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님은 그 돈 만 원을 송두리째 어느 중매점에다 맡겨 놓고, 미두 공부를 기역 니은(미두학
ABC)부터 배워 가면서 일변 미두를 했다.
손바닥이 엎어졌다 젖혀졌다 하고, 방안지의 계선이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 동안에 돈 만 원은 어느 귀신이 잡아간 줄도 모르게 다 죽어 버렸다.
영감님은 여관의 밥값은 밀렸고, 고향으로 돌아갈 (면목은 몰라도) 찻삯이 없었다.
중매점에서 보기에 딱했던지, 여비나 하라고 돈 삼십 원을 주었다. 영감님은 그 돈 삼십 원을 받아 쥐었다. 받아 쥐고는 물끄러미 내려다보면서 후유- 한숨을 쉬더니 한숨 끝에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쓰러지면서 죽었다.
이것이 군산 미두장을 피로써 적신 ‘귀중한’ 재료다.
그랬지, 아무리 돈을 잃어 바가지를 차게 되었어도 겨우 선창께로 어슬렁어슬렁 걸어나가서 강물에다가 눈물이나 몇 방울 떨어뜨리는 게 고작이다. 금강은 백제가 망하는 날부터 숙명적으로 눈물을 받아 먹으란 팔자던 모양이다.
미상불 미두장이가 울기들은 잘한다.
옛날에 축현역(杻峴驛 : 시방은 상인천역) 앞에 있던 연못은 미두장이의 눈물로 물이 고였다고 이르는 말이 있었다.
망건 쓰고 귀 안 뺀 촌 샌님들이 도무지 어쩐 영문인 줄 모르게 살림이 요모로 조모로 오그라들라치면 초조한 끝에 허욕이 난다. 허욕 끝에는 요새로 친다면 백백교(白白敎), 들이켜서는 보천교(普天敎) 같은 협잡패에 귀의해서 마지막 남은 전장을 올려 바치든지, 좀 똑똑하다는 축이 일확천금의 큰 뜻을 품고 인천으로 쫓아온다. 와서는 개개 밑천을 홀라당 불어 버리고 맨손으로 돌아선다.
그들이야 항우 같은 장사가 아닌지라, 강동(江東) 아닌 고향으로 돌아갈 면목은 있지만 오강(烏江) 아닌 축현역에 당도하면 그래도 비회가 솟아난다. 그래 찻시간도 기다릴 겸 연못가로 나와 앉아 눈물을 흘린다. 한 사람이 그래, 두 사람이 그래, 열 사람 백 사람 천 사람이 몇 해를 두고 그렇게 눈물을 뿌리니까, 연못의 물은 벙벙하게 찼다는 김삿갓 같은 이야기다.
오늘이 오월로 들어서 둘째 번 월요일이라, 이번 주일의 첫 장이다. 그러므로 웬만하면 입회가 다소간 긴장이 되겠지만 절기가 그럴 절기라 놔서, 볼썽 없이 쓸쓸하다.
그중 큰 매매라는 것이 기지개를 써서 오백 석 아니면 천 석짜리요, 모두가 백 석 이백 석짜리 ‘마바라(잔챙이 미두꾼)’들만 엉켜붙어서 옴닥옴닥한다.
옛날 말이지, 시방은 쌀값을 최고 최저 가격을 통제해서 꽉 잡아 비끄러매 놓기 때문에 아무리 날고 뛰어도 별반 뾰죽한 수가 없고, 다직해서 여름의 농황(農況)을 좌우하는 천기시세〔天氣相場〕때와 그 밖에 이백십일(二百十日)이나, 특별한 정변(政變)이나, 연전의 동경대진재 같은 천변지이(天變地異)나, 이러한 때라야 그래도 폭넓은 진동(大幅振動)이 있고 해서 매매도 활기가 있지, 여느때는 구멍가게의 반찬거리 흥정을 하는 푼수밖에 안 된다.
그러니까 투기사(投機師)는 ××××가 살인강도나, 옛날 같으면 권총사건 같은 것이 생기기를 바라듯이 김만평야의 익은 볏목에 우박이 쏟아지기를 바라고, ××이나 ××이 지함(地陷)으로 돌아 빠지기를 기다린다.
후장삼절(後場三節)…….
아래층의 ‘홀’로 된 ‘바다지석〔場立席〕’에는 각기 중매점으로부터 온 두 사람씩의 ‘바다지(場立 : 중매점의 시장 대리인)’들과 ‘죠쓰게(場附)’라고 역시 중매점에서 한 사람씩 온 서두리꾼들까지, 한 사십 명이나 마침 대기하듯 모여 섰다.
