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냐 정말야. 초봉일랑 인제 시집가거든 애여 남편 그렇게 달달 볶지 말라구. 거, 아주 못써. 그놈의 여편네가 좀 그리지를 안했으면 내가 벌써 이십 년 전에 십만 원 하나는 모았을 거야, 응 그렇잖아”
“아저씨두! 두 분이 결혼하신 지가 십 년 남짓하시다문서 그러세요…… 내, 온…….”
“아하하하, 참 그렇던가? 내가 정신이 없군. 그건 그런데, 초봉이두 알지만, 에, 거 여편네 히스테리 아주 골머리가 흔들려! 그 어떻게 이혼을 해버리던지 해야지 못 견디겠어. 아무것두 안 되겠어!”
“괜히 그러세요!”
“아니, 자유 결혼이니까, 이혼두 자유야. 거 새끼두 못 낳구 히스테리만 부리는 여편네 무엇에 쓰노!”
“그렇지만 아주머니가 보시기엔 아저씨한테 더 잘못이 많답니다.”
“잘못? 응, 더러 있지. 오입한다구, 그리구 제 히스테리에 맞추지 않는다구. 그러니깐 갈려야지? 잘잘못이야 뉘게 있던 간 둘이서 같이 살 수가 없으니깐 갈려야 할 게 아냐? 그렇잖어”
“전 모르겠어요.”
초봉이는 제호의 이야기에 끌려 허튼 수작에 대거리는 하고 있어도, 시방 딴 걱정에 도무지 건성이다.
그는 제호한테 청할 말이 있어서, 윤희 못지않게 제호의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제호가 돌아오고 해서 얼굴을 대하고 난즉은, 언제나 마찬가지로 섬뻑 말이 나오지를 않던 것이다.
그는 실상 아까 아침 나절에 이야기를 했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벼르기만 하고, 말이 차마 나오지를 않아서 주춤주춤하고 있는 동안에 제호는 부루루 나가 버렸고, 그래서 후회를 하고 종일토록 까맣게 기다리고 있던 참이다.
하다가 인제 그가 돌아왔으니 말을 내야 할 것이지만, 그러나 종시 말은 나와지지 않고, 그러면 그만두자 한즉, 당장 집안 식구들이 굶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하며, 오늘이 이러한 걸, 내일을 또, 그 다음날도 돈이 생길 때까지는 굶어야 할 테니, 도저히 안 될 말이다.
“아저씨, 저어…….”
초봉이가 겨우 쥐어짜듯이 기운을 내서 이렇게 말부리를 따놓고, 눈치를 보느라고 고개를 쳐드니까, 제호는 없는 담뱃갑을 찾느라고 이 포켓 저 포켓 부산하게 뒤지다가 마주 얼굴을 든다.
“응? 무어…… 이놈의 담배가 그렇게 하나두 없나! 제기할 것. 그래, 무어 할 이야기 있어? 응, 무어야”
“네에…….”
“그래, 무슨 이야긴데”
“말씀하기가 미안해서…….”
미안한 것뿐이 아니지만, 사실 미안하기도 퍽 미안하다.
지난달 그믐을 가까스로 넘기고서 초하룻날 하루만 겨우 지나고 난 이달 초이튿날, 가게에 나오기가 무섭게 오늘처럼 염치를 무릅쓰고 돈 십 원을 이달 월급 턱으로 선대받아 간 것이 열흘도 채 못 된다. 그랬는데, 그런 때문에 인제 찾을 것이라야 겨우 십 원밖에 남지 않았고, 월급날이라고 정한 스무닷샛날이 되기도 전에 또 선대를 해달라고 하게 되니, 가령 저편에서야 괜찮다고 하지만 초봉이로 앉아서는 말을 내기가 여간만 민망한 노릇이 아니다.
초봉이가 말을 운만 떼어 놓고 그 다음 말을 못 하고 어려워만 하는 것을,
“허허! 사람두 원!…… 알었어, 알었어!”
