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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亂中日記 (33) -李舜臣-

카지모도 2021. 2. 24.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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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4월 (1595년 4월)

 

 

 

4월 초1일 [양력 5월 9일] <癸卯>

맑으며 바람이 세게 불었다. 남원 유생 김굉이 수군에 관한 일로 진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와 같이 이야기했다.

 

4월 초2일 [양력 5월 10일] <甲辰>

맑다. 종일 공무를 봤다.

 

4월 초3일 [양력 5월 11일] <乙巳>

맑다. 세 조방장이 우수영의 진으로 가고, 나는 사도첨사와 함께 활을 쏘았다.

 

4월 초4일 [양력 5월 12일] <丙午>

맑다. 아침에 경상수사(배설)가 활을 쏘자고 청하므로, 권·박 두 조방 장과 함께 배를 같이 타고 경상수사에게 갔더니, 전라수사(이억기)가 이미 먼저 와 있었다. 같이 활을 쏘고 종일 이야기하다가 돌아왔다.

 

4월 초5일 [양력 5월 13일] <丁未>

맑다. 선전관 이찬이 비밀 유지를 가지고 진에 이르렀다.

 

4월 초6일 [양력 5월 14일] <戊申>

가랑비가 종일 내렸다. 동지 권준과 같이 이야기했다.

 

4월 초7일 [양력 5월 15일] <己酉>

맑다. 저물 무렵 바다로 내려가 어두울 때에 견내량에 이르러 잤다. 선전관(이찬)이 돌아갔다.

 

4월 초8일 [양력 5월 16일] <庚戌>

맑으나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왜적들이 밤에 도망갔다고 하므로 들어가 치지 않았다. 저녁나절에 침도에 이르러, 우수사(이억기)·경상수사 배설(배설)과 함께 활을 쏘았다. 여러 장수들도 모두 와서 참여했다. 저녁에 본진으로 돌아왔다.

 

4월 초9일 [양력 5월 17일] <辛亥>

맑다. 조방장 박종남과 함께 활을 쏘았다.

 

4월 초10일 [양력 5월 18일] <壬子>

맑다. 구화역(구화역: 구허역) 역졸이 와서 보고하기를, "적선 세 척이 또 역앞(통영시 광도면 노산리)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래서 삼도의 중위장들에게 각각 다섯 척씩 배를 거느리고 견내량으로 달려가 형세를 보아 무찌르게 했다.

 

4월 11일 [양력 5월 19일] <癸丑>

맑다. 우수사가 와서 보고는 그대로 활을 쏘고, 종일 이야기하다가 돌아갔다. 정여흥이 들어왔다. 또 변존서의 편지를 보니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 줄을 알겠다. 기쁘다.

 

4월 12일 [양력 5월 20일] <甲寅>

맑다. 장계의 회답 열여덟 통과 영의정(류성룡)·우의정(정탁)의 편지와 자임(자임: 이축)영감의 회답 편지가 왔다. 군량을 독촉할 일로 아병(아병: 군사의 일종) 양응원을 순천·광양으로, 배승 련을 광주·나주로, 송의련을 흥양·보성으로, 김충의를 구례·곡성으로 정하여 보냈다. 삼도의 중위장 성윤문·김완·이응표가 견내량에서 돌아와 왜적이 물러갔다고 보고했다. 경상수사 배설은 밀포로 나갔다.

 

4월 13일 [양력 5월 21일] <乙卯>

흐리고 비가 내렸다. 세 조방장이 같이 왔다. 장계와 편지 네 통을 봉하여 거제 군관 편에 올려 보냈다. 저녁에 고성현령 조응도가 와서 왜적의 일을 말하고, 또 "거제의 왜적이 웅천에 군사를 청하여 야간에 습격을 하려 한다."고 말했다. 비록 믿을만 하지는 않으나, 그럴 염려가 없지도 않다.

 

4월 14일 [양력 5월 22일] <丙辰>

잠깐 비가 내렸다. 아침에 흥양현감이 교서에 숙배했다.

 

4월 15일 [양력 5월 23일] <丁巳>

흐렸다. 여러 가지 장계와 단오절의 진상품을 봉해 올렸다.

 

4월 16일 [양력 5월 24일] <戊午>

종일 큰 비가 왔다. 비가 흡족히 오니, 올해 농사는 큰 풍년임을 점칠 수 있다.

 

4월 17일 [양력 5월 25일] <己未>

맑으나 높새바람이 세게 불었다. 식사를 한 뒤에 대청으로 나가, 세 조방장과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경상수사 배설이 여기에 왔다가 해평장의 논밭 일구는 곳으로 갔다. 미조항첨사도 와서 활을 쏘고서 갔다.

