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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탁류 (49) -채만식-

카지모도 2021. 5. 30.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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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봉이는 이렇게도 들이 조지는 무서운 고통이라고는 일찍이 상상도 못 했었다.

배를 눌러 터뜨린다든지, 몽둥이로 팬다든지, 어디를 잡아 찢는다든지 하더라도, 가령 배가 터지면 터졌지, 한번 터진 다음에는 오히려 아픔이 덜리고 후련할 텐데, 이건 쭌득이 누르는 채 조금도 늦추지 않고 끝없이 계속이 되니 견디는 수가 없었다.

눈이 뒤집히고 정신이 아찔아찔하여, 옆에서 의사와 간호부와 제호가 무어라고 떠들기는 하나 알아들을 경황이 없었다.

옹골진 속은 있어, 소리를 지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으나 그래도 으응 소리가 이빨 새로 새어 나온다.

위로 제왕을 비롯하여 아래로 행려병 사망자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소치는, 적어도 그 절반은, 그가 모체로부터 세상을 나올 때에 모체가 받은 절대의 고통과 결사의 모험의 값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초산이라 그러기도 했겠지만 분명한 난산이었었다. 두 시간을 삐대고 나서 다시는 더 참을 수 없는 고비까지 이르자, 초봉이는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입만 딱딱 벌어졌다.

S는 할 수 없이 스코폴라민 주사를 산모에게 놓아 주었다. 효과만은 신속하여, 초봉이는 바로 마취가 되고 수월하게 해산이 되었다.

초봉이가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에는 아래가 한 토막 무너져 나간 것같이 허전하고 얼얼했다.

‘낳기는 낳았지’

대체 어디서 솟아났는지, 마치 대령이나 했던 것처럼 맨 먼저 이렇게 차악 안심부터 되던 것이다.

‘어떻게 생겼을꼬’

이어서 이런 호기심이, 그것 역시 어느 구석이라 없이 절로 우러나던 것이다.

바로, 낳기 바로 전까지도 내내,

‘형보를 닮았으면!’

하던 공포와 불안은 웬일인지 차례가 더디어, 훨씬 만에,

‘어떻게 생겼을꼬’

하는 호기심에 연달아서야 비로소 가벼운 (공포라고 할 정도도 못 되고) 아주 가벼운 불안으로서 떠오르는 것은 초봉이 제가 생각해도 되레 이상했다.

“정신이 좀 드나? 헤헤.”

제호가 기다란 얼굴을 바싹 들이대면서 히죽히죽 웃는다.

‘속없는 위인! 무엇이 저리 좋은고’

초봉이는 기운도 없으려니와 제호가 보기 싫어서 눈을 도로 감는다.

그러자 마침 저편에서,

“응애-”

하고 우는 아기의 울음 소리…….

어떻게나 응애 우는 그 소리가 간드러지고 이쁘던지, 초봉이는 놀란 것처럼 눈을 번쩍 뜬다. 확실히 그는 한 개 경이를 즐기려는 무렵의 긴장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응애-”

이쁘면서도 느끼는 듯 누구를 부르는 듯 못 견디게 가엾은 아기의 울음 소리가 첫귀로 들렸을 때 과연 초봉이는 아무것도 다 그만두고, 어쩌면 저렇게도 이쁜 것이던가 하는 경이를 띤 반가움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한꺼번에 더럭 솟아오르던 것이다.

어서 아기를 좀 보고 싶었다. 설사 형보를 닮았어도 좋으니 제발 어서 보고 싶었다.

“헤헤, 계집애야, 계집애!”

제호가 허리를 펴고 일어서면서 고개로 저편께를 가리키는 시늉을 한다.

‘계집애’

계집애라는 것이, 계집애라면 분명 초봉이 저와 같은 것이겠거니 싶으면서 더욱 반가운 것 같았다.

