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이름이 바뀌어도
매안의 문중 둥지에서 새새끼 날개 비비듯이 옴막하게 지내던 강모가, 처음으로 도회지
전주에 들어섰을 때, 과연
웅주거읍.
이로구나, 실감이 났지만.
사실은, 기차에서 내려 개찰구로 나오면서 정거장 역사를 본 순간, 규모가 하고 우람하
고 화려하기 궁궐 같아서, 늘 말로만 듣던
(경기전인가?)
하였고, 막상 경기전을 보고는 엉뚱하게
(전주는 후백제 서울이었다더니만, 여기가 궁궐이었나 보다.) 혼자서 짐작하며 공연히
감회롭게 그 곁을 맴돌아 거닐곤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공연히는 아니었을 것이다.)
강모는 그 어떤 알 수 없는 그리움 같은 것이 제 핏속을 황사처럼 떠돌며 그렇게 자꾸
만 경기전이나 조경묘.조경단 쪽으로 발길을 이끌어갔던 것은,어쩌면 그가 전주 이씨로서
전주에 본을 가지고 있는 조산왕조 영명하신 한 임금의 대군 낙남파 종갓집 종손이기 때
문이 아니었을까, 이제 와 문득 반추해 본다.
이 집안에 종손으로 태어나 부끄러울 것도 물론 없었으나 그렇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해
본 일도 없이, 그저 산과 내와 길처럼 당연한 일샹의 풍경이라 여겨졌던 것이 그에게는
곧 종손이라는 이름이었으며, 그이름에 걸맞는 종손 노릇한 것은 지금까지 쥐뿔도 없지마
는, 그의 유전에 끼쳐 내린 피의 인자는, 이 노릇과는 무관하게, 저절로 저 홀로 제 선조
와 제 조상의 숨결 흔적을 그리며, 그 기색의 언저리로 뻗치어 갔던 것인지도 모른다.
못났으나, 이 나를 있게 한, 피 한 점, 살 한 점.에 수백 년 수천 년을 거슬러 돌아
가 닿고 싶은 그리움. 설령 그것이 비록 채송화씨 반토막만한 인자에 불과한 것이라 할지
라도, 기어히 한번 가 닿아 보았으면 싶은 안타까운 절실함.
그런 것들이 전주의 인력이었다.
매안에서 전주는 그다지 먼 곳이 아니었고, 문중 어른들 출입도 잦았던 곳이며, 무엇보
다 매안 이씨들의 관향이어서, 강모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전주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
를 들었다. 뿐만 아니라 이 유서깊은 옛 도시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뿐만 아니
라 이 유서깊은 옛 도시에 모셔진 시조 할아버지 이한 공과 선조의 유적들에 대하여 강모
는 각별히 여러 번 이기채한테서 듣곤 하였다.
사람이 제 근본을 잃으면 안된다.
아버지 이기채는 말끝에 항상 이러한 다짐을 엄숙하게 두며, 잊어서도 안된다.고 눌러
일렀다.
제 한 몸 제 핏줄에 대해서도 그렇거니와 한 나라의 근본 또한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느니라. 너는 지금 오백 년 아조의 발상지로 공부하러 떠나는 것인즉, 조그만 자취에서
크고 깊은 뜻을 꼭 발견하고 깨달아야만 한다.
알겠느냐.
강모는 아직 당도하지도 않은 전주땅이 미리부터 숙세의 연처럼, 어린 그를 감아 들이
는 것을 그때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경기정을 보게 되었다.
경기정에서 몇 걸음만 동쪽으로 가면 오목대가 있었지.
전주 사람이면 누구라도 그 오목대, 앙징맞고 조그마한 비각 하나 서있는, 언덕같이 나
지막한 동산 기슭, 그러면서도 전주 울안이 한눈에 들어와 안기는 이곳, 햇볕 따스한 양
지밭을 정다웁게 좋아하였다.
고려말, 우왕 6년, 경신 중추 구월 상천에, 자군 이성계가 양광. 전라. 경상 삼도 도순
찰사로서 군사를 이끌고 남정하여, 운봉 황산에서 노략질하며 날뛰던 왜구 아지발도를 무
찌르고, 승전고와 더불어 개경으로 돌아가던 길에. 때마침 전주부성에 당도하여, 이 도도
록한 동산 허리를 지나게 되매. 조상들이 기식하다 떠나간 자취 아직도 역력한 옛 선영의
땅을 밟게 되니, 후손으로서 핏줄이 둘리는 그리움을 어이 가누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말에서 내려, 아직도 이 부성에 여전히 눌러 사는 핏줄기 동종 종족들과 어우러져 한바탕
회포 어린 연회를 베푸셨다는 바로 그 자리에, 조선 말엽 고종 임금은 광무 4년, 친필로
태고조황제주필유지.라 새긴 기념 비석과 더불어 단정 아담한 기념 비각을 세웠다.
태조 황제께서 머무셨던 유적지라.
조선의 임금으로서 나라의 문을 닫는 황제가, 그 나라의 문을 열었던 조상의 웅보 머무
신 자리에 한점 필묵을 피처럼 눈물처럼 떨구어 점점 이 새긴 글귀가, 언덕 아래 잠만동
밥 짓는 저녁 연기 쏘이면서, 푸른 비면 자욱토록 이끼로 돋는 오목대, 모여 앉아 졸기
좋게 사방으로 평평한 둔덕이어서 황소의 잔등 같은 이곳에, 사람들은 봄이변 봄대로, 할
미꽃 필 무렵부터 뒷짐지고 느릿느릿 손자 손녀 데불고서 졸러 나오고, 여름이면 여름대
로 서늘한 바람 이마에 받으면서 삼삼오오 나무 그늘 이만큼 저만큼씩 만면홍소 한가로웠
다.
