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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탁류 (47) -채만식-

카지모도 2021. 5. 28. 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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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일을 장차 어떡하나’

미장이의 비비송곳같이 천착을 한 끝에는 애가 밭아 이렇게 자문을 하는 것이나 역시 시원한 대답은 나오지 않고, 되레 더 무서운 골로 궁리는 빠져들어가던 것이다.

비록 석 달밖에 안 된 생명이지만, 그렇더라도 그걸 밟아 죽이는 것이 죄로 갈 짓은 죄로 갈 짓이나, 뒷일을 두루 각다분찮게 하자면 역시 낳지 마는 것이 옳겠다는 것이다.

생각이 이에 미쳤을 때 그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러나, 두려워도 차라리 그 두려움을 취하고 싶었다.

더욱이 제호가 임신을 한 눈치를 챌까 봐서 애가 쓰였다. 그래 더구나 ××면 ××를 진작 시켜 버리든지 해야겠다고 초초히 결심을 하고 말았다. 하나 그렇게 결심은 했어도 그놈을 시행하자니 또한 어려운 고패여서, 섬뻑 손이 대지지가 않았다. 그리하여 몸은 담뿍 지쳤는데 마음 또한 암담하고 일변 초초하여 살림이고 좋은 가을이고 통히 경황이 없던 것이다.

제중당에 석 달 있었던 빈약한 경험과 막연한 상식의 힘으로 ‘×× ×××’ 즉 ‘×××’이라는 약을 알아내기에 초봉이는 보름 장간이나 애를 썼다.

약을 알아내고 이어 사다 놓기까지 하고서도, 그러나 매일같이 벼르기만 하고 벌써 십여 일이나 미룸미룸 미뤄 나왔다.

시월 열흘께다. 인제는 배가 제법 도독이 불러 올라 손으로 옷 위를 만져도 그럴싸했다.

아침인데 제호가 조반상을 받더니,

“요새 어찌 신색이 많이 못됐어! 어데 아픈가”

하면서 딴속 있어 흐물흐물 웃는다.

초봉이는 가슴이 뜨끔했으나, 아마 그새 여러 날 횟배가 아프더니 그래서 그런가 보다고 천연덕스럽게 둘러댔다.

“횟배? 그럴 리가 있나!…… 아무려나 오늘 나하구 병원엘 가던지, S군을 청해 오던지 해설랑 진찰을 좀 해볼까”

“싫여요!”

초봉이는 잘겁해서 절로 소리가 보풀스럽다.

“허어! 저런 변괴가 있나! 몸 아픈 사람이 그래, 진찰을 해보자는데 그렇게 쏠 건 무어람? 응? 허허허허. 그리지 말구, 자아 어서 밥 먹구 이쁘게 단장두 허구 그래요. 그럼 병원에 다녀오다가 내 조선호텔 한탁 쓰잖으리”

“싫대두 그래요!”

“저런 고집이 있을라구! 허허허허…… 그럼 병원이 그렇게 싫거던 일러루 오라구. 내라두 맥을 좀 짚어 보게…….”

제호는 밥 먹던 손을 슬그머니 내민다. 초봉이는 물신물신 물러나면서,

“싫여! 몰라! 마구 할퀼 테야, 마구…….”

하고 암상떨이를 한다.

“허허허허, 우리 괭이가 어째서 저럴꼬? 허허허허. 그래 그럼 고만두지 인전 다아 알았으니깐 …… 허허허허.”

“알긴 무얼 안다구 저래! 밉상이네!”

“흐응, 그렇게 숨기려 들 거야 무엇 있누? 응…… 제기할 것. 우리 괭이가 인전 벌써 애기 어머니가 된단 말이었다! 허허허허.”

“저이가 미쳤나!…… 어이구 참, 볼 수 없네!”

“제기할 것, 나두 우리 초봉이 덕분에 막내둥일 본단 말이지”

“드끄러워요. 괜히 심심허니깐 사람 놀릴 양으루…….”

“놀리긴! 남은 시방 좋아서 그리는데.”

