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하도 엄청난 일이어서 옹구네의 심사 따위는 너무나 하찮아. 이 일에 어
디 비집고 끼여들 여지가 없다는 것을 그네는 감지한 것이다. 참말로 그런 일을
이 사램이 저지를랑가.옹구네의 가늘게 좁혀진 눈이 춘복이 옆얼굴을 사려본다.
위로 뼏친 춘복이의 쑤실쑤실하고 숱 많은 칼눈썹이 꽁지에서 날카로운 회오리
같이 매암을 돈다. 그 눈썹은, 강실이를 이 농막의 이 방안에 데려다 앉혀 놓는
일에 장애가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여지없이 내려피고 잘라내
버릴 기세로 거칠게 솟구쳐 있었다. 무서라. 옹구네는 그 서슬에 저도 모르게
살갗이 오도르르 일어선다. 알 수 없는 소름이 온몸을 훑는다. 이미, 저지를 일
만 남었구나. 이게 어제 오늘 마음먹어 재미로 불쑥 해 보는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옹구네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여그서 인자 내가 머엇을 어치게 해야
힐 거이냐. 옹구네의 생각이 골똘해진다. 절대로 이 사람 노염을 사서는 안된
다. 노염을 사먼 그걸로 그만이제. 넘 되는 거이여. 그렇게 어쩌든지 비우를 거
실리지 말고 내 성질을 쥑이얀다. 이 사람 허는 일을 돋과줌서. 이 일을 나랑
같이 모사허도록 해얀다. 그러고 이 일에 내 공이 들으가야여. 내 덕을 보는 점
이 있어얀단 말이여.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강실이를 데꼬리로 했다먼 이미 나로
서는 속수무책인디. 무단히 빡빡 달라들어 밨자 나만 손해제. 기왕에 내가 빠지
고도 어차피 이워질 일이라먼, 채라리 한쪽 귀영텡이 거들어 주고 성사가 된 담
에는 한펭상 골리 주장허는 거이 낫제. 아먼, 성사가 안되야도 나한테는 나쁠
일 없고. 거기까기 생각하던 옹구네는 미묘하게 흥분이 되었다. 아까, 인제 여
기 오지 말란 말을 들었을 때의 그 철렁하고 캄캄하던 심정에, 곁다리 아낙의
설움. 제 신세의 처량함. 그리고 달려들어 와드득 쥐어뜯어 놓고 싶은 분함, 원
통함들을, 춘복이 대신 강실이한테, 짓이기는 것으로 갚아 주고 싶은 야릇한 충
동에 그네는 몸이 떨렸다. 오냐, 양반? 어디 양반 시집오는 것 좀 보자. 니 발
로 걸어올랑가, 끄집헤 올랑가, 안 그러먼 엡헤 올랑가. 그렇게 와도 여가 시집
은 시집이제. 서방님 지신 딩게. 흥, 곧 죽어도, 이런 디로 옴서 육리 갖촤 흔
인허고, 청실 홍실 꽃가매 타고 오든 못허겄제. 여그는 팔천놈이 사는 수악헌
딩게. 이런 디로 오느니 채라리 칼을 물고 어푸러져 죽는 거이로 엡헤 가먼 갔
제 어쩔 거이냐. 어디, 행세허는 양반의 아리따운 작은아씨. 어뜬 행세를 험서
이 방으로 들오는지 나 그것 좀 꼬 보고 자프다. 그 꼴 내가 볼라고라도 기어이
이 일에 내가 상관을 좀 해야 쓰겄다. 아이고, 양반? 아나, 깨소곰이다. 이방으
로 니가 들오기만 해 바라. 들오기만. 그러면서 옹구네는 어느결에 강실이가 제
손아귀에 한줌으로 잡힐만큼 만만하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지께잇 거이, 매안으
구름 속으 있을 적에 작은아씨고 애기씨제. 일단 여그 거멍굴로 잽헤 오기만 허
먼, 그러먼 그만이여. 그때부텀은 내말 들어야여. 암먼, 그렇제. 달구새끼 삥아
리도 다 텃세를 허는디? 닭장에 몬야 있는 놈이 나중 들온 놈 대가리 기양 주뎅
이로 콱콱 쪼사 부리고, 모시통에 모시도 못 찍어 먹게 쫓아내 부리잖이여? 사
램이라고 머이 달르간디? 더 허먼 더 했제 못허들 안혀. 사램이 짐생보다 외나
더 독한 거 아니라고? 옹구네는 꼬리가 깊게 패인 눈을 더욱 가느소름하게 좁히
어 뜬다.
