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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6권 (11)

카지모도 2024. 9. 22.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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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저 대나무 꽃

 

어지신 산신 할매 금지옥엽 우리 애기 외 굵듯 달 굵듯 모래밭에 수박 굵듯

먹고 자고 무럭무럭 키워 주소 복을랑 석숭에 타고 명일랑 동박식에 타서 균(귀

염)자동이 금자동이 누가 봐도 곱게 보고 외 굵듯 달 굵듯 모래밭에 수박 굵듯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무럭 무럭 키워 주소 쥐면 터질세라 불면 날세라 금지옥엽

우리 애기 무병장수하게 하옵소서 누구라도 아기를 낳으면 삼신 할머니한테 정

한수 떠놓고 시루떡 올리며 미역국에 흰 밥을 차려서,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

축문을 외운다. 강실이를 낳은 오류골댁도 그랬었다. 아직 몸을 추스리기 어려운

첫이레 때부터 두 이레. 세 이레. 일곱 이레를 다하도록 그네는 칠 일마다 정성

스럽게 소반 앞에 꿇어얹아 손을 비비며 빌었다. 그리고 삼신 바가지는 안방 시

렁 위에 모시었다. 그 바가지 속에는 쌀을 담아 창호지로 덮어서 무명 타래실로

묶어 두었는데, 바가지에 담긴 곡식은 봄,가을에 햇곡식으로 갈아 넣고, 묵은 쌀

로는 밥을 지어 온 식구가 함께 먹으면서

"삼시랑 할머니한테 감사 디려라."

하였다. 그것은 음복이었다. 삼신은 여러 가신중에 생산,출산을 맡으신 산신이니,

집안에 새로 나는 어린 생명의 산육을 관장하여 돌보아 주시므로, 아들 낳기를

바라거나 산모가 순산하기를 빌 때, 그리고 산모가 건강하게 빨리 회복되기를

기원할 때, 또 태어난 아기가 아무 탈 없이 자라게 해 달라고 빌 때, 반드시 이

할머니를 찾는 것이다. 이기채와 기표, 기응의 생모인 이울댁은, 손자 강태를 낳

을 때도 손녀 강실이를 낳을 때도, 미역 한 단과 쌀을 상 위에 놓고 손을 비비

며 빌었다. 이미 양자 간 기채의 아들 강모를 낳을 때도, 명도 많고 복도 많고

젖도 많고 순산하게 해 줍소서 헛심 주지 말고 된심 주어서 헌 치마에 외 빠지

듯 얼른 낳게 도와 주옵소서 그리고는 뒤안으로 가서 피마주대를 거꾸로 세워

놓고, 새암으로 가서는 물독을 엎어 놓았다. 그것들이 쏟아져 흘러내리듯이 어린

아이를 쉽게 낳으라고 비는 마음이었다. 이울댁은 막내며느리 오류골댁이 강실

이를 순산한 뒤에, 깨끗한 짚 한 줌, 청수 한 그릇, 흰 쌀밥에 미역국을 소반에

받쳐 삼시랑 할머니한테 올렸다. 그저 애기가 무럭무럭 자라고, 집안에 궂은일

없이 잘되게 해 달라고 비는 치성이었다. 집안을 지켜 주는 가신은 삼신 할머니

만이 아니었다. 대들보 위에서 그 집안의 길, 흉, 화, 복을 맡아 보는 성주신, 상

량신, 안방 웃목에서 후손을 보살펴 주는 조상신, 안방의 아랫목에서 어린애를

낳고 기르는 것을 돌보아 주는 삼신, 그리고 부엌에서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옥황상제에게 낱낱이 보고하는 조왕신, 집터를 지켜주는 지신, 대문으로 들오는

재액을 막아 주는 문지기 수문신, 거기에 우마의 번식을 돌보아 주는 외양신과

장독대에서 간장과 된장을 보살펴 주는 철륭신, 또 우물이 마르지 않게 해 주는

정신이며 뒷간에서 액을 막아 주는 자당신. 이중에 어느 가신도 소홀히 섬기면

안되었다. 모두가 집안 식구들에게 수명장수를 하게 해 주고, 평안과 만복을 가

져다 주는 신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귓간신 주당각시만은 예외로 노여움이

많아서, 잘 받들지 않으면 탈이 붙기 쉬웠다. '정낭각시'라고도 하고 '칙간조신'이

라고도 하는 이 뒷간 귀신은

"아조 예쁘고 젊은 각시 귀신이란다."

