라옵니다.” “그 재물이 평안 감영 상납이오?” “아니올시다.

평안감사가 위에 진상하는 재물입니다.” “감사가 위에 바치는 재물이 상납이

아니면 무어요?” “상납 외에 따루 진상하는 재물입니다.” “따루 진상하는

것이면 토지 소산 아니겠소. 소산에 무슨 귀중한 물건이 있기에 열 몫에 나눠두

장자 열이 난다구 말했소.” “장자 열이 난다구 말한 것두 줄여 말한 폭입니다.”

서림이가 평안 감영에서 진상 올 물건을 이야기하는데, 정신 좋게 물건 가지

를 자세히 말하니 방안 사람들이 다 눈을 둥그렇게 뜨고 서림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저녁밥이 되었을 때 오가와 박유복이가 길막봉이를 붙들어서 셋 겸상으로 내

다 먹고 서림이는 손가와 겸상하여 윗간에서 먹이는데 겸상 반찬이 셋 겸상과 별

로 층하가 없었다. 이날 밤에 오가가 밤참으로 술상을 차리게 하고 서림이의 이

야기를 들리려고 배돌석이와 곽오주까지 마저 청하여 왔다. 술 먹을 때 서림이

만은 다섯 두령과 한 상에서 먹게 되었는데 서림이가 술 먹기 전까지는 여러 두

령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재작하여 아는 것도 모르는 체하였으나, 술이 거나하

게 취한 뒤로부터 아는 것은 고사하고 모르는 것까지 아는 체하고 기탄없이 지

껄이었다. 서림이의 말이 천문지리 의약복서에 막히는 것이 없는 것을 보고 오

가는 좋아하고 박유복이는 공경하고 길막봉이와 배돌석이는 놀라워 하였으나,

곽오주만은 좋아도 않고 공경도 않고 또 놀라워하지 않았다. 밤이 이윽하여 술

자리가 파한 뒤에 곽오주는 장등을 넘어가고 길막봉이와 배돌석이는 도회청으로

내려가고 박유복이는 안으로 들어가고 오가만 남아서 서림이와 손가를 데리고

자는데, 손가는 윗간에 자게 하고 서림이는 자기와 같이 아랫간에서 자게 하였다.

이튿날 아침 후에 다섯 두령이 도회청에 모여서 두 가지 일을 의논하게 되었

는데 한 가지는 평양서 오는 진상 봉물을 빼앗을 일이요, 또 한 가지는 서림이

를 도당에 가입시킬 일이었다. 진상 봉물은 빼앗기로 의논이 일치하여 결말을

쉽사리 지었으나 서림이의 입당은 곽오주가 찬동하지 아니하여 낙착이 용이하게

나지 않았다. 전날 길막봉이가 탑고개에서 들어왔을 때 서림이가 임꺽정이 팔던

것을 이야기하여 곽오주는 듣고 괘씸하게 치부한 까닭에 서림이를 입당시키지 못

한다고 고집을 세우게 된 것이었다. 오주가 사돈의 사촌을 들추면서 고집세우는

것을 오가가 보고

“여게 곽두령, 내 말 좀 듣게. 서씨가 거짓말한 것은 나두 잘 했다구는 생각

하지 않네만, 사내자식이 길 나설 때 갓모 하나, 거짓말 하나는 가지구 나서야

한다네. 일시 해버린 거짓말을 가지구 그렇게 미워할 거 없지 않은가.”

하고 너털웃음을 내놓으니 오주는 잠시 눈을 끔벅끔벅하다가 “거짓말두 쓸

거짓말이 있지만 서가의 거짓말은 못쓸 거짓말이오. 우리게 와서 형님을 파는

놈이 천하에 뻔뻔한 놈 아니오.” 하고 다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우리가 임장사와 친한 줄을 알았으면 그런 거짓말을 할 리가 있나.” “그

러면 꺽정이 형님을 왜 끌어댔단 말이오?” “천하 장사 임꺽정이 이름을 내세

우면 길두령이 질끔할 줄 알았던 게지.” “그러니까 더 고약하지 않소.” “글

쎄, 자네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자네 좀 생각해 보게. 지금 우리 중에 꾀를

낼 줄 아는 모사가 하나도 없지 않은가. 거기는 서씨가 아주 안성맞춤일 것 같

으니 두말 말구 입당시키세.”

“졸개루 입당시킬 테요?” “우리가 모든 일을 같이 의논할 사람인데 사람

대접이 있지, 어떻게 졸개루야 입당시킬 수 있나.” “그럼 우리 도회청 모듬에

넣을 작정이오? 그건 당초에 안될말이오. 들일라면 졸개루나 들이시우.”“본래

군중에는 장수두 있구 모사두 있는데 장수들이 모사를 졸개 대접하는 법은 전고

에 없네. 여보게, 생각해 보게. 졸개 대접을 해서야 좋은 꾀를 낼 리가 있나.”

