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1,4,3,3,1)

카지모도 2020. 12. 30. 04:00
728x90

 

 

-독서 리뷰-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시오노 나나미-

 

***동우***

2019.03.28 06:43

 

'시오노 나나미(塩野七生,1937~ )'

 

그녀의 영웅주의, 로맨티시즘...

위안부 망언등 일제(日帝) 옹호적 입장...

우리에게 좀 불편한 바 있지만 그녀는 놀라운 작가입니다.

 

15권에 달하는 '로마인 이야기'는 세계 사람들의 격찬을 받은 역작. (지적 유익과 더불어 책읽는 재미 가득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껍벅 죽는 '시오노 나나미'

더불어 '마키아벨리'에 대한 애정어린 천착 또한 유별납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열서너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명성 자자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텍스트파일 8권까지 업어왔는데 그것도 조만간 올립지요.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도 '로마인 이야기'도 강추합니다.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리딩북이 될 것을 보장하오리다.

 

함께 읽어요.

 

***동우***

2019.03.29 04:55

 

시오노 나나미가 미시사적(微示史的)으로 설파하는 르네상스, 피렌체...

점입가경, 흥미 가득합니다.

들은 풍월들이 이 책과 더블어 그 시대상황이 하나의 액추어리티(actuality)로서 작금의 우리에게 어필합니다.

 

아래는 시오노 나나미의 프로필입니다.(위키피디아)

 

++++

 

시오노 나나미(塩野七生, 1937~ )는 일본 출신의 작가, 역사평설가, 소설가이다. 이탈리아의 역사와 관련된 다수의 작품을 저술하였다. 1990년대 이전에는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에 관련된 작품을 주로 집필해 왔고, 1992년부터 2006년까지는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고대 로마의 역사를 그려내었다. 이름의 나나미(七生)는 칠월칠석[1]에 태어난 것에서 붙여졌다.

시오노 나나미는 1937년 7월 7일 도쿄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시절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처음 읽고 유럽의 신화와 역사에 매료되었다. 1963년 가쿠슈인 대학교에서 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교 시절 좌파 학생운동에 깊이 참여했으나, 1960년 안보투쟁 이후 분열을 거듭, 목적성 없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학생 운동의 현실에 질려 발을 빼게 되었다. 졸업 후 다시 유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졸업 직후인 1964년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1968년까지 이탈리아에서 공부하는 동안 어떠한 공식 교육기관에도 적을 두지 않고 독학으로 르네상스와 로마 역사를 공부했으며, 이탈리아뿐만 아닌 유럽 전역,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의 광범위한 지역을 여행하기도 했다.

1968년 일본으로 귀국, 문예지인 《중앙공론(추오코론)》에 《르네상스의 여자들》을 연재하면서 작가로서 데뷔했다. 1970년 두 번째 작품인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을 발표하여 명성을 쌓기 시작, 같은 해 이탈리아인 의사와 결혼하며 이탈리아 피렌체에 정착한다. 이 결혼 생활에서 아들을 하나 두었으나 수 년 후 이혼했다. 그 후 아들과 함께 1993년 로마로 이주해 현재 그곳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작품 활동>

초기 작품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역사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데뷔작인 《르네상스의 여자들》(1968)을 시작으로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1970), 《신의 대리인》(1972)은 모두 14-16세기 이탈리아의 역사를 주제로 한 팩션이며, 이 경향은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신의 대리인》 이후 큰 작품 활동을 하지 않던 시오노 나나미는 1980년, 10여년에 걸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베네치아 공화국의 역사를 서술한 이야기체 역사서인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발표해 1982년 산토리 학예상을 받았다. 이후 70년대 10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역사소설인 《세 도시 이야기》(1993-1995), 《전쟁 3부작》(1983-1987)을 발표하였다. 이후 《로마인 이야기(ロ?マ人の物語)》를 쓰게 되는 것에까지 이르게 된다.