제호가 좋아서 그런단 말은 그러나 공연한 말이고, 유쾌해하는 것은 역시 농이던 것이다. 그는 진작부터 거니는 챘었지만, 간밤에야 그게 적실한 줄 알았는데, 그러자 초봉이가 이렇게 폴폴 뛰는 걸 보고 여간만 시방 속이 뜨악한 게 아니다. 분명코 초봉이가 고태수의 혈육을 잉태했기 때문에 한사코 임신을 숨기려 들거니, 미상불 전남편이 죽은 지 겨우 보름 만에 내게로 왔었고, 그러니까 이번 임신이 노상 전엣사람의 씨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으려니 싶었던 것이다.

제호는 그렇다면 생판 제 계집이 낳아 놓는 남의 자식을 떠맡아 가지고 길러야 할 판이라 억울한 ‘아비의 부담’이요, 불쾌한 기억의 기념물이 아닐 수 없는 것은 아니었었다. 그러나 일변,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 계집을 데리고 사는 이상 그것을 부담을 했지 별수가 없는 것이고, 또 그처럼 비명횡사를 한 인간 하나의 혈육이 생명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한 일인즉 활협삼아서라도 끝을 두고 보기는 할 만한 것이라고 그는 울며 겨자 먹는 푼수로 단념을 하고 말았다.

제호가 이렇게 속 다르고 겉 다른 말을 하는 줄은 아나 모르나 간에 초봉이는 저대로 마음이 급하여, 그새 여러 날 두고 미뤄만 오던 계획을 오늘은 기어코 해치우려니 단단한 결심을 가졌다.

제호가 나가기가 바쁘게 장롱 옷 사품에다가 잘 건사해 두었던 ×××를 찾아냈다. 조반도 먹을 생각이 없고, 식모더러 냉수만 가져오게 했다.

일호 교갑 열두 개, 이것은 보통때 약으로 먹자면 사흘 치 분량이니 극량에 가깝다. 그래 좀 과한 줄을 알고서 두 개는 덜어 놓고 열 개만 해서 왼편손 손바닥에 쥐었다.

바싹 도사리고 앉으면서 바른손으로 냉수 그릇을 집어 들었다. 손이 바르르 떨리고, 무심결에 아랫배가 내려다보인다.

그새 십여 일 두고 번번이 여기까지 해보다가는 금시로 하늘이 내려다보고, 뱃속엣것이 꼼틀하는 성만 싶어서 도로 걷어치우곤 했던 것이다.

유난스럽게 속엣약이 반짝거리는 교갑 열 개를 손바닥에다가 받쳐 든 왼편 손이 입으로 올라오려다가는 마치 천근 무게로 잡아 끌듯이 바르르 떨면서 도로 내려가고, 몇 번이고 이 승강이를 하다가 마침내 후유 한숨이 터져 나온다.

할 수 없이 바른손에 든 물그릇을 내려놓고, 왼편손 손바닥의 교갑만 말끄러미 내려다본다.

‘요것만 입에다가 탁 털어 넣고 물만 두어 모금 마시면…….’

초봉이는 손바닥에 쥔 ××× 교갑을 내려다보고 있는 동안에 차차로 이 약에 대해서 일종 야릇한 매력을 느꼈다.

쉬울 성싶어도 졸연찮고 어려운 일이니 더 어렵기는 한데, 그러나 그놈 한 고패만 눈을 지그려감고, 이를 악물고, 그저 죽는 셈만 대고서 꿀꺽 넘겨만 버리면, 그때는 무서워도 소용이 없고, 시뻘건 ×덩이를 쏟트릴 때에 하늘이 올려다보여도 역시 소용이 없고,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 덕에 이 뱃속에 들어 있는 이것을 십 삭을 채워 낳아 놓고 기르고 하느라고 겪는 갖추갖추의 고통과 불쾌함을 면하게 될 것이니 그게 어디냐.

이렇게까지 생각을 하고서 다시 교갑을 촐싹거려 볼 때에는 시방까지의 무거운 압박과는 달리 무슨 긴장한 게임이나 하려는 순간인 것같이 이상스럽게 고소한 흥분을 느낄 수가 있던 것이다.

한 시간을 넘겨 별렀던 모양이다. 마루에서 괘종이 땡 하고 치기 시작하더니 이어 땡땡땡 여러번을 친다.

세어 보나마나 열한신 줄 알면서도 귀를 기울여 세고 있다가,

‘오래잖아 점심을 먹으러 올 텐데, 그전에 어서 바삐…….’

이렇게 급하게 저를 추겨 댄다.

