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85 1991. 6. 1 (토)
'태백산맥'의 감동에 대응한다는 마음으로, 같은 좌익을 묘사한 이문열의 소설은 어떠할까하고 '영웅시대'를 다시 꺼내 읽는다.
이문열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무언가 리얼리즘의 결핍감을 심하게 느끼게 된다.
지적인 폼을 잡기 좋아하는 그의 관념의 유희에서 버릇된 까닭일 것.
조정래가 묘사한 전라도의 그것들과 이문열이 묘사한 경상도의 그것.
조정래가 그리려한 좌익의 극적 감동과 이문열이 말하려한 좌익의 허구성.
조정래가 묘사하는 현장성과 이문열의 관념성.
이문열- 어떤 때는 그가 대단하게 느껴지다가도 어떤 때는 참 모자라게도 느껴지니 어차피 그도 작가는 작가인 모양인데..
김을용 직장 '명장' 상신 추천.
P과장 이 작성한 유치난만한 공적조서, 미사여구의 나열에 정작 핵심은 빠저있다.
그의 지적인 무지를 폄하는게 아니라 그의 과장된 외식함에 늘 조금은 환멸스러운 것이다.
시편90.
기도.
16186 1991. 6. 2 (일)
어제 저녁 서면에서 PS곤 ,JN영 ,KH근 만나다.
빗소리 들으며 보신탕집 별당에 앉아 마시는데 나는 그만 꼭지가 돌아 취하고 만다.
친구들은 멀쩡한 것 같은데 나는 그만 뒤로 나자빠져 넘어진다.
여간해서는 이러한 적이 없었는데 어제는 무엇이 나를 그토록 취하게 만들었을까?
친구들과 나누었던 대화라 보았자 늘 사변적인 그렇고 그런 내용이었을 터인데.
택시 태워져 집에 돌아오다.
나중에 보니 입고나간 양복은 흙탕물에 폭삭 젖어있고 정수리에는 혹이 하나 솟았다.
모처럼 회동한 친구들이라 그만 절제를 잃어버렸던가.
영남지방 호우주의보, 참 구성지게도 내린다.
비내리는 일요일, 이제 또백이형 둘째딸 결혼식 가려한다.
16187 1991. 6. 3 (월)
추적추적 비내리는 거리를 나가 조방앞까지 지하철타고 예식장 가다.
비내려 습기 가득차 후덥지근한 예식장에 몰려든 인파.
땀에 목욕을 한다.
사람들, 사람들. 돛대기 시장 예식장.
나는 정말 그런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
숨 막힐듯한 답답한 그 형식을 나는 견디기 힘들다.
거리에서는 전대협 소속의 여학생이 전단지를 나누어 준다.
그것을 받으며 그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니 아직 귓가에 솜털 보송보송한 어린 여자아이.
무엇이 이 여린 여학생을 강인한 이념의 투사 흉내를 내게 하는 것인가.
꿈. 오세건과 이현상 출연. 지리산...
'태백산맥'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모양이다.
꿈 속에서도 이현상, 이현상하고 깨어난 머릿속에도 이현상은 하나의 이미지가 되어서 남아있다.
그 이현상의 모습은 안경낀 아버지의 창백한 이미지와 오버랩되어 나타났는데.
16188 1991. 6. 4 (화)
때로 장래를 생각하면 나의 경제적인 현실은 암담하게 느껴져 오싹 소름이 끼칠 때가 있다.
물려받은 유산도 없으며, 오직 임금 외에는 축재의 방법을 전혀 갖고있지 않으며, 나도 J도 경제적인 어떤 감각이 있지도 아니하며 그 능력 또한 없다.
소유의 결핍감은 곧 미래에 대한 공포감이다.
또 이것은 열등감이기도 하고 있는 자에 대한 시기심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의 이 사회에서는 경제논리만이 진실한 파워인데 나의 이 파워는 실로 나약하다.
어제까지 비 내리다가 지금은 자욱한 새벽 안개.
시편읽고 사도신경, 주님의 기도.
기도.
16189 1991. 6. 5 (수)
대부분의 마흔 넘은 사람들은 머리가 굳었다.
사고방식이 편협하여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참 인색하기만 하다.
부서장회의에서 지배하는 것은 완연한 보수의 색깔이다.
