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호는 선뜻 부엌에 있는 개숫물통을 통째 집어 들고 방으로 달려 들어간다.
초봉이는 보니, 정신을 놓고 펼쳐 누워 숨도 쉬는 둥 마는 둥 확실히 위태해 보였다.
대체 무얼 먹었는가 하고 둘러보다가 방바닥에 두 개 남아 있는 교갑을 집어 뽑아 보고는 ×××인 줄 알고서, 그래도 조금은 안심을 했다. 혹시 ‘맥(麥)×’이나 먹지 않았나 해서 은근히 더 걱정을 하고 왔던 참이다.
많이 토했는지, 식모가 걸레로 훔쳐 낸 방바닥에 아직도 그래도 흥건히 괴어 있는 걸 보고 개숫물도 퍼먹이지 않고 맥만 짚고 앉아서 의사가 오기를 기다린다.
매우 초조하게 기다린 지 이십 분쯤 해서 S가 간호부까지 데리고 달려들었다.
우선 막상 몰라 위 세척을 하기는 했으나, 역시 토할 것은 토하고 흡수될 놈은 흡수되고 했기 때문에 그건 별반 효험을 내지 못했다.
위 세척을 한 뒤에 이어 강심제와 해독제로 주사를 한 대씩 놓았다. 이렇게 하면서 자연회복이 되기를 바랄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어때……? 뒤어지지나 않겠나? 그놈의 제기할 것!”
얼굴에 아직도 긴장이 덜 가신 채, 제호는 S가 청진기를 떼어 들기를 기다려 물어 보는 것이다.
“제길 하다니……”
S는 제호를 따라 마루로 나오면서 시치미를 떼고 농담부터 내놓는다. 이 둘은 언제고 농을 않고는 하는 말이 심심해서 못 배기는 사이다.
“……응? 죽으면 죽구, 살아나면 살아나는 게지, 어째 그 제길 하나”
“배라먹을 게 어쩌자구 ×××을 그렇게 다뿍 집어 삼키더람!”
제호는 S가 농담을 하는 데 그래도 적잖이 마음을 놓고서, 그와 마주 담배를 붙여 물고 앉는다.
무척 애를 쓴 표적은, 금시 입술이 바싹 말라붙은 걸로도 알 수가 있다.
“대장쟁이 집에 식칼이 없어 걱정이라더니, 이건 제호 자네는 약장수 집에 약이 너무 많아 성활세그려”
“여편네 무지한 것두 딱해.”
제호는 시방 속으로는 S가 초봉이의 임신한 걸 알까 봐서 은근히 애를 태우고 있다. 아무리 친한 S한텔망정, 초봉이가 ××을 시키려고 이 거조를 했다는 눈치는 보이고 싶지 않던 것이다.
“그게 다아 죄다짐이라는 걸세…….”
S는 제호가 꼼짝 못 하는 게 재미가 나서 자꾸만 더 놀려 주면서, 환자는 잊어버린 것같이 태평이다.
“……죄다짐이라는 거야…… 오십 전짜리 인찌기약 만들어서 광고만 크게 내굴랑은 오 원 십 원 받아먹는 죄다짐이야.”
“그래, 자네네 의사놈들은 위너니 이 원짜리 주사를 이십 전씩 받구 놔주지”
“그리구 죄가 또 있지. 아인두 족한데 츠바이, 드라이씩 독점을 하구 지내구…… 응? 하나찌두 일이 오분눈데 쓰나찌나 세나찌나 무슨 일이 있나”
“옛놈은 팔선녀두 데리구 놀았으리? 제기할 것.”
“그런데 자네, 요샌 그 ‘제기’ 하루에 몇 번씩이나 하나”
안방에서 간호부가 까알깔 웃고, 식모는 킥킥 웃음을 삼킨다.
조금 만에 S는 청진기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이나 안 돼야 할 텐데……!”
하면서 의미 있이 빙긋 웃고는 제호를 내려다본다.
제호는 할 수 없이,
“허! 제기할 것.”
하고 뒤통수를 긁적긁적한다.
