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입는 옷, 숨는 옷 (1,4,3,3)

카지모도 2020. 12. 22.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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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입는 옷, 숨는 옷> -1-

 

***동우***

2009.01.31

 

세밑의 어느 날 저녁.

모(某)사안(事案)때문에 W를 통하여 뜻하지 않게 어울리게 된 50대 어름의 부자(富者)부부가 있었다.

고급 화식집에서 여섯이 함께 한 그날 한턱 내겠다고 자리를 마련한 그 부부가 분위기를 독점하였음은 어쩌면 당연하였을 터라 그에 시비 걸 생각은 호리(毫釐)도 없다.

그런데 그 부부, 자신들은 이 나라 장삼이사(張三李四)와는 인종이 다르다는 선민의식(選民意識) 가득한 사람들이었다.

그 자가발전(自家發電)은 너무나 눈이 부셨다.

질펀하게 쏟아놓는 경제 정치 문화에 관한 변설은 자못 그럴듯하기도 하고 일견 유치하기도 하였는데, 소위 명품론(名品論) 비스무리한 이모저모 변설들은 실로 절륜(絶倫)하다고 아니할수 없었다.

명품 나라에 유학중인 명품 자식들, 명품 아파트, 명품 자동차, 급기야 걸치고 소지하고 있는 명품의 의상이나 명품의 악세사리에 이르기까지.

한켠 나로서는 그들 천민자본주의의 거만함은 실로 야시꼬웠다.

럭셔리한 술집의 럭셔리하려고 하는 술맛을 자꾸만 달아나게 하여 가시숨긴 나의 조그만 리액션이라도 나올라 치면 넓적다리 꼬집어 싸인을 보내는 W.

나라는 위인은 탈탈 털어봤자 명품의 ㅁ자(字)도 있을리 없는 인종이다.

나로서는 아르메니니 페르가모니 프라다니 하는 것들을 귀로는 들어 보았으나 실물을 본 것은 그들에게서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하긴, 안목이 그 지경인지라 그들의 자가발전(自家發電)이 없었다면 나는 그것들이 명품인줄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이 부신 것(야시꼬움)은 그들이 걸치고 소지(所持)한 명품이 아니라 눈꼴 신 그 자가발전(自家發電)으로 번쩍번쩍한 광휘(光輝) 뿐이었다.

부부의 노골적 거만함은 오로지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명품이라는 것에 근거하고 있음이 명백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층(層)을 이루어 부자와 가난뱅이로 이루어져 인격과 인품이 경제적 가치로서만 재단(裁斷)되는, 한심한 이 나라이지만 겉으로야 이른바 평등을 표방하는 사회인데.

그들은 도무지 겸손한척 할줄 아는 레토릭에 대한 테크닉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좀 세련되게 치장한 부(富)의 번쩍거림이었다면 다소 주눅도 들고 부러워도 하고 그리 하였으련만 천민자본주의의 천박함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 그들은 조금도 럭셔리해 뵈지 않았던 것이다.

진짜배기 부자와는 한참 거리가 있어 보이는, 내 보기에는 참으로 세련되지 못한 부자였다.

진짜배기 부자가 어떤 모냥인줄 내 알랴마는, 은은한 색감의 아우라로서 엘레강스하게 드러나는 부(富)... 무어 그런...

좌우지간 진짜배기 부자란 명품 뒤에 숨어 명품으로만 부(富)를 뽐내는 그런 사람은 아닐거라는게 내 생각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가짜배기 부자일시 분명하렷다.

자선(慈善)을 자가발전하는 가짜배기 자선가나, 학문이나 예술의 폼잡기만을 코에 거는 가짜배기 학자나 예술가들처럼.

 

오늘은 안녕.

++++

 

***동우***

2009.01.31 21:25

 

오랜만에 지껄이려 하여 한꺼번에 내려 쓰려 하였는데...

시작하였으니 차츰 생각의 꼬리 따라 쓰려 합니다.

 

***송현***

2009.02.01 06:31

 

동우님 많이 힘드셨겠습니다.ㅎㅎ

이즈음 품격을 갖춘 사람들이 참 많이도 그립습니다.