제호는 벌써 알아차리고,
“……돈이 쓸 데가 있단 말이지…… 그걸 말 좀 하기를 그렇게 어려워한담? 사람두 어디서, 원…….”
“그래두 미안하잖어요”
“미안은 무슨 미안? 미안하기루 들면, 내가 되려 미안하지. 친구 자녀 데려다가 두구서는 월급두 변변히 못 주어서 늘 옹색하게 하니깐, 안 그래? 그렇지? 허허 제기할 것…… 그래 얼마나 쓸까…… 날더러 일일이 달라구 해선 뭘 하누? 거기 있을 테니 좀 끄내다 쓰구 장부에 올려나 놓지. 그래, 거기 손금고에서 끄내 써요, 응? 아뿔싸! 열쇠를 내가 가지구 나갔었지…… 정신없어 야단났어! 제기할 것.”
제호는 포켓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 가지고 테이블 위에 놓인 손금고를 방울 소리를 울리면서 찰크당 열어 젖힌다.
초봉이는 두고 보면 볼수록 소탈하고 시원스런 제호가 사람이 좋았고, 비록 본디야 남이지만, 그만한 아저씨를 둔 것이 또한 좋았다. 만일 제호가 정말로 외가로든지 친척으로서의 아저씨가 된다면, 더욱 마음 든든하고 즐거울 것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초봉이가 보기에는 좋은 사람인 것을, 대체 그 부부간이라는 게 무엇이길래 윤희는 육장 두고 제호를 못살게시리 달달 볶아 대는지, 그 속을 알 수가 없었다.
“……그래 얼마나? 오 원? 십 원”
제호는 일 원, 오 원, 십 원 이렇게 세 가지 지전을 따로따로 집어 들고 세면서 묻는다.
“글쎄요…….”
초봉이는 기왕이니 십 원을 탔으면 좋겠으나, 그역 말이 나오지 않는다.
“저런, 사람두! 돈 쓸 사람이 얼마 쓸지를 몰라? 허허 제기할 것. 자아 십 원. 기왕이면 모개지게 한꺼번에!”
초봉이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지려고 하는 것을 속으로 삼키고, 파르스름하니 안길 성있게 색채가 나는 십 원짜리를 받아 쥔다.
돈을 받아 쥔 손바닥의 촉감도 여느때 물건을 팔았을 때에는 다 같은 십 원짜리라도 그런 줄을 모르겠더니, 이렇게 어렵사리 제 몫으로 받아 쥐는 십 원짜리의 촉감은, 어디라 없이 그놈이 빳빳하면서도 자별히 보드라운 것 같았다.
돈을 탔으니 인제는 집으로 갈 일이 시각이 바쁘다. 그러나, 아직 겨우 네시 반…… 돌아갈 시간 여섯시까지에는 한 시간 반이나 남았다.
어떻게 하나? 탈을 하고, 오늘은 일찍 돌아가나? 좀더 있다가 배달하는 아이가 돌아오거든 집으로 보내 주나? 이런 때에 동생들이라도 누가 나왔으면 싶었다.
제호는 제약실로 들어가 앉아서 손가방을 열어 놓고 무엇인지 서류를 뒤적거린다. 그것을 보니 아까 제호가 들어서던 길로 떠들어 대면서, 좋은 일이 있다고, 초봉이한테도 좋은 일이 있다고 수선을 피우던 일이 생각났다.
그날그날의 생활이 막막하고, 앞뒷동이 막힌 때에는 빈말로나마 좋은 일이 생긴다는 말을 들으면 반가운 법이다. 초봉이도 그래서 한 가지 시름을 놓고 나니 그 다음에는, 대체 그 좋은 일이라는 게 무엇인고? 이편에서 물어라도 보고 싶게 차차 궁금증이 나기 시작한다.
제호는 서류를 한번 주욱 훑어보더니 다시 차곡차곡 챙겨서 제약실 안에 있는 금고를 열고 소중하게 건사를 한 뒤에 도로 마루로 나온다.
