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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亂中日記 (60) -李舜臣-

카지모도 2021. 3. 30.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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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년 11월 (1597년 11월)

 

 

 

11월 초1일 [양력 12월 9일] <戊子>

비가 내렸다.아침에 얇은 사슴 가죽 두 장이 물에 떠내려 왔다. 그래서 명나라 장수에게 보내주기로 했다. 기이한 일이다. 오후 두 시에 비는 개었으나 된바람이 몹시 불었다. 뱃사람들은 추위에 괴로워하며, 나는 선실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으니, 마음이 무척 불편했다. 하루를 보내는 것이 일년 같았다. 비통함을 말할 수 없다. 저녁에 된바람이 세게 불어 밤새도록 배가 흔들리어 사람이 제대로 안정시킬 수가 없었다. 땀이 나서 몸을 적셨다.

 

11월 초2일 [양력 12월 10일] <己丑>

흐렸는데 비는 오지 않았다. 일찍 우수사의 전선이 바람에 표류되어 암초에 걸려 깨졌다고 한 말을 들었다. 참으로 통분하다. 병선의 군관 당언량에게 곤장 여든 대를 쳤다. 선창에 내려가 앉아서 다리 놓는 일을 감독했다. 그 길로 새 집 짓는 곳으로 올라갔다가 어두워서야 배로 내려왔다.

 

11월 3일 [양력 12월 11일] <庚寅>

맑다. 일찍 새 집 짓는 곳으로 올라가 선전관 이길원이 배설을 처단할 일로 들어왔다. 배설은 벌써 성주 본집으로 갔는데, 그곳으로 가지 않고 곧장 본가로 왔다. 그 사정을 보아주는 (이길원의) 죄가 더 크다. 녹도의 배에 보냈다.

 

11월 4일 [양력 12월 12일] <辛卯>

맑다. 일찍 새 집 지어 세우는 곳으로 올라갔다. 이길원이 머물렀다. 진도군수 선의문이 왔다.

 

11월 5일 [양력 12월 13일] <壬辰>

맑다. 따뜻하기가 봄날 같다. 새 집 짓는 곳으로 올라갔다가, 날이 저물어서 배로 내려왔다. 영암군수 이종성이 밥을 서른 말이나 지어 일꾼들에게 먹이고, 또 말하되, "군량미 이백 섬을 준비하고, 중간벼 칠백 섬을 마련하였다."고 한다. 이 날 보성 군수와 흥양현감으로 하여금 군량창고 짓는 것을 보살피게 했다.

 

11월 6일 [양력 12월 14일] <癸巳>

맑다. 일찍 새 집 짓는 곳으로 올라가 종일 어설렁거리니 해가 저무는 것도 몰랐다. 새 집에 이엉으로 지붕을 이었다. 군량 곳간도 지었다. 전라우우후가 나무 베어 올 일로 황원장으로 갔다.

 

11월 7일 [양력 12월 15일] <甲午>

맑고 따뜻하다. 해남 의병이 왜놈의 머리 하나와 환도 한 자루를 가지고 와서 바쳤다. 이종호와 당언국을 잡아왔다. 그래서 거제의 배에 가두었다. 저녁나절에 전 홍산현감 윤영현 생원 최집이 와서 보고, 또 군량에 쓸 벼 마흔 섬과 쌀 여 덟 섬을 부쳐 왔다. 며칠 동안의 양식으로 도움이 될만하다. 본영의 박주생이 왜놈의 머리 두 개를 베어 왔다. 전 현령 김응인이 와서 봤다. 이대진의 아들 순생이 윤영현을 따라왔다. 저녁에 새 집의 마루를 다 놓았다. 수사마다 와서 봤다. 이 날 밤 자정에 꿈에 면이 죽는 것을 보고 구슬프게 울었다. 진도군수가 돌아갔다.

 

11월 8일 [양력 12월 16일] <乙未>

맑다. 밤 두시쯤 꿈에 물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았다. 이 날은 따뜻하고 바람도 없다. 새방 벽에 흙을 발랐다. 이지화 부자가 와서 봤다. 마루를 만들었다.

 

11월 9일 [양력 12월 17일] <丙申>

맑다. 따뜻하기가 봄날 같다. 우수사가 와서 봤다. 강진현감이 현으로 돌아갔다.

 

11월 10일 [양력 12월 18일] <丁酉>

눈과 비가 섞여 오다. 된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간신히 배를 구호했다. 이정충이 와서 말하기를, "장흥의 적들이 달아났다."고 했다.

 

11월 11일 [양력 12월 19일] <戊戌>

맑으나 바람기는 약간 있었다. 식사를 한 뒤에 새 집 짓는 곳으로 올라갔다. 평산포의 새 만호가 도임장(부임 명령서)을 바쳤다. 그는 하동현감(신진)의 형 신훤(신훤)이다. 전하는 말이 숭정으로 가자하는 것이 이미 발행되었다고 한다. 장흥부사와 배 조방장이 와서 봤다. 저녁에 우후 이정충이 왔다가 초저녁에 돌아갔다.

