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주는 콧물이 배꼽이나 닿게 주욱 빠져 내린 채 히잉히잉 하고 섰다. 매는 맞았어도 이짐은 도리어 더 났다.
“이 소리가 어디서!”
유씨는 방으로 들어가다 말고 돌아서면서 엄포를 한다. 병주는 히잉 소리를 조금만 작게 낸다.
“저 코, 풀지 못할 테냐”
“히잉.”
“아, 저놈이!”
“히잉.”
“네에라 이!”
유씨가 도로 쫓아오려고 하니까 병주는 손가락으로 코를 풀어서 한 가닥은 가게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손은 옷에다가 쓰윽 씻는다.
“학교를 갔다 오믄, 공부는 한 자두 않는 놈의 자식이 소갈머리만 생겨서, 이짐이나 쓰구…….”
“히잉.”
“군것질이나 육장 하러 들구…….”
“히잉.”
“공부를 잘해야 인제 자라서 벌어먹구 살지!”
“히잉.”
“그따위루 공분 않구서, 못된 버릇만 느는 놈이 무엇이 될 것이야!”
“히잉.”
병주는 차차로 더 크게 히잉 소리를 낸다. 모친의 나무라는 말이 하나도 제 배짱에는 맞지도 않는 소리라서 심술로 도전을 하는 속이다.
“에미 애비가 백년 사나? 아무리 어린것이라두 고만 철은 나야지! 공부 못하믄 노가다패나 되는줄 몰라”
“히잉.”
“늙은 에미가 이렇게 애탄가탄 벌어멕이믄서 공부를 시키거들랑 그런 근경을 알아서, 어른 말두 잘 듣구 공부두 잘 해야지. 그래야 인제 자란 뒤에 잘 되구 돈두 많이 벌구 하지.”
“히잉, 그래두 아버진 돈두 못 버는 거…… 히잉.”
어린애가 하는 소리라도 곰곰이 새겨 보면 가슴이 서늘할 것이지만, 유씨는 눈만 거듭뜨고 사납게 흘긴다.
유씨는 걸핏하면 남편 정주사더러 공부는 많이 하고도 내 앞 하나를 가려 나가지 못한단 말이냐고 정가를 하곤 한다.
독서당(獨書堂)을 앉히고 십오 년이나 공부를 했다는 것이, 또 신학문(보통학교 졸업)까지 도저하게 하고도 오죽하면 한푼 생화 없이 눈 멀뚱멀뚱 뜨고 앉아서 처자식을 굶길까 보냐고, 의관을 했다면서 치마 두른 여편네만도 못하다고, 늘 이렇게 오금을 박던 소리다. 그것이 단순한 어린애의 머리에 그대로 소견이 되어 우리 아버지는 공부를 했어도 ‘좋은 사람이 안 되었다고’, 그래서 돈도 못 벌고, 그러니까 공부를 잘한다거나 좋은 사람이 된다거나 하는 것과 돈을 번다는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라고 병주는 알고 있고, 그것밖에는 모르니까 그게 옳던 것이다.
제 소견은 이러한데, 공부를 않는다고 육장 야단이니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공분지 그것도 알수 없거니와, 암만 공부를 해도 우리 아버지처럼 ‘좋은 사람도 못 되고’ 돈도 못 벌고 할 것을, 또 그러나마 좋은 말로 해도 모를 소린데 욕을 하고 때리고 하면서 그러니 그건 분명 제가 미우니까 괜스레 구박을 주느라고 그러는 것으로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고, 따라서 심술이 나고 제 뱃속에 든 대로 앙알거리고 하던 것이다.
꼼짝 못 하고 되잡힌 속이지만, 그러니 가히 두려운 소리겠지만, 유씨는 그러한 반성을 할 길이 없으니까 어린것이 벌써부터 깜찍스럽기나 해보일 뿐이다.
“그래 요 못된 자식……!”
유씨는 눈을 흘기면서 윽박질러 잡도리를 시작한다.
“……넌 그래, 세상에두 못난 느이 아버지 본만 볼 테냐…… 사람 같잖은 것 같으니라구!……사람 되라구 경 읽듯 하믄 지지리두 못나구 으젓잖은 본이나 뜨을려 들구…… 요 못된 씨알머리!”
필경은 남편더러 귀먹은 푸념을 뇌사리면서 혀를 끌끌 차고 재봉틀 앞으로 다가앉는다. 그러자 마침맞게 정주사가 가게 안으로 처억 들어선다.
“웬일이야? 넌 또 왜 울구…… 응? 어째서 큰소리가 나구 이러느냐”
정주사는 막내동이의 아버지다운 상냥함과 한 집안의 가장다운 위엄을 반씩반씩 갖추어 가면서 장히 서슬 있이 서둔다.
