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821

임꺽정 1권 (1)

임꺽정 1권 홍명희 머리 말씀 자, 임꺽정이의 이야기를 붓으로 쓰기 시작하겠습니다. 쓴다 쓴다 하고 질감스 럽게 쓰지 않고 끌어오던 이야기를 지금부터야 쓰기 시작합니다. 각설, 명종대왕 시절에 경기도 양주땅 백정의 아들 임꺽정이란 장사가 있어... 이야기 시초를 이렇게 멋없이 꺼내는 것은 이왕에 유명한 소설권이나 보아두 었던 보람이 아닙니다. 수호지 지은 사람처럼 일백 단팔마왕이 묻힌 복마전을 어림없이 파젖히는 엄청난 재주는 없을망정 삼국지같이 천하대세 합구필분이요, 분구필합이라고 별로 신통할 것 없는 말씀이야 이야기 머리에 무슨 말을 얹을 까, 달리 말하면, 곧 이야기 시초를 어떻게 꺼낼까 두고두고 많이 생각하였습니 다. 십여 세 아이 적부터 이야기듣기, 소설보기를 좋아하던 것과 삼십지년 할 일 이 많..

'임꺽정' 낱말사전

임꺽정 (낱말해설) ㄱ 가래다 : 옮으니 그르니 하며 따지고 들다.“그 사람 심성이 너무 우악스러워서 우리두 잘 개재지 못하우.” (의형제편 3) 가리 : 소 갈비를 식용으로 일컫는 말. “아침에 가래를 많이 먹었더니 속이 진 건해서 점심을 먹구 싶은 생각이 없소.” (의형제편 2) 가리들다 : 가리틀다. 잘 되어 가는 일을 안 되도록 틀다. 남의 횡재에 무리하게 한 몫을 청하다. “부장 나리가 대장덕에 가서 지휘를 물어가지구 오실 테니... 만일 우변 사람이 알게 되지 못하게 가리를 들기가 쉬우니 알리지 않도록 하라 구 하십니다...” (화적편 2) 가망청배 : 굿할 때 신을 청하여 내리는 절차. 가무리다 : 가뭇없이 먹어버리거나 후무리다. 남이 모르게 숨기다. 서림이가 물 건을 받고도 물목을 자기 손..

타나토노트 (90,完) -베르나르 베르베르-

301. 대단원 우리는 여전히 빛의 산 앞에 있다. 어떤 천사도 로즈와 아망딘과 빌랭과 나를 변호해 주려 하지 않는다. 천사들은 모두 차분한 빛을 발하고 있다. 자기들의 결정이 돌이킬 수 없는 것임을 나타내려는 것 같다. '하지만 나중에, 수천 년쯤 되는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다른 깨달은이들이 이곳에 나타날 겁니다. 그때 가면 관광객 따위는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 진짜 깨달은이들이 되겠지요. 우리는 그들에게 당신들의 모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그러면 그들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당신들의 행적을 더듬게 될 것입니다.' 가브리엘 대천사가 말을 잇는다. 실낱같은 위안이다!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오디세우스'나 '성서' 같은 것을 써줄 것이다. 라울의 생각이 옳았다...

1월 아침과 최한배님 (0,0,3,3)

-잡설- ***동우*** 2012.01.14. 내가 겪는 감기몸살은 유별나고 지독하다. 그 발톱에 움켜 쥐이면 그냥 꿈쩍을 못한다. 새벽에 터져나오는 기침은 내장까지 쏟아낼 듯 요란하다. 듣는 사람으로서는 사뭇 고통일 것이다. 늘 그렇지만 백약이 무효, 기침귀신은 스스로 지겨울때쯤 되어야 슬몃 물러나게 마련이다. 나이 들수록 그 자심함은 강도를 더한다. 필경 나의 사망진단서에는 호흡기질환 어쩌구 적힐 것이다. 빈방 이불속 파묻혀 끙끙 앓았다. 앓는 동안 나의 통속, 자기연민은 안개처럼 피어 올라 영혼을 적셨다. 방금 모니터로 책 한권을 읽었다. 부끄러움과 공감과 감동에 젖어 읽었지만 내 감정모체의 진실은 부러움일 것이다. 생각과 꿈과 의지. 단호함과 너그러움과 지혜로움. 한목숨이 한세상 살아내는 방식에 ..

내 것/잡설들 2022.08.06

살고자 하는 생명 1.2.3 (0,0,3,3)

-잡설- 1 ***동우*** 2008. 9. 24 출간된지 오래인 우찌무라 간죠의 ‘기독교문답’을 읽으려고 책장에서 꺼내어 펼쳐 들었다. 그런데 활자가 눈에 들어오기도 전 책갈피 사이에 묻어 있던 먼지 알갱이 하나 꼬물꼬물한 움직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마이크론 단위를 겨우 벗어난 작디작은 벌레(책벌레?) 한 마리. 아무 생각없이 검지를 눌러 꼬물거리는 먼지 알갱이를 압살해 버린다. 그 먼지같은 주검의 부피같은 것도 있을리 없어 그 존재의 흔적은 한 점 희미한 얼룩으로 남았을 뿐이다. 그 벌레는 생존을 위하여 손톱보다 작은 종이 한 조각이면 족할듯 하고, 그것을 지워 버리는데는 0.01g의 가압(加壓)이면 충분하다. 0.01g 손가락 놀림의 행위 따위는 일상중 지극히 심상(尋常)한 행동인지라 마음에 둘..

