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8 2

혼불 (7권)

혼불 7 지은이: 최명희 출판사: 한길사  혼불 7권  1. 검은 너울  "무릇 남자가 여자 같은 기질이 많으면 혹은 간사하고 혹은 연약해서 요사스러운 짓을 많이 하고, 여자가 남자 같은 기질이 많으면 혹은 사납고 혹은 잔인해서 일찍 과부가 되는 사람이 많아, 본디의 음양 풍수가 서로 뒤집히고, 명수가 각각 어그러지기 쉽다고 했느니." 그것이 어느 해 정초였던가, 청암부인은 큰방에 그득히 모여 않은 문중의 부인들과 담소하며 그렇게 말했었다. 며느리 율촌댁이 담옥색 명주 저고리에 물 고운 남빛 끝동을 달아 자주 고름 길게 늘인데다 농남색 치마를 전아하게 부풀리고 단정히 앉아 시어머니 청암부인을 가까이 모신 좌우에 담황색 저고리, 등록색 치마, 진자주 깃 고름에 삼회장 저고리, 짙고 푸른 치마에 담청색 은..

혼불 7권 (51, 完)

14. 지금이 바로 그때여  거멍굴을 검은 널판처럼 숨막히게 짓누르는 어둠은 오늘 밤도 어젯밤처럼 하찮은 상민과 하천들 멱을 조이며 깊어지는데. 당골네 백단이의 오두막에는 여전히 백정 택주와 대장장이 금생이가 번갈아가며 지키고 앉아 까부라지려는 등잔불을 연신 돋우고, 춘복이의 농막에는 옹구네가 아직 그대로 남아서 씨근거리며 미영베 떨어진 것으로 춘복이의 피 터진 자리를 닦아 내고 있었다. "오살 노무 예펜네. 저년을 기양." 공배네는 속에서 부뚜질이 치밀어 금방이라도 머리꼭지까지 터져나가 버리게 생긴 속을 가까스로 눌러서 참고는 "야가 시방 마느래 다된 시늉을 허네 아조. 누구 앞에서?" 한 마디, 발을 굴러 쏘아붙이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피잉하니 내려와 버린 농막인지라, 옹구네가 그곳에 자빠져 있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