중용에 군자는 비단위에 베옷을 입었고 소인은 베옷위에 비단을 입은것 같아서 군자는 날로 날로 빛이 나고 소인은 번쩍하다 사라진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

僞裝 거짓 꾸밈이 아니길 저 자신도 많이 많이 반성하려 합니다.호호..

 

***후니마미***

2009.02.03 17:57

 

책 담아 다니기 편하고 여행 갈 때 소지하기 쉬운 것 같아 사게 된 5만원 짜리 가방을 누가 무슨 무슨 제품이라고 하더군요. 이름을 익히 들어본 그 가방의 회사는 세계적으로 지명도가 높아 아마 제가 든 그 가방은 잘 만든 중국제 짝퉁이었을 것인데..

짝퉁인 줄도 모르고 샀던 저는 그 날 이후로 자꾸만 가방을 뒤로 숨기게 됩니다.

누가 보면, 짝퉁을 들고 다니면서 메이커 들고 다닌다고 자랑하는 사람으로 보일까봐요.

그러고 보니 여행지인 일본 전철칸에는 제 가방의 문양이랑 비슷한 가방들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요.

젋고 이쁜 여성들이 그 가방을 든 거에요.

그런데 짝퉁을 들고 있는 제 마음은 그럽니다.

저 여자도 짝퉁을 들었나?

아니,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지 못하는 저로서는 그렇게 밖에 안 보이는 거에요.

간혹 진짜를 제대로 산 사람이 제 눈에 띄었다면 제 오해가 얼마나 억울하였겠어요?

아 저도 제가 그런 상표의 가방인 줄 알았으면 오해 받기 싫어서 안 샀을 것인데.. ㅎㅎ

나는 어떻게 보일까?

동우님이 경계 하시는 것들을 저 또한 경계 합니다만 어쩔 수가 없는 것은 속에 있는대로 나오니, 잘 보이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마음

그건 자신감이라기 보다는 포기 쪽에 가깝습니다.하하

그냥 되는대로.... 자연스럽게....,

 

***황호민***

2009.03.12 12:34

 

참말로 진짜 부자 보기가 참말로 어려운 세태입니다.

일할 때 보면 부자가 속 좁은 경우를 많이 봅니다.

속이 꽉 찬 알맹이 부자가 그리운 시절입니다.

 

***동우***

2009.03.13 05:37

 

오랜만입니다. 황호민님.

저렇게 지껄이고는 있지만 그들처럼 부자가 되고 싶은 열망을 나처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을거예요.

나 또한 내 팔자와 능력을 한탄하고 있는 상(上)속물이랍니다. 하하

돈만 있다면 속이 꽉 찬 알맹이 부자 될 자신은 있습니다만, 내 생전에는 글렀지 싶습니다.

자주 들러 주십시오.

 

***브로컬리***

2011.09.10 20:43

 

선생님의 글이 명품입니다.

글을 읽다가 '자가발전'에서 빵 터졌습니다 ㅎㅎㅎ

속시원한 글입니다^^

 

***┗동우***

2011.09.13 07:34

 

하하, 브로컬리님. 우리 때 자기자랑 심할때 '자가발전'한다고 흉을 보았지요.

요즘 인터넷 슬랭으로 '자뻑'이라고 하더군요.

이런 어줍잖은 글을 명품이라고 하시니.

자뻑의 명품들이 내 글을 자뻑의 명품글로 만들었군요. 하하하

브로컬리님.

학교는 오늘까지 쉬지요?

주부의 노동은 피곤하지만, 그래도 풍성하고 즐거운 한가위 명절 쉬셨을터인데 내일 출근길 좀 발걸음 무거우실듯. ㅎ

 

 

<입는 옷, 숨는 옷> -2-

 

***동우***

2009.02.07

 

요즘 사람들, 특히 요즘 젊은이들은 옷을 입을 줄 안다.

개성과 감성에 따라 옷을 골라 입을줄 아는, 요즘 애들은 소위 패션감각이라는걸 천성적으로 지닌듯 싶기도 하다.