초봉이가 머리칼 한 오라기만한 정신에 매달려 두웅둥 뜨다가 땅속으로 가라앉다가 배암같이 생긴 형보한테 쫓겨다니다가, 그게 갑자기 태수이기도 하고, 염라대왕 앞에 붙들려가서 문초도 받아 보고, 문초를 하던 염라대왕이 제호가 되어 기다란 얼굴로 히죽이 웃으면서 옆으로 오기도 하고, 형보가 칼로 옆구리를 찢고 뱃속에서 기어 나오기도 하고, 이런 혼몽중에서 온껏 하룻낮 하룻밤을 지나 제정신이 들기는 그 이튿날 저녁 나절이다.
정신이 들자 이어 생신 줄을 아는 순간, 맨 먼저 손이 아랫배로 가졌다. 돈독하게 배가 만져질 때 그는 안심과 실망을 한꺼번에 느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사흘이 지나서 초봉이는 ××를 시키자던 것은 저까지 잡을 뻔하고 실패했으나 기운은 웬만큼 소성이 되었고, 제호가 저녁상을 받을 때에는 자리를 밀어 놓고 일어나 앉을 수도 있을 만했다.
“그대루 누었잖구!…… 누었으라구, 그냥.”
제호는 성화하듯 만류를 하면서, 비바람 함빡 맞고 휘달린 꽃같이 초췌한 초봉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건너다본다.
초봉이는 점직해, 웃으려다 말고 외면을 한다. 제호가 이내 그 일에 대해서는 입을 떼지 않았고, 그래서 둘의 사이에는 무엇이 께름하니 걸려 있는 것 같아 마주 얼굴을 치어다보고 앉았기가 거북했던 것이다.
제호는, 그러나 그 일을 제 속 치부나 해두고 탓을 말쟀던 게 아니고, 초봉이가 몸이 완구해지거든 차차 타이르려니 기다리고 있던 참이다.
“사람두 원!”
제호는 이윽고 빙깃 웃으면서 숟갈을 집어 든다.
“……건 무슨 짓이람…… 그리다가 죽으면 어쩔려구 그래? 겁두 나지 않어”
초봉이는 외면을 하고 앉아 치마 고름만 만지작거린다.
“응? 초봉이.”
“……”
“초봉이”
“……”
“그러면 못쓰는 법야. 어찌 됐던지 간에 초봉인 그 생명의 어머니가 아닌가? 어머니…… 그런데 글쎄 그 거조를 하다니, 송구스럽지도 않던가”
초봉이는 ‘어머니’라는 이름 밑에서 책망을 듣고 보니 미상불 송구한 것 같기는 했다. 그러나 그저 그럴싸했지, 진정으로 마음이 저리게 죄스러운 줄은 모르겠었다.
만일 이번이 두세 번째의 임신이라면 어머니답게 참으로 송구한 마음이 마음에서 우러나기도 했을 것이다. 보다도 오히려 남의 책을 듣기 전에 그랬을 것이요, 혹은 이러고저러고 없이 애당초부터 ××이란 염도 내지 못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초봉이로 말하면 아직까지도 완전하게는 ‘어머니 이전〔母性以前〕’이다. 따라서 가령 이렇게 말썽 붙은 임신이 아니고 순리의 결혼으로 순리의 임신을 했다 하더라도 겨우 넉 달밖에 안 된 뱃속의 생명에 대해서 제법 어머니다운 애정과 양심은 우러날 시기가 아니었었다.
그러한 때문에 ××을 시키려고 약을 들고 앉아서 차마 먹지 못하고 두려워한 것도, 단지 막연하게 액색한 짓, 죄를 짓는 일에 대해 인간으로서, 마음 약한 여자로서 그리했던 것이지, 옳게 어머니다운 양심이나 애정이나는 극히 무력해서 당자 자신도 의식지 못할 만큼 모호했던 것이다.
그처럼 초봉이한테 있어서 어머니다운 애정이나 양심이 희박한 것은, 그것이 초봉이의 살〔內體〕로써 느낀 것이 아니고 남의 말이나 남의 일을 다만 듣고 보아서 알아낸 습관으로서 ‘생리 이전(生理以前)’인 때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방도,
‘너는 어쨌든 그 생명의 어머니가 아니냐.’
고 뼈 아플 소리를 들어도 단지 남이 부끄러웠지, 제 마음에 결리진 않던 것이다.
“그리구 말야, 초봉이…… 글쎄…….”
제호는 실상 오금 두어 나무라는 것이 아니고, 종시 부드러운 말로 타이르는 말이다.