“자아, 인전 참, 초봉이한테 이야기를 좀 해야지…….”
제호는 테이블 앞 의자에 가 걸터앉더니,
“……나 이 전방 이것 팔았지, 헤헤. 팔아두 아주 잘 판걸, 제기할 것.”
“네에!”
초봉이는 하두 어이가 없어 놀라지는 대로 놀랐지, 미처 어찌하지를 못한다.
그러나 제호는 연신 싱글벙글 웃기만 한다.
“왜 그렇게 놀래누? 허허허허…… 걱정 말아요, 걱정 없어요.”
초봉이는 다시 생각하니, 주인이 갈린다고 점원까지 갈리랄 법은 없으니 너는 걱정 없느니란 말인 듯싶었고, 사실 또 그게 근리한 말인 것 같아서 지레 놀란 것이 무색했다.
“누가 샀는데요”
“뭐, 어떤 ‘가모’가 하나 덤벼들어설랑, 허허허허, 제기할 것…….”
“……”
“헌데…… 초봉이 말이야…… 나허구 같이 서울루 가지이? 서울…….”
“서울루, 요”
초봉이는 알아듣고도 모를 소리여서 뚜렛뚜렛하는 것이다.
“응, 서울루.”
“어떻게”
“어떻게라니 차 타구 가지? 걸어 가잴까 봐서? 허허허허, 제기할 것.”
“그래두 전 무슨 말씀인지.”
“모를 건 뭣 있나? 서울루 가서 시방 여기서처럼 일 보아 주면 되지.”
“네에!”
초봉이는 그제야 겨우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인제 알겠지…… 그래, 서울루 가요. 서울루 가면 내 정식으루 월급두 나우 주지. 그때는 시방처럼 이런 여점원이 아니라 사무원이야 사무원. 그리구 나는 응? 척 지배인 영감입시구, 허허허허. 박제호가 인전 선영 명당바람이 나나 부다, 제기할 것.”
“무얼 시작하시는데”
“제약회사야 제약회사. 이거 봐요, 내가 몇 해 전버텀두 그걸 하나 해볼 양으루 별렀단 말이야 그거 참 하기만 하면 도무지 어수룩하기가 뭐 짝이 없거든. 글쎄 삼십 전이나 오십 전 딜여서 약을 맨들어 가지군 뭐, 어쩌구 어쩌구 하다구 풍을 쳐서 커다랗게 신문에다 광고를 내면 말이야, 헐라치면 십 원씩 내구 사다 먹어요! 십 원씩을. 제깐놈들이 뭐 약이 어쩐지 아나 머. 그래 열 곱 스무 곱 남아요. 십 년 안에 삼십만 원 이상 벌어 놀 테니 보라구, 삼십만 원.”
“어쩌문!”
“그럴듯하지? 거 봐요. 그래서 이번에 그걸 하기루 돈 낼 사람이 나섰단 말야. 그자가 사만 원 내놓구, 내가 이만 원 내놓구, 주식회사 무슨 제약회사라구 쓱, 응…… 자본금은 삼십만 원이구, 사장에 아무개요, 지배인에 박제호요, 허허허허, 제기할 것. 그러느라구 이것두 판 거야. 팔아두 숫지게 팔았지. 이천 원 딜여서 설비해 놓구, 십 년 동안 전 만 원이나 모으구, 그리구 나서 오천 원을 받았으니, 허허허허, 제기할 것…… 세상이 아직두 어수룩하단 말이야, 어수룩해. 이걸 오천 원에 사는 ‘가모’가 있지를 않나, 삼사십 전짜리 약을 맨들어서 광고를 크게 내면, 저희가 광고요금꺼정 약값에다가 껴서 내구 좋다구 사다 먹질 않나. 그러니 장사해 먹는 이놈이 손복할 지경이지. 생각하면 벼락을 맞일 일이야. 허허허허, 제기할 것.”
초봉이는 흐무진 것 같기는 해도, 어수선해서 무엇이 무엇인지 속을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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