그곳에서 다소라도 진보적인 생각의 편린을 내비쳤다가는 대번에 무슨 범죄인을 대하는 눈초리를 집중적으로 받게 될 것이다.
그 보수 성향이라는 것도 어떤 논리나 철학에서 비롯된 자기확신에서 나온 생각들이 아니고, 40여년 이상 살아온 자의 기회주의와 보신주의등에서 기인한 성향일 뿐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
내게는 대립된 어떤 의식이란 없다.
보수적인 생각도 진보적인 생각도 모두 수용할 수가 있거니와 둘다 거부할수도 있다.
대립된 적으로서의 개념이 아니라 이해가능한, 또는 NEGOATION의 폭과 같은 개념이다.
나는 적어도 다른 부서장들보다는 의견이 아니라 사상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라는 자부심 하나는 있다.
정원식 국무총리에게 달걀과 밀가루 세례를 퍼붓고 뒷덜미를 잡아 끌고다니던 외국어 대학생.
전 여론이 경천동지할 사건이라는 듯 아우성치고 있지만, 작금의 이 시대에 얼마든지 일어날 당위성과 개연성이 있는 사건인데, 이념에 치우친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보수꾼의 전략적인 엄살이다.
오히려 학생들이 그런 어리석은 행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아직 순진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무총리 역시 딱하기는 마찬가지, 한나라 재상으로서 얼마나 곤혹스럽고 괴로웠을 것인가.
그저 한순간의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덮어줄 것이지, 새삼스레 유학적 도덕가인양 벌떼처럼 일어나는 여론이라는 것이 우습기 짝이 없다.
16190 1991. 6. 6 (목)
어제 몇가지 현안 처리.
해사 기술 연구소의 POMIS CONVERSION 관계 처리.
대덕의 박사, 기술사라는 사람들의 비지성적인 일처리, 다만 경제 논리로서만 접근하는 김실장이하 그들은 기술력보다는 일종의 사술에 강한 느낌이다.
그 김실장이 조선공사 시절의 상사라고 자꾸 봐주려고 하여 문제의 핵심을 내게 떠넘기려는 박이사에게 좀 어필하다.
정과장의 못나빠진 일처리에 울화를 터뜨린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그의 못남이 너무나 두드러지기 때문인데.
J는 S형 어머니, Hw 선생님등과 새벽산 오르기로 하였던 모양이나 5시 넘는 바람에 포기.
6시 20분경 어머니 들르시다.
일흔 넘으신 어머니, 그 천진스런 모습을 뵐때마다 내 마음의 외디푸스는 잠이 든다.
16191 1991. 6. 7 (금)
휴일.
J의 폭력 앞에서 내 마음은 지옥이 되고 만다.
때로 J의 직선적인 거친 품성은 자신도 의식치 못할 언어를 쏟아내며 주위를 지옥으로 만들고 만다.
개선되고 상승됨을 새벽마다 기도하건만 그녀는 그런 것에 아랑곳 없다.
그저 자신의 심기가 시키는대로 아무런 여과없이 그대로 쏟아져 나올 뿐이다.
후퇴와 하강과 파멸과 혼란.
저녁무렵 물통을 들고 산에 간다.
등에 질머진 베낭에는 한병의 소주와 한 개의 참치캔과 한권의 고흐 화집을 넣고서.
소나무 숲속 빈터에 자리잡고 앉는다.
그리고 고흐의 그 눈부신 앙상블을 감상하며 소주를 홀짝인다.
그냥 살짝 건드려도 흔적도 없이 죽어버릴 하루살이들이 고흐의 눈부심에 끌려 몰려든다.
하찮은 이 벌레들처럼, 나는 고흐의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하건만 그저 감상으로서라도 고흐에 미치고 싶은 것인데.
더럼고 진부한 이 현상에서 도망처, 고흐처럼 순결하게 미쳐 버릴수만 있으면.
술에 취하여 잠들다.
꿈, 일본출장.
동경지사가 있는 긴자 거리는 익숙한데 후꾸오까 가는 비행기 시간을 맞추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인다.
도저히 그 거리를 빠져나갈수가 없어서 똥줄이 타는데 그냥 그 골목을 허우적거리면서 헤매고만 있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이 영화로 제시카 텐디는 고령으로 오스카상을 받았는데, 오히려 흑인 운전사의 연기가 뛰어나다.