간호부가 산모의 눈에서 아기를 찾는 눈치를 알고는 저편으로 쪼르르 가더니 융 기저귀에 싼 아기를 안고 온다. 초봉이는 쏟히듯 그편 짝으로 고개를 돌리고 기다린다.

“어쩌믄 애기를 요렇게도 이쁘게…….”

간호부가 칭찬인지 건사를 무는지, 연신 흠선을 떨면서,

“……아주 여승 어머니랍니다! 어머니 화상을 그냥 그대루 그려 논 걸요!”

들여대 주는 대로 초봉이는 아기를 올려다보다가 무심코 미소를 드러낸다.

핏발이 보이게 하늘하늘하고, 그래서 숭업다 할 만큼 시뻘겋고, 그런 상이 콧등을 쨉흐을 눈을 감고, 머리털만 언제 그렇게 자랐는지 새까맣고, 이런 형용이라 아까 울음 소리만 들을 때처럼 가엾지는 않았다. 그러나 모습이 정말 저와 꼭 같이 생긴 게, 무슨 기적을 만난 것처럼 기특해서 반가움은 한결 더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아기가 형보를 닮지 않은 것이 가슴 후련하게 다행스러웠다. 그러나 그 끝에 으레,

‘뉘 자식인지 모를 자식!’

하는 탄식이 대단했을 것이로되 그것 역시 임신 때 생각하더니보다는 그리 심하지 않았다.

‘나를 닮은, 나와 꼭 같은.’

그런 것을 제가 하나 낳아 놓았대서 오히려 그것이 재미가 났다.

“그래 원, 요렇게두 원…….”

제호가 아기와 초봉이를 번갈아 굽어다보면서 시시덕거리는 것이다.

“……저허구 거저 꼭 같은 걸 또 하나 나놓는담…… 것두 심술이야 심술, 제기할 것.”

“그럼 어머니를 닮잖구 자넬 닮았더라면 졸 뻔했나”

의사 S가 제호를 구슬려 주는 소리다. 그 말에 제호는 속으로,

‘원 천만에, 이게 뉘 자식인데!’

야고 어처구니가 없었으나, 그런 내색은 물론 드러내지 않고,

“아무렴, 아범을 탁해야지!”

“저 기다란 얼굴 처치가 곤란할걸…… 한 토막 잘라 놓구서 시집을 가야 않나”

“허허, 그건 그런 불편이 있나? 허허허허, 제기할 것.”

제호는 그래도 얼마큼은 마음이 흡족해서 연신 지껄이고 수선을 피우고 하던 것이다.

그는 초봉이더러야 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로는 그랬었지만, 막상 어린것이 제 아비 고태수라는 그 사람을 닮아 가지고나 나오게 되면 그런 불쾌한 노릇이 있으랴 싶었었는데, 공평하게 마련이 되느라고 어미 초봉이만을 닮았으니 안심이라고 하자면 아닐 것도 아니었었다.

이튿날 저녁 늦어서…….

초봉이는 처음으로 아기를 안고 젖꼭지를 물릴 때 비로소 어머니가 된 성싶었다.

요게 어디 좀 예쁜 데가 없나 하고 혼자 웃으면서 자꾸만 들여다본다.

생긴 게 아직 그 꼴이어서 이쁘다고 할 데는 없어도, 이쁜 것 같기는 했다.

아기는 무엇이 뵈는지 안 뵈는지 몰라도 눈을 뜨기는 뜨고 아릿아릿하다가 젖꼭지를 입에다 대주니까는 입술을 오물오물하더니, 언제 배웠다고 답신 물고서 쪽쪽 젖을 빨아들인다.

그게 어떻게나 재미가 있는지 깨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스코폴라민의 여독을 말고는, 초봉이는 산후에 다른 탈은 없이 몸이 소성되어 이 주일 후에는 퇴원을 했다.

제호는 초봉이도 위할 겸, 저도 아기한테 초봉이를 뺏기지 않으려고 유모를 정하라고 권을 했다.