같은 아래층을 목책으로 바다지석과 사이를 막은 ‘갸쿠다마리’에는 손님들이 한 백 명 가량이나 되게 기다리고 있다.
이 사람들이, 그 중에는 구경꾼이나 하바꾼들도 섞이기는 했지만, 거지반 미두 손님들이다.
일부러 골라다 놓은 듯이 형형색색이다. 조선옷, 양복, 콩소매 달린 옷, 늙은이, 젊은이, 큰 키, 작은 키, 수염 난 사람, 이발 안 한 사람, 잘생긴 얼굴, 못생긴 얼굴, 이러하되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제가끔 한 사람 몫의 한 사람씩인 ‘저’들이요, 제가끔 김가, 이가, 나카무라, 최가 등속인 노름꾼들이다.
그러나, 본래 ‘오오테(大手)’라고, 몇천 석 몇만 석씩 크게 하는 축들은 제 집에다 전화를 매놓고 앉아 시세를 연신 알아보아 가면서 오천 석을 방해라, 만 석을 사라, 이렇게 해먹지 그들 자신이 미두장에 나오는 법이 없다.
해서, 으레 미두장의 갸쿠다마리에 주욱 모여 서는 건 하바꾼과 구경꾼과 백 석 이백 석을 붙여 놓고 일 정(一丁 : 일 전) 이 정의 고하를 눈 뒤집어쓰고서 밝히는 ‘마바라’들이다.
하지만, 또 이 마바라들이야말로 하바꾼들과 한가지로 미두전장(米豆戰場)의 백전노졸들인 것이다.
그들은 대개가 십 년 이십 년, 시세표(市勢表)의 고하를 그리는 괘선(罫線)을 따라 방안지의 생애를 걸어오는 동안, 수만 금 수십만 금 잡았다가 놓쳤다가 하여서 무수한 번복을 거쳐, 필경은 오늘날의 한심한 마바라나 그보다 더 못한 하바꾼으로 영락한 무리들이다.
그런만큼 그들은 미두장이의 골이 박혀 시세를 보는 눈이 날카롭고 담보는 크건만, 돈 떨어지자 입맛 난다는 푼수로, 부러진 창대를 가지고는 백전노졸도 큰 싸움에는 나서는 재주가 없다.
후장삼절을 알리느라고 ‘갤러리’로 된 이층의 ‘다카바(高場 : 서기)’에서 따악 따악 따악 딱다기 소리가 나더니 ‘당한(當限)’이라고 쓴 패가 나와 붙는다.
이것이 소집 나팔이다.
딱딱이 소리에 응하여 바다지들은 반사적으로 일제히 다카바를 올려다보고는 그 길로 장내를 휘휘 돌려다본다. 그들은 직업적으로 약간 긴장하는 둥 마는 둥하다가 도로 타기만만하다.
갸쿠다마리에서는 적이 긴장이 되어 모두들 바다지한테로 시선을 보내나 바다지들 사이에는 종시 매매가 생기지 않는다. 또 손님들 편에서도 아무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다.
바다지석과 갸쿠다마리 사이의 목책 위에 놓인 각 중매점의 전화들만 끊일 새 없이 쟁그럽게 울고 그것을 받아 내느라고 죠쓰게들만 분주하다.
갤러리의 한편 구석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통신사(通信社) 사람들은 전화통에 목을 매달고 각처에서 들어오는 시세를 받느라고, 또 한편으로 그놈을 흑판에다가 분글씨로 써서 내거느라고 여념이 없다.
다카바에는 딱딱이꾼 외에 두 사람의 다카바가 테이블을 차고 앉아 마침 기록을 하려고 바다지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당한에는 바다지들의 아무런 제스처 즉 매매의 도전(賣買挑戰)이 없어, 소위 ‘데기모(出來不申)’라고, 매매가 없다고 만다.
다카바에서는 다시 딱딱이가 울고 ‘중한(中限)’패로 갈려 붙는다.
이에 응하여 선뜻 한 사람의 바다지가 손을 번쩍 쳐들면서,
“셍고쿠 야로-”
소리를 친다. 대체 이 사람이 쳐든 손은, 언뜻 아무렇게나 쳐든 것 같아도 실상인즉 대단히 기묘 복잡함이 있다.
엄지손가락과 식지는 접어 두고 중지와 무명지와 새끼손가락 세 개만 펴서 손바닥은 바깥으로 둘렀다.
하고 보니, 벙어리가 에스페란토를 지껄인 것이랄까, 그것을 번역하면 이렇다.
