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盛夏 낙서 (2012. 8. 10)

카지모도 2016. 6. 17.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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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계절은 오르가즘의 언덕을 숨가쁘게 치닫고 있다.

여름바다, 바람과 파도, 자유와 환희, 음악과 춤.

구리빛 몸뚱이들도 청춘의 짙푸름으로 인생의 절정을 구가한다.

그러나 늙은이들, 특히 나의 여름은 지리멸렬(支離滅裂)하기 짝이 없다.

여름바다의 푸르름은 기억 속에 남아있는 희미한 흔적일 뿐이고.

작열(灼熱)하는 태양은 대기를 끓게 하는 잔혹한 불덩이일 뿐이다.

염천(炎天)의 나날.

촉각뿐 아니라 눈맛 입맛 후각까지도 젬병이 되어 내 오감(五感)은 도무지 이 여름이 끔찍하다.

 

이런 형국(形局)의 컨디션.

예술 감상 사색 의욕 창조...등의 고상틱한 어휘들 들어설 자리 있으랴.

아서라 말아라.

감각에 종속되어 버린 정신이거나 마음이란 놈의 꼬라지.

그런 것들 역시 혀를 빼물고 허덕이고 있기 십상이다.

하하, 심신 공히 만사휴의(萬事休矣)의 계절이 바로 나의 여름인 것이다.

내 여름 혐오증은 낫살 들수록 자심(滋甚)하기만 하다.

얼마나 더 이 계절을 맞을지 모르겠지만 어쩌랴, 그렇게 오는 여름 맞아 끙끙대고 가는 여름 보내면서 빠이빠이 해야지.ㅎㅎㅎ


한사코 찾아 숨어드는 곳은 예제의 갇힌 공간 속, 에어컨 그늘밑.

그곳만이 한여름 나의 도피성(逃避城)이다.


 

그나마 올여름은 하나의 일락(逸樂)이 있어, 자그마한 성하(盛夏)의 호사를 누린다.

런던 올림픽.

TV에 눈길 박으며 환호하였다.

스포츠하는 육체는 현란하여, 그 아름다움에 연이어 탄성(歎聲)이 터져 나온다.

찰라(刹那)로 가름되는 승부(勝負)에 숨이 가쁘고, 승패와 그에 이른 뒷 사연에는 콧등이 시큰하다.

 

팔은 안으로 굽게 마련, 호승심(好勝心)은 기승(氣勝)한다.

응원의 고함을 지른다.

오심(誤審)에는 불끈 욕지기가 나온다.

 

나는 본시 집단적 일사불란함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월드컵때 수천 수만이 운집하여 집단적 함성을 질러대는 붉은 악마가 썩 맛득치 아니 하였다.

심지어 ‘집단적 광기’운운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 공유되어 격앙된 거대한 흥분은 지극히 비이성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렇다고 내 흥분과 환호는 건강한 광기였을까.

올림픽을 관전하는 나의 파토스는 거센 불길이었는데.

그리고 그것은 이열치열, 무더위를 덮는 시원함이기도 하였는데.

 

그리하여 '집단적 광기'운운하였음은 내 미숙한 로고스였을랑가.

하하, 이 명제를 지껄이려면 우선 시원한 바람이 불어야 한다.

좌우간 올 여름은 무척 더웠고 올림픽의 뜨거운 열기는 내게 시원하였다.

 

어제 오늘 아침 대기에는 선듯 서늘한 기미가 느껴진다.

섭리께서 어김있으랴.

 

내일 새벽 축구 한일전.

응원의 고함소리, 지레 시원하련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