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 3월 (1595년 3월)
3월 초1일 [양력 4월 10일] <甲戌>
맑다. 삼도에 겨울을 지낸 군사들을 모아 임금님께서 하사하신 무명을 나누어 주었다. 조방장 정응운이 들어왔다.
3월 초2일 [양력 4월 11일] <乙亥>
흐렸다.
3월 초3일 [양력 4월 12일] <丙子>
맑다.
3월 초4일 [양력 4월 13일] <丁丑>
맑다. 조방장 박종남이 들어왔다.
3월 초5일 [양력 4월 14일] <戊寅>
비가 내렸다. 노대해가 왔다.
3월 초6일 [양력 4월 15일] <己卯>
맑다.
3월 초7일 [양력 4월 16일] <庚辰>
맑다. 조방장 박종남·조방장 신호·우후(이몽구) 및 진도군수(박인룡)가 와서 봤다.
3월 초8일 [양력 4월 17일] <辛巳>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대청으로 나갔다. 우수사(이억기)·경상수사(배설)·양 조방장(박종남·신호)· 우후(이몽구)· 가리포첨사· 낙안군수· 보성군수· 광양현감· 녹도만호가 아울러 모두 와서 이야기 했다.
3월 초9일 [양력 4월 18일] <壬午>
맑다. 저녁나절에 대청으로 나갔다. 방답의 새로 부임한 첨사 장린·옥포의 새로 부임한 만호 이담이 공사례의 인사를 했 다. 진주의 이곤변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3월 초10일 [양력 4월 19일] <癸未>
흐리고 가랑비가 내렸다. 조방장 박종남과 함께 이야기했다. 보성군수 안홍국이 아뢰고 돌아갔다.
3월 11일 [양력 4월 20일] <甲申>
흐리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사도시(대궐 안의 쌀·간장 등을 맡은 관청)의 주부 조형도가 와서 전라좌도의 왜적의 정세를 말하고, 또 투항해 온 왜놈들의 말을 전하는데, 풍신수길이 삼년간이나 출병해도 끝내 효과가 없으므로, 군사를 더 내어 바다를 건너 부산에다 진영을 설치하려고 하는데, 3월 11일에 바다를 건너 오기로 벌써 정해졌다고 했다.
3월 12일 [양력 4월 21일] <乙酉>
흐렸다. 조방장 박종남과 우후(이몽구)가 장기를 두었다.
3월 13일 [양력 4월 22일] <丙戌>
흐리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아침에 자윤 박종남 영감을 불러 같이 밥을 먹었다. 저녁에 식사를 한 뒤에 조형도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3월 14일 [양력 4월 23일] <丁亥>
비는 오고 바람은 그쳤다. 남해현령이 진에 이르렀다.
3월 15일 [양력 4월 24일] <戊子>
비가 잠깐 그치고 바람도 잤다. 식사를 한 뒤에 조형도가 아뢰고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활을 쏘았다.
3월 16일 [양력 4월 25일] <己丑>
비가 내렸다. 사도첨사 김완이 들어왔다. 그 편에 들으니, 충청수사 입부 이순신이 군량미 이백 여 섬을 조도어사 강첨에게 발각되어 그 때문에 잡혀 심문당했다고 했다. 또 새로 부임한 충청수사 이계훈은 배에서 불을 내었다고 하니, 참으로 놀랄 일이다. 동지 권준이 본영에 왔다고 했다.
3월 17일 [양력 4월 26일] <庚寅>
비가 걷힐 듯하다. 아들 면·허주·박인영 등이 돌아갔다. 오늘 군량을 계산하여 딱지를 붙였다. 충청우후(원유남)가 달려와 보고 하는데, 수사 이계훈이 불을 내고 자신은 물에 빠져 죽었으며, 군관과 격군 백마흔 여 명이 불에 타 죽었다고 하니, 놀랍기도 하다. 저녁나절에 우수사가 달려와 보고하기를, "견내량의 복병한 곳에서 온, 투항한 왜인 심안은이(시마즈)를 문초했더니, 그 놈은 본시 영등에 있던 왜놈이고, 그의 장수 심안둔(도진의홍)이 그의 아들(도진충항)을 대신 두고 가까운 시일내에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라 한다."고 했다.
