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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6)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7. 7.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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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재판장은 일찍부터 재판소에 나와 있었다. 훤칠하게 큰 키에 뚱뚱한 사나이로, 희끗희끗한 구레나룻을 기르고 있었다. 그는 아내가 있었으나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방탕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가 간섭하지 않는 주의였다. 오늘 아침에도 그는 스위스 태생인 여자 가정 교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이 가정 교사는 지난 여름 동안 그의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남러시아에서 페테르부르크로 여행하는 도중이라서 3시에서 6시 사이에 시내의 '이탈리아' 호텔에서 기다리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래서 그는 작년 여름 별장에서 로맨스를 맺었던 이 빨간 머리의 클라라 바실리예브나를 6시 전에 찾아가려면 오늘의 재판을 될 수 있는 대로 일찌감치 시작해서 얼른 끝내고 싶었다.

그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자, 문을 잠그고 서류장 밑의 서랍에서 아령을 두 개 꺼내어 위로, 앞으로, 옆으로, 밑으로 20번씩 운동한 다음, 아령을 머리 위로 치켜든 채 무릎을 세 번 가볍게 굽혔다.

'냉수욕과 체조만큼 건강에 좋은 건 없지.' 그는 무명지에 금반지가 끼어 있는 왼손으로 오른팔의 튀어오른 상박근을 만져 보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다음엔 선회 운동을 할 차례였으나(장시간 법정에 앉아 있을 재판 전 그는 언제나 이 두 가지 운동을 하는 습관이 있었

다), 그 때 문이 덜컹 흔들렸다. 누군가 문을 열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재판장은 얼른 아령을 제자리에 집어넣고 문을 열었다.

"아, 실례했소." 그가 말했다.

방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금테 안경의 키가 작은 배심 판사였다. 그는 어깨를 쳐들고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마트베이 니키티치가 또 안 나왔습니다." 판사가 불만스럽다는 듯 투덜거렸다.

"아직 안 나왔소?" 재판장은 법의를 입으면서 응답했다. "그 사람 언제나 늦는단 말이야."

"정말 기가 막히는군. 염치도 없는 사람이야." 판사는 또다시 화를 내면서 의자에 앉아 담배를 꺼냈다.

성격이 매우 꼼꼼한 이 판사는, 오늘 아침에도 아내와 한바탕 말다툼을 치르고 나왔다. 그 까닭은 한 달치 생활비를 아내가 기한도 되기 전에 몽땅 써 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다음 달치 생활비를 미리 달라고 하였으나, 그는 자기의 주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그래서 부부 싸움이 벌어졌다. 아내는 정 그렇다면 식사 준비도 할 수 없으니 집에서 식사할 생각일랑 아예 말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집을 뛰쳐나와 버렸으나, 아내가 그 협박을 정말로 실행할지도 모른다고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아내는 무슨 짓이든지 할수 있는 여자였다. '저 사람처럼 도덕적이며 올바른 생활을 해야만 되는데.'하고 그는 건강하고 쾌활하며 선량한 재판장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재판장은 두 팔꿈치를 넓게 펴고 금빛 몰로 수놓은 제복 깃 양쪽 위의 숱이 많고 희끗희끗한 구레나룻을 희고 고운 손으로 쓰다듬고 있었다. '저 사람은 항상 만족한 듯이 명랑해 보이는데 나는 어째서 이처럼 괴롭기만 할까?'

서기가 들어와서 무슨 사건 서류를 건네 주었다.

"수고했네."하고 나서 재판장은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어떤 사건을 먼저 처리할까?"

"글쎄요. 독살 사건이 좋지 않을까요?" 서기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은 담담한 투로 말했다.

"그럼 좋아, 독살 사건부터 하기로 하지."하고 재판장은 말했다. 그 사건이라면 4시까지 끝내고 퇴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마트베이 니키티치는 아직도 안 나왔나?"

"아직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브레베는?"

"나오셨습니다." 서기가 대답했다.

"그럼 그를 만나면 독살 사건부터 시작한다고 말해 주게."

브레베는 오늘 이 공판에서 논고를 하기로 되어 있는 검사보였다.