그래도 조금만 더 충그리고 싶어 그럴 핑계를 찾아내려고 휘휘 둘러본다. 마침 이불장이 눈에 뜨인다. 일어서서 요와 누비이불과 베개를 내려다가 아랫목으로 펴놓는다.

옷도, 뒷일이 수나롭게 입고 있어야지 하고 속옷을 단출하게 갈아 입는다.

그리고는 또 미진한 게 없나 하고 둘러본다. 그러나 정말 미진한 것을 염량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자꾸 더 충그리고 싶어서 그러는 제 마음을 제가 알았을 때에는, 이러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고 저를 나무라면서 물그릇을 얼른 집어 든다.

집어 들면서 다시는 망설이지 못하게 하느라고 이어 눈을 지그려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입을 벌린다. 이를 악물자고 했으나 먹는 놀음이 되어서 그건 할 수가 없었다.

열 개가 한꺼번에 넘어갈 것 같지 않아 우선 반 어림해서 목구멍에 쏟아 넣고는 물을 마신다.

뿌듯했으나 그런대로 넘어간다.

‘인제도!’

시원하다고 저를 조지면서 그 다음의 나머지를 다시 털어 넣고 물을 마신다.

‘인제도!’

아까처럼 목구멍으로 뿌듯이 넘어갈 때 연거푸 또 이렇게 조진다.

그게 글쎄 어디라고 요만큼 수월한 노릇을 안 하려고 벼르고, 망설이고, 핑계대고 한 제 자신이 괘씸했던 것이다.

자, 인제는 뱃속에서 야단법석이 일어나고, 마침내는 그 지긋지긋한 그놈의 ×덩이가 시원하게 빠져나오기는 나올 테라서, 그 일에만 정신이 팔려 방바닥에다 남겨 둔 교갑 두 개는 미처 치우지도 않고, 그냥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가 눕는다.

한 삼십 분 동안,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노란즉 비로소 속이 메스껍기 시작한다.

다 이래야 약이 되겠거니 하고 진득이 참는다. 그러나 차차로 차차로 참기 어려울 만큼 속은 더 뉘웃거리고 아파 오기까지 한다. ××이 수축이 되는 것도 약간 알 수가 있었다.

왱하니 귀가 울고, 머릿속이 휘휘 휘둘려 어지러워나고,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노래지고 한다.

정신이 가물가물하고 속 메스꺼운 것, 뒤틀리고 아프고 한 것이 점점 더 급해 간다.

그래도 게우지 않으려고 정신 몽롱한 중에도 이빨을 악물어 가면서 참아 내는 것이나, 그 노력이 길지 못했던 것은 물론이다.

식모가 허겁지겁 회사로 달려와서 제호를 불러내어,

“아씨가, 저어 아씨가 돌아가세유! 헷소리를 허세유! 정신을 못 채리세유!”

하면서 대중없이 주워섬기기는 바로 오정이 조금 지나서다.

‘××를 시키려고 약을 먹었구나!’

제호는 단박 속을 알아채었다.

허둥지둥하면서도 친구요 개업의인 S한테 전화를 걸어 위 세척을 할 준비까지 해가지고 오라는 부탁을 한다. S는 실상 산부인과의 전문의사지만, 제호와 절친한 관계로 제호네 집안에서 누가 손가락 하나만 다쳐도 그리로 쫓아가고, 골치만 좀 띠잉해도 불러오고 하는, 말하자면 촉탁의산맥이었었다.

제 할 말만 다 하고 난 제호는 수화기를 내동댕이치고 한걸음에 두발씩 뛰어 집으로 달려간다.

제호는 가령 무엇이 되었거나, 이미 한번 ‘어미’라는 인간의 배를 빌려 생명의 싹이 트인 그것을 모체까지 위험한 독약을 먹여 가면서 악착스럽게 ××를 시키는 데는 동의를 않는 사람이다.

하기야 그도 초봉이가 아비 모르는 ‘모듬쇠’ 자식을 낳지 말아 주었으면야 해롭잖아하기는 할 테지만, 그렇다고 ××라는 수단으로 그런 만족을 사고 싶지는 않았었다. 더구나 시방은 ××가 되고 안 되고는 차치하고, 첫째 초봉이의 생명의 위험이 염려스러워서라도 그다지 다급히 서둘지 않을 수가 없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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