아직 열 살이 채 못된 강실이에게 숙모 수천댁은 그날따라 뒷간신 이야기를 들

려 주었다. 뒷간은 안채나 사랑채 어디서나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것이 보통이

었고, 원뜸의 종대같이 규모가 큰 가옥의 안뒷간은 부엌 옆구리 마당에 세운 디

딜방앗간 벽에 붙여 지었으며, 바깥 뒷간은 사랑채 후미진 모퉁이와 대문 밖 같

은 데 두는 것이 예사였다. 천지가 먹장같이 깜깜한 오밤중에 더 못 참고 할 수

없이 일어나 그곳으로 가자면 우삣 쭈삣 방앗간에 매달린 기구들의 음산한 그림

자에 까닭 없이 놀라고, 외따로 떨어진 뒷간에 성큼 들어설 수 없도록 잔뜩 움

츠러든 끝이라, 바스락, 소리에도 가슴이 내려앉아 무서움증에 오들오들 떨리는

것은 비단 겁많은 아낙이나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뒷간에 갔다기 일당헌 사람 많지 않으냐? 그러니 주당각시는 곱게 달래고 조심

스럽게 위해 드려야 하느니. 그래서 뒷간을 새로 짓거나 고치고 나면 꼭 날을

잡어서 부적 쓰고 제물 갖추어 고사를 드려야 하는거다. 너도 알아 두어야지?

도라지, 고사리 나물에다 밥 한 그릇 담고 해서 채반 같은 데다 얹어 뒷간 문앞

에 두면 되고, 부적은 뒷간 벽에 붙이고,"

아이들이 아차해서 신을 떨어뜨리거나 사람이 빠졌을 때도, 건지고 나서는 꼭

그 앞에 떡을 해 놓고 빌어야 했다. 아니면 주당의 노여움을 사서 시들시들 아

프거나 병이 든다고 하였다.

"그러니 뒷간에 갈 때나 올 때나 절대로 함부로 허면 못써, 너 왜 이런 이얘기

못 들었어? 어떤 사람이 뒷간에 혼자 못 가겄다고, 으스스찬 바람 불고 밤은 깊

어 캄캄했던가, 꼭 귀신 나올 것 같다고 그럼서 옆에 자는 사람을 깨워서 같이

갔더란다. 따라간 사람은 밖에 서 있고 가자 하던 사람은 안으로 들었는데, 이제

그만 나올 시간이 하마 얼마나 지냈는제도 사람이 안 나오더래. 처음에는 좀 지

체가 되나 보다 했던 이 사람이 순간 오싹 허면서 불길한 생각이 스쳐, 어디 보

자, 뒷간문을 열어제쳤는데, 아이고 이게 웬일이냐, 쪼그리고 앉은 사람이 앉은

채로 그만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죽었더란다. 주당을 맞은 게지. 입방정에 주당

