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어쩌꼬잉
거멍굴이 한판 뒤집히어 소란스러운 중에도, 문복하러 온 고리배미 아낙 하나
가 아까부터 백단이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주인 없는 방에서 혼자 무릎을 바
짝 가슴에 끌어안고 앉아 있었다.
그네는 뾰족하니 야윈 턱을 제 무릎에 한참이나 얹었다가, 기웃 고개를 틀어
바깥쪽을 내다보기도 하고, 손가락 끝을 튕기며 검정 물들인 무명 치맛자락에
묻은 검불인지 티끌인지를 떨어내기도 하였다
그 행색은 남루하고, 기색은 초조해 보인다.
그렇지만 백단이는 냉큼 들어오지 않았고, 금생이네 성냥간에서 들리는 것인
가, 놀란 개 짖는 소리만 숨이 넘어갔다.
"언제 외겼소이?"
얼만큼이나 지났을까.
마당에서 구시렁구시렁 궁얼거리는 말수리가 나도니, 만동이와 귀남이는 뒤안
으로 돌아가는 기척이고, 벌컥 지게문이 열리면서 백단이가 발보다 고개를 먼저
들이밀었다. 그네의 입술이 멍든 자줏빛이다.
"추운디 어디 갔다 온당가?"
아낙은 옴질 자리를 옮겨 앉는 시늉을 한다.
아낙이 비키는 아랫목 자리에는 낡은 요대기 한 닢이 개혓바닥같이 납작하게
깔려 있다. 부들자리 방바닥의 미지근한 온기를 겨우 가두고 있는 그 요대기 밑
으로 비빈 손을 쑤시어 집어 넣는 백단이 몸이 후르륵 떨린다. 꼭 추워서만 그
러는 것은 아닌지 그네의 낯색이 불길하게 질려 보인다.
"아이, 나 멋 조께 물어 볼라고오."
아낙은 백단이에게 다가앉으며, 목소리를 낮춘다.
"내가 왜 오늘 머이 안 보고 잡소예. 어찌 그렁가."
백단이가 무겁게 이마를 찡그린다.
본디 그네는 굿을 하는 당골네 세습 무당이지 신 내려서 점 치는 점쟁이는 아
니었지만, 그 구분을 굳이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렇게 당사주를 보아 달라고 찾
아오곤 하였다.
그래서 생년월일 대고 뽑은 점괘의 길 흉 화 복을 알록달록 울긋불긋 그림으
로 그려 풀어 놓은 당사주책은, 콩기름 먹인 장지 뚜껑을 젖히면 넘기는 부분에
손때를 깊이 머금은 채, 이 본 저 본 여러권, 백단이네 방 웃목 소반 위에 늘 포
개어 얹혀져 있었다.
"아 그레 배운 곳이제 귀신 씌인 것도 아닌디 머. 벨라 잘 맞히는 것 같든 않
드라, 신통찮해."
하고 백단이를 미심쩍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헌다는디 아무러먼 누누 대대 그 짓으로 업을 삼어
온 당골네가 점 하나 못 치께미? 나 뵈기에는 갠찮등만."
"사주는 점허고는 달체. 사주 팔자는 타고나은 거이제 귀신 노락질은 아닝게
로. 배워서 보는 거여. 당사주도 그게 사주 아니라고?"
"하아. 글자로 푸는 것을 그림으로 본단 것만 달러, 딴 거 없어."
"그래도 그러 아무나 못 보네이."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머 안 존 일 있능가아? 동네도 수선수선허고잉."
문복하러 온 아낙은 백단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들추듯 묻는다. 기왕에
온 걸음이 허탕이 되지 않도록 당골네 비위를 우선 맞추어 두려는 것이리라.
"동네는 동네고."
"그러먼 머, 무신?"
"벨일 아니요."
백단이는 아낙을 떨구어 내려면 얼른 한 자 보아 주어 버리는 것이 낫겠다 싶
었는지, 당사주책 얹힌 소반을 끌어당긴다.
그러나 골이 패인 미간에 찡기어 쉽게 빠지지 않는 간밤의 꿈이 아무래도 심
상치 않아 마음에 걸린다.
숨 떨어지면서 바로 서둘러, 치상이라 할 것도 없이 허술하게, 오히려 일부러
훗날 일을 생각하여 아무렇게나 내다 묻은 이후로, 한두번 얼핏 스치듯이 꿈에
비치다 말았던 시아비 훙술이, 어젯밤 그네 잠의 한복판에 생시보다 역력히 나
타났던 것이다.
꿈에서도 밤이었던가.
아니면 시아비의 저승이 그렇게 푸르둥둥 등뒤에 서리어진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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