정주사한테는 바라지도 못한 좋은 트집거리다. 병주도 속으로는 옳다, 인제는 어디 보자고 기광이 나서 히잉히잉 소리를 더 크게 더 잦게 낸다.
유씨는 돋보기 너머로 힐끔 한번 거듭떠보다가 아니꼽다고 낯놀림을 하면서 바느질을 붙잡는다.
“이 소리, 썩 근치지 못하느냐!”
정주사는 목 가다듬기로 짐짓 병주를 머쓰려 놓고는 유씨게로 대고 준절히 책을 잡는 것이다.
“……어째 그 조용조용 타이르지는 못하구서 노상 큰소리가 나게 한단 말이오”
눈을 깜작깜작 노랑수염을 거스르면서 졸연찮게 서두는 것이나, 유씨는 심정이 상한 중에도 속으로,
‘아이구 요런, 어디서 낯바닥하고는!’
하면서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는 듯이 눈만 흘깃흘깃 연신 고갯짓을 한다.
“……거 전과두 달라서 이렇게 길가트루 나앉었으니 좀 조심을 해야지…… 게 무슨 모양이란 말이지요? 무지막지한 상한(常漢)의 집구석같이…….”
“아따! 끔직이두!…… 옜소, 체면…… 흥! 체-면!”
마침내 맞서고 대드는 유씨의 음성은 버럭 높다. 정주사도 지지 않고 어성을 거칠게,
“게 어째서 체면을 안 볼 것은 또 무어란 말이오”
“큰소린 혼자 하려 들어!…… 모두 떼거지가 될 꼬락서니에 칙살스럽게 이거라두 채려 놓구 앉어서 목구멍에 풀칠을 하니깐 조〔驕〕가 나서 그래요…… 당신두 인전 나이 오십이니 정신을 채릴 때두 됐으면서 대체 어쩌자구 요 모양이우? 동녘이 버언하니깐 다아 내 세상으루 알구 그러슈? 복장이 뜨듯하니깐 생시가 꿈인 줄 알구 그러슈, 그리길…….”
“아니, 건 또 무엇이 어쨌다구 당치두 않은 푸념을…….”
“내가 푸념이오? 내가 푸념이야…… 대체 그년의 북에는 대국으루 사러 갔더란 말이오? 서천 서역국으루 사러 갔더란 말이오…… 그러구두 온종일 흥떵거리구 돌아다니다가, 다아 저녁때야 맨손 내젓구 들어와선, 그래 무슨 얌체에 큰소리요? 큰소리가…… 이게 나 혼자 먹구 살자는 노릇이란 말이오”
“아-니 그건 그것이고 이건 이것이지, 그래 내가 북에 흥정을 안 해다 주어서 그래 여편네가 삼남 대로 바닥에 앉어서 이 해게란 말이오? 어디서 생긴 행실머리람! 에잉, 고현지고!”
싸움은 바야흐로 익어 간다. 조금 아까 당도한 승재는 가게로 섬뻑 들어오지를 못하고 모퉁이에 비켜 서서 주춤주춤한다.
승재는 이 집에서 가게를 내고 이만큼이라도 살아가게 된 그 돈 오백 원의 내력을 잘 알고 있다.
작년 가을 계봉이가 서울로 올라가더니, 제 형 초봉이의 지나간 이태 동안의 소경사와 생활을 대강 편지 내왕으로 알려 주었던 것이다.
그것을 미루어 승재는, 초봉이가 박제호라는 사람의 첩 노릇을 한 것이나, 그자한테 버림을 받고 장형보라는 극히 불쾌한 인간과 살고 있는 것이나 죄다 친정을 돕기 위하여 그랬느니라고만 해석을 외곬으로 갖게 되었다. 그렇게 되고 보니 끝끝내 딸자식 하나를 희생시켜 가면서 생활을 도모하고 있는 정주사네한테 반감이 없을 수가 없었다.
승재는 이 정주사네가 명님이네와도 또 달라, 낡았으나마 명색 교양이 있다는 사람으로 그따위 짓을 하는 것은 침을 배앝을 더러운 짓이라 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교양이라는 것에 대하여 환멸을 느끼기까지 했다. 가난한 사람은 교양이 있어도 그것이 그네들을 선량하게 해주는 것이 못 되고, 도리어 교양의 지혜를 이용하여 무지한 사람들보다도 더하게 간악한 짓을 하는 것이라 했다.
