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법식을 지키기를 극진히 했다가 드디어는 그 법식을 떠남에 귀착하는 것이 그림의 도라고 한 왕안절의 말이 옳은 것이네만. 거꾸로 그 귀착에 이르기 위해서는 오직 모지랑붓을 묻어서 필총을 이루고, 철연을 갈어서 닳아 없어지도록가지 공을 들여 연습을 해야만 된다고 할 수 있지. 과정도 결과에 이르고저 하는 것은 걷지 않고 천리를 가겠다는 말이나 다를 바 없느니. 다 이룬 다음에는 버릴 것일지라도, 그 이룸이 어디 있는지를 알 수 없으매 절차마다 정성을 다해 보는 것이 인간이라. 그 중의 어느 것이 어디 가서 닿을지를 모르니. 그래서 사람이 살었을 때는 살어 있는 대로 인의예지가 있는 것이고, 죽어서는 죽어서 가는 길에 대한 서로의 인의예지가 있는 것이야."일개 이름 없는 아녀자가 제 쓰던 바늘이 부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