우리 때와는 너무도 다르다.

이제 우리 사회는 입성으로서 사람의 첫인상을 품평하는 사회가 아니다.

생각건대 그것이 바로 선진사회가 아닌가 한다.

누덕누덕 기운 청바지에 후질근한 티셔츠 한 장 걸치고 운동화를 구겨 신었어도 멋이 넘친다.

이 시대 옷이란 알몸뚱이를 가리고 추위를 막아준다는 따위의 입거리 본연적(本然的)인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개성과 감성의 영역이 되어 버렸다.

입성으로서 빈부, 귀천, 유무식을 판단하였다가는 큰 코 다치는 수가 있다.

굳이 평가를 해야한다면 그것은 패션감각의 세련됨이라는 별도의 장르에 국한되어야 할 것이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나로서는 프라다로 치장한 세련된 메릴 스트립도 우아하였지만 아무렇게나 걸친 앤 헤서웨이의 풋풋함이 지성적이고 발랄한 용모로서 더욱 이뻤다.)

내가 갓 스믈에 접어든 60년대말 무렵, 불과 한세대 전의 옛 사람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 시절, 사람의 첫인상에 대한 평가는 우선 걸치고 있는 입성으로 대략 품평(品評)되었을 것이다. (입은 거지는 얻어먹어도 벗은 거지는 못 얻어먹는다는 속담도 있다시피.)

부자와 가난뱅이,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학삐리와 공돌이... 그런 것들은 걸치고 있는 입성으로 일단은 판별되었다.

패션 행위란 사회계층적 대구분(大區分)의 선택문제일 뿐이었지, 디테일한 부분의 소재, 디자인, 개성, 감성 따위는 깃들 겨를이 없었다.

이를테면 그 시절 먹물(누런 서류봉투 옆구리 끼고 다니던 사무원류)들은 죽어라 신사복 두어벌은 마련해야 사회생활이 가능하였을 터인데,

지금처럼 기성복이 넘쳐 나는 세상이 아니었으니, 양복 한 벌은 거금이 들어가는 대사(大事)였던 것이다.

이를테면 양복 한 벌 장만하기까지 마누라와 머리 맞대고 숙고하여야 한다,

큰시장에는 양복기지만 파는 전문점(포목상이 아니라 양복감만)이 있어 시장을 돌며 감(기지)을 고른다, 한마 한마반 쪼끼 포함하면 두마 어쩌구하여 감을 끊는다.

양복점(다운타운 노른자위에는 대부분 양복점이 입지하였다)을 찾는다, 흥정하여 품삯을 결정하고 칫수를 재고, 한 사나흘후 가봉을 한다.

그리고 또 사나흘 후에야 완성된 양복을 입어보고는 비로소 뿌듯해 하는 것이다.

한 벌의 신사복이란 내재적 경제가치를 포함한 자산(전당포에서도 쉬이 잡아 주었다)이었고 화이트 칼라의 지위를 나타내는 사회적 가치의 무형적 표상이었다. (옛날 시내 중심가에 포진하고 있었던 수많은 양복점들, 그 양복재단 기술자들은 지금 죄 어디로 사라졌는지. 지금의 맞춤양복은 아마도 최고 VIP를 대상으로 하는 소수의 고급기술자들은 있을 것이다.)

아, 그 옛날 한 벌의 옷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던지.

벗이여.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면, 한편의 러시아소설을 꼭 읽어 보시라.

고골리가 쓴 “외투”

나의 이 따위 지엽(枝葉)을 감싸 안은 위대한 소설이다.

 

오늘은 안녕.

++++

 

***후니마미***

2009.02.08 12:20

 

옷이 사람을 멋있게도 하지만 몸이 옷을 폼나게도 하지요?

주위엔 비싼 메이커 골프옷으로 치장하였으면서도 전혀 비싸 보이지 않는 사람은 많고

옷 안의 지성 때문인지 낡은 바바리코트가 멋있었던 오래 전 그 노교수 같은 분은 뵙기가 쉽지 않아요.

