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54 1991. 5. 1 (수)
새벽 산을 걸으면서 반복하여 중얼거린다.
定心應物 雖不讀書 可以爲有德君子
定心應物 雖不讀書 可以爲有德君子
안정된 마음으로 사물을 대하면 비록 책을 읽지 않더라도 덕있는 군자가 될 수 있다.
때로 만나게 되는 훌륭한 인품, 배운 것은 많지 않으나 살아온 혜지와 타고난 품성과 늘 차분한 마음으로 뚜렷한 가치관과과 중심을 보유한 사람.
지식이 아니라 지혜의 눈빛이 그윽한 사람.
이기주의의 들뜸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
안정된 마음을 갖자.
안정된 마음으로 사물을 대하자.
定心의 능력을 키우자.
그리고 英이에 대하여 빌어본다.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네'하는 英이.
걱정스런 눈길, 헤아리는 눈길로 상대를 응시하며 조용히 귀 기울일줄 아는 英이.
복종함이 지는 것이 아니고 이기는 것임을 깨닫는 英이.
여성다운 동양적 미덕이 진정 위대한 것임을 아는 英이.
16155 1991. 5. 2 (목)
MAY DAY.
곳곳에서 데모와 농성.
다자이 오사무와 같은 작가가 우리나라에도 있을까?
李箱의 자의식적 분위기와 다소 흡사한듯하지만 그 정서는 전혀 다르다.
농밀한, 푹푹 익어서 단물이 뚝뚝 떨어져 곧 부패에 이를듯한 美學.
일본, 우리보다 훨씬 현란하고 세련된 기교의 문화이다.
우리 것은 거칠고 너무나 솔직하여 지독하게도 장식적이 아니다.
우리는 일본에 비하면 문화적인 야만성이 너무 두드러져있다.
새벽 산에 오른다.
새벽바람.
그리고 참 선연히, 선연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새벽 바다.
16156 1991. 5. 3 (금)
혓바닥에 백태가 끼어 자극적인 음식이 닿으면 쓰라리다.
이러 것 역시 시고 짜고 맵고한 자극성있는 맛을 즐기는 내 감각주의, 定心없는 탓이다.
제어하고 관리한다.
확실한 LOGIC의 PROGRAM을 내 C.P.U에 INSTALL하여서 思考나 五感 또는 行爲를 관리한다.
그 PROGRAM은 의지 따위의 가변성의 것이아니라 절대적인 진리의 빛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머릿속은 일상의 이런저런 사안으로 역시 어수선하다.
더부룩한 머리.
자르고 파마할 시기를 훨씬 지나있다.
내일 모레는 장인생신.
안전보호구 지급규정 작성, 마천공장, 대한열전기 공장 도장공사의 기성처리, 2공장 내업공장 지붕 개수공사, 선박연구소 POMIS CONVERSION의 종결처리등...
코오롱 크린스도 떨어지고.
16157 1991. 5. 4 (토)
혓바닥 가득 창궐한 반란군.
그러함에도 그곳에다 휘발유를 붓고 있는 미련함.
강경대의 치사사건으로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남대 여학생 분신 위독, 안동대생 분신 사망, 경원대생 분신 중태.
이런 상황을 호시탐탐 이용하려는 정치 모리배들.
어제 파마하는 긴시간 동안, 소설을 구상하여 본다.
지극히 현대적인 부르조아 가정.
그곳의 가정교사인 나의 눈에 그 부르조아의 속살은 하나씩 껍질을 벗고 드러난다.
그 집의 고등학생 외아들- 그는 어린 시절 입양된 고아.
프롤레타리아인 내 음험한 부추김과 사주에 의하여 그는 자신의 내부에 꽁꽁 숨겨 놓았던 황량한 고아원을 기억해 낸다.
그리고 입양되어 떠나는 자신을 향해 눈물을 쏟던 어린 누이도 그의 내부에서 끄집어 낸다.
나의 간교한 공작은 이윽고 그의 감정모체를 완벽히 누이를 그리워 하여 찾지 않고는 견딜수 없도록 만들고야 만다.
입양되고부터 현재까지의 스스로에 대한 기억을 부정하기 위하여 그는 의도적으로 부분적 기억상실을 위장한다.
그리고 옛 기억만 오롯이 남아있다는양 누이를 찾아 헤맨다.
원시의 들판, 그의 본성의 핏줄이 부르는 저 원시의 들판으로 치달려 간다.
그러나 그런 의도는 필경 실패하고 다시 그는 얌전한 부자집 외동아들로 돌아오고 만다는 그런 내용.
16158 1991. 5. 5 (일)
俊이는 천우와 함께 제 방에서 시험공부중이고 英이는 요즘 아침나절 잠시 얼굴을 마주 칠 뿐이다.
