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출아. 너 개똥도 약에 쓸라면 없다어란 말 들어 밨제? 근디 무신 약에다 쓸
라고 그런 지 아냐?"
전에 한 번은 임서방이 봉출이한테 물은 일이 있었다.
"에에, 말이 그렇다 그거이제 멋을 참말로 약에다 쓴다요? 개똥을, 그께잇 거이
머언 약이 되야라우? 시상에 흔해빠진 거이 그건디. 밟으먼 미끄러지고 던지럽
기나 허제."
"그렇제? 그런디 그게 아니여. 개똥은 줏어다가 잘 말려 두먼 이질약으로도 쓰
고, 인자 봄에는 논에 거름으로 쓰제잉? 말허기 쉬워서 개똥, 개똥, 하찮허게 생
각하지만 개똥이 그거 사람 못된 것보담 훨썩 쓸모가 많은 거이다. 너."
기다란 집게와 개똥삼태기가 따로 있는 임서방의 두엄간에는 항상 어느 집보다
많은 개똥이 모아져 있었다. 임서방은 욕심이 많고 손이 빨랐다. 임서방이 바깥
으로 나간 사이 그 아낙은 아궁이에 불을 대강 살펴 놓고 아이들을 깨운다. 한
솥에서는 비록 소나무 껍질을 삶더라도 명색이 밥이 되고, 한솥에서는 국이 끊
는다.
"앵두야, 어서 나오니라. 세수해. 동생들 옷 입히고오."
어미의 고함 소리에 방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린놈이 칭얼댄
다. 더 자겠다고 하는 것이겠지.
"앵두야아."
내쳐 딸내미를 부른다. 앵두를 깨우면 아우들은 저절로 깨워진다.
"해가 궁뎅이에 뜨겄다. 기양. 얼릉 일어나아. 넘들이 숭바."
부지깽이로 방문을 툭 툭 툭 두드리는 사이 아궁이의 불이 기어 나온다. 화들짝
놀라 나무를 긁어 넣는 임서방의 아낙은, 이른 새벽 물동이를 이고 아랫몰 동네
우물로 나가 물을 길어다가 항아리에 붓고, 솥에 그 물을 데워 내고, 밥을 하고,
무 구덩이에서 무를 꺼내다가 씻고, 깎고, 썰고, 국을 끓이고 하느라고 이마에
땀이 났다. 시절도 사납고 생업이 농사랄 것도 없는데다 살림이 적어서 그렇지,
만일 그렇지 않은 때 여염의 집이라면 새벽일이 그 정도에서 그치랴. 며느리가
정지에서 물 긷고, 불 붙이고, 쌀 씻고, 분주하게 아침밥을 준비하는 동안 시조
부는 이제 막 눈 비비고 나오는 손자한테
"거 소 여물 썰게 짚 갖꼬 오니라."
시키고는 사랑방 아궁이에 불을 때며 소죽 쓸 준비를 할 것이다. 작두 날 사에
에서 숭덩숭덩 잘라진 여물을 솥에다 넣고 끓일 때, 손자는 할아버지 무릎 옆
에 쪼그리고 앉아 그 불땀을 바라보리라. 소가 있는 집이라면, 움머어어. 외양간
에서는 소죽 냄새를 맡은 황소가 주인을 부른다. 그럴 때 시어머니는 곳간에 쌓
아 둔 나락을 말리려고 아들한테 내오라 이르고 마당에 덕석을 펴 놓는다. 그
위에 쏟은 나락을 고루고루 넓게 펴는 등허리로 붉은 햇살이 비친다. 날이 밝은
것이다. 아침 밥상을 안방으로 들여 넣은 뒤, 식구대로 둘러앉아 숟가락을 들면
며느리는 정지에서 바가지에 담은 밥을 손으로 뭉쳐 대강 먹고, 숭늉솥에 불을
지피며 물대접을 챙긴다. 며느리는 언제 방으로 들어가 자리 잡고 밥을 먹을 틈
이 없다. 곧 밥상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어 서러울 일도 아니었다.
으레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시어머니도 그랬었으니. 아침밥을 먹고 숟가락을 놓
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밖으로 뛰어 나갔다. 손에는 연이나 팽이를 들고. 이제 그
놈들은 밥때가 넘어도 놀기에 정신이 빠져 돌아올 줄을 모를 것이다. 머슴애들
은 그렇게 뒤쳐 나가도 계집아이들은 집안에서 할 일이 많다. 갓난애기도 보아
야 하고, 방도 쓸고 마루도 닦고, 빨랫거리도 있다. 또 조금 나이 찬 처자는 수
도 놓아야 한다. 앵두는 자수통에 설거지할 그릇들을 담가둔 채 얼른 손을 대지
못한다. 아무래도 겨울물은 손에 차서 냉큼 묻히기가 무섭다.
"그렇게 체다보고 있으먼 누가 해주냐? 무단히 더 심란시럽기만 허제. 기왕에
헐 거 후딱 해 부러어."
"먹기만 허고 씨서리는 안했으먼 좋겄네."