유태인 노파와 흑인 운전사.
내게는 큰 감동은 없었다.
16192 1991. 6. 8 (토)
때로 터지는 J의 포악한 성품의 일단, 내 팔자려니하고 그렇게.. 그렇게...
조합원 투표결과 회사가 제시한 조건은 거부되다.
오늘 노조는 쟁의 신고.
총리 폭행사건을 빌미로 정부는 때를 만난 듯 설친다.
역습이다.
문익환 목사를 다시 구속하고, 대학은 엄격한 학사관리로 제압하겠단다.
부산대 예술대에서는 돈 처먹은 교수를 성토하는 학생들을 제적하거나 무기정학으로 제재.
의연한 어른의 풍모는 뵈이지 않고, 단견의 전술전략의 차원에서만 얼쩡거리는 지도층 무리들의 꼬라지.
토요일.
멀리 아침 개가 짖고 있다.
16193 1991. 6. 9 (일)
토요일 일찍 돌아와 내 방 책상앞 앉아서 홀로 술 홀짝이며 이문열의 소설들을 뒤적인다.
그의 '영웅시대'가 그의 다른 빼어난 소설들에 비하여 완성도가 못한 느낌이라서 이를 확인코자.
데뷔작 '새하곡'도 훌륭하거니와 그 후 일련의 중, 단편들은 참 빼어났는데.
'영웅시대'는 어설픈 지식인의 관념을 나열한 건조한 것으로 느껴지는 까닭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의 전라도를 중심으로 엮어나간 리얼한 캐릭터가 연출하는 순결한 감동이 너무나 컸기 때문일 것이다.
'나인 하프 위크'
미키 루크, 킴 베신저.
월가의 증권업자, 그 여피 족의 일상에서는 섹스는 이미 변태가 아니고서는 아무런 자극이 없다.
돈만이 주인이 되어 인간은 벌써부터 소외되어버린 자본주의의 속성이란 어떤 자극의 구원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다.
북한의 삶의 질이 피폐한 경제 수준일망정 자본주의에서 보다 우위에 있다는 점은, 획일화와 통제화라는 문제는 차치하고서 그곳에서는 극도의 인간소외란 없을거라는 상상에서다.
일요일.
온종일 쏟아져 내리는 비.
16194 1991. 6. 10 (월)
숲길을 걷다보면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고 뒤엉켜 날고 있는 하루살이 무리를 만나게 된다.
한 마리의 하루살이, 먼지처럼 가볍고, 작은 입김에도 밀려 버리는 그 미약한 날개짓의 벌레.
그 생명의 가냘픔은 하나의 생명체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창조시에 이 미약한 목숨에도 살이의 의미는 주셨을 터인데.
하루살이에게도 독립된 벌레로서의 주체적인 목숨이 있을까?
생명의 본능이 강렬할까?
딴 생명체에게 영향을 줄수는 있을까?
먹이사슬에서 이것들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
혹시 하루살이는 하나의 커다란 하루살이라는 객체에서 떨어져 나온 어떤 생명의 부스러기는 아닐까?
한 마리의 하루살이로서는 독립된 생명일수 없는 아주 커다란 의미의 하루살이에 소속된 생명의 조각....
16195 1991. 6. 11 (화)
그저께의 호우로 곳곳에 피해.
직원들 모여 회의.
정과장이 내 뜻을 알아주었으면 하고 완곡하게 표현하였는데 세일호 개조공사관계 건으로 또 내 부아를 터뜨리게 한다.
미상불 그가 피곤하다.
돌아오며 간절한 술생각.
모두 제 차들을 몰고 휙휙 떠나버리고 나는 결국 꼬지집에서 묵은 신문 뒤적거리며 소주 한병 마신다.
여성이라는 단어, 순종하는 아내, 배려하는 아내, 따순 말씨를 쓰는 아내.
나는 이런 단어를 알고 있는가?
여성다움이 내 언저리에 존재하고 있는가.
남들 다 가지고 있는 그 여자가 내게는 있는가.
俊이 이번 시험은 제법 치룬 모양.
이것이 기쁨이다.
16196 1991. 6. 12 (수)
잔득 찌푸린 날씨에 습도는 높아 한여름 불쾌지수를 웃도는 느낌.