그러나 여전히 옷은 가슴 속에 바람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고운 옷 장만한 며칠, 몇 주 동안은 바깥나들이도 흥겨워지고, 사람만나기도 어렵지 않은데요...

그 일 모두가 싱거워질 때쯤 내 안을 보자하면 몸과 옷이 흐트러졌음 물론이거니와 마음 속의 바람도 잠을 자고 있을 때더군요.

 

***송현***

2009.02.10 15:06

 

얼마전 어떤 집 규수와 결혼하려면 음식 솜씨 바느질 솜씨 말(예절) 솜씨를 보았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집 장맛과 입성을 보는데 모두 친정어머니 시험인 것...

입성 하나로 백일하에 그 집 품격이 드러나던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 친정어머니 솜씨는 참 알아주는 솜씨였는데 까다로운 아버지 두루마기며 저고리 소매가 똑같이 일밀리도 틀리면 안되는분.

흰두루마기 차림으로 나들이 다녀오시던 생각이....

제가 아버지 오신다! 하면 형제들이 갑자기 제자리 찾고 조신하던 행동들

요즘 9번 방송 아침드라마 노마님 장롱이 우리 친정어머님 장롱이라 눈이 자주 갑니다.

부잣집 따님으로 바리바리 싸오시어 그많은 식솔 입성을 담당하시고 ....

조신하시고 고우시던 어머니 매섭고 가난한 시집살이 견디시며 6남매 기르시고

할 말 다 못하고 아버지 눈치만 보시던 친정 엄마

그런데 그 빛나는 유산을 저에게는 하나도 물려주시지 않으셨습니다. 호호

  

 

<입는 옷, 숨는 옷> -3-

 

***동우***

2009.02.11

 

뭐니뭐니 해도 그 시절에는 피륙자체가 부족하였을 것이다.

내 또래들은 전후 미국에서 거두어 보내준 구제품들이 기억날 것이다.

좋은 품질의 멋쟁이 옷이었지만 계층적으로 만연한 삥땅 때문에 정작 고아(孤兒)들에게 돌아가기보다 시장에 흘러들어, 제법의 돈이 있어야 구할수 있는 물건이었지만 그것도 넉넉할 리가 없었다. (부산 사람은 알터이지만 지금의 부평시장이 나 고교때만 해도 깡통시장으로 구제품중 멋진 패션의 옷을 골라 팔았었다.)

구제품 의류는 미국의 앞선 패션일 터였는데, 소수 부자들은 얻어 입는 옷이라는 자의식때문인지 색감 화려한 뉴욕 맨하탄(?)패션을 경멸하는 풍조 또한 없지 아니하였다고 기억된다.

그리하여 중년 귀부인들은 죄 한복 스타일, 여우목도리, 스란치마, 비단두루마기, 하얀 고무신.. 이런저런 사모님 패션으로 부(富)를 뽐내었을 것이다.

자유로운 입거리문화.

입거리의 혁명이라는 청바지는 70년대 들어서서야 차츰 퍼지기 시작하였는데 나는 한번도 입어보지 못하였던 늦다리 촌놈임을 고백한다.

60년대 말 당시 젊은 놈들의 패션.

미제 야전잠바와 워커(군화), 먹물들은 흰 와이셔츠에 검게 물들인 사지 스봉, 대학생에게도 교복이 있었으니 목에 후크가 달린 칼라의 윗도리와 검은 바지.

그리고 옷입는 형식에 있어서도 지극히 도식적이었다.

요즘처럼 자유로운 코디네이션으로 개성을 연출한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수 없었다.

셔츠의 밑둥이 바지 겉으로 드리워지는 요즘의 옷차림은 시도할수도 없는 파격이었다.

수트를 입을 때에는 반드시 바지춤 안으로 밀어 넣어야 했다.

여성의 바지정장도 없었을 것이고, 무색셔츠(소위 남방셔츠)에 넥타이 차림은 아주 촌스럽게 취급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 우리는 입거리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였던 세대였다.

옷이 날개였다.