 

<수상>

1970년 《르네상스의 여자들》로 받은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시작으로 1982년 《바다의 도시 이야기》로 산토리 학예상, 1993년 신초 문예상 등을 수상했으며, 2000년에는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이탈리아의 역사와 문화를 일본에 전달하는 데 공을 세운 것을 인정받아 국민포장인 그란데 우피치알레 공로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이 외에도 2005년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자수 포장, 시바 료타로 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평가>

많은 비평가와 역사학자들은, 시오노의 작품이 엄밀히 말하면 역사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자가 이를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 또한 시오노의 책에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부분(《로마인 이야기》의 경우 특히 고대 그리스를 서술한 부분이나 로마의 속주 통치를 미화한 부분)이 다수 있으며, 이것이 독자들에게 잘못된 정보와 그릇된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다른 비평가들은, 시오노의 저작 전반에 있어 그 주제의식과 문체가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우경화되어 있으며, 이는 특히 청소년들에게 사상적으로 편향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특히 강대국의 제국주의와 작은정부를 지향하는 보수주의에 대한 옹호가 현저하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 주경철의 경우, 자신의 저서 《테이레시아스의 역사》의 pp.130~148에서 시오노 나나미를 "일본 우익 제국주의 성향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작가"이며,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하였다. 책 곳곳에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것처럼 보이는 서술들이 상당수 있으며, 그리고 한일 양국의 역사문제에 관하여 "서로 각자 다른 버전의 역사교과서를 가지면 된다"고 역설, 일본측의 역사적 과오 반성이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등,[3] 역사의식에서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스스로 인정한 것과 같이 저작이 마키아벨리즘적이고, 권력에 대해 그다지 비판적이지 않은 문체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상당부분 마키아벨리를 오해한 입장으로, 마키아벨리즘은 "도덕과 정치를 분리" 시키자는 것이지 "도덕 자체를 인정하지 말" 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오노 나나미의 입장을 "마키아벨리즘" 으로 정의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시오노는 오히려 그 왜곡된 의미로서의 마키아벨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작품>

 

* 르네상스 저작집 (塩野七生ルネサンス著作集)

《르네상스의 여인들》 (ルネサンスの女たち), 1968년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チェ?ザレ?ボルジアあるいは優雅なる冷酷), 1970년

《신의 대리인》 (神の代理人), 1972년

《바다의 도시 이야기》 (海の都の物語), 1980년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わが友マキアヴェッリ), 1987년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ルネサンスとは何であつたのか), 2001년

 

* 로마인 이야기 (ロマ人の物語)

1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ロマは一日にして成らず), 1992년

2권 《한니발 전쟁》 (ハンニバル記), 1993년

3권 《승자의 혼미》 (勝者の昏迷), 1994년

4권 《율리우스 카이사르·상》 (ユリウスカエサル ルビコン以前), 1995년

5권 《율리우스 카이사르·하》 (ユリウスカエサル ルビコン以後), 1996년

6권 《팍스 로마나》 (パクスロマナ), 1997년

7권 《악명높은 황제들》 (惡名高き皇帝たち), 1998년

8권 《위기와 극복》 (危機と克服), 1999년

9권 《현제의 세기》 (賢帝の世紀), 2000년

10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すべての道はロマに通ず), 2001년

11권 《종말의 시작》 (終わりの始まり), 2002년

12권 《위기로 치닫는 제국》 (迷走する帝國), 2003년

13권 《최후의 노력》 (最後の努力), 2004년

14권 《그리스도의 승리》 (キリストの勝利), 2005년

15권 《로마 세계의 종언》 (ロマ世界の終焉), 2006년

 

* 전쟁 3부작 (戰爭 三部作)

《콘스탄티노플 함락》 (コンスタンティノプルの?落), 1983년

《로도스 섬 공방전》 (ロドス島攻防記), 1985년

《레판토 해전》 (レパントの海戰), 1987년

 

* 세 도시 이야기(三つの都市の物語)

《주홍빛 베네치아》 (緋色のヴェネツィア·聖マルコ殺人事件), 1987년

《은빛 피렌체》 (銀色のフィレンツェ·メディチ家殺人事件), 1989년

《황금빛 로마》 (黃金のロマ·法王の殺人事件), 1990년

 

 ++++

그녀의 방대한 저술들.

텍스트 파일 구해지는대로 올리겠습니다.

