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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2권 (8)

2 덕순이가 집 문간에를 와서 보니 밤도 늦지 아니하였는데 대문은 벌써 닫히었 다. 들창에 불빛이 보이는 행랑방이 없지 아니하나 문 열라고 소리치기가 어려 운 까닭에 사랑 뒷담께로 돌아가서 담을 넘어 들어왔다. 사랑방, 수청방 할 것 없이 불이 켜 있는 방이 하나도 없다. 사방이 캄캄하였다. 덕순이는 사람 없는 사랑마당에 주주물러 앉아서 대성통곡을 하고 싶었으나, 억지로 참고 안중문간 에 와서 중문을 밀어보니 역시 빗장이 걸리었다. ‘어머니도 아니 계시고 젊은 동서끼리 집을 지키고 있으니까 밤 저녁이면 집안이 휘휘해서 일찍 문을 닫히는 게다.’ 하고 생각하며 덕순이는 발씨 익은 대로 다시 사랑 뒤로 돌아와서 안으 로 통한 일각문 담을 뛰어 넘어왔다. 아무리 뛰엄질 잘하는 덕순이가 사뿐 뛰었 다고 하더라도..

임꺽정 2권 (7)

14 조정암 이하 여러 사람이 쫓겨나고 보니 조정은 남곤 심정의 판이라 썩은 고 기에 쉬파리 꾀듯이 남고 심정의 집 문에 사람의 얼굴 가진 물건들이 수없이 많 아 모여들었다. 엊그제까지 조광조를 정암 선생이라, 김식을 사서 선생이라 하던 무리들이 “광조는 미친 놈이다.” “식은 소견없는 놈아다.” 하고 욕설하기를 예사로 하고 남곤 심정을 개도야지같이 여기고 죽일 놈같이 벼르던 사람까지 밑 못 씻겨서 한을 하고 얼굴 보는 것을 큰 영사로 생각하게 되니 권에에 붙좇는 쥐 같은 무리의 행사가 예나 이제나 다를 것이 없다. 유생들이 광화문 앞에서 야료하던 날 금부에 갇히는 축에까지 끼였던 황계옥이가 무리에 섞이어서 남곤 심정의 문하에 출입하기 시작하였다. 얼마 뒤에 황계옥이가 두어 유생과 연명하 여 상소 한 장..

임꺽정 2권 (6)

10 옥당 하인 이학년은 속량하지 못하여 하인 노릇을 할망정 근본을 따지면 종친 의 서자라 종친 중에 안면이 넓었었다. 그날 식전에 파릉군에게 쫓아가서 의논 한 결과로 왕자, 군 이하 종친들의 힘을 모아서 조광조 등을 구원하기로 되어 낮이 지난 뒤에 파릉군 이하 여러 종친들이 예궐하여 임금께 면대하기를 청하다 가 정원에 막히어 면대하지 못하고 그대로 퇴궐들 하게 되었다. 파릉군은 빈청 에 와서 대신들을 보고 나랏일을 걱정하여 울며불며 하는 중에 마침 빈청으로 들어오던 이장곤을 보고 인사도 채 아니하고 “희강이, 나는 대감을 사람으로 알았더니 불여우 새앙쥐들 틈에서 꼬리를 흔들고 다닌단 말이오? 대감이 사람이 오? 대감이 효직이 일파를 해칠 줄은 몰랐소.” 하고 나무라며 눈물을 좌르르 흘리니 이판서는 아무..

임꺽정 2권 (5)

6 덕순이가 김사성 앞으로 가까이 가서 “벌써 왔습니다. 사랑 뒤로 피하시지요. ” 하고 나직이 말하니 김사성이 눈을 부릅뜨며 큰소리로 “지각없는 것 같으 니, 어디를 피한단 말이냐?” 하고 꾸짖었다. 이러할 때 선전관 하나가 금위군사 십여 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김사성의 외사촌이 놀란 가슴을 간신히 진정하고 나서서 “웬일이오?” 하고 물 으니 그 선전관이 “웬일?” 하고 뇌며 어깨를 으쓱하고 “대사성 김식이 여기 왔지?” 하고 호기 있게 묻는데 김사성의 외사촌이 무어라고 대답하기 전에 김 사성이 방 밖으로 나와서 “내가 김식이오.” 하고 나서니 그 선전관이 어명을 받들고 나왔다고 말한 뒤에 금위군사를 지휘하여 김사성을 끌어내리어 전후좌우 로 에워싸고 중문 밖으로 나가는데, 덕순이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임꺽정 2권 (4)

제 3장 사화 1 해가 다 저녁때가 된 뒤에 덕순이가 집으로 돌아온즉 그 어머니가 “너 어디 갔었니? 아까 너의 처가에서 사람이 와서 너의 장인이 갑자기 병환이 나셨다고 기별하는데 온 사람이 호들갑스러워서 곧 시각대변중이라는 것같이 말하여 네 댁이 그 말을 듣고 초설해하기에 너의 아버지께 말씀을 여쭙고 네 댁을 보냈다. 그런데 갔다 온 하인의 말을 들은즉 병환이 대단치도 않은가 보더라. 어제 낮에 도야지고기라나 무슨 고기라나 자신 것이 눌려서 어젯밤부터 좀 편치 못하시다 가 오늘 낮에 일시 고통이 심하여서 집안에서 황황히 지냈다는데 네 댁이 갔을 때는 그저 그만하시다고 하더란다.” 하고 며느리 근친 보낸 것을 말하니 덕순 이는 자기가 집에 없는 동안 안해의 간 것이 불만하여 “체증이 났다고 데려가 고 고..

