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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1권 (20)

3 그날 밤에 돌이와 삭불이가 선이의 집 안방에서 자게 되었는데, 선이 내외가 돌이를 유심히 보는 까닭에 돌이가 얼마 동안 겸연쩍어서 말이 적었으나 선이의 안해가 “총각, 이리 가까이 오구려.” “총각, 이야기 좀 하구려.”하고 연해 ‘ 총각, 총각’하며 다정하게 구는 까닭에 돌이가 마침내 조심성이 풀리어서 너털 웃음을 치며 반죽 좋게 이죽거리게까지 되었다. 삭불이가 간간이 실없는 말을 던지어 여러 사람을 웃기었는데 돌이를 가리키며 “저 함흥 떠꺼머리가 인제 양 주 대적이 될 터이야. 요지왕모 같은 색시를 훔치려는 것을 보지.”하고서 ‘하 하’하기도 하고 “저 떠꺼머리가 맘속에 큰 걱정이 있는 모양이야. 옥황상제하 고 벗 못하는 걱정.”하고서 ‘하하’하기도 하고, 선이의 안해가 돌이더러 총 각, 총각 하..

임꺽정 1권 (19)

20 그 뒤로 돌이는 삭불이만 보면 “색시 선 좀 보러 갑시다.” “어느 날 양주 가시려우?” 조르기도 하고 다지기도 하는데 삭불이는 “아따, 틈이 나지 않네 그려.” “일간 가도록 해보세.” 핑계도 하고 미루기도 하여 그럭저럭 십여 일 이 지났다. 이 말이 어떻게 이승지 귀에 들어가서 어느 날 이승지가 삭불이를 불러 세우고 “네가 돌이 장가를 들여 준다고 같이 선보러 가자구 했다더구나? 가자고 했거든 얼른 갈 것이지, 무슨 일이 있어서 틈이 없느니 있느니 하고 내 일 모레 미루기만 한단 말이냐? 양주가 멀지도 아니한 곳이니 속히 한번 갔다오 너라.” 하고 준절히 일러서 삭불이는 다시 핑계도 못하고 미루지도 못하게 되 었다. 삭불이는 그날로 돌이에게 와서 내일은 정말 떠나자고 말하여 두고 이튼 날 식전에..

제3의 강둑. 종신형 (1,4,3,3)

-독서 리뷰- [[제3의 강둑. 종신형]] >> -우양 기마랑스 로사 作- ***거울이*** 2012.11.12 23:24 올리신 글들 자주 찾아 읽는 동우님의 독자입니다. 좋은 글 읽도록 해주시는 동우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드립니다. 처음 접하는 이 소설. 왠지 슬프고 너무 허전합니다. 인간의 삶이란 정처없는 부초. 그렇게 한평생 살다 가는 거겠지요. ㅠ ㅠ ㅠ ***┗동우*** 2012.11.13 07:12 거울이님을 비롯,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어 오히려 내가 고맙지요. 페이지 뷰의 숫자는 나의 즐거움입니다. ㅎ 동감합니다, 이 소설, 참 슬프고 허전합니다. 이 소설은 오래전 출판된 이문열이 선정한 단편소설집에 수록된 소설. (이문열은 내게 최고의 작가는 아니에요.ㅎ) 참고로 이문열의 짧..

내 것/잡설들 2022.09.22

임꺽정 1권 (18)

16 그날 저녁에 이승지가 손님도 없고 한가하여 다시 주팔의 방에를 내려왔다. 삭불이는 밖으로 나가려는 것을 이승지가 거기 앉으라고 말하여 주팔의 옆에 쪼 그리고 앉았다. 이승지가 주팔을 보며 “어린 놈이 푸른똥을 눈다니 간기겠지? 무엇을 먹일까?” 하고 어린아이 먹일 약을 의논하니 주팔이는 “대단치는 않지 요?” 묻고 나서 “포룡환 한 개쯤 먹여 두시지요.” 말하는데 주팔의 말이 끝 나자, 삭불이가 아는 체하고 나서서 “아기네 간기에는 떨어진 배꼽을 살라 먹 이는 것이 제일이랍니다.” 말하니 이승지는 대답이 없이 웃기만 한다. 삭불이는 자기의 말을 그 웃음 속에 묻어버리지 아니하려고 “상약이 방문약보다 나은 수 가 많습니다. 우선 무사마귀 같은 것도 방문약으로야 뗄 수 있습니까만, 마늘쪽 에 낙숫물을 ..

임꺽정 1권 (17)

13 그 뒤로부터 주팔이는 틈만 있으면 암자 밖으로 나가서 숲 사이나 바위 아래 에 혼자 앉아서 부주비전과 망단기결을 공부하고 김륜이 없는 사이를 엿보아서 선생에게 모르는 것을 물었다. 거의 한 달이 되는 동안에 주팔이는 두 권 책에 있는 것을 책 없이 외지는 못하나마 책 보고는 다 알게 되었다. 나중에는 주팔 이가 너무 자주 암자 밖에 나가는 것을 김륜이가 수상하게 생각하여 “형님, 어 디를 혼자서 그렇게 나가시오?” 묻기까지 하였으나 주팔이가 “가을바람 난 뒤 로는 공연히 울적할 때가 많아서 암자 안에 들어앉았고 싶지 않아.” 말하여 김 륜이도 “그러면 형님은 산중에 오래 있지 못할 사람이오.” 하고 웃어버리었다. 어느 날 식전에 선생이 주팔을 불러앉히고 “주팔아, 너는 오늘 가거라. 육칠 삭 같이 ..

