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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5)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7. 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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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네플류도프가 재판소에 출정했을 때 재판소 복도는 벌써부터 슬렁거리고 있었다. 위임장과 서류를 든 수위들이 이리저리 바삐 오가고 있었다.그 중에는 마룻바닥에 발을 질질 끌면서 종종걸음으로 숨을 헐떡이며 서성대는 사람도 있었다. 정리와 변호사와 판사들이 이리저리 왔다갔다했으며, 청원인과 감시자가 따르지 않은 피고들은 순서를 기다리면서 기운 빠진 태도로 담장 근처를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그 근처에 앉아 있기도 하였다.

"지방 재판소 법정은 어딥니까?" 네플류도프가 한 간수에게 물었다.

"무슨 법정 말입니까? 민사 법정과 형사 법정이 있습니다만."

"나는 배심원이오."

"그럼 형사 법정입니다. 진작 그렇게 말씀하셔야죠.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셔서 왼쪽으로 돌아가시면 두 번째 문입니다."

네플류도프는 그가 가르쳐 준 대로 따라갔다. 그 문 앞에는 두 사나이가 개정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한 사람은 키가 큰 뚱뚱한 상인으로서 보기에도 호인답게 생겼고, 벌써 한잔 들이키고 왔는지 무척 혈색이 좋아 보였다. 또 한 사람은 유대인 계통의 점원이었다. 두 사람은 양털의 시세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네플류도프는 그들에게 가까이 가서 여기가 배심원실이냐고 물었다.

"네, 여깁니다, 바로 여기예요. 댁도 배심원인가요?" 상인은 유쾌한 듯 눈을 껌벅이며 호인다운 태도로 물었다. "그럼, 우린 함께 수고하게 되었군요." 네플류도프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상인은 말을 계속했다. "나는 제2급 상인(혁명 전 세금의 납입 액수에 따라 상인을 두 계급으로 나눔) 바클라쇼프입니다." 그는 부드러우면서도 넓적하고 유연한 손을 내밀며 말했다. "수고가 많겠습니다. 실례지만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네플류도프는 자기 이름을 밝히고 배심원실로 들어갔다.

조그마한 배심원실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10여 명쯤 모여 있었다. 의자에 앉은 사람도 있고 서로 힐끗힐끗 보는 사람도 있었는데 모두 방금 도착한 듯했다. 군복을 입은 퇴역 장교가 한 사람 있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프록 코트나 양복을 입고 있었으며, 단 한 사람만 소매 없는 농부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할 일을 두고 와서 곤란하다고 푸념을 하고 있었지만 모든 사람들의 표정에는 중요한 사회적인 어떤 의무를 수행한다는 기대감으로 일종의 자부심을 풍기고 있었다.

배심원들은 서로 인사를 나눈 사람도 있었으나, 그 중에는 그저 짐작으로 상대방의 신분을 추측하면서 날씨가 어떻다느니 이른 봄이 어떻다느니 하다가 눈앞에 다가온 사건에 관한 이야기들을 주고받고 있었다. 네플류도프와 아직 인사를 나누지 않은 사람들은 서로 다퉈가며 자기 소개를 했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무슨 대단한 영광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네플류도프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동석할 경우 언제나 그러하듯이 이런 일을 매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만약 누가 그에게 어째서 자기 자신을 뭇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아마 그 자신도 대답할 수 없었으리라. 왜냐하면 이때껏 그의 생활에서 이렇다 할 만한 특성을 하나도 보이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자유 자재로 구사한다든가, 또 그가 몸에 걸치고 있는 셔츠나 옷이나 넥타이나 커프스 단추 따위가 모두 일류 상점에서 산 물건이라는 것들이 결코 우월성의 이유가 될 수 없었다. 그 자신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우월성을 확고하게 인정하고, 또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고, 그렇지 않을 때는 모욕감을 느끼곤 하였다. 그런데 배심원실에서 공교롭게도 불손한 대우를 받음으로써 불쾌감을 맛보게 되었다. 배심원들 중에서 마침 네플류도프가 아는 사람이 하나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표트르 게라시모비치라는 사람으로(네플류도프는 이제까지 한번도 그의 성을 알려고 한 적이 없으며, 모르는 것을 자랑으로 알고 있었다.) 전에 그의 누님네 아이들의 가정 교사로 일한 적이 있었다. 이 표트르 게라시모비치는 대학을 졸업한 뒤 지금은 어느 중학교 교사로 있었다.

네플류도프는 그의 추근거리는 태도라든가, 자기 자신에 만족하고 있는 듯한 너털웃음이라든가, 네플류도프의 누이가 으레 말했던 것처럼 '서민인척하는' 언어나 동작이 몹시 못마땅했다.

"저런, 당신도 끌려나오셨군요." 표트르 게라시모비치는 너털웃음을 치며 네플류도프를 맞았다. "피할 수 없었던가 보죠?"

"피하다뇨. 그런 건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소." 네플류도프는 냉엄하고 못마땅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것 참, 시민다운 미덕이시군요! 그렇지만 좀 더 두고 보십시오. 배는 고파 오고, 졸려도 자지 못하게 하면 당신도 아마 그런 태연한 소릴 못하게 될 겁니다." 표트르 게라시모비치는 더욱 큰 소리로 웃어 대며 말했다.

'이러다간 저 머저리 같은 놈에게 자네라는 말까지 듣게 되겠는걸.' 네플류도프는 생각했다. 그래서 네플류도프는 육친이 모두 사망했다는 부고를 방금 받았을 때가 아니면 지을 수 없을 그런 침통한 빛을 얼굴에 띠고 그의 곁을 떠났다. 그리고는 키가 크고 풍채가 당당하며 수염을 말쑥하게 깎은, 뭔가 열심히 떠들어대고 있는 신사를 에워싼 사람들 쪽으로 가까이 갔다. 이야기하면서 재판관과 유명한 변호사들을 성을 빼고 이름과 부칭으로만 부르고 있었다.

유명한 어떤 변호사가 놀라운 재간으로 사건을 뒤집어 놓았기 때문에 상대편의 노부인은 막대한 금액을 억울하게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는 경위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천재적인 변호사야!"하고 그는 말을 맺었다.

사람들은 존경하는 표정으로 듣고 있었으며, 개중에는 자기의 의견을 말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마치 자기 혼자만이 모든 것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듯이 다른 사람의 말을 가로막아 버리고 혼자서만 떠들어댔다.

네플류도프는 늦게 온 편이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기다려야만 했다. 재판관 한 사람이 아직껏 출정하지 않아 개정이 지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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