여산 역도랄 일하샤 지바로 도라오실제
열희 마사말 하날히 달애시니
셔ㅂ 사자랄 꺼리샤 바라랄 건너실제
이백 호랄 어느 뉘 청하니
한고조가 여산으로 데리고 가던 부역군들을 잃으시어, 나머지 사람들은 다 집으로 돌
려보내고 돌아오실 때에 함께 따라가고자 지원한 열 사람의 마음을 하늘이 달래시었도
다.
(목조께서) 서울에서 새로 부임해 온 안렴사를 꺼리시어 바다를 건너 덕원으로 옮기실
때에, 이백 호나 되는 세대를 누가 따라오라고 시켰는가(하늘이 시킨 일이로다)
조선의 개국을 송축하고, 건국 대의를 널리 알려서, 왕씨의 나라가 이씨의 나라로 바뀌
는 역성 혁명이 한갓 인간의 욕심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었다는 것을 합리화하여, 민심을
순하게 이끌어 돌리려 한 장엄 서사시, 용비어천가, 제18장.
이는, 한나라 고조 유방이 일찍이 고을 현관의 명을 받아, 진시황의 장례지인 여산으로
무덤 부역군들을 인솔하여 갈 때, 도중에 사람들이 많이 도망가매 말리지 않고 모두 놓아
주며 가라.
고 했는데, 그 중에서 십여 명이 끝내 함께 남아 따라가기를 청하였으니. 유방이 이로부
터 인심을 모아 훗날 큰일 이룰 기초를 닦았다.
이러한 예처럼, 목조가 아직 나이 스물 안팎으로 전주에서 천호장 토호의 위세를 떨치
며 살고 있을 때, 어쩌다 요괴스러운 풍운에 휘말리어, 관기 하나를 두고 주관이던 산성
별감과 다투다가 사이가 버그러져, 필경에는 주관이 병사들을 풀어 목조를 해치고자 하는
지라, 목조는 목숨이 위태로워 본의 아니게 조상 대대로 뼈를 묻으며 살아온 선영 고향땅
을 등지고, 깊은 밤 어둠을 타서 북방 천리 산 설고 물 설은 강릉도(강원도) 삼척 머나
먼 곳으로 옮아가니, 집안 권속들 말고도 그를 사모하여 따라나선 고을 백성들이 무려 백
칠십여 호나 되었다.
그런데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필이면 공교롭게도 고향 전주에서 다투던
산성별감이 강원도 안렴사로 부임하매, 이를 꺼리어 다시금 무리들과 함께 바닷길을 좇아
삭방인 함길도 덕우너으로 떠날 적, 이백여 호나 되는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목조를 쫓아
갔다.
고, 용비어천가는 노래하였다.
그 목조가 태어나 자라고 장성하기까지 살던 곳이 바로 오목대 무릎 가까이 맞은편 남
동쪽, 어질고 도도록한 둔덕 마을, 오늘은 교동이라 하는 자만동이었다. 이는 전주로 보
면 동쪽이었다.
사람들은 이 둔덕에서 조선의 임금 이씨가 났다 하여 발리산.
이라고도 불렀는데, 여기 목조의 태생지에다, 고종 황제는 광무 4년에 친필로 목조대왕
구거유지.
라고 쓴 비석과 단아한 비각을 세웠다.
목조대왕께서 사시던 옛 자취가 남아 있는 빈터.
이곳은 이목대였다.
아마 장군 이성계도, 전주부성 다른 곳을 다 놓아 두고, 하필이면 오목대에서 승전을
자축하려 일가 친척 여러 붙이들을 불러 모아 잔치한 것은, 그의 사대조께서 태어나 사시
던 자리가 하도 기꺼운 탓이었으리라.
나의 할아버지, 이 풀을 밟으셨던가.
얼굴도 목소리도 이미 보거나 들을 수 없고, 그가 세상에 났었다는 실감조차 하기 어려
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고조부. 그러나 이보다 더 아득히 짚어 오르고
오른다 해도 이는 분명 나와 한몸이리니. 그 핏줄의 사다리 한 칸인 이성계는 할아버지
숨길이 행여 어디 묻어 있을세라 더듬어 보았을 것이다.
제주의 삼성인 고, 부, 양씨 시조가 솟아난 곳이라 하여, 패인 듯 들어간 움묵움묵한
구멍자리 세 개 흔적은 신비스러운 전설로 실화처럼 널리 알려져 있으나, 그래서 경건하
게 보존하고도 있으나, 오백 년 왕조의 비롯인 전주 이씨 시조의 위판이 모셔진 묘소 조
경단은 오히려 아는 이 적고, 더욱이 이목대는 그저 한낱 소풍 노는 언덕배기 동산 정도
로 스치고 마는 것이 오늘의 시류다. 그러나 저 바람에 흩날리는 풀씨 하나도 오목대 이
목대 앞에서만 나고 죽기 수백년 하였다면, 오로지 그가 씨를 이어 살아온 세월만으로도
그 풀씨는 귀물로서 보존될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물며 역사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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