그러나 그새 벌써 아기한테 정이 들기 시작한 초봉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기 이름은 초봉이가 옥편까지 한 권 사다 달래서 열흘이나 뒤적거리고 궁리하고 하다가 송희(松姬)라고 겨우 지었다. 썩 마음에 드는 이름은 아니라도, 달리는 아무리 지어 볼래야 신통한 것이 나오지 않았다.

이름은 그렇게 해서 지었어도 성은 정할 수가 없었었다.

고가 장가 박가 그놈 셋 중에 어느 놈인 것은 분명하나, 그러나 단 셋 중에 하나 그걸 알아낼 길이 없었다. 그러니 필경 어린것은 성도 없거니와, 따라서 아비도 없는 자식이던 것이다. 초봉이는 임신 때에 막연하던 것과는 달라 ‘모듬쇠’ 자식의 어미가 된 슬픔이 비로소 뼈에 사무쳤다.

초봉이는 딸 송희한테 정이 드느라고 봄이 아무리 번화해도 여름이 아무리 더워도, 다 상관없이 지냈다. 그리고 다시 가을철로 접어들어, 시방은 시월도 반이나 지나간 보름께다.

그 동안 송희는 초봉이의 알뜰살뜰한 정성과 솜씨로 물컷없이 잘 자랐다. 처음 한두 달이 지나서 사람 꼴이 박혀 제 모습이 드러나자, 인제는 이목구비 하나도 빼지 않고 초봉이를 그대로 벗겨논 시늉이었었다.

일곱 달인데 아이가 일되느라고 벌써 이칸방을 제 맘대로 서얼설 기어다니고 일어나 앉고 했다.

손에 닿는 것이면 바느질꾸리고 밥상이고 마구 잡아 엎지르고, 움켜쥐는 것이면 이내 입에다 틀어 넣는다.

살이 토실토실한 놈이 엄마를 제법 부르면서 기어오른다. 따로따로를 하라고 일으켜 세워 주면, 엉거주춤하고 다리를 버팅기다가 털썩 주저앉는다. 그걸 보고 초봉이와 식모가 재그르르 웃으면 저도 벙싯하고 웃는다.

『학발가(鶴髮歌)』의 조조 군사 신세타령이 아니라도, 왜목불알에 고추자지가 대롱대롱하지만 않았을 따름이지, 온갖 이쁜 짓은 다 하려고 들던 것이다.

초봉이는 송희가 생김새나 하는 짓이나 속속들이 이쁘지 않은 데가 없고, 정 붙지 않는 짓이 없었다.

하기야 ‘동물’이나 진배없는 유아를 기르는 ‘인간’인지라, 아이로 해서 심정이 상하는 때도 있고 성가신 때도 있어, 간혹 볼기짝을 찰카닥 붙여 주기도 하고 할 소리 못 할 소리 해가면서 욕을 해 퍼붓기도 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잠시요 곧 뉘우쳐서는 가엾어한다.

송희가 귀여움에 지쳐 간혹, 임신했을 때에 ××를 시키려고 약을 먹던 일이 문득 생각이 나고, 그런 때면 어린것일망정 자식을 보기조차 부끄러웠다.

그때에 만일 불행해서 ××가 되었더라면 어쨌으랴 싶어 지금 생각만 해도 아슬아슬했다.

그럴 때면,

“원 요렇게두 예쁘구 소중한 내 새끼를 이 몹쓸 에미년이, 이 몹쓸 에미년이…… 아이구 지장의 내 새끼 내 강아지를…….”

해싸면서 혼자 중얼중얼, 송희의 볼기짝을 아파할 만큼 착차악 두드리고, 수없이 입을 맞추곤 한다.

성을 정하지 못하고 민적도 하지 못하는 것이 가끔 생각이 나서 마음이 괴로운 때가 있지만, 그러나 이게 태수의 자식이냐 형보의 자식이냐 제호의 자식이냐 하는 꺼림칙한 생각도 없고, 뉘 자식이면 어떠냐 사람의 새끼 하나를 낳아서 기르는데, 이렇게 억지로 단념하는 주문도 외울 필요도 없고 그저,

‘내 자식, 내가 난 내 자식.’