숙면은 수면시간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새벽 산.
일요일, 어린이날, 장인 생신.
밖의 세상은 저리도 어지러운데 대통령은 청와대 뜰에서 어린이들과 천연덕스럽게 행복한 5월의 포즈를 잡고 있다.
조간신문에 실린 김지하의 글.
"젊은 벗들.
당신들의 신조는 종교인가? 유물주의인가?
육신을 경멸하고 영혼의 찬란한 해방을 광신하는 고대 종교인가?
육신의 물질성만을 주장하는 속류 유물주의인가?"
"지금 당신들 주변에는 검은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그 유령의 이름을 분명히 말한다. '네크로필리아' 곧 시체선호증이다.
싹쓸이 충동, 자살특공대, 테러리즘과 파시즘의 시작이다.
이미 당신들의 화염병은 방어용 몰로토프 칵테일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파괴력이 아니라 상황과의 관계상실과 거기에 실린 당신들의 거의 장난기에 가까운 생명 말살 충동에서다"
"당신들의 그 숱한 죽음을 찬미하는 국적불명의 괴기한 노래들.
당신들이 즐기는 군화와 군복, 집회와 시위때마다 노출되는 군사적 편제의 선호 속에서 그 유령이 이미 잠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들은 맥도날도 햄버거를 즐기며 反美를 외치고, 戰士를 자처하면서 反파쇼를 역설하였다.
당신들의 군화와 몸짓은 이미 순발적 정열을 이탈하여 儀式化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이미 오래전에 일본 연합 적군파의 몰락의 냄새를 맡을수 있었다.
이 모순을 어찌 할 셈인가?
그런데 한술 더 떠서 지금 당신들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자살은 전염한다. 당신들은 지금 전염을 부채질하고 있다.
열사 호칭과 대규모 장례식으로 연약한 영혼에 대해 끊임없이 죽음을 유혹하는 암시를 보내고 있다.
생명말살에 환각적 명성을 들씌어 주고 있다.
컴컴하고 기괴한 심리적 원형이 난무한다."
맹목적으로 분신하여 목숨을 버리려는 젊은이들, 그 자기말살의 광풍을 향하여 외치는 시인의 목소리.
16160 1991. 5. 7 (화)
어제 오후부터 추적추적 비내리기 시작한다.
봄비의 정취 없는바 아니지만 어수선한 세상은 이 아웃사이더의 마음에도 옥죄워오는 느낌이다.
DOCK MASTER 박성택차장에게 조정래 '태백산맥' 빌려보기를 부탁한다.
이제 조정래의 산맥 속에 들어가 헤매일 것이다.
어버이 날이라고 俊이 녀석이 준 편지.
단 일곱줄.
'읽기도 피곤하시겠고 쓰기도 귀찮으니 이만 쓰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大山 이俊 올림.'
大山, 大山이라니.
아마 스스로 호를 하나 지어 갖다 붙인 모양인데 대산이라니. 녀석 참.
16161 1991. 5. 8 (수)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그야말로 푹 파묻히다.
초반부 벌교읍의 배경과 등장하는 인물부터가 나를 압도한다.
윤정모의 '고삐'에서도 느꼈던바, 反美思想은 타당한 역사적인 이유가 있었고.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 병원에서 추락사.
그 죽음에 의문을 품고, 강경대 치사사건과 맞물려 정국의 소란은 것잡을수 없이 에스컬레이트되고 있다.
이 불만의 함성들이 진짜 모두들 나름대로의 감정모체에서 분출하는 것인지, 아니면 조직화된 집단의 탄성에 의한 것인지, 혹은 상대적인 배아픔 심통 파괴심리 또는 자포적인 몸짓들은 아닌지.
편한 잠 이룬다.
새벽, 능선의 마을 새벽 불빛을 마치 2000년전 예루살렘의 어떤 마을인양 이미지를 OVERLAP 시키면서 새벽 산에 오른다.
시린 약수터의 물로 목구멍을 행구고, 어스름히 자태를 나타내는 송림 사이를 빠져나와 흐린 하늘과 바다를 내려다 보며 숲을 빠져 나온다.
어버이 날.
英이의 카네이숀.
16162 1991. 5. 9 (목)
또 분신자살.
왜들 이러는가?
영글지 않은 이념이 사주하는 맹목적인 죽음.
왜들 죽는가 말이다.
온 몸에 석유를 끼얹어 불에 타면서, 목숨이 소멸하면서 부르짖는 목소리가 고작 구호따위여야 한단 말인가.
'태백산맥'.
한국 근대사의 비극, 어떤 인물다운 인물도 없이 속절없이 놓처버린 구차한 역사.
전라도의 진한 사투리의 욕설 속에 작가의 역사에 대한 통찰력이 녹아있다.