신이 노한 거야, 주당각시가 그렇게 무섭단 말이다. 그러니 뒷간에 갈 때는 그

노염을 안 받으려고 미리 그 근처에서 어흠, 어흐음, 서너 번 헛기침을 하면서

지금 사람이 간다는 통고를 해야 한다. 그래야 주당신도 안 놀래지. 무심코 앉어

있던 주당각시가, 캄캄한 뒷간에 갑자기 사람이 들이닥치면, 아이쿠머니, 깜짝

놀래겄지? 이 뒷간신은 이러언 긴 머리칼을 제 발에 걸고 헤아리는 버릇이 있단

다. 그렇게 머리카락을 세고 앉었다가 소리고 없이 벌컥 사람이 들어서면 놀래

서, 자기를 해치러 들어온 줄 알고 그만 제 머리카락을 그 사람한테 뒤집어씌워

칭칭 감어 버린대. 무섭지? 그러니 보통 때도 늘 조심을 해야한다. 그리고 잘 받

들고. 그래서 섣달 그믐날 밤에는 뒷간에 밤새도록 불을 밝혀 두지 않어? 새벽

닭이 울 때까지. 그게 공들이는 것이다. 그런데도 노여움을 사서 주당에 걸리면,

무당 불러서 주당풀이를 해야지. 안 그러면 얼병 들지. 얼병 들고 말어, 끝내."

수천댁이 어린 강실이를 얹혀 놓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때, 오류골댁은 걱정

스러운 얼굴로

"애들 놀랠라고..."

하였다. 수천댁은 입을 가리고 웃으며

"이만허면 양반이지. 더 무서운 얘기 해 주까? 달걀 귀신, 간짓대 귀신, 저어 도

깨비허고 씨름헌 이얘기?"

"아이고, 형님도. 인제 강실이 뒷간은 다 갔네. 그게 다 조심허라는 말씀이지, 머

너 무서우라고 그러시는 것아니다. 알었지? 아가."

오류골댁은 치맛자락으로 강실이의 조그맣고 하얀 낯을 씻어 주었다. 강실이는

아무 말 없이 눈을 깜박이며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그럼 뒷간말고 부엌으로 가지 머. 부엌에는 말이다. 조왕신이 계시지. 우리들이

밥도 잘 먹고 몸도 충실허게 잘 건사허도록, 온 가족 건강을 다스리는 가신이

이 조왕신이신데, 어디 계시는고오 허면, 부엌의 큰솥 뒤에 도사리고 앉어 계신

단다. 제일 큰 솥 있지? 그 뒤에. 그래서 그 자리는 아조 정갈허게 행주로 닦고

티 하나 없이 해 놔야 헌단다. 그러고 거기다 정화수를 공손히 떠놓아야지. 이른

새벽 우물에서 첫 번째로 길어 올린 샘물 말이다. 아무도 아직 그 물을 안 들여

다본 물, 남 다 자는 이른 새벽, 누구보다 부지런히 일찍 일어나서 날마다 그 정

화수를 바치고는, 아궁이에 불을 때기 전에 그 앞에 앉어서 온 가족의 무사 안

녕, 무병 건강을 빌어야 해. 그저 조왕신은 정갈허게 섬기는 것이 제일이니라."

수천댁의 이야기 중간에 오류골댁도 이번에는 한 마디 거들었다.

"그래서 조왕신 노여움을 안 살라고, 솥뚜껑을 열거나 덮을 때도 소리가 안 나게

조용히 조심을 해야 헌단다."

"아 그 가마솥이 소두방 뚜껑이 좀 무거워? 큰솥은 더더구나. 왈그랑 달그랑, 쿠

드랑 퉁 탕, 까딱허면 참말로 시끄럽지. 잘못허다가 내부치기도 쉽고. 의젓잖은

예펜네 소두방 소리만 요란허다고, 온 동네 흉잡히는 사람도 있니라. 그런데 동

네 흉이사 좀 잡히고 말면 그뿐이지만 조왕님이 노허시면 가족이 큰일이지. 밥

맛 없고 시들시들, 또 병도 나고, 안된다. 그래서 부뚜막은 절대로 함부로 고쳐

도 안되고, 더군다나 거기가 어디라고 부뚜막에 걸터앉어서도 안돼. 불경스러워

서. 그런 일은 평생 동안 한 번이라도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너는 어린 것이라

도 음전해서 그럴 일 꿈에도 없겄지마는."