"생각 잘했네잉. 나도 그 심정을 백 번 알겄그만. 내가 사나라도 그만헌 변동천
하찜 한 번 맘먹어 보겄다. 기왕으 장개를 가고 각시를 얻을라먼 그만침이나 된
큰애기여야 까지가 맞제이. 근디, 생각은 존디. 생각만 갖꼬는 안될 일이그만,
일을 어뜨게 헐라고?"
춘복이한테 무어 더 자세한 말을 들어 볼 것도 없이 단도직입으로 눌러 두고,
그에다가 계집이 부림직한 잔망스러운 앙탈이나 푸념은 아예 삭 걷어내 버린 그
네는, 단번에 일의 복판을 치고 들어간다.
"궁리중이요."
암상을 부리는 대신 뜻밖에도 씻은 듯한 목소리로 진지하게 묻는 옹구네한테 춘
복이너 얼결에 뚱하니 대답한다.
"목심이 서너 개 되는게비네잉."
"하나라도 그렇제."
"언감생심 그런 생각이라도 허는지 알먼 그대로 끄집어다가 덕석몰이 투드러 패
고, 종당에는 뼈다구 뿐질러서 동구 밖에 패대기칠 거인디? 아, 내안 냥반들 하
루 이틀 겪꺼 바? 더군다나 이게 무신 과부 보쌈도 아니고 금쪽 같은 양반댁 시
집도 안 간 처녀를 날도적질해 오는 일인디. 살기를 바래?"
"그렁게 말이 새먼 안되는 일 아니요? 절대로."
"쥐도 새도 몰르게?"
"몰라야제 알먼 베리지요."
"앙 그리여. 이 일은 소문이 나야 되는 일이네이. 내 동네, 이우제 동제, 삼동
네가 다 시끌시끌 왁자허게 소문이 나야만 제대로 되야."
"거 먼 소리다요?"
춘복이가 비로소 얼굴을 돌려 옹구네를 바라본다. 사실은, 오늘의 이 결심을 구
체적으로 하게 되기까지 하루 이틀 걸린 것은 아니었으나, 맨 처음
"강실이."
란 이름을 벼락 맞듯 맞아 버린 것은, 옹구네와 토닥거리던 띁에 그네가 내뱉더
니 말을 듣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춘복이의 눈은 어둠 속에서 번쩍 뜨
였던 것이다. 마치 부싯돌이 부딫치며 빛이 튀는 것 같던 그 순간을 춘복이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었다. 옹구네는 입정이 본디 암팡져, 억하심정으로, 감히
너 같은 것이 그런 일을 꿈이나 꿀 수 있느냐. 몰아 붙이면서도 그 꿈꿀 수도
없는 일을 마치 춘복이가 마음먹고 있기나 한 것처럼, 건너짚어 오장을 질러 본
말인 줄은 춘복이도 알았다. 상대방의 오장을 뒤집기로 작정하고, 일부러 가장
터무니없고 어림없는 말을 골라, 춘복이 속에다 불쑤세미 쑤셔 박는다고 한 것
이 그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에 춘복이는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소스라쳤던 것
이다. 강실이. 옹구네가 무어라고 구시렁거리면 저희 집으로 가 버린 다음에도,
아까 그네가 내쏘던 말이 그대로 춘복이 가슴 복판을 꿰뚫고 있었다. 뚫린 복판
에 꼳힌 이름으니 곧 화살이었다. 그 화살 맞은 자리에서 선혈이 쏟아져, 막힌
피가 터지면서 철철 흘러 넘치는 것 같은 흥건함에 그는 자신의 몸을 내맡긴
채, 숨도 쉬지 않고 흘린 듯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내가 왜 그 생각을 진작에
못했이까. 내가 왜 그것을 몰랐이까. 그때 춘복이는 주먹을 부르쥐었다. 그 동
안 그 어느 누구에게도 그 내색을 들키지 않았기 때문에, 오직 하늘 아래 춘복
이 혼자 다짐하고 있는 일이었다. 저러다가 딴 디로 시집이나 가 부리먼 어쩌
꼬. 하면서도 막상 서두르지는 못하면서 방도를 곰곰 궁리만 하고 있다가. 아까
공배네 오두막에서'변동천하'이야기 들은 것이 번개가 되어, 춘복이는 우선 옹
구네를 오늘 밤으로 끊어 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보쌈을 하
든지 업어 오든지, 결행을 할 셈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런 일을 덮어 둘 것인
가.
