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법식을 지키기를 극진히 했다가 드디어는 그 법식을 떠남에 귀착하는 것
이 그림의 도라고 한 왕안절의 말이 옳은 것이네만. 거꾸로 그 귀착에 이르기
위해서는 오직 모지랑붓을 묻어서 필총을 이루고, 철연을 갈어서 닳아 없어지도
록가지 공을 들여 연습을 해야만 된다고 할 수 있지. 과정도 결과에 이르고저
하는 것은 걷지 않고 천리를 가겠다는 말이나 다를 바 없느니. 다 이룬 다음에
는 버릴 것일지라도, 그 이룸이 어디 있는지를 알 수 없으매 절차마다 정성을
다해 보는 것이 인간이라. 그 중의 어느 것이 어디 가서 닿을지를 모르니. 그래
서 사람이 살었을 때는 살어 있는 대로 인의예지가 있는 것이고, 죽어서는 죽어
서 가는 길에 대한 서로의 인의예지가 있는 것이야."
일개 이름 없는 아녀자가 제 쓰던 바늘이 부러진 것을 보고 애통히 여겨 조침문
을 쓴 여인이 있었던 것처럼, 손때 묻은 바가지 한짝 개뜨린 것을 슬프게 여기
어 조표자가를 애절하게 써서, 마음을 달래며 바가지한테는 침중 위로를 한 글
도 있다. 이러한 노릇이 바로 마음 가진 인간이 저절로 취허게 되는 '짓'이며,
발전허면 '도리'가 되는 것이리. 생명 없는 바늘 한개, 바가지 한짝에도 간곡한
제문을 지어 이제는 명을 다한 물건과 사람이 서로 교감을 할진대, 하물며 우주
의 영물이라 하는 사람이야. 이를 증명하여, 소고당이라고 당호를 쓰던 고시부
인은 궁체 달필로 두루마리에 규방가사 한 편을 남기었으니, 이름하여 '조표자
가'이다. 바가지의 죽음을 슬퍼하며 노래한 것이다.
오호통재 애재애재 다락방을 청소하다 아차 실수 손을 놓아 두쪽으로 내었으니 애
닲도다 슬프도다 이바가지 어이하리 아름답고 고운자태 삼십여년 곁에 두고 너를
사랑 하였거늘 차마 못내 아까워라 모시끈에 합쳐보자 애고애고 내바가지 구성지
다 네용모가 내가슴을 울리누나 그만두자 너의 주인 불민했던 소치로다 오내구곡
여할여삭 통곡으로 속죄한다 독고봉을 바라보며 사친지회 흘린눈물 너아니면 누
가알며 한산세저 고의적삼 시아버님 출입옷을 여일대령 하노라고 반짇고리 벗삼
아서 침선에만 골몰할제 뒷집처녀 노랫소리 내심금을 울려주어 시름겨워 하던일
도 너아니면 그뉘알리 흥보박이 아니라도 올기쌀도 수북수북 조율이시 가득담고
오곡진미 가득가득 너와나와 즐겼거늘 영결종천 웬말인가 이화매화 월백하고 화
작작 도하칠제 양류세지 청청하고 꾀꼬리도 쌍쌍이라 마당가에 빨랫줄은 제비오
길 고대한듯 진달래꽃 어데담고 화전놀이 뉘와하리 인명이야 재천이나 너의명은
나의실수 귀신들의 작해런가 하루신수 불길턴가 초종범절 다마치니 이대도록 허
무하랴 차생연분 미진하여 노끈으로 합친용모 체경위에 걸어두고 한서온냉 사시
절을 두고두고 애무하며 평생동락 하오리라 일월불거 엄급삼우 유세차 병진삼월
임오삭 정유일에 소고당은 고하노라 계미생 표자영전 세서천역 망일부지 추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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