임꺽정 2권 (3)

3 처음에 정허암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문이 세상에 전파되었을때, 그생사를 의심하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순형 오주부만은 당대 이인인 정허 암이 그렇게 죽을리 만무하다고 당초에 의심할 생각까지 먹지 아니하였었다. 그 뒤 삼년만에 반정이 되어 세상이 변하매 오주부는 정허암이 다시 나오리라고 생 각하고 은근히 기다렸으나, 종내 아무, 소식이 없으므로 ‘허암은 살아 있고 나 오지 아니할 까닭이 없는데 아니 나오는것을 보면 혹시 죽은것이 아닌가.’하고 오주부도 혹시를 의심하게 되었으나 그래도 오주부는 십의팔구나 그럴리가 없으 리라고 생각하였다. 오주부가 그렇게 생각하기는 전에 들은 정허암의 말을 믿는 까닭이었다. 정허암이 한림을 다닐때 하루는 오주부가 찾아간즉 가기전에 궁한 선비 한사람이 먼저 와..

임꺽정 2권 (2)

5 덕순의 안해 이씨의 친정에서 유명한 장님에게 덕순이 내외의 사주를 본 것이 있었는데, 내외가 백년해로하지만 자손궁이 부족하여 아들이 없으리라는 말이 있었다. 덕순이가 이씨에게 있는 사주 적은 것을 본 뒤에 "첩을 두어야겠다." " 아들을 못 낳으면 출처하는 수밖에 없다." 하고 이씨의 골을 지른 일이 한두번이 아닌 터이었다. 그날 밤에 이씨가 베개 위에서 "여보세요, 주무세요?" 하고 덕순 의 몸을 건드리니 이때껏 가만히 소리없이 누워있던 덕순이가 갑자기 코를 드르 렁드르렁 골았다. 이씨가 덕순의 몸을 흔들며 "아이구, 곤하게도 주무시네. 다 새 었어요. 고만 일어나 나가시지요." 하고 소리를 죽이어 가며 웃었다. 자는 체하던 덕순이가 "닭도 울기 전에 날이 새어? 가짓말이 일쑤로구려." 하고 머리를..

임꺽정 2권 (1)

제 1장 교유 1 동소문은 원이름이 홍화문인데 동관대궐 동편에 홍화문이 있어서 이름이 섞이 는 까닭으로 중종대왕 당년에 동소문 이름을 혜화문 이라고 고치었다. 홍화문이 혜화문으로 변한 뒤 육칠년이 지난 때다. 혜화문 문턱 밑에 초가집 몇 집이 있 고 갖바치의 집 한 집이 있었다. 그 갖바치가 성명이 무엇인지 이웃에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 까닭 에 그 사람이 듣지 아니 할 때 갖바치라고 말할 뿐이 아니라 그 사람을 보고 말 할 때까지도 갖바치라고 부르고 양민들이 갖바치라고 부를 뿐이 아니라 관 사람 들까지도 갖바치라고 말하였다. 갖바치가 곧 그사람의 성명인 것과 같았다. 그 갖바치가 사람은 투미하지 아니하나 신 솜씨는 투미하여 맞춤은 고사하고 막치도 변변히 짓지 못하므로 그 지은 신을 신는 사람..

임꺽정 1권 (22. 完)

10 주팔이가 시골 내려간 동안에 주팔의 집에는 주팔의 첩이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삭불이가 놀러오는 외에는 별로 오는 사람도 없었다. 주팔의 첩이 나이 삼십이 넘었으나 맘은 새파랗게 젊은 까닭에 혼자 지내기가 고적하였다. 삭불이 가 주팔이 있을 때보다 더 자주 오게 되고 낮에 올 뿐이 아니라 밤에도 오게 되 었다. 밤이 늦도록 더위가 물러가지 아니할 때 두 사람이 사발정에 물 먹으러 올라가다가 이웃 젊은 사람들 눈에 뜨이어서 뒷손가락질을 받은 적도 있었다. 어느 날 식전부터 날이 흐리더니 해집 무렵에 비가 오기 시작하여 좍좍 내리 는 빗줄기가 놋날 드린 것 같았다. 주팔의 첩은 해먹기가 귀찮아서 찬밥술로 저 녁을 때우고 바깥문을 일찍이 닫아 걸고 방안에 들어 앉았다. 삭불이가 낮에 왔 다 갈 제 밤..

임꺽정 1권 (21)

6 이튿날 새벽에 돌이가 서울 들어오는 길로 주팔이의 집을 찾아왔다. 돌이가 주팔을 보고 밤길을 걸어온 급한 사연을 말하고 이승지의 편지를 얻어 달라고 청하니 주팔이가 "자네가 이승지를 모르는 터이면 내라도 말하겠네만 자네도 친 한 터에 내가 중간에 들어 말한다는 것이 우습지 아니한가? 그러고 자네가 이승 지가 되어 생각해 보게. 자네 친한 사람이 나제를 와보지는 아니하고 다른 사람 을 중간에 놓고 무슨 청을 한다면 자네가 그 청을 들어 주겠나? 두말 말고 자네 가 이승지를 가보게." 하고 사리를 타서 말하므로 돌이는 다시 입을 벌리지 못하 였으나 속으로 생각하기를 '서울 온 뒤로 한번도 만나지 아니한 이승지를 갑자 기 찾아보고 청하기가 맘에 창피하고 또 무슨 토심을 받게 될지도 모르니까 김 서방이나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