입성이 우리의 그 무엇에다가 날개를 달아주기도 하였고 추락시키기도 하였었다.

그 무엇은 젊은 영혼일수도 있었겠는데, 입거리 따위가 영혼의 색깔을 변화시킬수도 있다는 부끄러운 진실을 우리는 짐짓 모른채 하였을 뿐이다.

진실로 느끼건대 요즘 젊은이들은 옷을 입을줄 안다.

우리 젊은 인류(人類)는 의(衣)의 궁핍으로부터 벗어나 비로소 입거리를 다스릴줄 알게 된 것이다.

적어도 의식주(衣食住)중 입거리 따위에서는 자유를 획득하였다.

 

오늘은 안녕

++++

 

***송현***

2009.02.11 09:07

 

ㅎㅎ 옛 생각이 많이 나네요.

어릴적 성당에 다니던 둘째 언니가 구제품이라고 가지고온 스웨터류와 굳은 우유

구제품 왕 스웨터실을 풀어서 장갑뜨고 양말뜨고 이집 저집 조금씩 나누어 색을 맞추고 ....

머리 큰 언니들이 좀 예쁜 옷을 입을라 치면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서 뿔난다 라고

엄한 아버지 야단 많이 치시던 생각이....

참으로 가납사니 살던 때의 생각을 끄집어 내 주십니다.

 

***후니마미***

2009.02.11 17:33

 

70년대 말에 소녀가 되기 시작한 저는 무척이나 옷을 잘 입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아버지는 단벌신사 주의여서 딸아이의 감성에 이성의 호령을 하시는 바람에 겨우 사촌 언니 옷으로 내 안의 옷에 대한 열망을 삭혔는데

고등학생이 되자 언니는 몸이 멈췄고 저는 더 커져 버리는 바람에 얻어 입을 옷이 없어져 버렸지요.

그때 지금처럼 다이어트가 유행했다면 저는 불어나는 몸을 어찌되었든 막았을 것인데 몸은 커가고 입을 옷은 없고 친구들은 소풍 때 폼을 내고

제 눈에는 공부 잘 하는 애들은 안 뵈고

놀아도 옷 잘 입고 맵시 나는 애들만 보였지요.

지금도 단언하건대

대학교에 들어간 저에게 우리 부모님이 옷값을 좀 주었으면 저는 옷 입는 일이 맘이 팔려 연애편지는 안 썼을 거에요

아니면 블로그라도 그때 있었다면 우체부 기다리느라 목빠지는 시간을 좀 다르게 썼을 법도 한데...

그래서 저는 지금도 옷 사주는 사람이 제일로 좋아요.

할머니 어머니 작은 어머니가 한 번씩 돌아가면서 옷을 사 주었겠지요

어릴 때... 그때의 날아갈듯한 기분은

제대로 말로라도 설명을 해 주었다면 사 준 사람이 더 사주기라도 했을 것이고.''

물론 이젠 딱 한 사람 남편이 그 역할을 하지만요.

역시 우리 남편은 옷 사줄 때 제 입이 찢어지는 것을 즐기고 있어요

 

***별과달***

2009.02.13 03:15

 

60년대 70년대 이야기를 읽으니 동화책 같습니다.

그때는 아직 어린 아이였으니까.

그래도 인도네시아 생각하며 읽으면 재미있습니다.

 

 

<입는 옷, 숨는 옷> -4-

 

***동우***

2009.02.16

 

동대문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을 사른 불꽃.

그 불꽃은 바야흐로 자본주의의 꽃으로 이렇게 피어났는가.

방직이라던가·디자인이라던가·재봉산업은 실로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TV 다큐로 본 동대문시장. 전국각지에서 몰려든 엄청난 인파... 디자인으로 부터 재단 재봉등 생산시스템의 놀라운 매커니즘...)

시장 골목마다 쌓여있는 옷이며 신발이며 가방이며 악세사리.

옷더미 위에 올라서서 발을 구르고 손뼉 치며 외치는“골라! 골라!”

