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불거져 튀어나온 퉁방울눈을 부릅뜨고 주름진 얼굴에 주먹코를 실룩이
며 고통을 못 이겨 일그러진 입을 잔뜩 앙다문 그는, 몸뚱이를 헐벗은 채
발바닥이 뒤집히도록 버둥거린다.
그 옆의 왼쪽발 아래 짓눌리어 버둥거리며 힘겹게 신음하고 있는 악귀는
놀랍게도 사모관대를 한 관리였다.
"아니, 저것은...?"
"탐관오리겠지요."
비단무늬 금빛으로 치장한 붉은 조복을 입고는 거만스럽게 깔보는 표정을
다 지우지 못한 채, 탐욕으로 벌겋게 물든 낯바닥을 비굴하게 조아리며, 시
뻘건 입술 한 줄에 아직도 교묘한 술책과 얕은꾀를 물고 있는 모습은, 그
것이 한낱 인형과 같은 조물인데도 한 대 쥐어패주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
없게 한다.
한 시절, 권세를 가지고 세상을 주무르던 권문세가의 고관대작은 죽어서
사천왕 발밑에 여지없이 고꾸라져 자빠지고 있었다.
그러나 놓아 버릴 수도 없이 세세생생 저 무거운 사천왕의 기둥다리에서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그 관리의 푸른 사모가 오욕스럽
다. 관리의 어깨는 이미 짓물러 뼈까지 부스러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남방증장천왕의 오른발 아래는 대가리에 삼각형 뿔이 뾰죽뾰죽 두 개나 돋
은, 붉은 귀때기 악귀가 납작 깔리어 바둥바둥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벌건 어깨가 드러난 그는 윗도리 대신 붉은 몸에 시퍼런 어깨띠를 사선으
로 두르고 있었는데, 팔목과 발목에 팔찌 발찌를 끼어, 그것마저 온몸을 옥
죄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커다란 주판을 손에 든 사람이 찌그러진 어깨에 사천왕
의 철통같은 다리를 태산처럼 이고서, 금방이라도 그 울부짖는 얼굴이 부
어터질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못된 부자가 살아 생전에 남의 것 많이 빼앗고, 죽어서는 그로 인해 처참
한 벌을 받는 것입니다."
권세도 돈도 죄업의 뿌리가 된다.
서방광목천왕의 오른발 밑에는 털벙거지를 쓴 악귀가 웃통이 벗겨진 채 바
지만 입고 나뒹구는데, 팔 하나가 툭 잘리어 붉은 선지피를 마구 내뿜으며
쏟고 있는 것이 혹 그 손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도둑질한 죄인인가 싶었다.
그리고 왼발 밑에는 참으로 우스꽝스럽게도, 물정 모르는 바보같이 저고리
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여 옷고름짝 떨어진 채 벌건 뱃살 드러내고, 헤
벌어진 얼굴에 술독이 올라 딸기코가 된 농판이, 겁에 질려 사지를 웅크린
형국을 하고 짜부라져 있었다.
"무지렁이입니다. 어리석은 것도 큰 죄지요."
하늘 아래 단 하나인 자신의 몸을 닦아서 존귀하게 이끌어 올리지 못하고,
함부로 내방쳐 헛되이 소모한 죄.
그것도 무서운 징벌을 받는다.
"하온데 저 북방다문천왕 오른발 밑에 깔린 저것은 무엇인가요?"
"아, 가릉빈가."
"가릉빈가?"
"반인반조의 전설적인 새지요."
"새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상징입니다."
강호는 놀란다.
아무리 상징이라 할지라도 그가 악귀의 무리에 끼었으면 결코 아름다운 대
상은 아닐 것인데, 이 가릉빈가는 휘황하였다.
얼굴은 괴물이어서 다른 악귀들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었으나, 사천왕의
거칠고 사나운 발에 짓밟힌 배가 가련하도록 부드럽고 연한 병아리색인데.
고통에 소스라쳐 짜악 펼친 두 날개는 깃털마다 눈부신 황금빛 비늘을 달
고, 그 켜에 맞물린 깃털은 신비스러운 보라 남빛, 또 다음 켜는 단청옥색,
녹옥색, 그리고 꽁지 끝에는 상서로우리만치 선연한 다홍색 깃털이 무지개
를 이루어.
도무지 저것이 죄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그 날개속 속털은 붓터럭 애달픈 삐비지속처럼, 햇빛을 받아 수
줍게 열리어 처음으로 나부끼는 여린 잎 올올을 스러질 듯, 빗어 내린 듯,
그리었는데.
"보아라, 죄란 저토록 순결하고 찬란한 것이어니."
서럽게 목놓아 짓밟히는 가릉빈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강호는 그 죄에 사로잡히고 만다.
가름빈가의 세 발톱 달린 두 손은 애원으로 허공에 떠, 강호를 붙잡으려
한다.
"스님. 어찌하여 저 죄는 저다지도 찬연하고 곱습니까."
도환은 미소만 짓는다.
"한번 참구하여 보시렵니까."
죄의 날개.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강호가 홀린 눈을 떼지 못하는 가릉빈가의 날개 곁, 다문천왕의 왼발아래
에는 더욱더 놀라운 한 형상이 앉아 있었다.
그것은 여인이었다.
열일곱이나 여덟 혹은 열아홉쯤 되었을까.
어른의 팔 하나 길이보다 작은 몸에 칠흑같이 새까만 트레머리를, 그 땋은
결마다 윤기가 흐르도록 한 올 한 올 지극 섬세한 칼끝이로 새겨 빗은 뒤
단아하게 틀어올린 여인의 얼굴은 살구꽃 빛이다.
갸름한 얼굴에 버들눈썹이 선명하고 눈매는 날카로운 듯 고요하다. 그리고
속 깊이 다물어 평생토록 열리지 않을 것만 같은 입술은 귀끝이 예리한데
처연한 당홍색이다.
여인은 그 입술빛과 꼭같은 당홍색 저고리를 섬 하리만치 곱고도 요염하
게 여미어 입었는데, 치마는 연옥색이었다.
무릎을 끓어서 치마 주름이 꽃봉오리처럼 모인 여인은, 왼쪽 어깨로 사천
왕의 다리를 떠받들고, 오른손은 안으로 부르쥐어 주먹을 지었는데, 그것은
제 저고리 자락을 움켜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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