 

11월 12일 [양력 12월 20일] <己亥>

맑다. 이 날 저녁나절에 영암·나주 사람에게 배메기를 못하게 했다고 하여 묶어서 왔다. 그래서 그 중 주모자를 가려서 처형하고 나머지 네 명을 각 배에 가두었다.

 

11월 13일 [양력 12월 21일] <更子>

맑다.

 

11월 14일 [양력 12월 22일] <辛丑>

맑다. 남해현감 류형(유형)이 와서 윤단중의 무리한 일을 많이 전했다. 또 말하기를, 해남의 아전이 법성포로 피란갔다가 돌아올 때 바람을 만나 배가 뒤집어지는데, 바다가운데서 만나도 구조하기는 커녕 도리어 배안의 물건을 빼앗아 갔다고 했다. 그래서 중군선에 가두었다. 김인수를 경상도 수영의 배에 가두었다. 내일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제삿날이라 나들이는 하지 않아야 겠다.

 

11월 15일 [양력 12월 23일] <壬寅>

맑다. 따뜻하기가 봄날 같다. 새 집으로 올라갔다. 저녁나절에 림환과 윤영현이 와서 봤다. 저녁에 송한이 서울에서 들어왔다.

 

11월 16일 [양력 12월 24일] <癸卯>

맑다. 아침에 조방장·장흥부사 및 진중에 있는 여러 장수가 아울러 와서 봤다. 군공마련기(군공마련기: 개인별 전공 조사 기록)를 하나씩 점고했더니 거제현령 안위가 통정대부(정3품의 당 상관)가 되고, 나머지도 차례차례 벼슬을 받고, 은 스무 냥을 내게로 보냈다. 명나라 장수 경리양호는 붉은 비단 한 필을 보내면서, "배에 이 붉은 비단을 걸어 주고 싶으나, 멀어서 할 수 없다."고 했다. 영의정의 회답편지도 왔다.

 

11월 17일 [양력 12월 25일] <甲辰>

비가 내렸다. 경리 양호의 차관이 초유문(초유문: 적이나 적에게 붙었던 자들을 너그러운 조건으로 포용한다는 포고문)과 면사첩(면사첩: 사형을 적용하지 않을 것을 보증하는 증서)을 가지고 왔다.

 

11월 18일 [양력 12월 26일] <乙巳>

맑다. 따뜻하기가 봄날 같다. 윤영현이 와서 봤다. 정한기도 왔다. 땀이 났다.

 

11월 19일 [양력 12월 27일] <丙午>

흐렸다. 조방장 배흥립과 장흥부사가 와서 봤다.

 

11월 20일 [양력 12월 28일] <丁未>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다. 임준영이 와서, "완도를 정탐하니 적들이 없습니다."고 전했다.

 

11월 21일 [양력 12월 29일] <戊申>

맑다. 송응기 등이 산의 일꾼을 거느리고 해남에 소나무 있는 데로 갔다. 이 날 저녁에 순생이 와서 잤다.

 

11월 22일 [양력 12월 30일] <己酉>

흐렸다가 개다가 했다. 저녁에 김애가 아산에서 돌아왔다. 임금의 분부를 가지고 왔는데, 이 달 초열흘 날에 아산에 들러 편지를 가져 왔다. 밤에 비가 오고 눈이 내렸으며 바람이 세게 불었다. 장흥에 있던 적들이 20일에 달아났다는 보고가 왔다.

 

11월 23일 [양력 12월 31일] <庚戌>

바람이 세고 눈이 많이 왔다. 이 날 승첩한 장계를 썼다. 저녁에 얼음이 얼었다고 했다. 아산의 집으로 편지를 쓰자니 죽은 아들 생각에 눈물이 흘러 거둘 수가 없었다.

 

11월 24일 [양력 1598년 1월 1일] <辛亥>

눈과 비가 내렸다. 된하늬바람이 계속 불었다.

 

11월 25일 [양력 1월 2일] <壬子>

눈이 내렸다.

 

11월 26일 [양력 1월 3일] <癸丑>

비와 눈이 내렸다. 얼어서 막힌 게 갑절이나 혹독했다.

 

11월 27일 [양력 1월 4일] <甲寅>

맑다. 장흥의 승첩계본을 수정했다.

 

11월 28일 [양력 1월 5일] <乙卯>

맑다. 장계를 봉했다. 무안에 사는 진사 김덕수가 군량에 쓸 벼 열다섯 섬을 가져와 바치었다.

 

11월 29일 [양력 1월 6일] <丙辰>

맑다. 유격 마귀의 차관 왕재가, "물길을 따라 명나라 군사가 내려 온다"고 했다. 전희광·정황수가 왔다. 무안현감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