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사는 손가락으로 병주의 콧물을 훑어다가 닿는 대로 마룻전에 씻어 버린다. 병주는 아직 얼굴에 남아 있는 놈을 부친의 그 알량한 단벌 두루마기에다가 문대면서 냅다 주워섬긴다.
“아버지 아버지, 내 양복허구, 내 모자허구, 내 구두허구, 내 자전거 허구, 또 내 빠나나허구…….”
이렇게 정신없이 한참 외다가 비로소 헛다방인 것을 알고서,
“히잉, 안 사왔구만, 히잉 히잉…….”
“오냐 오냐, 오늘은 돈이 안 생겨서 못 사왔으니 내일은 꼭 사다 주마. 자아 방으로 들어가자, 우리 병주가 착해.”
달래면서 병주를 안고 안방으로 들어가고, 건넌방에서는 숙제를 하는지 엎드려 있던 형주가 그제야 고개를 내밀다가 만당 아무것도 사가지고 들어오지 않은 아버지는 나서서 볼 필요도 없던 것이다.
방에서는 부인 유씨가 서향한 뒷문 바투 앉아서 돋보기 너머로 바느질을 하느라고 고부라졌다.
유씨는 아직 그럴 나이도 아니면서 눈이 어두워, 돋보기가 아니고는 바느질을 한 코도 뜨지 못하던 것이다.
“시장한데 어딜 그러구 돌아다니시우”
유씨는 올려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앉은 자리만 따들싹하는 시늉을 한다. 어디라니, 번연히 미두장에 갔다가 오는 줄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니다.
“그건 웬 거요”
정주사는 초봉이가 또 월급을 선대받아 왔으리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고, 지금 유씨가 만지작거리고 있는 바느질감이 들어온 덕에 그놈 바느질삯을 미리 받아다가 밥을 하느니라고 짐작했던 것이다.
“내가 해입구 시집갈려구 끊어 왔수.”
유씨는 웃지도 않고 천연스럽게 실없는 소리를 한다.
“저 봐라! 병주야…….”
정주사는 두루마기를 벗으면서, 다리에 매달려 이짐을 부리는 병주더러 한다는 소리다.
“……네가 말을 안 듣구 그러니깐 엄마가 시집가 버린단다! 응”
“아냐, 거짓뿌렁야. 내 양복허구, 내 모자허구, 내 구두허구, 내 자전거허구, 그리구 빠나나랑, 얼음사탕이랑, 사다 준다구 하구 거짓뿌렁이만 하구, 잉…….”
“내일은 정말 사다 주마.”
“시타, 이잉, 또 거짓뿌렁할려구. 밤낮 거짓뿌렁만 허구.”
병주는 앉은 부친의 무릎으로 기어올라 아래턱의 노랑수염을 훑으려 쥐고 잡아 흔든다.
“아프다, 이 자식아! 아이구 아이구……!”
정주사는 턱을 내밀고 엄살을 하다가,
“내일은 꼭 사다 주마, 꼭.”
“거짓뿌렁이야.”
“거짓뿌렁 않구 꼭 사다 주어, 꼭.”
정주사는 속으로 너를 위해서라도, 네 큰누이의 혼인이 어서 바삐 그렇게 얼려야 하겠다고, 절절히 결심(!)을 더 했다.
“제호가 서울루 간답디다.”
유씨는 초봉이한테서 이야기를 먼저 들었었다. 그리고 모녀간에는 벌써 합의가 되었었다.
“제호가? 서울루”
정주사는 그다지 놀라질 않는다.
“……어째, 무슨 일루”
“서울 가서 크게 장사를 시작한다구. 가게두 벌써 팔았답디다…… 그리구 우리 초봉이더러두 서울루 같이 가잔다구 헌다우.”
“초봉이더러”
이렇게 되짚어 묻는 말의 운이 벌써 마땅치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서울루 가면 월급두 한 사십 원씩 주마구, 또 객지루 혼자 내보내기가 집에서 맘이 뇌지 않는다면, 자기가 자기네 집에서 같이 데리구 있겠다구.”
“거, 안 될 말…….”
정주사는 서너 시간 전과도 달라 시방은 아주 흐뭇한 계획과 희망이 들어차서 있기 때문에, 서울이며 월급 사십 원쯤, 그런 소리는 다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
“……월급은 사십 원 아니라 사백 원을 준다기루서니, 또 아무리 아는 친구의 집에 둔다기루서니, 장성한 계집애 자식을 어디 그렇게 함부루 내놓는 법이 있소? 나는 지금 예서 거기 다니는 것두 마땅찮은데…….”