털이 두툼한 토파가 삼만원 색이 바랜 빈티지청바지는 이만원 짝퉁 티셔츠는 만원균일 그 옆 좌판의 멋쟁이 운동화는 이만원 고급스런 가방도 이만원 기천원짜리 악세사리 소품들 즐비하다.

OEM이다 중국제다 어쩌고 하여 싼 가격만큼 품질 역시 폄훼의 대상이 되지만, 무슨 먹거리처럼 위생상 위험이 있는 것도 아니겠고, 숨겨진 바느질의 한뜸 한뜸의 솜씨는 알수 없지만 실물을 만져보고 골라 사는 것이므로 품질에는 별 하자가 없는 것으로 나는 느껴지더라만.

한 십만원 가지고 가면 머리부터 발까지 기본적인 입거리로서 한 몸뚱이 그냥 뒤집어 쓰는 것이다.

땡처리를 잘만 고르면 이름있는 브랜드의 옷가지도 아주 싼값으로 구할수도 있다.

생계비에서 차지하는 식비의 비율인 엥겔지수(指數). 또는 주거비의 비율을 따지는 쉬바베지수(指數)는 익히 들어 보았으나 생계비에서 차지하는 입거리비용의 비율에 대한 연구가 어떤 식으로 있었는지 과문(寡聞)인 나로서는 알수 없지만 이 주제를 천착하면 재미있는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이와 같이 입거리가 넘처나는 상황에서 브랜드 신사복에 버금 간다는 중고생의 교복값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편하고 활동성있는 소재로 몇가지 디자인을 표준화하고, 기능성 기성복처럼 생산하여 시장기능에 맡겨 선택케 하면 아니될까.

작금 암울한 경제상황이라지만, 의식주(衣食住)중에서 기본적인 입거리의 문제에 있어서만은 비교적 자유롭지 않을까하는 것이 내 생각인데.

그러나 이것은, 적어도‘옷을 입을줄 아는 사람’에게 있어서의 얘기다.

옷을 입을줄 모르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그렇지만 내 얘기인즉슨,‘옷 속(뒤)에 숨는 사람’이 말하자면 옷을 입을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옷을 입을줄 모르는 사람’은 입거리의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수 없다는 말이다.

옷을 입을줄 아는 사람들.

부동산 한다고 쫓아다니던 작년, 내가 몇 번 만났던 40대 중반의 한 여성은 대단한 멋쟁이였다.

튀지 않는 우아함이 기품으로 몸매와 스타일에 서려있는 무척이나 세련 된 옷차림.

나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은 죄 대단한 명품임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아, 과연 명품은 명품이로다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느날 저녁 그녀를 포함하여 몇 사람 어울려 함께 한 소주를 곁들인 저녁자리, 분위기가 풀어졌을 때 우스개처럼 나는 넌지시 그녀가 지금 걸치고 소지하고 있는 명품의 총가(總價)가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그녀는 손으로 입을 막으면서 한참을 웃었다.

놀랍게도 그녀가 그 날 소지 착용한것 중에 명품은 달랑 루이무어라나 하는 핸드백 하나였고, 멋스런 겉 옷의 수트세트는 올리비아뭐라나 하는 십만원 남짓의 국산 브랜드, 나머지도 흔히 세일광고 요란한 중가 브랜드의 기성복이었다.

손목시계는 기만원짜리 로만손이었고, 심지어 그녀가 블라우스 목덜미 안쪽에 두른 고상한 색감의 스카프와 손수건 등속은 이른바 시장표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패션감각은 실로 존경받아 마땅하여 어떤 상찬(賞讚)도 지나치지 않았다.

얼마전 내가 말한 명품 자랑에 여념없었던 그 부자(富者)부부와 대척점에 있는 진정한 패셔니스트였다.

무언가 드문 것, 귀한 것으로 한껏 뽐내고 싶은 과시와 허세와 사치는 보편적인 인간 품성이다.

초등학교 시절, 일류 개봉관에서 영화를 본 다음 날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둘러쌓여 영화얘기를 해 줄 적의 그 으쓱함.