끝엣손가락 세 개를 편 것은 삼(三)이라는 뜻으로 삼 전(三錢)이란 말이고, 손바닥을 바깥으로 두른 것은 팔겠다는 말이고, 그리고,
“셍고쿠 야로.”
는,
“쌀 천 석 팔겠다.”
는 말이다. 그러니까 즉,
“쌀 천 석을 삼 전(三錢 : 삼십 원 삼 전)씩에 팔겠다.”
이런 뜻이다.
이 매매가 성립이 되자면 누구나 사고 싶은 다른 바다지가 응하고 나서야 한다.
장내는 조금 동요가 되다가 다시 조용하고 갸쿠다마리에서는 담배 연기만 풀씬풀씬 올라온다.
삼십 원 삼 전이라는 시세에 바다지나 손님들이나 다 같이,
“흥! 누가 그걸…….”
하는 듯이 맨숭맨숭하다.
그래서 ‘시테나시(仕手無)’라는 걸로 중한도 매매가 성립되지 못한다.
본시 한산한 시기에는 당한과 중한에는 매매가 별반 없는 법인데, 더구나 시세가 저조(低調)여서 ‘매방(買方)’이 경계를 하는 판이라 전절(前節 : 이절)보다 일 전이 비싼 삼십 원 삼 전에 팔겠다는 걸, 그놈에 응할 사람이 없을 것도 당연한 일이다.
세 번째 딱딱이가 울고 ‘선한(先限)’패로 갈려 붙는다. 그러자 마침 기다리고 있던 듯이 갸쿠다마리에서 손님 하나가 바다지 한 사람을 끼웃끼웃 찾아 불러내다가는 목책 너머로 소곤소곤 귓속말을 한다.
바다지는 연신 고개를 까닥까닥하면서 말을 듣는 한편, 손에 들고 있는 금절표(金切表)를 활활 넘기고 들여다본다.
이윽고 바다지는 돌아서면서, 엄지손가락 식지 중지 세 손가락을 펴서 손바닥을 밖으로 쳐들고,
“고햐쿠 야로-”
소리를 친다. 이것은 팔 전(八錢 : 이십구 원 구십팔 전)에 오백 석을 팔겠다는 뜻인데, 그 소리가 떨어지자 장내는 더럭 흥분이 된다.
일 초를 지체하지 않고 저편으로부터 다른 바다지가 팔을 쳐들어 안으로 두르고,
“돗다-”
소리를 지른다. 그놈을 사겠다는 말이다.
이어서 여기저기서 ‘얏다’, ‘돗다’ 소리와 동시에 팔이 쑥쑥 올라오고, 소리는 한데 엉켜 왕왕거리는 아우성 소리로 변한다. 치켜 올린 바다지들의 손과 손들은 공중에서 서로 잡혀진다. 커다란 혼잡이다.
바다지석은 훤화 속에서 뒤끓는다. 다카바들은 눈을 매눈같이 휘두르면서 손을 재게 놀려 기록을 한다.
바다지와 다카바는 매매를 하느라고 흥분이 되고, 이편 갸쿠다마리는 시세 때문에 흥분이다.
그도 그럼직한 일이다.
오늘 아침 ‘전장요리쓰케(前場寄付)’ 삼십 원 십이 전으로 장이 서 가지고는 전장도메(前場止)’ 홑 구 전, ‘후장요리쓰케(後場寄付)’ 홑 칠이 이절에 가서 오 정(五丁 : 오 전)이 더 떨어져 홑 이전으로 되더니, 삼절에는 마침내 그처럼 삼십 원대를 무너뜨리고 팔 전--이십구 원 구십팔 전으로 또다시 사 정이 떨어졌던 것이다.
현물이 품귀(品貴)요, 정미도 값이 생해서 기미(期米)도 일반으로 오르게만 된 형세건만, 도리어 이렇게 떨어지기만 해놔서, ‘쓰요키(强派)’들한테는 여간 큰 타격이 아니다.
만일 이대로 떨어져 가기로 들면 ‘후장도메’까지에는 다시 사오 정은 더 떨어지고 말 것이고, 한다면 도통 이십 정이 오늘 하루에 떨어지는 셈이다.
표준미가(標準米價) 이후 하루 동안에 백 정이니 이삼백 정이니 하는 등락은 이미 옛날의 꿈이요, 진폭이 빈약한 오늘날, 더구나 한산한 이 시기에 하루 이십 정의 변동은 넉넉히 흥분거리가 될 수 없는 게 아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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