그저 조왕신은 위하고 공경해서, 봄이면 일찍 핀 진달래를 꺾어 와 그 연분홍

꽃가지를 바치고, 가을이면 일찍 영근 벼이삭을 베어 와서 황금빛 수확을 고하

며 치성을 드리기도 한다고 했다. 강실이도 어머니가 조왕에 진달래를 드리는

것을 본일이 있었다. 바라보기에도 애달픈 연분홍 스러질 듯 무리무리 피어난

진달래 꽃가지를, 정화수 올린 흰 사발 앞에 곱게 놓고, 이만큼 물러앉은 오류골

댁이 단정히 앉아 두 손을 모르고 고개를 숙이어 무엇인가 기원하는 그 뒷모습

은, 자주 댕기 물린 검은 낭자머리였다. 그 어머니의 등뒤에 선 강실이의 어린

눈에, 젊은 어머니의 고운 머릿결에 흐르는 윤과, 기름이 흐르는 듯한 솥뚜껑의

검은 윤, 그리고 아련하여 곱고도 멀어 보이는 진달꽃 연분홍 숭어리와 그 너머

의 정화수 흰 사발이, 이상하리만큼 선연한 정경으로 들어와 깊이 찍히어, 그것

은 잊혀지지 않았다.

"거기다가 조왕님은 옥황상제 신하시라. 음력 섣달 스무닷새날이면 어김없이 천

상으로 올라가서, 상제에게 노왕신이 머물고 있는 집안에 일년 동안 일어났던

모든 일을 다 고한 뒤, 섣달 그믐날 밤이 되면 다시 제자리로 내려오신단다. 그

래서 섣달 그믐날 밤에는 수세하면서, 방에도 광에도 마당에도 뒷간에도 불을

밝혀 놓지 않느냐? 그럴 때 조왕단에도 환허게 불을 켜 놓고 밤을 새우잖어? 그

게 다 조왕님을 위해서 공을 들이는 것인데, 특별히 어두운 밤에 먼 길 오시는

조왕신의 발길을 인도하는 것이기도 하단다."

그 불 밝힌 조왕단 부뚜막에는 정화수와 쌀을 가득 담은 함지를 차려 놓고 절을

하면서 큰 소리로 축원을 하였다.

"떠 들어온다. 떠 들어온다아. 무량 대복이 떠 들어온다. 천 석 만 석이 떠 들어

온다."

그것은 강물처럼 한량없이 많은 곡식과 많은 복이 밀물처럼 흘러들어오라는 기

원이었다.

"강실아. 너도 지금은 느그 어머니랑 같이 살고 있지마는, 인제 곧 나이 되면 남

의 집에 시집을 가서 시부모 모시고 남편 받들면서 아들 낳고 딸 낳고, 남노여

비 호제것들 거느리어 살림을 살 터인데, 한 집안의 주부가 하는 일 한두 가지

아니다만, 부엌을 잘 건사하는 것이 그중 첫째이고 그 중 소중한 일이란다. 한

집안의 생사화복이 그 부뚜막에 달렸거든. 거기에 늘 양식이 수북수북 넘쳐나고,

그 양식 기름진 것만큼 식구들 밥숟가락 소복소복 복스럽고, 그 밥 먹는 내 식

구들 아픈데 없이 마른 데 없이 끼니마다 충실해야, 오복중에 지복이 아니겠느

냐. 사람으로 그 일 맡은 것은 주부이고, 가신으로 그 일 맡으신 분이 조왕신이

니라."

수천댁은 자기를 동그맣게 올려다보는 강실이의 볼을 꼭 찌르며

"알았지?"

하는 시늉으로 웃었다.

"너 시방 몇 살이지?"

"아홉 살이요."

"아이고, 장허네. 언제 그렇게 먹었어? 어디로 먹었는고? 어디? 아아, 이 이쁜 입

으로 먹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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