고모로부터 돼지발톱 쉐퍼 만년필을 선물 받아 꽂은 교복의 웃 주머니의 찬란함.

새 신을 신고 팔짝 팔짝 뛰어 다니는 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웃음.

그 느낌은 참으로 호사스러운 것이고, 실로 찬란한 행복감일 것이다.

큰맘 먹고 명품을 장만하여 자랑에 가득 찬 자신만만한 포즈는 명품은 명품다운 빛을 발하여 개성과의 앙상블로서 정말로 아름답다.

그러나‘옷 속(뒤)에 숨는 사람들’은 입거리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에게 입거리의 중요한 기능이란 입는다는 것이 아니다.

선택된 인종(人種)으로서의 신분 과시(誇示)와 자의식(自意識) 만족의 기능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옛날처럼 걸치고 있는 입성의 외관으로 품평되는 세상이 아니므로 선택된 자본주의의 선민(選民)임을 나타낼수 있는 표상은 고가(高價)의 명품 밖에는 없다.

앙상블 엘레강스 디자인 퍼스낼리티라는 단어의 조건은 일단 뒷전이고 오로지‘비싼 가격’과‘알려진 명품’만이 제1의 조건이다.

가격이 오르면 당연이 수요는 준다는 것이 경제법칙이지만, 비싸야 수요가 발생한다는 베블렌 효과를 창출하는 사람들.

가짜 명품에 속아 비싼 돈을 퍼주고 구입하는 사람들.

‘소유의 삶’의 형식에 매몰된 사람들.

그들에게서는 명품의 레토릭이 너무나 난만하여 내 눈에 인간은 보이지 않는다.

명품에 파묻혀 퍼스낼리티는 드러날 겨를이 없다.

명품 뒤에 숨어서 스스로 변장하고 명품에 묻혀서 스스로 왜곡된다.

그들은 옷을 입을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옷 속에 숨는 사람들이다.

모름지기

옷이란 입는 것이다.

++++

 

***송현***

2009.02.17 07:34

 

어느 사회 건 선민의식, 남보다 특별함을 좋아하는 인간의 욕망이 존재한다.

그 소수에 끼기위한 피나는 노력은 참으로 지대하다.

아무개가 입는 와이셔츠 가 매스 미디어 선전 문구로 나오고 ......아무개 양주... 아무개 포도주...

아무개가 어느 교회에 다닌다하면 그 교회는 .....

아무개 가방 아무개 옷 ........아무개 아파트 .....중 고교의 특별학교 특별 반...

삶이 어려울수록 명품 판매는 잘된다라는 이야기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분수에 맞지않는 값으로 메기는 소수 의식은 천박하기 짝이 없다.

얼마전 어느나라 관리는 선물 받은 시계가 좋아서 양쪽팔에 수두룩하게 시계를 차고 사진을 찍은 것을 보았다.

이월 우수절 피려하는 매화같은 향기 (개성)

어디에 있어도 어떤걸 걸쳐도 당당할것 같다.

그 탄성소리가 드높을 것 같다

내가 아는 모 된장녀 그녀는 의류 업계에 평생 종사하고 내가 보아도 눈부신 명품 인간이 아닐수 없다.

올봄 그녀의 옷차림은 또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신선감을 주게 될지 ..............

 

***후니마미***

2009.02.25 04:39

 

동우님

어제 집에 왔어요.

옷 이야기 새벽에 와서 읽고 가요.

이제 전 아이 키우는 엄마 같아서 총총 걸음이 되네요.

남편의 아침밥을 생각하고 있어서요 ㅎㅎ

 

***별과달***

2009.02.26 21:00

 

시장 풍경이 눈에 선하도록 적어 주셨습니다.

저런 풍경도 보고 싶네요.

언제 시간되시면 '골라골라' 풍경 하나 올려 주세요. ㅎㅎㅎㅎ

 

***들꽃***

2009.03.15 19:11

 

평범한 시장옷을 명품으로 소화하려면... 아주 많은 경험(ㅋㅋ) 을 하면서 수업료를 지불해야 그런 안목이 생기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