이라고만 여길 따름이다.

초봉이는 송희한테다가 온갖 정을 다 들이고는 아무것도 더 바라지를 않았다. 자나깨나 송희가 있을 뿐이다. 그는 지금 이대로 그럭저럭 제호한테 몸을 의탁해서 송희나 바람 치이지 않게 잘 길러 내는 것으로 나머지 반생의 낙을 삼으려니 했다.

아이한테만 함빡 빠져 가지고는, 그래서 살림이고 세간 치다꺼리고, 화분이고, 재봉틀이고 다 잊어버렸다. 그다지도 못 잊어 애가 쓰이던 친정도 가끔가끔 마음이 등한해지는 때가 있었다. 다달이 보름이면 잊지 않고, 한 이십 원씩 돈을 부쳐 주던 것도 송희의 겨울에 신길 타래버선 만들기에 잠착하여 이틀 사흘 미루기도 했다.

송희한테 정을 붙인 뒤로, 승재를 인하여 마음 적막하던 것도 인제는 모르게 되었다. 하기야 승재를 아주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더러 생각은 난다. 생각은 나지만, 지금 이 아이가 승재와 사이에 생긴 아이로, 그래서 송희가 승재더러 아빠 아빠 부르고 이쁜 짓을 하고 하는 재롱을 승재와 마주앉아 보았으면 재미가 있으리라는 공상으로 생각은 둘러앉혀지고 말았다.

그것은 승재를 위해서 그런 것도 아니요, 초봉이 제 마음의 회포도 아니요, 차라리 송희의 아비없는 허전함을 여겨서 우러나는 아쉬운 생각이었었다.

초봉이의 그러한 변화는 자연 제호한테 대해서도 드러났다. 그는 제호한테 여간만 범연히 굴지를 않았다.

제호가 남편이라는 것이나, 제호라는 남편이 있다는 것을 여느때는 어엿이 잊어버리고 지낸다.

제호와 밤에 자리를 같이 하게 되면 될 수 있는 대로 기회를 피하려 들고, 조석의 시중 같은 것도 식모한테만 내맡겨 버리고는 돌아보지를 않는다.

하기야 마음과 몸이 지나치게 송희한테만 쓰이는 중에 모르고 절로 그렇게 된 것이요 일부러 한 짓은 아니지마는, 그건 어째서 그랬든지 간에 제호는 제호대로 밟히고서 꿈지럭 안 할 리는 없던 것이다.

초봉이가 그러기는 여름철부터 와락 더 심했었는데…….

제호는 사람이 의뭉하고, 일일이 내색을 하거나 구느름을 하거나, 하지를 않아서 망정이지, 그렇다고 우렁잇속 같은 속조차 없는 바는 아니었었다.

찌는 여름에 온종일 회사에서 일에 시달리다가, 명색 집구석이라고 들어와야 도무지 붙일성이 없다.

계집이라는 건 빼액빽 우는 자식이나 차고 누워서 남편 쳇것이 들어와도 원두장이 쓴 오이 보듯하기 아니면 제 할 일만 하고 있다. 그 일이 그리 소중하냐 하면 어린것 기저귀쯤 갈아 채우는 것이다. 시원한 물수건 하나 적시어다 주는 법 없고, 기껏해야 식모가 나서서 세숫물 한 대야 떠다가 든질르기가 고작이다. 그다지도 즐기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맥주 한 병 얼음에 채웠다가 내놓는 눈치도 없다. 저녁 밥상이라야 옷에서 쉰내가 푸욱 지르는 식모가 들어다 놓는 게, 있던 구미도 다 떨어지고 어설프기란 그만이다. 마루고 방구석이고 걸리는 게 기저귀요, 어디로 코를 두르나 젖비린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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