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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8권 (18)

카지모도 2025. 2. 11.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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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운 세월은 이제 다 간 것 같았다.

태조 이성계의 용안을 그리어 모신 영정을 봉안하고, 봄, 가을로 춘추 두 번에 걸쳐,

향사에 따라서 분향 제전을 받들어 오는, 장엄하고도 전아한 경기전과, 전주 이씨 시조

신라사공 이한과 그의 배비인 경주 김씨의 위패를 받들어 모신 터 조경묘를 경기전 북쪽

켠에 세워서, 이 땅이 조선의 연원이라는 것을 확실하고도 상징적으로 밝히었다.

경기전은 태종 10년에 창건하여 그해부터 바로 엄숙한 지고의 제향 범절을 갖추었지만,

조경묘를 창건한 것은 한참 뒤인 영조 4년이었다.

그때 신묘 시월 오일. 선비 이득이를 필두로 칠도 유생들은 하얗게 궐기하여 구름같이

엎드린 채 상소를 올렸다.

고구려나 신라 시대를 살펴보면 나라마다 시조묘가 있어 받들어 모시는 품이 장중한 데

반하여, 우리 조선에서는 나라를 세운 지가 장구한데도 아직까지 묘전의 창건을 보지 못

한 것을 심히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이는 애오라지 크나큰 결전이오매, 우리 조선 연원이

사공공에서 비롯하였음은 사승(역사상의 사실을 기록한 책)에 명명 뚜렷하온바, 상께옵서

는 부디 하루를 더 미루지 말고, 어지신 성대에 묘전을 창건하소서.

이에 조정에서는 선비들의 상소를 받아들여 묘관을 파견하고 시조 내외 두 분의 위판

(위패)을 모신 다음, 묘호를 조경묘라 하였다.

조선 개국의 왕업을 이룬 후에, 경기전을 창건하여 태조의 초상화를 족자로 모셨고, 조

경묘를 건립한 다음에는 시조의 위판을 모시었으니, 이로써 풍패지향 선원조발지기를 조

화롭게 갖추었다고 보겠으나, 늘 안타깝고 섭섭한 것은 실로 어디에 시조의 묘소가 계신

가 찾지 못하는 점이었다.

이미 너무나 멀어진 세월의 아득한 소실점 너머로 가물가물 스러져 가는 시조의 묘자리

는, 한 나라의 국왕으로서도 찾을 길이 없었다.

다만 고증도 들어가며, 바람에 섞인 티끌조차 놓치지 않고 얻은 항간의 풍문이나 전설

야담까지라도 받아 내어 더듬은 자리는, 전주 북쪽 건지산의 둘레 일원동천이었다. 그러

한즉

이곳이 왕가의 발상지로서 조짐이 짙다.

표하고, 수십만 평 도량 일대에 묻힌 민가의 묘지들을 파서 옳기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이 일대를 감시 관찰하는 감관 산지기를 두어 일체 잡인이 범접하지 못하게 금역영내로

명하였다.

이곳은 성역이 된 것이다.

그러다가 고종 임금 광무 3년, 기해 오월에, 왕은 열성조의 기원이던 시조의 단을 비로

소 뭇고

대한조경단.

이라 친필로 휘호를 하고, 찬문을 올렸다. 이로써 태종과 영조를 거쳐 고종에 이르기까

지, 내내 오백 년 동안, 조선 왕조 왕기의 요람지로서 전주를 웅숭깊게 받들어 왔던 것이

다.

그러나... 오백 년 유장하던 그 나라는, 지금 여지없이 짓밟히어 찢기고, 갈갈이 흩어

진 조선의 강산은 이제 일본의 더러운 발굽에 능욕을 당하고 있다.

전주는 또 다시 나라를 잃어버린 것이다.

무상하다.

일찍이 저 옛날 마한의 한 나라였던 원지국의 도읍 원산이었으며, 후백제의 도읍 완산

이었고, 조선 왕조 임금의 발상지였던 전주. 이 땅은 마한의 맨 마지막 땅, 백제의 맨 마

지막 땅, 그리고 조선의 맨 마지막 땅이 되었다. 멸망. 나는 제군들에게 이 땅의 운명을

통하여 내 조국의 역사를 가르치는 역사선생이다.

역사선생은 목이 메어 말을 더 잇지 못하였다.

강모도 목이 메었다.

그때 문득 매안을 떠나 올 때 강모를 앉혀 놓고, 바람 소리가 문풍지를 차갑게 흔드는

밤, 아버지 이기채가 해 주던 말이 떠올랐다.

그저 한낱 가그매(바람새)처럼 허공에 휘이 떠돌며 건성으로 스치면, 제 아무리 귀한

보배 쥐어 주어도, 보고, 듣고, 배우고, 깨달을 것 없으되, 눈여기어 심중을 기울이며,

뜻 깊지 않은 것이 세상에는 없으리라.