 

***동우***

2019.03.31 06:33

 

좀 더 읽기 편하게 줄바꿈을 하였습니다.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흥미진진합니다.

도시국가 피렌체의 지정학적 정치 외교의 정황이라거나 역사 속 실존인물의 캐릭터가 선연하게 부각됩니다.

 

놀랍습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적 통찰력, 작가적 직관에 의한 상상력, 글솜씨까지.

 

우피치 미술관.

네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제로, 보카치오, 갈릴레이, 마키아벨리.... 여럿 위인과 예술가들의 입상(立像).

그들을 후원하듯 포즈를 잡고 선 피렌체의 메디치家의 두 인물, 코지모 메디치와 로렌초 메디치의 조각상.

 

***동우***

2019.04.01 04:17

 

르네상스.

메디치 家... 코시모, 로렌초...산타마리아 노벨레 성당의 피렌체 공의회... 가톨릭과 비잔틴의 만남... 현상과 이데아의 조우...

화가 조각가 건축가 과학자...숱한 천재들

로렌초 이후의 피렌체.

 

역사의 속살을 재현한 한편의 영화를 봅니다.

 

<5월의 피렌체는 '피렌체의 5월'이라하여 각별한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피렌체공화국의 봄은 이미 사라졌지만, 마키아벨리의 '봄'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마키아벨리의 '봄'

기대 가득.

 

***동우***

2019.04.03 05:40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등의 작품들.

작금 그 가치를 가격으로 환산한다면 천문학적 숫자일테지요.

그런데 당시 그들이 받았던 보수가 고작 저 정도였다니!

허긴 근세의 빈센트 반 고흐도 생전에 단 한점의 그림 밖에 팔리지 않았다니.

피카소니 앤디 워홀이니 하는 사람들은 생전에 돈방석에 앉아 온갖 호사를 누렸다는데.

 

시오노 나나미의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오래 전 살다 간 한 인간에 대하여 얼마나 성실하고 치밀한 관찰인지.

나는 '군주론'을 읽지 못하였습니다. (읽지 않은게 아니라 어려울까 지레 겁이 나서 못 읽은 것.)

이 책이나마 독파하면 마키아벨리를 시오노 나나미처럼 '나의 친구'라고 부를수 있으려나.

그의 얼굴은 똑 쥐상이던데. ㅎ

 

***동우***

2019.04.04 06:00

 

역사적 인물이나 사실을 글로 쓰는 자의 디테일...

그리고 '마키아벨리'와 '체사레 보자르'와의 만남.

 

<사람의 일생이나 역사는 저명한 사실만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디테일이 기입될 필요가 있다. 디테일이 떠받들어야 저명한 사실도 살아나는 것이다. 그래서 작자는 디테일에 애정을 쏟는다. 다른 사람은 요약이 가능하다고 말한 것은 다른 사람은 디테일의 중요성은 알아도 애정까지는 품지 않기 때문이다. 애정은 그것을 쓰기로 마음먹은 작가만이 갖는 법이다. 그리고 그것을 읽겠다고 자기 의지로 선택한 독자만이 갖는 것이다. 이 장에서만 겪은 나의 '고음(苦陰)'에는 또 하나의 원인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마키아벨리에게 체사레와의 만남은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마키아벨리의 생애를 쓰면서 이 대목을 회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의 사상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이 '만남'은 그에 걸맞게 씌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동우***

2019.04.08 08:44

 

'군주론(君主論)'을 읽지 않고서는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의 속맛을 알뜰하게 맛볼수 없을것 같습니다.

마침 군주론 全文, '올재 클래식'의 텍스트파일을 업어올 수 있었습니다. (채 100 쪽이 되지 않는 얇은 책, 대충 훑어보니 번역도 훌륭한 듯,)

 

이 기회에 근대 정치사상의 시조라는 마키아벨리의 이 정치철학의 고전을 읽어야겠습니다.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의 연재 마친 후에 올리겠습니다. (나는 이 책에서 그 시절 피렌체의 정치 외교 문화 환경 생활, 르네상스와 관련된 마키아벨리라는 한 인간의 캐릭터의 액추얼리티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ㅎ)

 

***동우***

2019.04.12 07:07

 

‘시오노 나나미’의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500여년전 ‘마키아벨리’라는, 역사적 한 인물이 살다 간 사회적 정치적 인간적 궤적, 그리고 ‘피렌체’라는 도시의 흥망사와 르네상스의 여명과 황혼.