복도로 나오자 서기는 브레베를 만났다. 그는 어깨를 치켜올리고 제복 단추를 열어젖뜨린 채 겨드랑이에 서류 가방을 끼고, 구둣소리를 딱딱내가면서 팔을 크게 흔들며 종종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미하일 페트로비치께서 준비가 다 되셨느냐고 여쭈어 보라 하셨습니다." 서기가 그에게 물었다.

"준비? 나는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 있다네." 검사보는 말했다. "그런데 무슨 사건부터 시작한다든가?"

"독살 사건입니다."

"좋아."하고 검사보는 말했으나 실은 조금도 좋을 리가 없었다. 어젯밤을 그는 꼬박 새웠다. 친구의 송별회에서 잔뜩 마신 다음, 2시까지 노름을 하다가 그 후 어떤 유곽으로 스며들었다. 그 집은 6개월 전에 마슬로바가 있던 바로 그 유곽이었다. 때문에 그는 이 독살 사건에 대한 관계 서류를 읽을 틈이 없었으며 이제부터 대강 훑어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서기는 검사보가 독살 사건에 관한 서류를 읽어 보지 못했음을 다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이 사건부터 시작하자고 재판장에게 권했던 것이다. 서기는 자유주의자라기보다는 과격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브레베는 보수적인편으로 러시아에서 봉직하고 있는 대부분의 독일인들이 그러하듯이 정교에 귀의해 있었다. 그래서 서기는 그를 몹시 싫어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지위를 시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스코베츠(성의 욕망에서 악의 근원을 찾아 거세로써 인간을 구원하려는 한 종파) 사건은 어떻게 하죠?"하고 서기가 물었다.

"그건 증인이 없으니 할 수 없다고 했잖아 법정에서도 나는 분명히 그대로 말하겠어."

"그렇더라도 어차피..."

"할 수 없다잖아!"하고 검사보는 말하고 계속 한쪽 팔을 흔들면서 자기방으로 뛰어갔다.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필요하지도 않은 사건을 일부러 연기하려고 하는 것은 배심원의 구성이 지식층이었으므로 공판에서 심리할 때 무죄로 끝나기 쉬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재판장과 상의한 결과 이 사건은 군 소재의 재판소로 이관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 곳에는 배심원들이 주로 농민들뿐이므로 유죄로 될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복도로 점점 더 혼잡해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람이 많은 곳은 민사 법정 부근이었으며, 그 곳에서 남달리 소송 사건에 흥미를 갖는 그 풍채 좋은 신사가 이야기하던 바로 그 사건이 현재 진행중에 있었다. 휴식 시간이 선언되자 그 법정으로부터 한 노부인이 나왔다. 이 노부인은 변호사의 천재적인 수완으로 인하여 자기의 재산을 아무런 권리도 없는 실업가에게 빼앗긴 변호사는 더욱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변호사가 너무나 교묘하게 일을 꾸며 놓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노부인의 재산을 몰수하여 그것을 실업가에게 넘겨 주어야 했다.

노부인은 화려한 옷차림을 한 뚱뚱한 여자로, 커다란 꽃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녀는 문에서 나오자, 복도에서 걸음을 멈추곤 굵고 짧은 두 손을 벌리면서 자기 변호사를 향하여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이런 기막힌일이 어디 있단 말예요?"하며 안타까운 듯이 같은 말만 자꾸 되풀이하고 있었다. 변호사는 노부인의 모자에 달린 꽃만 바라보면서 그 부인의 말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노부인의 뒤를 이어, 민사 법정 문에서 앞이 많이 팬 조끼 아래 눈부시게 풀먹인 셔츠 앞가슴을 내밀고 아주 만족스러운 듯이 얼굴을 번득이면서 그 유명한 변호사가 모습을 나타냈다. 이 사나이의 수완 때문에 모자에 꽃을 단 노부인은 무일푼의 신세가 되었으며, 그에게 1만 루블의 사례를 주기로 한 변호(소송) 의뢰인은 10만 루블 이상의 돈을 벌 수 있었으며,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그에게 쏠렸다. 변호사는 그런 눈치를 챘음인지 그 몸 전체가 '뭐 그토록 탄복하는 표정을 지을 건 없다.'는 듯한 태도로 여러 사람들 앞을 버젓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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