英이 학교 숙제 부탁으로 토니제티의 사랑의 묘약중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 테이프를 사려고 시내를 헤매인다.
테이프는 아무리 찾아도 없고 결국 플라치도 도밍고의 LP를 구한다.
미우라에서 FAX.
관련 DOCCUMENT 일습을 AIR CARRIER로 부첬다고.
16197 1991. 6. 13 (목)
자칭 한국 제1의 동양철학자라는 김용옥씨의 오만함.
무슨 선지자처럼 자신의 아호를 앞세워 '도올은 말한다' 투의 글을 쓰는 오만방자함.
강의에서는 꼴린다등의 쌍소리를 예사로 구사하는 자신만만함.
지독한 엘리트의식으로 똘똘 뭉처진듯한 그도 민중 운운하고 있다.
불세출의 천재연하는 그를 나는 좋아할수 없을 것 같다.
김지하.
그는 좋다.
굳건하게 고뇌하였던 그의 역정.
이제 진지하게 생명의 문제를 깊이 천착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민중 운운한다면 그것은 너무도 타당하다.
英이 친구를 위하여 오페라 아리아 녹음하여 주다.
오페라의 노래들, 정제되고 세련되고 질서있는 목소리.
벨 칸토.
일본과 필리핀에서 몇백년동안 잠자고 있던 화산이 돌연 폭발.
지구의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어떤 섭리에 의하여 꿈틀거리고 있다.
16199 1991. 6. 15 (토)
임권택 '장군의 아들'
영화는 낭만적이지만, 헐리웃 영화에 비하면 배경의 세트나 배우들의 입성이나 엑스트라의 포즈등에서 리얼리즘은 너무 뒤떨어진다.
토요일.
대낮부터 맥주에 취한다.
여름날씨. 태양은 제법 뜨겁다.
16200 1991. 6. 16 (일)
살진 여인의 허벅다리, 붉은 입술에서 뿜는 뜨거운 숨결, 쾌락의 극을 향해 치달리는 감각의 향방은 어디멘가.
아, 게으른 자여, 그대 이름은 쾌락이노라.
군자는 결코 한가할 때 쾌락을 탐하지 아니한다. 한가할 때도 벗지 않는 덕이라는 이름의 의상.
게으름과 덕없음의 중독은 날로 깊어져, 정신적 아름다움의 청빈함, 그 어여쁨은 이제 피안의 꽃동산에 불과하여 구제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가.
하혈, 그 선홍빛 색채는 한떨기 꽃의 어여쁨이다.
꿈, 꿈의 늪.
나의 본질은 본시 말할수없이 속물의 천박함이다.
내 핏줄에는 군자의 피톨은 섞여있지 아니하다.
아버지, 아버지.
내가 치장한 화장한 얼굴의 내 아버지.
세계 청소년 축구, 남북단일팀의 아르헨티나 골을 향한 장거리 슛- 눈물이 불쑥 치빌어 오르는 단순한 감동.
바람이 아우성치면서 저 해원을 휘돌아 유리창으로 달려온다.
16201 1991. 6. 17 (월)
기도하여 어제 한낮의 그 견디기 어려운 무위의 허무주의를 술없이 견뎌냈다.
절제의 일락은 극기의 즐거움.
나는 알고있으련만, 이토록.
진정한 일락의 향기는 반드시 소유에 집착치 않는, 그것을 훌훌 벗어버린 가난함 속에서만 풍긴다는 진실을.
예수님이 아니더라도, 어느 선승의 깨달음이 아니더라도, 공맹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프란치스코가 없더라도 그 쯤은 나도 알고 있으련만.
이토록 육신에 얽매인 영혼이란 곤혹스러웁다.
산업사회의 유물론적 폭력에 상처입은 의지라고 변명하기에는, 인간이란 위대한 정신의 본질이 너무나 부끄럽지 아니한가.
우찌무라 간죠의 '나는 어떻게 크리스찬이 되었나'를 읽는다.
삿뽀로 농업전문학교의 우찌무라 간죠와 그의 신앙의 동무들.
그 소박 순결한 마음들에 비하여 20세기 후반의 나는 얼마나 기교적이고 오염되었는지.
그가 그토록 부끄러워하던 당시의 일본이라는 나라의 만연한 미신풍토에 비하여 과학시대를 살고있다는 나의 미혹함은 얼마나 자심한지 모르겠다.