“……세상 일을 그렇게 억지루 해대려 들면 못쓰는 법야…… 역리(逆理)라껀 실패하는 장본이니깐…… 알겠나…… 아 글쎄, 것두 운명이요, 운명이면 다아 하늘의 뜻인데 그걸 이 우리 약비한 인간의 힘으루다가 거역할래서야 될 말인가…… 거저 순리(順理), 순리 그놈이 우리한테는 제일 좋은 보배어든. 응? 알어들어? 알겠지”
“네에.”
막연해서 알 수도 없고 귓속으로 잘 들어오지는 않아도, 재우쳐 조지니까 초봉이는 마지못해 대답은 하는 것이다.
“나는 말이지, 이 박제호는 말야…… 괜찮어, 아무렇지두 않어. 어때서…… 우리 초봉이가 낳아 주는 거니, 남의 자식 그거 하나 기르지? 남은 개구멍받이두 좋다구 길르더라!…… 아무렇지두 않어, 일없어…….”
제호는 지금 초봉이의 뱃속에 들어 있는 것이 고태수의 혈육이라고 영영 그렇게 치고서 하는 말이요, 또 그럴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니깐 초봉이두…… 이거 봐요, 초봉이”
“말씀하세요.”
“초봉이두 말야…… 싫은 사람의 자식을 나서 기르느니라 생각을 하지 말구, 응? 그저 사람, 인간을 하나 나서 기르느니라, 이렇게 생각을 하란 말이야…… 그냥 사람, 그냥 인간 말이지, 응 알겠어…… 그리구 이 담엔 다시 그런 긴찮은 짓은 않기야? 응……”
제호는 초봉이한테로 얼굴을 들이대면서 대답을 조르듯,
“……알겠나”
“네에.”
제호는 다지고, 초봉이는 다짐을 두고 하는 맥인데, 다짐이야 두나마나, 다시는 그럴 생심이 날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 그래…… 그래야 하구말구…….”
제호는 밥을 씹다가 말고 기다란 얼굴을 연신 대고 끄떽끄떽…….
“……그래야만 우리 착한 초봉이지! 그렇지? 허허허허.”
“저, 입에서 밥 쏟아져요!”
초봉이는, 일껏 점잖다가 도로 껄껄대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게 밉살머리스러워서 핀잔을 준다.
“어? 괜찮어, 일없어…… 거 어때? 아무개 자식이면 어때? 사람의 새끼 한 마리 나서 길르는 건데…… 그런 걸 글쎄…… 거 모두 그래서 치마 둘른 인종은 속이 옹색하다는 거야! 허허허허, 제기할 거.”
그 뒤로 초봉이는 뱃속엣것이 걱정이 될 때마다, 제호가 가르쳐 준 주문(呪文)을 외었다.
‘아무개 자식이면 어때? 사람의 새끼를 하나 나서 길르는 건데……일없어, 괜찮아.’
이것은 ‘아멘’이나 ‘나무아미타불’과 같이 그 순간 그 순간만은 단념과 안심을 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오래 가지도 못하고, 그래서 ×× 같은 효과밖에 없기는 했지만…….
가을이 여물 듯이 애 밴 초봉이의 배도 여물어 갔고, 그 해가 갈려 한겨울의 정월과 이월이자 사뭇 북통같이 불러 올랐다. 삼월 보름께 가서는 산파가 앞으로 닷새면 해복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래 예정대로 S의 산실에 입원을 했다.
삼월 스무날 밤이 깊어서…… 마침 봄이 올 테라 생일만은 좋을지 몰라도 속절없이 따라지 목숨이건만, 그래도 어린것은 부득부득 머리를 들이밀고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네가 만일 너를 안다면, 그리고 네가 나오는 예가 어딘 줄을 안다면, 너는 탯줄을 훑으려 잡고 매달리면서, 나는 싫다고 울며 발버둥을 치리라마는.’
초봉이는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거꾸로 있던 놈이 한 바퀴 휘익 돌고, 돌아서는 뿌듯하게 나오려 하자, 모체의 고통은 점점 더하다가 필경 절대(絶大)의 고패에까지 이르렀다.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R/B> 탁류 (50) -채만식- (0) | 2021.05.31 |
---|---|
<R/B> 탁류 (49) -채만식- (0) | 2021.05.30 |
<R/B> 탁류 (47) -채만식- (0) | 2021.05.28 |
<R/B> 탁류 (46) -채만식- (0) | 2021.05.26 |
<R/B> 탁류 (45) -채만식- (0) | 2021.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