작년 가을 계봉이가 집에 없는 뒤로는 실상 만나 볼 사람도 없거니와, 겸하여 정주사네한테 그러한 반감도 생기고 해서 승재는 그 동안 발을 끊다시피 하고 다니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아주 군산을 떠나게 되기도 했거니와, 마침 또 계봉이한테서 형 초봉이가 자나깨나 마음을 못 놓고 불안히 지내니 부디 저의 집에 들러서 장사하는 형편이 어떠한지 직접 자상하게 좀 보아다 달라는 편지가 왔기 때문에 그래 마지못해 내키지 않는 걸음을 한 것이다.
와서 보니 우환중에 또 이런 싸움이라 오쟁이를 뜯는 것 같아 더욱 불쾌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대로 돌아설 수도 없지만 부부싸움을 하는데 불쑥 들어가기도 무엇하고, 해서 잠깐 기다리고 있노라니까 문득 옛 거지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산신당(山神堂)에서 거지 둘이 의좋게 살고 있었다. 그 둘이는 저희끼리도 의가 좋았거니와, 밥을 빌어 오면 먼저 산신님께 공궤하기를 잊지 않았다.
그 덕에 산신님은 여러 해 동안 푸달진 바가지 밥이나마 달게 얻어 자시고 지냈는데, 하루는 산신님의 아낙이 산신님을 보고 거지들한테 무엇 보물 같은 것이라도 주어서 은공을 갚자고 권면을 했다. 산신님은 보물을 주어서는 도리어 그네들을 불행하게 한다고 아낙의 권을 듣지 않았다.
그래도 졸라싸니까, 자 그럼 이걸 두고 보라면서 좋은 구슬〔寶石〕한 개를 위패 앞에다가 내놓아 주었다.
두 거지는 그것을 얻어 가지고 좋아서 날뛰었다. 그리고 인제는 우리가 팔자를 고쳤다고, 그러니 우선 술을 사다가 산신님께 치하도 하려니와, 우리도 먹자고 그 중 하나가 술을 사러 마을로 내려갔다.
남아 있던 한 거지는 그 구슬을 제가 혼자 독차지할 욕심이 났다. 그래서 그는 몽둥이를 마침 들고 섰다가 술을 사가지고 신당으로 들어서는 동무를 때려 죽였다. 그리고는 좋다고 우선 술을 따라 먹었다. 그러나 술을 사러 갔던 자도 그 구슬을 저 혼자서 독차지할 욕심이었던지라 술에다가 사약(死藥)을 탔었다. 그래서 그 술을 마신 다른 한 자도 마저 죽었다.
이 꼴을 보고 산신님은 아낙더러, 저걸 보라고, 그러니까 아예 내가 무어라더냐고 하여 그제야 산신님의 아낙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승재는 정주사네 양주가 싸우는 것을 산신당의 두 거지한테 빗대 놓고 생각을 하노라니까, 이네도 정말 서로 죽이지나 않는가 하는 망상이 들면서 어쩐지 무시무시했다.
싸움은 차차 더 커간다.
“그래, 내 행실머린 다아 그렇게 상스럽다구…… 그래…….”
유씨는 와락 재봉틀을 밀어 젖히면서 일어선다. 서슬에 와그르르 하고 받쳐 놓았던 궤짝 얼러 재봉틀이 방바닥으로 나가동그라진다.
유씨는 홧김에 밀치기는 했어도 설마 넘어지랴 했던 것인데, 이렇게 되고 보니 만약 부서지기나 했으면 어쩌나 싶어 화보다도 가슴이 뜨끔했다.
재봉틀이래야 인장표도 아니요, 일백이십 원짜리 국산품 손틀기이기는 하지만, 천하에도 없이 끔찍이 여기는 보배다. 유씨는 늘 밉게 굴던 계봉이 같은 딸 하나쯤보다는 차라리 이 재봉틀이 더 소중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러잖고 웬만큼 대단해하던 터라면, 남편이 얄밉고 부아가 나는 깐으로야 번쩍 들어 내동댕이를 쳐서 바숴뜨리기라도 했지, 좀 밀쳤다고 넘어지는 것쯤 아무렇지도 않아했을 것이다.
재봉틀이 넘어지느라고 갑자기 와그르르 떼그럭 요란한 소리가 나는 바람에 승재는 망설일 겨를도 없이 가게로 뛰어들었다.
정주사는 승재가 반갑다기보다, 몰리는 싸움을 중판을 메게 된 것이 다행해서 얼른 낯빛을 풀어가지고 흔감스럽게 인사를 먼저 한다. 유씨는 싸움이야 실컷 더 했어야 할 판이지만 재봉틀이 넘어지는 데 가슴이 더럭해서 잠깐 얼떨떨하고 섰는 참인데, 일변 반갑기도 하려니와 어려움도 있어야 할 승재가 오고 보니 차마 더 기승은 떨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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