나는 요즘 몹씨 스스로의 영혼에 윤리적인 결핍을 느끼고 있다.
나는 저급한 인간이다.
나를 나아주고 키워준 상황들 역시 저급한 정신이었으며, 지금 나를 위치케 하는 환경 역시 저급한 정신이다.
그런 저급한 정신의 흙탕물 속에서 허위적거리고 있는 나의 정신이 추구하는바 그것 역시 저급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저급함을 벗어나기 위하여 이 저급함에서 뛰처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아니, 이것 또한 정확한 묘사가 아니다.....
월요일 새벽, 간밤의 꿈은 나는 유태인인데 나치의 학살을 피해 숨느라 전전긍긍.
모처럼 산에 오른다.
소박하게 그리운 이름 예수 그리스도.
16202 1991. 6. 18 (화)
어떤 도덕적인 품성의 결핍감.
사적으로 성장한 환경의, 혹은 주위의 저급한 정신에 비하여 스스로에 대하여 비교적 도덕적 우월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이것은 '비교적'이라는 단어가 개입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도덕적인 품성의 사람은 전혀 다르다.
격이 높은, 고급, 군자.
전혀 다른 별개의 사람들이다.
우찌무라 간죠와 삿뽀로 동무들 같은...
16203 1991. 6. 19 (수)
기능직 사원 임금사정.
일당중 사정범위는 비록 몇푼안되는 금액이지만 깎이는 쪽에서는 심리적으로 매우 불쾌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기능직 사원에 대한 일선 관리자의 입김이 작용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을 것이다.
일단 1차안을 정리하여 늦도록 기다리고있던 인사과에 넘겨주고 회사를 나온다.
정문교와 조금 마시다.
16204 1991. 6. 20 (목)
어제 염과장등 15명 일본으로 떠나다.
연수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오사카, 벳부온천등의 관광여행이다.
오늘 광역의회 선거일, 나는 기권하기로 미리 마음을 굳혔으니까 온전한 휴일이다.
새벽 산에 오르다.
독일영화 '개같은 내 인생'
소년시절의 성장영화.
내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영상도 있었으나 그 제목만큼 좋은 영화는 아니다.
16205 1991. 6. 21 (금)
俊이와 지석이.
베란다 내 공간에다 조립식 테이블 펴놓고 시험공부하고 있는 휴일의 한낮.
나는 홀로 술을 마신다.
옛날 20대 초반 긁적인 글들을 들처 읽는다.
그 때 유치하고 난삽한 감정밭이었지만, 나름대로의 어떤 치열함은 있었던가.
무수히 만나고 무수히 헤어진 얽굴 얼굴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몸짓들로 살고들 있을까.
아마도 대동소이 할것인데, 이 몰개성의 시대에 다들 똑같이 경제적인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아 비슷한 양태로, 비슷한 문화감각을 향유하며 서로서로 엇비슷하게 살아 가고들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드니까 옛 추억들이 더욱 서러워지기도 한다.
TV 영화 '불의 딸'
무당 아들의 피 속에는 자신은 전혀 기억도 경험도 한적없는 그 무당의 피가 부르고 있다. 그 무당의 피란 삼별초의 난, 임진왜란, 빨치산등의 역사 속에서 매맞고, 굶주리고, 총맞고, 칼맞아 죽은 무수한 민중의 한들이 연연하게 엉켜 돌아가는 그것이다.
주인공은 예수께로 돌아가자는 아내의 애원을 뿌리치고 무당의 길로 들어선다.
매우 묵직한 주제의 영화.
광역의회 선거의 결과가 궁금하다.
기권해 버린 주제에도.
아침, 자욱한 안개가 태양 빛에 서서히 녹아가기 시작한다.
16206 1991. 6. 22 (토)
민자당 압승하고 신민, 민주당은 참담하게 패배하였다.
서울에서도 민자당 승리, 부산에서는 1명 빼고는 모두 민자당 일색이다.
지방의회에서 정당이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런 정치색이 풀뿌리 민주주의에 오염시키지나 않는 건지 모르겠다.
다양화, 개성화의 지역적 특색의 삶을 추구하는 지방자치 시대에서 중앙집권적이며, 집단적 사고의 전형이며, 집단 권력추구세력인 정당이 담당해야 하는 기능은 무엇인지.