3월 18일 [양력 4월 27일] <辛卯>
맑다. 권언경·아우 여필·조카 봉·이수원 등이 들어왔다. 그 편에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는 말을 들으니, 천만다행이다. 우수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3월 19일 [양력 4월 28일] <壬辰>
맑다. 권언경 영감과 함께 활을 쏘았다.
3월 20일 [양력 4월 29일] <癸巳>
비가 내렸다. 식사를 한 뒤에 우수사에게로 가다가 길에서 수사 배설을 만나 배 위에서 잠깐 이야기했다. 그는 밀포의 둔전치는 곳을 살펴 볼 일로 간다고 했다. 그 길로 우수사에게로 가서, 몹시 취하고, 저물어서 돌아왔다.
3월 21일 [양력 4월 30일] <甲午>
맑다. 저녁나절에 아우 여필·조카 봉·이수원이 돌아갔다. 나주 반자(원종의)와 우후(이몽구)가 와서 봤다.
3월 22일 [양력 5월 1일] <乙未>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날씨가 일찍 흐리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세 조방장과 함께 활을 쏘았다. 우수사가 여기 와서 같이 쏘았다. 날이 저물어 헤어져 돌아왔다.
3월 23일 [양력 5월 2일] <丙申>
맑다. 아침식사를 한 뒤에 세 조방장 및 우후와 함께 걸어서 앞산 봉우리에 오르니, 삼면으로는 바라보이는 앞이 막히지 않고, 길은 북 쪽으로 트여 있다. 과녁을 세우고 자리를 닦고, 거기에 앉아 종일토록 돌아올 것을 잊었다.
3월 24일 [양력 5월 3일] <丁酉>
흐리고 바람이 없다. 공문을 결재했다. 저녁나절에 세 조방장과 함께 활을 쏘았다.
3월 25일 [양력 5월 4일] <戊戌>
종일 비가 내렸다. 동지 권준·우후·남도포만호·나주반자가 와서 봤다. 영광 군수도 왔다. 동지 권준과 장기를 두었는데 권준이 이겼다. 저녁에 몸이 몹시 불편했는데 닭이 울어서야 열이 조금 내리고 땀은 흐르지 않았다.
3월 26일 [양력 5월 5일] <己亥>
맑다. 영광군수(정연)가 나갔다. 저녁나절에 조방장 신호(신호)·박종남과 우후와 함께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저녁에 수사 배설·이운룡·안위가 와서 새 감사 맞이할 일을 아뢰고, 사량(통영시 사량면)으로 갔다. 밤 열 시쯤에 동쪽이 어둡다가 밝아지니, 무슨 상서로운 조짐인지 모르겠다.
3월 27일 [양력 5월 6일] <更子>
맑다. 식사를 한 뒤에 우수사가 여기 와서 종일 활을 쏘았다. 어둘 무렵 조방장 박종남에게로 가서 발포만호·사도첨사·녹도 만호를 불러서 같이 이야기하다가 헤어졌다. 탐후선이 들어왔다. 표마와 종 금이가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한다.
3월 28일 [양력 5월 7일] <辛丑>
맑다. 활 열 순을 쏘았다. 저녁나절에 사도첨사가 와서 보고하기를,"각 포구의 병부를 순찰사의 공문에 따라, 각 포구에 직접 나누어 주었다."고 했다.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3월 29일 [양력 5월 8일] <壬寅>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두 조방장과 이운룡·조계종이 활 스무세 순을 쏘았다. 수사 배설이 순찰사에게서 오고, 미조항첨사(성윤문)도 진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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