이 말은 노상 공연한 구실말은 아니다. 정주사는 마음먹은 혼인도 혼인이려니와, 가령 그것이 아니더라도 섬뻑 서울까지 보내기를 많이 주저할 사람이다.
“그래두 내 요량 같아서는 따라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집에다 둬선 무얼 하겠수? 육장 굶기기나 허구.”
“그러니 어서 마땅한 자리를 골라서 여워 버려야지.”
“말은 좋수…….”
유씨는 시쁘다는 듯이 돋보기 너머로 남편을 넘겨다본다.
“……하루 한 끼 먹기두 어려운 집구석에서 무슨 수루 혼인을 허우”
“그렇다구 계집애루 늙히나”
“누가 계집애루 늙힌다우? 그렇게 가서 있으면, 제가 버는 것을 모아서라두 시집갈 밑천은 장만할 것이구, 또 제호 손에서 치어나면, 아따 무엇이라더냐, 시험을 보아서 장래 벌이두 잘하게 된다구 하니까, 두루두루 좋은 거린데, 왜 덮어놓구 막기만 허시우”
“세상일이 다아 그렇게 맘먹는 대루만 되구 탈이 없으면야 무슨 걱정이야”
“맘먹은 대루 안 될 것은 무엇 있수? 대체 십 년이나 없는 살림에 애탄가탄 공부를 시켰으니, 그런 보람이 있게 해야지, 어쩌자구 가난해 빠진 집구석에다가 붙들어만 두려구 드시우? 당신은 의관하구 다니면서 치마 둘른 날만치두 개명은 못 했습니다.”
“그런 개명 부럽잖아…… 여편네가 얼개명한 건 되려 못쓰는 법이야.”
필경 티격태격하면서, 보낸다거니 안 보낸다거니 서로 우겨 댄다.
오늘뿐이 아니라 언제고, 일이 이렇게든지 저렇게든지 끝장이 날 때까지는 둘이 다 지지 않고 고집을 세운다. 그러나 이 부부가 의견이 달라 가지고 서로 우겨 대다가, 필경 가서 누가 이기느냐하면 영락없이 부인 유씨가 이기고 나선다.
그러니까 이번 일도 만일 달리 마새가 생기지만 않으면 초봉이는 마음먹은 대로 제호를 따라 서울로 가게 될 게 십상이다.
초봉이는 계봉이의 밥까지 수북하게 다 푸고 나서, 마지막으로 제 몫을 바라진 양재기에다가 반이나 될락말락하게 주걱데기를 딱 긁어 붙이고 솥에다 숭늉을 붓는다.
계봉이는 주걱데기를 시쁘게 집어 들면서 엄살하듯 한단 소리가,
“애개개! 요게 겨우 언니 밥이야”
하나, 이건 그게 혹여 제 몫일까 봐서 꾀를 쓰는 소리.
“그 밥이 왜 적으냐”
초봉이는 소댕을 덮고 부뚜막에서 일어선다.
“……너 아버지 진지랑 식잖게 뚜껑 덮었니”
“시방 잡술 걸 뚜껑은 덮어선 무얼 해? 자아 인전 어서 국 퍼요.”
“국은 불을 더 때야겠다. 아직 더얼 끓었어…… 나가서 뚜껑 찾아서 잘 덮어 봐라, 굳잖게.”
초봉이는 물렸던 장작개비를 도로 지피고 불을 살군다.
“아이, 배고파 죽겠구먼. 언니두 배고프지”
“나는 괜찮어.”
“멀! 배고프문서두…… 언니 이따가 내 밥 같이 먹어, 응”
“그래, 걱정 마라. 나는 누룽지두 훑어다 먹구 할 테니깐 네나 많이 먹구 배고프단 말 말아.”
“그럼 머 인제 어머니가, 이년, 네 언니는 주걱데기하구 누룽지만 멕이구 너는 혼자서 옹근 사발엣밥 차구 앉어 고질고질 처먹구 있어? 이렇게 욕허게…… 아이 참, 어머닌 나는 밉구, 언니만 이쁜가 봐? 그렇지? 언니.”
“계집애가 별소릴 다 하네!”
초봉이는 웃으면서 눈을 흘긴다. 계봉이는 하하 웃고 부엌에서 뛰어나와 방으로 들어간다.