이제 여름.
에어 컨이 시원한 사무실과 현장의 도가니에 끓는 강박에서 벗어난 올해의 여름은 작년에 비하면 천국이 아니겠는가?
俊이 어제 시험 잘 치루었다는데, 글쎄.
공부를 잘하게 하는 방법- 과외나 학원에 보내는 것도 아니고 공부하라고 잔소리나 욱박지르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동기부여를 해 주는 것.
스스로 촉발되어 공부가 하고 싶어 하는 공부.
그 동기부여의 핵심은?
미래의 장미 빛...
16207 1991. 6. 23 (일)
퇴근하여 이덕찬씨와 하리 횟집.
오징어 회, 머리 몸통 다리부분을 썰어 생시의 순서대로 접시에 담아 낸 음식인데, 그 조각조각들은 분해된채로 그대로들 꿈틀대고 있다.
입에 넣으면 다리의 빨판은 아직도 제 기능을 잃지 않고 입천정에 쩍쩍 달라 붙는다.
산 생명을 씹어벅는 호모 사피엔스.
다른 생명체의 단백질을 우겨 넣어야만 목숨을 부지한다는 피조물 조건의 불가사의.
나는 꿈틀대는 오징어회를 씹으면서, 누구에겐가 아마 오징어의 목숨에 대하여 진지하게 미안함을 느낀다.
얼근하여 SJ엽 이 새로 구입한 새 집을 찾아가다.
1억2천만원 짜리 2층집.
2층에는 계단을 내어 반쯤 고개를 내민 미니방을 만들어 놓았는데, 나는 그 자그마한 독립된 공간의 아늑함이 부럽다.
16208 1991. 6. 24 (월)
일요일 한낮.
바람은 선 듯 불기도 하지만 그래도 후덥지근한 거리에 나간다.
생위단, 기모타부, 코오론 크린스, 책 김병총 '불칼' 노명석 '문', 칸소네 테이프 하나 산다.
돌아와 기도원이라는 곳에 수용된 사람들의 소설 '문'을 읽다가 칸소네의 선율에 잠겨 옛 정서를 끄집어 내다가.... 사르르 잠이 들다.
컴컴한 새벽 4시.
화장실 앉아 소설 '문' 완독하고 갈까 말까 망설인 끝에 새벽 산에 오르다.
약수의 차가운 물을 마시고 이틀동안의 나태를, 고개를 치켜들고 목구멍에 웅어리를 하여 뱉어 낸다.
월요일 6월의 하순.
곧 장마전선이 다가오고 습기찬 한 때를 지내면, 곧 찬란한 여름의 제국이 군림할 것.
16209 1991. 6. 25 (화)
새벽 산.
새소리와 솔잎냄새.
물통을 들고 터덜터덜 내려오는 그 시간은 무언가 사념에 잠기는 시간.
오늘 6.25는 몇해째 맞는 것일까?
내 모든 것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그 역사의 발톱.
어쩌면 나의 품성, 성격, 허무주의의 원흉.
역사 따위가 내게 무슨 상관이랴하고 짐짓 私的인 그 동굴 속으로 숨어버리고자 하나 나는 결코 사적일수만은 없는 사회적인 존재이다.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는 이념가였을까?
아닐 것, 상황이 아버지를 그리로 몰고 간 것일 것.
이제 그 핏줄들이 오손도손 모여서 남편이며 아버지를 웃음과 눈물로서 회억할수도 있으련만, 유물론자인 우리 가족들은 그 마저도 인색하다.
베토벤 '트리플 콘체르트'
크라우디아 아라우의 피아노, 헨릭 쉐링의 바이올린, 야노스 스탁의 첼로.
로맨틱한 선율사이에 숨어있다가 슬쩍슬쩍 고개를 내미는 장중한 비애.
16210 1991. 6. 26 (수)
김대중씨는 그냥 총재로 눌러 앉겠다고 하여 그 끈질긴 집념을 과시한다.
정치판에는 수십년 동안 청신한 바람 한줄 불지 않는다.
그러나 시린 바람 한줄기 없지도 않아서 전, 노씨등과 같은 느닷없는 회오리도 있었구나.
일본 다녀온 사람들 어제 출근.