내 것/잡설들 2022.07.19

작지만 확실한 행복 -무라카미 하루키-

작지만 확실한 행복 -무라카미 하루키- 신수정(문학 평론가) 일상을 견디는 방법, 삶의 미학화 '삶에 대한 여유'와 '소년다운 장난기'가 묻어나는 하루키식 인생미학이 작품은 '작가 하루키' 이전의 '인간 하루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알려주는 매력적인 에세이로,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반짝이는 '삶의 미학'을 발견, 새로운 형태의 '행복'을 창조할 줄 아는 하루키만의 고유한 인생관을 엿볼 수 있다. '작가' 이전의 '인간' 하루키의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 무라카미 하루키. 이미 이 고유명사는 한 사람의 일본 작가를 가리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가 하나의 보통명사로 굳어 버린 감이 없지 않다. [상실의 시대]를 비롯,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태엽 감는 새]에 이르기까지 하루키가 우..

聖 夜 (4)

1971년 즈음 써클. (크리스마스 주제로 글쓰기) -이상헌- 성탄절 전야. 그 도시에는 바다가 있었다. 역전(驛前)의 도심(都心). 밤은 시나브로 무르익어 간다. 번잡한 거리를 조금만 비껴 올라가면 엉크러진 뒷골목이다. 남자는 역사를 빠져 나오자 중늙은이 여인에 잡혀 팔을 낚아 끄는 대로 허적허적 골목을 들어섰다. 홈스팡 외투의 깃을 올려 목을 파묻고 목발을 짚고 절룩이며 걷는 중년의 남자는 성가시지만 방기하는듯한 몸짓으로 펨프 여인이 이끄는대로 따랐을 뿐이다. 골목안 옥호도 어지러운 집들의 유리창 너머 불그레한 전등불 밑, 희미하게 떠오르는 뱀딸기같은 여인들의 벗어 올린 넓적다리에 남자는 도시 관심이 없었고, 그래서 약이 오른 펨프여인은 골목 한켠에 있는 허름한 비어홀에다 남자를 밀어넣고 중얼거리며 ..

내 것/잡설들 2022.03.21

뷰리플 썬데이 (4)

1971년 24세 즈음. 주간한국 꽁트 응모, 낙선. -이상헌- 그 날 일요일 아침 그 다방 안은 왜 그렇게 북적거렸는지. 나름 대로들 레-저의 무장을 갖춘 선남 선녀들의 즐거움에 겨운 떠들썩함이 그득하였고 스피커는 헤이- 헤이- 뷰리풀 선데이를 악써 외쳐대고 있었다. 그 곳에서. 장대가 비죽이 솟아 오른 낚시꾸러미를 옆에 놓고 영어사전을 뒤적이고 있는, 첫 눈에도 어딘가 촌티가 흐르는 안경 낀 녀석이 선객으로 앉아있는 좌석에, 여드름자국이 벌건 얼굴에다 빨간 등산모를 비스듬히 재껴 쓴 녀석이, 미안하다고 말은 하지만 기실 당연하게 권하는 레지아가씨의 합석 권유에 의해서 마주 앉게 된 것은 전혀 우연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만. “낚시 가시는군요.” “네. 그 쪽은 등산이로군요.” “네. P산을 오를 겁니..

내 것/잡설들 2022.03.21

어떤 종말(4)

1964년 고교3년 동아고 교지 “靑泉” 9호에 게재 -이상헌- “여보게, 한 잔 안할텐가?” 다섯시 퇴근 종이 땡 치자마자 옆자리의 尹씨가 크게 소리친다. “안 할라네.” 이게 언제나 하는 金선생의 대답이다. “이 사람아, 늙으막에 돈은 모아서 어데다 쓸텐가? 구두쇠짓 그만하고 한번 가세나.” 매일 듣는 말이다. “예끼! 이 사람, 말직 공무원으로 자네처럼 헤프게 썼다간 입에 거미줄치기 제 격이지.” 金선생은 불끈 한마디 쏘아 본다. “무슨 재미로 사는지 모르지.” 할수없다는 듯이 尹씨가 돌아선다. “녀석아, 나는 너하고는 종류가 틀린 사람이란 말이다.” 金선생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기실 金선생은 선생대로의 안으로 안으로만 뭉쳐 둔 보람이 있었다. 젊었을 때부터 선생의 취미란 오직 화초가꾸기였던 것이..

내 것/잡설들 2022.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