초봉이는 아궁이 앞에 앉아 지금 방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고 있는 그 이야기가 어떻게 돼가는가 해서 궁금히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삐그럭 중문 소리에 연달아 뚜벅뚜벅 무거운 구두 소리가 들린다. 초봉이는 보지 않고도 그것이 승재의 발자국 소린 줄 안다.
초봉이는 승재와 얼굴이 마주쳤다. 승재는 여느때 같으면 히죽이 웃으면서 그냥 아랫방께로 갔을 것이지만, 오늘은 할말이 있는지 양복 저고리 포켓에다 손을 넣고 무엇을 찾으면서 주춤주춤 한다.
초봉이는 고개를 돌이켰어도 승재가 말을 해주기를 기다린다. 그랬으면 초봉이도 그 말 끝에 잇대어 아까 가게에서 풍파가 났던 이야기도 하고…… 하면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둘이는 내외를 한다거나 누가 금하는 바는 아니지만, 딱 마주쳐서 어쩔 수 없는 때나 아니고는 섬뻑 말이 나오지를 않는다. 그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버릇이 되었다. 한 것은, 가령 승재가 안에 기별할 말이 있다든지, 안에서 초봉이가 승재한테 무엇 내보낼 것이 있다든지 하더라도, 직접 승재가 초봉이한테, 또는 초봉이가 승재한테 해도 관계치야 않겠지만, 그러나 손아래로 아이들이 있는 고로, 다만 숭늉 한 그릇을 청한다 하거나, 내보내거나 하는 데도 자연 아이들을 부르고 아이들을 시키고 하기 때문에, 그게 필경 버릇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승재가 방을 세로 얻어 든 것이 작년 세안이라 하지만, 그러기 때문에 둘이는 제법,
“나 승잽니다.”
“초봉이어요.”
이만큼이라도 말을 주고받기라도 하기는 금년 이월 초봉이가 제중당에 나가서부터다.
초봉이가 기다리다 못해, 그것도 잠깐이지만 도로 고개를 돌리니까, 승재는 되레 무렴해서 벌씬 웃고 얼른 아랫방께로 걸어간다.
초봉이는 승재가, 대체 무슨 말을 하려다 못 하고 저러나 싶어서, 그의 하던 양이 우습기도 하거니와 한편 궁금하기도 했다.
안방에서는…….
내외간의 우김질은, 아이들이 초봉이만 부엌에 있고 모두 몰려드는 바람에 흐지부지 중판을 메고 묵묵하다.
식구들은 누구나 다 말은 안 해도, 밥상이 어서 들어왔으면 하는 눈치다.
계봉이는 모친이 주름을 잡고 있는 남색 ‘벰베르크’ 교직치마를 몇 번째 만져 보다가는 놓고, 놓았다가는 만져 보고 해쌓는다.
그러다가 마침내 어리광하듯,
“어머니…… 나두 이런 치마 하나만.”
말은 해놓고도 고개를 오므라뜨리고 배식이 웃는다.
“속없는 계집애년!”
유씨는 돋보기 너머로 눈을 흘기다가 생각이 나서,
“……너는 네 형 혼자만 맽겨 놓구, 이렇게 퐁당 들어앉어서 고따위 소갈머리없는 소리만 하구 있니”
“다아 된걸, 머…….”
계봉이는 그만 무렴해서 치마 만지던 손을 건사를 못 해한다.
“국두 더얼 끓었는데 다 돼? 본초 없는 것이, 어디서…….”
계봉이는 식식 하고 웃목으로 가서 돌아앉아 버린다.
“요년, 냉큼 일어나서 나가 보지 못하느냐”
“어이구 어머니두, 어머닌 내가 미워 죽겠나 봐”
계봉이는 볼때기를 축 처뜨리고 울먹울먹, 발꿈치를 콩콩 구르고 마루로 나와서 부엌으로 내려간다.
그 볼때기하며, 계봉이는 성질도 그렇거니와 생김새도 형 초봉이와는 아주 딴판이다.
계봉이는 몸집이고 얼굴이고 늘품이 있다. 아무 데고 살이 있어서 북실북실하니 탐스럽다. 코가 벌씸한 것은 사람이 좋아 보이나, 처진 볼때기에는 심술이 들었다. 눈과 이마도 뚜렷하니 어둡지가 않다. 그러한 중에도 제일 좋은 것은 그의 입이다.
마음을 탁 놓고 하하 웃을 때면, 시원스럽게 떡 벌린 입으로 그리 잘지 않은 앞니가 하얗게 드러나기까지 하여, 보는 사람도 속이 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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