"소문이란 거이 절대로 나먼 안되는 일도 있고이, 또 소문내야만 성사되는 일도
있능 거이여. 그렁게 춘복이가 강실이를 지 각시로 삼을라고 이러고 저러고 헌
단다아, 허는 말은 쥐도 새도 몰라야 허지마는, 강실이는 즈그 오래비허고 상피
붙었단다아, 허는 소문은 멀리 나먼 날수락 이로운 거 아니여? 우리한테."
옹구네는 그늘지고 축축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우리한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네는 제 낯을 춘복이 뺨에 붙일 듯 갖다 댔다.
"우리요?"
춘복이는 눈썹을 찡기면서도 어느새 옹구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비 올라먼 하늘에 구름이 몬야 몰리고, 너구리 잡을라먼 굴 앞에 생나무 때서
연기를 자욱허게 피우잖이여? 아, 아까도 공배 아제 그러시등만. 원효대사 사명
당 이애기허심서. 변동천하를 알어얀다고 안 그래? 꺼믄 소가 몬야 일어나겄냐.
뻘헌 소가 몬야 일어나겄냐, 불을 때, 불을 얻을라고 부식돌을 팍 긁어대먼 처
음에는 꺼믄 연기가 뭉실 올라오잖냐. 꺼믄 것이. 그리고 나서야 뻘건 불이 붙
지. 그렇게 꺼믄 소가 몬야 일어난다고 헌 이애기 말이여. 그렇게 일에는 다 전
조가 있능 거인디. 강실이 요리 데꼬 올라먼 소문이 몬야, 비 올라는 먹구름맹
이로. 너구리 잡는 연기맹이로, 뻘건 불 일어나기 전에 꺼믄 연기맹이로, 퍼져
야 헌단 그 말이여. 저그 고리배미 비오리네 주막허고, 정그정에 새로 생긴 새
술막에다 일단 말을 흘리면, 주막이란 디가 양반 상놈 헐 것 없이 아무나 오고
가는 디고, 또 귓구녁 철벽허고 일부러 안 들을라먼 몰라도 여그 저그서 허는
이애기 자연히 듣게 되는 디가 주막이여. 또, 들으먼 욍기게 되능 거이 말이고.
그렁게 소문을 낼라먼 주막이 젤이여. 근디, 암만 소문나 밨자 고리배미, 거멍
굴, 이러다 말먼 쇠용이 없제. 혼인 말 오고 갈 즈그 동아리 되는 양반들이 알
어야는디. 점잖으신 양반들이 발개고 앉어 책만 읽는디 그런 소문을 어디서 듣
겄능가? 다 아랫것들이 조잘조잘 허는 소리 듣고 알제잉. 그렁게 주막에다 퍼치
는 소문이 시작이여. 그러고 나서는 놉으로 일허로 가든지, 머슴방에 마실 가서
지내가는 말맹이로 한 마디 뗀지고. 그러먼 기양 지름 조우 불 붙디끼 화악 번
질 거이그만. 소문이,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그께잇 거 오래 걸리도 안
헐 거이네. 그런디 그게 배깥으서만 그렇게 말이 되고 정작 즈그 문중 즈그 집
안에서는 모른다. 그럴 수도 있그덩? 등잔 밑이 어둡다고 말이여. 온 시상이 다
아는 이애기라도 차마 그 집 사람들보고는 말 못허고. 뒤꼭지다 대고 숭이나 보
고 말 수도 있잖여. 그러먼 또 쇠용이 없제. 혼인 말만 끊어질 뿐, 시집은 안
간 채로 즈그 마당에서 옴짝달싹 안 나오먼 일이 어럽제잉. 시방, 보쌈을 허든
지 업어 오든지 헐라고 그러제? 그런디 그게 요렇다고. 흠도 티도 몰르고 있을
적에 그 부모가 딸자식을 도적맞어 바. 그러먼 어뜨케 허겄능가이? 기연이 도독
