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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4권 (完,47)

카지모도 2024. 6. 2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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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런 이야기도 있잖습니까? 공자께서 일찍이 무리와 더불어 천하를 주유

하실 때 , 난을 만난 나라의 변방에 이르셨는데, 아비규환으로 피비린내 자욱한

마을이 온통 적군의 말발굽에 짓밟히고 창칼에 도륙이 되어 차마 눈뜨고 볼 수

가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려. 그 와중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머리에 이고 등

에 지고, 손에는 어린 자식, 앞에는 늙은 부모, 잡고 끌고 아우성인데, 저만큼

어떤 사람이 두 아이를 양팔로 붙안고 사뭇 섧게 섧게 울더니만 단호히 한 아이

를 떼어 놓고 아이만 데리고 피난을 가더랍니다. 돌아보지도 않고, 돌아보면 차

마 갈 길을 갈 수 없어 그랬겄지요. 공자가 제가를 시켜 남겨진 아이한테 가서

그 연유를 물어오라 했습니다. 다녀온 제자는 아내도 없는 처지의 그 사람이 데

리고 간 아이는 형님의 아이요, 떼어놓고 간 아이는 자기 자식이더이다. 말씀

드렸지요. 떨어진 아이는 두려움과 놀람과 슬픔으로 거의 까무라칠 지경이어서

목을 놓아 울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는 자식을 놓고, 형님의 아들을 데리고

가는 아비의 심정인들 오죽했으리요."

이 말씀을 들으신 공자는 한동안 묵묵히 계시더니

"참으로 장한 일이로다."

칭찬 하셨답니다. 그러나 곧 이렇게 말씀하시었소

"이제 두고 보라. 저 사람은 무후할 것이다."

대를 이을 자손이 끊어져 절사 절손이 된다니.

"저와 같이 장한 사람이 어찌 아들이 없으리라 하십니까."

제자들이 의아하게 여기고 놀라서 여쭈었습니다.

"장하기는 그지없는 사람이다마는 저렇게 독하고 모진 성품이라면 다시 부모되

어 아이 낳기는 어려울 것이니라."

하셨다지 않습니까? 인간으로서 마땅히 끓어 오르는 육친의 본능을 뛰어넘어 명

분과 도리를 지킨 것은 만고에 없이 훌륭한 일이겠지만, 부모된 심정으로 어찌

그 자식을 아수라장 피비린내 속에 버려 두고 아비 혼자 피난을 갈수가 있느냐

는 것이지요. 차라리 같이 끌어안고 죽을지언정. 그런 냉혹한 냉혈의 핏속에 어

떻게 자식 낳을 만한 정을 지니고 있겠는가 하신게요.

"참으로 형님이라면 이에 어찌하시리까?"

 

-4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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