염효동과장의 볼펜세트, 정문교대리는 대용량 전자수첩, 뜻밖에 강무룡반장은 공학 계산기를 선물로 준다.
俊이의 두뇌의 논리적인 우수함.
俊이에게 준 전자수첩의 기능을 회사의 돌대가리들한테는 수십번 설명해 줘야 겨우 알아먹었는데, 俊이는 대번에 그 기능을 마스터해 버린다.
은근히 기쁜 마음을 俊이에게는 짐짓 숨긴다.
16212 1991. 6. 28 (금)
검은 치마같은걸 입고 보호 마스크를 쓰고서 목검을 두 손으로 웅켜쥔 검도의 기본자세로,
두 입술을 꾸욱 다물고 공격할 한 곳을 노려본다.
확신과 자신감이 무처진 내면이 온 몸으로 뿜어져 나온다.
거기에는 단정함의 흐트러짐없는 질서가 흐른다.
거기에 무슨 사변적인 엉거주춤이나 감상적인 여성다움이 있는가.
오직 사나이다운 꿋꿋함의 기백만이 있을 뿐이다.
실로 검도라는 일본 무도는 그 모습이 사나이다운 아름다움이 서슬 푸르게 배어있다.
신문에 난 검도 사진 오려 둔다.
16213 1991. 6. 29 (토)
어제 습기 가득한 무더운 가도를 달려 마천공장 가다.
드라이브의 창밖은 우거진 신록과 너른 들판이 지나간다.
여름이다.
집 창밖으로 펼처진 바다와 하늘과 구름의 풍경화.
벌써 시각의 권태를 느끼고 있는지.
눈익음, 익숙함, 만만함, 길들여짐에 의하여 신선함을 잃는 이런 것도 사람이 간사해서 일 것이다.
이런 때 여행을 떠나야 한다.
신선한 기풍 가득 담고 다시 돌아와 바라보는 그것은 또한 새로움이 아닐까.
부자는 얼마나 좋을까?
여름- 산록, 바다, 강, 젊음, 낭만, 파도, 모래, 캠프파이어.
돈이 풍족하면 여름은 얼마나 화려한 색채적로서 젊은이들에게 밀려올까?
英이, 俊이.
아이들 대학다닐 즈음에는 나는 역시 가난해 있을까?
최태용건, 박상무는 그에게 아무런 일도 시키지 말고 그냥 두란다.
떠벌리는 그 입이 말썽이다.
우직한 그가 무슨 의도가 있어서 노동조합에 그런 얘기를 한 것은 아니라는걸 나는 충분하게 확신할수 있지만 이 풍토에서는 얼마나 입조심이 필요한가 말이다.
그에게 분명히 선을 그어 얘기해 둔다.
나는 의외로 매정한 놈이다.
16214 1991. 6. 30 (일)
빗방울 뿌리고 습기찬 후덥지근한 날씨.
최태용씨를 데리고 P상무방에 들어가서 한번 용서하여 주자고 사정하였으나 박상무의 해고의사는 요지부동이다.
나이 사십넘은 사나이의 그 애원을 외면하는 박상무나 그에 따를 수밖에 없는 나나 소인배일시 분명하다.
때로 상상하는 불구의 상태.
들을수는 있는 벙어리.
사람이 말을 하지 않고 살아갈수 있다면 세상은 조용하고 자신의 정신은 더욱 풍성해지지 않을까하는 느낌이 내게는 있다.
귀까지 멀어버리면 그건 너무 단절되어 의미가 없으니까 들을수는 있는데 말은 할 수 없는 상태.
존재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말이란 그다지 소용닫는 물건이 아닐수도 있을 것.
이문열 '영웅시대'
종장에 접어든다.
맑시즘에 대한 이문열의 시각에 공감하는 바있다.
인간에 우선한, 인간이란 현상학적인 유기체에 대한 이해.
그러나 이동영은 커뮤니스트가 아니었다.
만일 북에서 그에게 명예의 배려가 있었다면 그는 그에 만족하여 눌러 살았을 것이다.
그의 사회주의는 동기부여에 의하여 변절이 가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문열의 소설에서는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곧 드러나 버리고 만다.
그 언행들이 개개인의 성격으로서 독특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실은 작가 자신의 언행임을 금방 간파당하고 만다.
'영웅시대'는 문학적으로 성공한 작품이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