 

4월 18일 [양력 5월 26일] <庚申>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대청으로 나가 우수사(이억기)·경상수사 배설· 가리포첨사(이응

표)· 미조항첨사(성윤문)· 웅천현감(이운룡)· 사도첨사(김완)· 경상우후 이의득· 발포만호(황정록 ) 등 삼도의 장수가 모두 와서 모여 활을 쏘았다. 권준·신호 두 조방장도 같이 모였다.

 

4월 19일 [양력 5월 27일] <辛酉>

맑다. 조방장 박종남이 적을 수색·토벌하는 일로 배를 탔다.

 

4월 20일 [양력 5월 27일] <壬戌>

맑다. 저녁나절에 우수사에게로 가서 조용히 이야기하고 돌아왔다. 이영남이 장계 회답을 가지고 내려 왔는데, 남해현령을 효시하라고 했다.

 

4월 21일 [양력 5월 28일] <癸亥>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대청에 나갔다. 활 열 순을 쏘았다.

 

4월 22일 [양력 5월 30일] <甲子>

맑다. 오후에 미조항첨사(성윤문)·웅천현감 이운룡·적량만호 고여우·영등포만호 조계종과 두 조방장이 아울러 왔다. 그래서 정사준(판관 정승복의 아들)이 보낸 술과 고기를 같이 먹으면서, 남해현령이 군령을 어기었으니 효시하라는 글을 보았다.

 

4월 23일 [양력 5월 31일] <乙丑>

맑다. 마파람이 세게 불어 배를 운항할 수 없으므로 다락위에 앉아 공무를 보았다.

 

4월 24일 [양력 6월 1일] <丙寅>

맑다. 이른 아침에 아들 울·조카 뇌·완을 어머니 생신에 상차려 드릴 일로 내어 보냈다. 오정 때에 강천석이 달려 와서 보고하기를, "도망한 왜놈 망기시로(망기시로: 손사랑)가 우거진 풀 숲 속에 엎드려 있다가 잡혀 왔고, 다른 한 놈은 물에 빠져 죽었다."고 했다. 곧 그 놈을 압송해 오게 하고 삼도에 갈라 맡긴 항복한 왜놈들을 모두 불러 모아 곧 머리를 베라고 하였더니, 망기시로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빛이 없이 죽으러 나왔다. 참으로 독한 놈이었다.

 

4월 25일 [양력 6월 2일] <丁卯>

맑고 바람도 없다. 구화역 역졸 득복이 경상우후(이의득)의 보고를 가지고 왔는데, "왜적의 대선·중선·소선을 아울러 쉰 여 척이 웅천에서 나와 진해(마산시 합포구 진동면 진동리)로 향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오수 등을 정탐하도록 내어 보냈다. 흥양현감이 와 서 봤다. 사량만호 이여념이 아뢰고 돌아갔다. 아들 회 및 조카 해가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하니, 다행이다.

 

4월 26일 [양력 6월 3일] <戊辰>

맑다. 새벽에 우수사가 조방장 신호와 함께 자기 소속의 배 스무 여 척을 거느리고 탐색하러 나갔다. 저녁나절에 종지 권준· 흥양현감(배흥립)· 사도첨사(김완)· 여도만호(김인영)과 함께 활 스무 순을 쏘았다.

 

4월 27일 [양력 6월 4일] <己巳>

맑으며 바람도 없다. 몸이 불편하다. 동지 권준·미조항첨사(성윤문)·영등포만호(조계종)가 와서 같이 활 열 순을 쏘았다. 한밤 자정에 우수사가 적을 수색·토벌하고서 진으로 돌아아서는, "아무데도 적의 자취가 없다."고 하였다.

 

4월 28일 [양력 6월 5일 <庚午>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봤다. 우수사·경상수사가 와서 활을 쏘았다. 송덕일이 하동현감(성천유)을 잡으러 왔다.

 

4월 29일 [양력 6월 6일] <辛未>

밤 두 시쯤에 비가 오더니, 아침 여섯 시쯤에 깨끗이 개었다. 해남현감(최위지)이 공사례를 마친 뒤에, 하동현감에게는 두 번이나 기일에 이르지 않은 죄로 곤장 아흔 대를 때렸고, 해남현감에 게는 곤장 열 대를 때렸다. 미조항첨사는 휴가 가겠다고 아뢰었다. 세 조방장과 같이 이야기했다. 노윤발이 미역을 아흔 아홉 동을 따 가지고 왔다.

 

4월 30일 [양력 6월 7일] <壬申>

맑다. 활 열 순을 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