임꺽정 1권 (16)

9 주팔이는 이월달에 서울을 떠난 뒤에 급할 것이 없는 길인만큼 중로에서 달소 수를 넘어 허비하고 삼월 망간에 묘향산을 들어서게 되었었다. 묘향산은 희천, 영변, 여원, 덕천 네 고을 사이에 사백여 리 동안에 웅거하고 서리어 있는 겹산 이라 상봉인 비로봉 외에 석가봉, 관음봉, 원만봉, 향로봉, 법왕봉이며 미륵, 칠 성, 지장, 시앙, 가섭, 아난이란 이름 가진 봉이 첩첩이 싸이어 이곳저곳에 솟아 있고, 팔만구암자라는 말이 나고 내산에 삼백육십사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도록 절과 암자가 많은 곳이라 서도 대찰로 일국에 이름이 높은 보현사 큰절 외에도 도승의 유적이 많기로 유명한 안심사와 폭포의 경치가 좋기로 이름난 상원암 같 은 곳은 말할 것도 없고 골짝마다 봉우리마다 토굴이나 암자가 없는 곳이 없는 데, ..

임꺽정 1권 (15)

6 봉단의 일행이 서울서 도착한 뒤 달포 동안 이승지 집 안팎 하인들 사이에는 봉단의 근본을 들추는 뒷공론이 그치지 아니하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주인영감 을 꺼리어서 겉으로 대접하나 겉대접 대신에 뒷공론이 말 아니게 심하였다. “정수리에 감쪽을 붙인 꼴이라니 천생 시골 백정의 딸이야” “입은 옷 꼬락 서니라니 보병것이나마 제도가 되었어야지” “그 삼촌 명색을 보지, 시골 백정 놈 주제에 조카딸 자세하고 점잔빼는 꼴이라니 눈이 시어 못 보겠어” “백정의 딸년더러 마님이라고 부르자니 작년에 먹은 올벼 송편이 되살아 올라올 지경이 야. 도망이라도 해야지, 이 집에서 못살아” 달포 지난 뒤에 뒷공론이 조금 변하 였다. “감쪽을 떼고 머리를 쪽지니까 이쁘장스럽던데. 그렇지만 아무래도 시골 백 정의 딸이라 태가 나..

임꺽정 1권 (14)

2 이교리가 승소비전의 급한 길이라 감영에서 감사를 만나 하룻밤을 지낸 외에 는 별로 지체없이 역마다 역마를 갈아타고 함흥을 떠난 지 십여 일 만에 무사히 서울에 도착하였다. 이교리가 홍화문 안에 들어와서 우선 거접할 곳을 전날 관 주인의 집으로 정하고, 친족과 친구에게 기별하여 입을 관복과 부릴 하인과 탈 말을 빌려온 뒤 예궐하여 숙배하고 유순, 김수동 이하 시임재상과 박원종, 성희 안 이하 정국공신들에게 문후하고 그 외에 친척 고구를 심방하였다. 이리하여 이교리가 분주히 몇 날을 지내는 동안에 재생한 사람으로 대접도 잘 받았거니와 백정의 사위 노릇하던 이야기를 싫도록 되풀이 아니하지 못하였다. 이 며칠 동 안에 이교리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반정 당시의 자세한 이야기를 얻어듣게 되었다. 첫째 반정할..

임꺽정 1권 (13)

10 돌이는 게으름뱅이 김서방이 이급제 나리로 변한 데 대하여 공연히 심정이 사 나웠다. 엊그제까지 여보 저보 하던 사람에게 갑자기 나리 마님이니 나리 아씨 니 말하기가 맘에 창피하였다. 저의 고모가 비루먹은 개같이 구박하던 김서방을 칙사같이 대접하는 것도 맘에 우스웠다. 이급제가 오던 때는 수선한 틈에 슬그 머니 나갔었고 저녁밥은 들어와 먹었으나 먹고 난 뒤 또 슬그머니 나갔다가 밤 늦게 들어왔다. 그리하여 이때껏 이급제와 대면하지 아니하였다. 주팔이가 아침밥을 먹은 뒤에 돌이를 보고 “나리 매부가 대접 잘 하디?” 하 고 웃으며 물으니 돌이는 “대접이고 주발이고 누가 보기나 했습디까?” 하고 아랫입술을 내밀었다. 옆에 있던 주삼이가 “그러면 네가 생전에 아니 볼 터이 냐? 친남매같이 지내는 봉단이가 ..

임꺽정 1권 (12)

7 “와료!” 소리가 나고 교군이 마당 중간에 놓이며 교군 안에서 이급제가 나 왔다. 이급제가 마당에 서서 우선 주삼의 내외를 향하여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다음에 관 하인들을 돌아보며 ‘수고하였다. 빨리들 들어가거라’ 말을 이르는 데, 그 동안에 주삼의 안해는 안방에 들어가서 일변 방을 치우며 새 자리를 내 서 깔고, 주삼이는 어찌할 줄을 몰라서 손을 맞비비며 공연히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고, 돌이는 수선 틈에 어디로 가버리고, 봉단이는 머릿방에 들어앉아 나 오지 아니하였다. 이급제가 관 하인을 돌려보내고 잠깐 동안 마당에 서성거린즉, 안방에 있는 주삼의 안해가 그 남편을 내다보며 “여보, 무엇하오? 이리 들어오 시라지 못하오?” 인도 아니한다고 나무라니 주삼이가 이급제 앞에 가까이 와서 “안방으로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