작은 사료까지 천착하여 오래전 이탈리아의 시대적 액추어리티를 살려낸, ‘시오노 나나미’의 흡입력 강한 문장으로 구사하는 이바구.

 

피렌체

르네상스의 꽃을 활짝 피웠던 천의무봉의 천재들.

코시모 메디치, 로렌초 메디치, 조토, 기베르티, 브루넬레스키, 레오나르도 다빈치, 갈릴레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단테, 보카치오, 페트라르카... 그리고 마키아벨리...

산타마리아 노벨라교회, 우피치 미술관, 미켈란젤로광장, 산타크로체, 산로렌초성당, 바르젤로미술관, 아카데미아미술관, 메디치 리카르디궁전, 베키오궁전, 베키오다리....

 

피렌체, 플로렌스, 꽃의 도시

또한 그 도시에는 권모와 술수와 살육과 지정학과 종교와 정치와 외교와 함께 권력의 대두와 몰락이 있었고, 그리고 우중(愚衆)이 있었습니다.

 

<불멸의 신이시여, 이제부터 제가 이야기하려는 이 도시, 피렌체의 영광에 필적할 만한 웅변력을 제게 주소서. 그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적어도 이 도시를 찬양하는 데 필요한 열정과 희망만이라도 제게 주십시오. 웅변력이나 열정, 그 둘 가운데 어느 것을 통해서라도, 이 도시의 위대함과 존엄성이 충분히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도시보다 더욱 빛나고 영광스러운 곳을 이 세상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피렌체는 이처럼 위대하고 장엄한 도시입니다.... ‘피렌체 찬가’ -레오나르도 브루니->

 

패키지 여행 따위으로는 그 속살을 만져볼수 없는 피렌체...

피렌체를 여행하려면, 모쪼록 이 책을 읽은 연후에 피렌체 여행을 기획하여야 할 터입니다.

 

마키아벨리.

(그의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얼음짱처럼 차가운 이성으로 사물을 분석하고 냉소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규정한 사람이라는게 선입관으로 가지고 있던 인상비평이었습니다.

 

<나는 바라네. 하지만 바람은 나를 더욱 괴롭게만 하네.

나는 우네. 하지만 울어도 가슴은 그저 쓸쓸하기만 하네.

나는 웃네. 하지만 웃어도 마음은 허망하기만 하네.

나는 태우네. 하지만 불꽃은 밖으로 피어나지가 않네.

나는 내가 보고 내가 느끼는 것들이 두렵기만 하네.

모든 것들이 나에게 새로운 고통을 주네.

그래도 바라면서, 나는 울고 웃고 태우며,

또 내가 듣고 보는 것들을 두려워하네.>

 

이 책을 읽고나니 그는 빈틈이 많고 상당히 허랑하기도 한 인간이었음을 느낍니다.

그러니까 정작 그 자신은 우리 관념 속에 도사린 그 마키아벨리스트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정치를 사랑하였고 정치에서 최상의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었지만 그 열정은 시인의 것이었습니다.

 

그가 공화주의자인가 군주론자인가는 군주론을 읽은 연후에 생각해 보려 합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함께 읽어주어 고맙습니다.

 

p.s

리얼리티를 표방하는 예능프로를 나는 좀처럼 보지 않습니다.

즤들끼리 형님 아우님하고 찧고 까불고 얼굴을 팔면서 돈을 버는 연예인 저들끼리의 놀이마당, 그 프로그램에 탐닉하는 사람들 역시 우중(愚衆)의 b급 정서라고 폄훼하는 편이지요.

근데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은 꽤 볼만하더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 유시민 김영하등의 피렌체 여행과 그들의 수다. 상당히 유익하였습니다.

유시민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순 인상비평적으루다) 괜찮게 생각되기도 합디다그려.

그의 독서력(讀書歷)도 상당한 듯 하고 지적 깊이와 인간성의 넓이도 새삼스레 느껴지더이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