놈을 찾아내서 쥑에 놓지 살려놓겄어? 딸자식을 베리고 안 베리고를 떠나서 도
독놈은 패 쥑이겄지. 찢어 쥑이든지. 그래야 분이라도 풀릴 것 아닝가. 자식은
도로 어쩔 수 없다 치드라도. 그런디 소문이 나 노먼 그게 달르제. 상피붙은 집
안이다. 소문이 나먼. 본인 혼삿길은 더 말헐 것도 없고 즈그 문중 양반 가무에
개 짐생똥칠을 허는 거이라. 즈그가 몬야 강실이를 놓고 쥑이든지 내쫓든지 헐
거이라고. 그런 일은 소문 안 나게 넘모르게 허겄지맹. 쉬쉬 험서. 근디, 정이
더런 거이라 쥑이든 못헐 거이네. 부모 자식 정리로 어뜨게 차마 생목심을 쥑일
수야 있겄어? 쫓아내기 쉽제. 그렇게, 소문만 익으먼 홍시감 꼭데기 빠지디끼
강실이는 톡 떨어지게 되야 있어. 자개 앞으로. 그러먼 줏어 오면 되잖여. 멋
헐라고 하나뿐인 목심 걸고 일을 에럽게 헐라고여? 그렇게 쫓아쟂 나식 줏어 갔
다고 춘복이를 어쩔 거이여? 한 번 쫓아내 놓고, 속으로야 곧 쥑이고 잪겄니만
이미 물릴 수가 없는 일이제. 그런디 혹 강실이가 기가 멕혀 목을 맬 수는 있을
거이네. 물에 빠지든지. 얼매든지 그럴 수 있제. 그렇게 자개는 그것만 유심히
보고 있어. 못허게. 두 눈을 똑 뜨고. 이렇게 되게 즈그 집안으다 소문을 퍼칠
라먼 봉출이란 놈이 젤일 거이그만. 그놈이 아배는 양반이고 어매는 종이라. 속
에 불이 많어 놔서 살살 달개감서 부리먼 쓸 만헐 거이여. 더군다나 즈그 종갓
집에 사는 종잉게 안성맞춤이제. 가가."
옹구네 눈알이 번들번들 거멓게 타오른다.
"소문은 내가 내주께 은근슬쩍 빈틈없이 여그 저그다가."
그러고 나서 옹구네는 춘복이를 향하여 반듯하게 턱을 들고, 오굼박듯이 잘라
말했다.
"그 대신, 내 말대로 되야서 강실이가 이 방으로 들오고 나먼, 그때는 내가 큰
마느래 노릇을 해야겄어. 그런 중 알어 두어. 귀영머리 마주풀고, 육리 갖촤 혼
인허든 못했지만, 저보다는 내가 몬야 이 방으서 비개를 비었고, 서방님 숨소리
를 들어도 저보다 내가 몬야 들었응게. 찬물에도 우아래가 있다는디 이건 꼭 다
짐을 받어 두고 넘어가야겄어. 강실이보단 자개 대답을 나는 꼭 들어야겄는디.
어쩔랑가. 강실이가 나를 성님으로 뫼시고, 나를 큰마느래로 대접을 해야만 우
리들이 다 죄용헐거이네. 만약에 자개가 강실이 아까워서 그렇게는 못허겄다고
그러먼, 이판사판. 나도 생각이 있응게. 만일 이 약조를 안해 준다먼. 나는 딴
소문 내부릴 거이여. 아까 말헌 자리마동, 왁자허게. 춘복이가 강실이를 보쌈헐
라고 그런단다아. 강실이 상피 소리는 싹 빼고, 그러면 어뜨케 되겄어? 자. 인
자 어쩔랑가. 나랑 한속이 되야서 펭상 이렇게 내우간맹이로 살랑가, 안 그러먼
내 가심에 못을 박어. 너 죽고 나 죽자고 뎀베드는 나 때미 이도 저도 다 망치
고, 아무 실속도 못 챙기는 건 더 말헐 것도 없고, 종당에는 끄집헤 가서 덕석
몰이 몰매 맞고, 피투셍이 몽달귀신이 될랑가. 어디 한 번 대답 좀 해 바."
옹구네가 덜미를 쥐고 다그치는 말에 춘복이는 눈을 떨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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