“도둑질해 먹는데 장수는 무어구 모사는 무어요?” 막봉이와 돌석이가 오주의

말을 나무랄 뿐 아니라 유복이까지 오주를 타일렀건만, 오주는 “형님두 간나위

에게 속으시우. 서가가 웃을 때 눈을 살살 감는 걸 보지 못했소.” 하고 전에 잘

듣던 유복이의 말도 듣지 않고 내처 고집을 세웠다. 나중에 오가가 곽오주의 고

집을 좋연히 꺾기 어려울 줄 알고 자리에 나 앉아서 서림이의 입당은 진상 봉물

을 빼앗은 뒤에 다시 의논하자고 말하니 그 말에는 오주도 찬동하였다. 서림이

가 오가의 집에서 숙식하면서 평양 진상 봉물 뺏을 꾀를 오가와 박유복이에게

말하여 미리미리 준비를 시키는데, 평양서 떠나오는 인마 수효와 노정 일자를

먼저 알고 있으려고 졸개들 중에서 눈치빠르고 걸음 잘걷는 사람을 대여섯 명

뽑아서 섣달 열흘께까지 하루 한 사람씩 평양길로 떠나보내되 어디서든지 평양

진상 봉물이 오는 것을 보거든 그날 숙소참만 알고 곧 돌아서 밤 도와 오라고

일러 보내게 하였다. 마지막 졸개를 떠나보내던 날 서림이가 오가를 보고 “인

제 중요한 일을 한 가지 작정할 것이 있습니다.” 하고 말하여 오가가 “중요한

일이 무엇이오?” 하고 물었다. “봉물을 뺏으려면 뺏을 자리를 작정해야 하지

않습니까.” 서림이는 미리 생각한 일이 있는 어취로 말하는데 “뺏을 자리라니

무슨 말이오?” 오가는 괴이쩍게 여기는 눈치를 보이었다. “평양 쪽으루 가서

지키든지 서울 쪽으루 가서 지키든지 자리를 골라놓아야 뺏을 계책이 생기지 않

습니까.” “탑고개 앞뒤를 지키구, 고개에서 뺏으면 되지 않소.” “탑고개루

올는지 숫돌고개룰 갈는지 그것두 아직은 모르지만, 탑고개루 온다구 잡더래두

탑고개는 자리가 신통치 못합니다.” “탑고개가 자리가 신통치 모하다니 별소

릴를 다 듣소.” “탑고개 자리 된 품이 움치구 뛸 데가 없어서 도망질칠 사람

두 도망질을 치지 못하구, 죽을 작정하구 대들기가 쉽습디다. 그래서 촌장꾼이나

단출한 행인을 세워놓구 떨기는 십상 좋지만 큰행차나 다솔 일행을 막아놓구 떨

기는 좋지 않을 듯합니다. 이번 평양서 오는 일행이 짐꾼들만 올 리는 만무한

일이구, 군관들이 영거하구 올 것인데 좁은 자리에서 군관들과 맞닥뜨려 접전이

나면 이편 저편에서 사람이 많이 상할 것 아닙니까. 접전에 이기구 진상 봉물을

떨어온 뒤에는 아무 탈이 없겠느냐 하면 그렇지두 못할 것 같습니다. 탑고개에

서 일이 났다 하면 그 지목이 대번 청석골루 돌아올 것이니 셋줄 좋은 김명윤이

가 들꼴같이 서울에다가 기별해서 관군을 몇백 명이나 몇천 명을 풀어서 청석골

을 치게 하면 큰탈 날 것 아입니까. 사람을 상하지 않구 뒤탈을 당하지 않으려면

탑고개 외에 다른 자리를 고르는 것이 좋을 줄루 압니다.” “말을 듣구 보니

그럴 듯 하우. 자리를 고른다면 어디가 좋겠소? 생각한 곳이 있거든 말씀하우.”

“평양 쪽으루 가서 지킨다면 총수산소두 좋구, 동선령 새남 사이두 좋구요. 서

울 쪽으루 가서 지킨다면 임진나루 못미처두 좋구, 혜음령 턱밑두 좋습니다.”

“너무 멀리 나간다면 되려 비편한 일이 많을 테니 송도와 평산 중간에서 자리

를 고르는 것이 어떻겠소?” “자리가 여기서 가까울수록 지목을 받기 쉬우니까

그건 생각해 하십시오.” “오늘 여러 두령을 모아가지고 의논해 보리다.” 오가

가 다른 두령들과 자리를 의논해 본즉 박유복이 한 사람 외에는 모두 탑고개를

주장하여 마침내 결정을 짓지 못하고 오가가 다시 서림이를 보고 탑고개 주장이

많은 것을 말하니 서림이는 고개를 가로 흔들며 “아무리 주장하는 사람이 많더

래두 탑고개는 신통치 못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노형 말을 들은 뒤엔 내 맘

에두 신통치 못해서 자리를 작정 않구 고만두었소.” “여기서 가까운 평산이나

금교에 그 일행이 와서 숙소하거든 그 숙소에서 뺏어오면 어떻겠습니까?” “숙

소에 가서 뺏기가 어디 쉽소.” “숙소에 가서 뺏기루 작정만 되면 좋은 꾀가

날 겝니다.” “좋은 꾀가 있거든 말씀하우.” “낭패 없이 뺏어올 꾀는 제가 목

벨 다짐하구 맡을 테니, 다른 두령들이 딴소리나 못하두룩 해주십시오.” “글

쎄, 곽두령 같은 사람이 공연히 고집을 세울는지 모르지만 박두령하구 둘이서

힘을 써보리다.” 오가와 박유복이는 서림의 말을 좇아서 평양 진상 봉물을 가

까운 숙소에 가서 꾀로 뺏어오자고 다른 두령들과 합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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