俊이 어제 시험.
16163 1991. 5. 10 (금)
내 의식의 영역에서 무언가 외치고 있다.
사회학적인 이유로 죽어야 한다는게 견딜수 없다고.
그 어설픈 이상주의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어이없음에 안타까워 미칠 지경이노라고.
오후 5시 넘자, 학생들 섞인 한진중공업 근로자들 수천명의 행렬이 붉은 깃발 펄럭이며 강물처럼 거리를 흘러간다.
뭉처진 힘의 덩어리를 보면 싸하게 밀려오는 감동같은게 없는바 아니지만, 바로 경계해야 할것이 이 싸한 감동의 정체이다. 허위 감상.
이런 감동이 죽음을 부른다.
16165 1991. 5. 12 (일)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예쁜 여자를 본다는 것은 즐거움이다. 그저 예쁜.
그러나 외형적인 아름다움이란 지속적으로 마음을 사무치게 하는 매혹은 아니다.
현란한 여름꽃의 색채는 곧 사라지고 만다.
구원으로 끌어 올려주는 아름다움이란.
마르가레테, 흰소복을 입고 다소곳이 고개숙인 이조의 여인, 이문희 소설 속 당돌하고 자그마한 어떤 여자.
내 딸네미 英이.
단순하지도 말고 난해하지도 말고. 너무 감각적인 현대여성의 폼도 갖지를 말고 그렇다고 너무 단정하여 소박한 이조여인의 폼도 갖지를 말며, 이념의 열정에 파묻히지 말고 그렇다고 안일한 소시민적인 행복만을 꿈꾸지도 말며.
아, 한세상 살이란 이토록 복잡하단다. 얘야.
새벽, 봉래산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약수터, 함지골 꼭대기 약수터에서 물길어 1시간30여분 동안 산길을 걷는다.
새소리, 새소리.
숲은 이미 초록의 덩어리로 칠한 유화.
홀로 산길을 걸으면 사념은 건전하게 땀을 흘리고, 몸뚱이 또한 함성을 지르며 피의 심장은 벌떡거린다.
'태백산맥' 6.25 직전에 이르다.
16166 1991. 5. 13 (월)
계절은 여왕이건만 세상은 회색빛 겨울이다.
잇단 분신, 개혁입법 강제 통과 처리, 곳곳에 시신을 볼모로 하여 산자들의 들썩임이 요란하고, 노사의 갈등은 점입가경, 광역의회 선거는 정치적인 제스처로 얼룩지고.
"나를 섬기는 자는 슬프고 나를 슬퍼하는 자는 슬프다.
나를 위하여 기뻐하는 자는 슬프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는 더욱 슬프다.
나는 내 이웃을 위하여 괴로워하지 않앗고
가난한 자의 별들을 바라보지도 않았나니,
내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자들은 불행하고
내 이름을 간절히 사랑하는 자는 더욱 불행하다."
-정호승 '서울의 예수'-
16167 1991. 5. 14 (화)
우익의 극에 달한 파렴치함에 비하여 좌익의 휴머니즘은 돋보인다.
이기적인 이해집단과 애타적인 이념집단.
근대사의 커다란 실수는 친일파 및 민족반역자의 처단과 토지의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실현시키지 못한 것이다.
민족 이데올로기, 민족 제일주의와 어우러진 미국의 패권주의는 무자비하고 무책임하고 교활하였다.
민중이, 다수의 정의가 승리하지 못한 역사를 놓지고 난후의 통탄이 있다.
'태백산맥'은 배워왔던 것과는 다른 시각으로 역사를 보듬어 안는다.
새벽 산에 오른다.
열두개의 방울을 동시에 흔들어 울리는 이름모를 새들의 숲속의 합창.
단조로운 음조의 새, 현란하게 기교파적인 새, 깊은 울림의 새.
오늘 미우라의 영업사원 면담예정.
그리고 강경대의 장례식.
16168 1991. 5. 15 (수)
미우라의 오카모도과장과 2명의 엔지니어 방문, 오전 오후 두차례 INCINERATOR 의 기술 사양 회의.
늦도록, 일본의 환경법을 적용한 제품이라 그에 대응하는 우리나라의 환경관련 법전을 뒤적인다.
법의 거미줄, 관리인을 고용해야 하고 오염물질 측정업체를 선정하여야하고, 환경청 등록업체에 의한 설계, 제조, 설치의 승인등 까다롭기 그지없다.
그러나 미우라측에서는 승인을 자신하고 특히 박이사도 근거없이 자신감을 표명한다.
수입 결정, 사장의 재가까지 득한다.
이제 계약서를 작성하면 빼도박도 못할 상황인데, 문제는 우리나라 관청의 허가문제이다.