천하에 제일 몹쓸 것이 건방진 것이니라.

소인 못난 종자가 제멋에 비틀어져 꼬이고 순탄치 못하면 제 속이 뭉쳐 옹이가 생기지.

옹이는 다른 결보다 딴딴하다. 이 오직 딴딴한 것 하나 믿고 남의 고른 살 파고들며 치고

뻗고, 스스로 제 기운에 충돌을 일으키면. 이 충돌이 뭉쳐서 또 다른 옹이가 생기지. 이

러한 행티 심술을 부려 남을 해치는 버릇은 절대로 군자가 취할 바 아니로다.

모름지기 새로운 고을에 가거든 겸손히 그 땅의 내력을 들을 일이요. 그 고을이 오래고

긴 세월 걸리어 길러낸 자손들의 성품과 문화에 함께 어울려 녹아들도록 하라. 공융해야

한다.

행여라도 너의 옹이와 아집이 그들에 부딪쳐 서로 깨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무익하게

부서지지 말라. 무엇이든 너의 것으로 받아들여 살지워라.

내가 한 집안에서 겉돌면 이웃집 누구와도 사이 좋기 어렵고, 내가 한 고을에서 떠돌면

끝내는 나그네 면하기 어려우리라.

머무는 곳을 소중하게 알아야 한다.

고을이건 사람이건 바로 내가 지금 서 잇는 이 자리. 내가 만난 이 순간의 이 사람이

내 생애의 징검다리가 되는 것인즉.

그것이 부실한 징검돌이면요?

라고 그때는 묻지 못하였다.

생애라.

왜 옛어른들은 사람이 살아 있는 한평생 동안을 가리켜, 날 생 옆에 물가 애, 끝 애,

벼랑 낭떠러지 애자를 붙였을까.

산다는 것은 그렇게 늘 아슬아슬한 백척간두, 백 자나 되는 장대끝에 까마득히 곤두서

서 위태로이 흔들리며, 자칫 고꾸라져 떨어진 채 물살에 섞쓸려 떠내려가기 쉬운 것이란

말인가.

두렵고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데 만일 딛어도 흔들리지 않고, 흔들어도 뽑히지 않는 실직한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면 그 징검돌은 그 얼마나 커다란 바탕이 되랴.

그러나 그때 그렇게, 국경을 넘어 중국의 동북 만주로 가려는 기차에 몸을 맡긴 강모

는, 전주역 궁문 같은 골기와 검은 지붕을 바라보며 문득, 물살이 세찬 여울목에서 부석

을 잘못 디디어, 그만 징검돌이 뒤집힌 채, 허공에 뜬 발로 허우적이며 어디론가 둥둥 떠

내려가고 있는 듯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았었다.

강태와 함께 가는 봉천도 누루하치 청조의 발상지라고 하였다.

다 같은 사나이로 이 한세상 태어나서 누구는 천추 만대의 위업으로 나라를 세우고, 누

구는 징검돌을 헛디디어 허방다리 제 인생에 곤두박질치고 말아. 붙잡을 길 없는 허공,

빈 손짓도 못해 본다.

아아, 사실은, 손짓마저 싫어.

(이미 모든 것은 돌이킬 수 없다).

그냥 이렇게 떠내려갈 뿐.

가는 데까지.

그러나 기차는 어둠이 무거운 듯, 가려고 미끄러지다가 다시 뒷걸음을 치고, 뒷걸음을

치다가는 앞으로 덜컹, 급정거하면서 한참 동안 머뭇거렸다.

기차는 검은 여울 같았다.

나둥그러진 나를 싣고 과연 너는 어디까지 가려는가.

물 위에 뜨는 돌.

뒤집힌 돌.

역사선생은 무심한 땅이 그토록이나 절실한 역사의 생명체로서, 지리적 분류에 의해 흙

덩어리 지명이나 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몸소 그도 인간처럼 한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을

비장하게 가르쳐 주었고, 아버지는 왕조와 성씨의 관향에 대하여 그다지도 간곡하게 말씀

하셨지만, 왕업과 성씨의 주춧돌은커녕, 돌멩이 하나 제대로 가슴에 박지 못한 나는, 살

아서 이 위에 무엇을 지으리.

다만, 떠내려, 떠내려갈 뿐.

그 부유와 부랑의 물살에 실려, 만주 봉천, 이제는 조선 왕조의 발상지가 아니라 청나

라 왕조의 발상지, 강모는 삭풍 속에서, 맨 처음 향리를 떠나던 전주로 입성할 때 아버지

가 들려주시던 말씀과, 그 전주를 버리고 떠나 오던 정회를 되돌이키며, 머무는 곳을 소

중하게 알아야 한다.

하였으나, 이 낯설고 먼 세상의 어디에도 도무지 마음을 내릴 수 없는 자신이 춥고 쓸쓸

하여 서성거린다.

그는 전주가 그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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