"아이고, 굿을 허네. 인자 살어 바라. 그래도 씨서리가 그 중 지일 쉬운 일일 거
잉게."
임서방은 모녀가 주고 받는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가마니와 멍석을 짤 짚을 추
린다. 짚신은 많이 짜 놓았으니 안심이었다. 손끝이 날렵한 임서방은 짚신이고
미투리고 멍석이고 덕석이고 무엇이나 매그럽게 결어낸다. 그 모양이 하도 고와
마구 쓰기 아까웠다.
"어이, 임서방. 자네도 나무깨 깎으먼 고리배미 모갭이 못잖을 거이여. 한 번 해
보지 그리여? 누가 더 잘헝가 보게."
언젠가 어서방이 그렇게 말한 일이 있었다. "허든 짓이나 혀제 머. 나무깨 장사
까지 나서겄능가, 쌍나발 불게. 내 꺼이나 갂어 신으먼 되얐제."
임서방은 웃었다. 고리배미 모갑이는 밤이나 낮이나 나막신을 깎는가 하면, 나무
장수 부칠이는 날만 새면 산으로 갔다. 그 산에 눈이 오는 것이 부칠이로서는
가장 큰 걱정이었다. 그래서 눈뜨면 제일 먼저 어젯밤에 혹시 눈이 오지 않았는
가 그것부터 내다보았다. 부칠이처럼 나무장수로 머리가 희어진 사람이 아니더
라도, 동네 사람들은 땔감을 모두 자기 손으로 마련해야 하니, 짚신과 멍석,덕석,
가마니 등을 짜다가, 얼기가 온화하고 비교적 춥지 않은 날이면 지게들을 지고
산으로 갔다. 갈 때는 혼자 가는 것이 아니었다. 동네 어귀 비오리네 주막 옆 솔
밭에 모여 같이 갔다. 그러나 산속에 들어서면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오불오불
한군데 모여 있으면 나무를 많이 할 수 없는 탓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대
로 어디에 나무가 많은지 여러 날 전부터 혹은 오늘 아침에 봐둔 곳이 있다. 그
래서 곧장 그 자리로 가, 부지런히 베어서 무더기 무더기 쌓아둔다. 낮에 다 못
가져 가면 저녁에 올라와 다시 나르면 되니 걱정할 것이 없었다. 한겨울에도 이
마에 땀이 돋아 흐르도록 한바탕 나무를 하고 나면 마음이 뿌듯하고 추운 줄도
모른다. 그러고 나서는 곰방담배를 한 대 피우고, 우우어우. 소리를 크게 지른다.
그만 내려가자는 신호이다. 빈 겨울산의 엷은 얼음 같은 햇살이 그 소리의 갈피
로 스며든다. 그럴 때 저쪽에서도 우우어우. 대답이 들려온다. 나도 나무를 다했
으니 같이 가자는 소리다. 그 소리에 이쪽에서 다시 대답하며 그들은 거리를 좁
혀, 처음 흩어지던 그 어귀에 모인다. 등에 등에 한 짐씩 욕심껏 묶어 올린 나뭇
짐들을 지고는. 집에 있는 아낙들은 할 일이 더 많다. 물레질을 하고, 베를 짜고,
절구질을 하며 방아도 찧어야 한다. 원뜸의 율촌댁에야 집안에 디딜방아가 있지
만, 대개는 곡식들을 들고 동네 디딜방아로 나간다. 쌀을 찧기도 하고 고추를 빻
기도 하는 디딜방아 디딤돌에 올라서서, 한 손으로 서까래에 매달린 끈을 잡고
발로는 방아를 찧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닦아
내는 며느리와, 절구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을 쓸어 담는 시어머니 옆에서,
다른 집 아낙들이 우스갯소리를 하며 곡식을 까불거나 티를 고른다.
"어서 가자. 애비 왔겄다."
디딜방아를 찧고 나면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서둘러 일어서고, 바쁜 걸음으로 점
심을 준비한다. 마침 맞게 나무 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아들을 오랜만에 본 것처
럼 반갑게 맞이하는 등뒤에서 며느리는 점심 밥상을 놓는다. 달가락 달가락. 수
저 놓는 소리가 평화롭게 울리는 한겨울의 짧은 한낮. 지금이야 세월이 흉악하
여 곡식 들고 방아 찧으로 동네 복판으로 나앉는 사람 없지마는.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가령 지아비와 지어미로 내외 지어 만난 누구라도 누릴 수 있는 그
평화로운 집안 풍경을 효원은 한 번도 누려본 일이 없다. 강모가 나무꾼이기를
바라서이랴. 아니었다. 그 따뜻한 숭늉 한 모금 같은 온기를 서로 공유해 본 일,
꿈에도 없는 내외였지만 이토록 차갑고 시린 새벽을 거울 깨듯 열어야 하는 것
이 효원은 기가 막혔다. 오유끼인가 하는 당치않은 이름의 기생첩을 보았을 때
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심정이, 거울같이 깨진 가슴의 복판을 가른다. 살이 갈라
진 자리에 거울 수은이 묻는다. 형언할 길 없는 아픔이 요기를 띠고 번뜩인다.
강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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