퇴근하여 일본인 3명과 미우라 한국지사의 김부장과 중앙동 나간다.
부산호텔의 로비에는 오히려 일본어가 상용어 구실을 하고, 동광동 일대의 고급 주점의 어여쁜 여자들은 日갈보의 관록으로 돈을 벌고, 현지처로서 계약동거등이 자연스레 횡행한다.
1차, 2차, 3차까지 이름모를 요리에 술에, 이른바 메이커의 접대를 받는다.
16169 1991. 5. 16 (목)
총무과장 모는 차를 타고 구청으로, 시청으로 바삐 움직이다.
무언가 긍정적인 답변들을 하여 주는데, 발췌하여 질문하는 법령에 대하여는 그 누구도 바로 이거다하고 명확하게 해석하여 주지 않는다.
이런 애매함이라니.
모든게 공무원의 재량에 속하는 문제란 말인지 원.
구청 직장새마을 협의회 사무실 앉아서 총무과장의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런저런 얘기 듣는다.
그러나 그가 한때 자살미수에 까지 이르렀었다는 그 대목에서는 한 생활인의 처절한 고비의 비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바도 아니다.
16170 1991. 5. 17 (금)
어제 한진중공업 위원장 추모식과 출정식을 한다고 학생과 재야사람들 영도로 몰려오다.
한진중공업 앞에는 교통이 막혀버리고 만다.
문종한 과장의 차를 얻어타고 2송도쪽으로 돌아오다.
잠이 들었는데 정말 모처럼 단잠 이루다.
무엇인가, 잠으로 인도하는 그 엑기스는?
그 비밀의 묘약은 무엇인가?
신경조직, 작은 뇌의 어느 구석, 또는 볼수도 느낄수도 없는 추상의 어떤 심리?
무의식에 깊이 잠겨있는 영약의 풀 한잎?
무엇일까?
16171 1991. 5. 18 (토)
왼쪽 눈은 계속 침침하고 눈꼽이 자주 끼기 시작한지 오래 되었다.
얼굴의 피부는 까실까실하고, 게다가 못생긴 양쪽 턱에 이르는 윤곽선에는 개살이 올라 차마 거울을 보기가 두려울 지경이다.
얼굴의 모습은 마음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다.
그러므로 내 마음은 이토록 징그러운 것이다.
꿈, 꿈의 난무.
백화만발 하였다가 눈을 뜨면 꽃잎은 모두 지고 만다.
토요일, 건강검진.
그리고 5.18, 강경대 장례식.
노제의 장소를 두고 공방전을 벌이는 헛된 정치적 놀음들.
16172 1991. 5. 19 (일)
어제 해동병원서 회사의 건강검진.
이런 단체 건강검진도 무척 유익할 것이다.
홀가분하게 마치다.
어제 5.18, 강경대 장례식.
또 분신.
30대 여인은 연세대 앞에서 분신하여 숨지고, 광주에서는 고등학생이 분신하여 위독.
강경대 사건 이후 벌써 9명이 분신하고 6명이 죽었다.
무엇이 죽게 하는가? 무엇이 죽게 하는가?
나는 모르겠다. 아무리 궁구하여도 도무지 모르겠다.
'태백산맥'은 7권에 이르다.
16173 1991. 5. 20 (월)
나는 충분히 상상할수 있고 어쩌면 나아가 나의 문제로서 인식할수도 있다.
그런 이념의 세계를.
인민을 위한 자기희생에 이르는 자기논리를.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충분히 이념을 내 이성과 감성으로서 수렴할수 있을거라고 느낀다.
그러나 작금의 이 죽음은 확고한 이념의 근거에서 우러나온 이성으로서의 것인가.
고양된 감정의 행위이지 결코 냉철한 혁명가의 행위는 아니다.
16174 1991. 5. 21 (화)
일본 연수의 모범사원에 염효동과장을 추천하였더니 그것이 섭섭한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Q.C 박쌍현 과장은 고등학교 선배인 내게 기대가 컸었던 모양이다.
석가탄신일.
흐린 날씨, 英이는 학교로, 俊이는 지석이와 외출.
J는 여태 아침 점심도 거른채 송도시장에서 장을 보고 딸기쨈이다 추어탕이다하고 한창 덜그럭대는 오후2시.
'태백산맥'은 거의 종장에 이르다.
16175 1991. 5. 22 (수)
꿈.
일종의 배변 콤플렉스 가미된 내용.
보생의원, 넘처나는 변소의 똥무더기.
함안댁과 애순이도 등장하였는데, 애순이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 애가 때로 그립다.
안개 자욱하여 먼바다와 하늘은 완전히 회색 농무에 잠겨있다.
뉴스-
인도수상 폭사.
광주에서는 전경에 몰매맞아 20세 청년 위독.
이 시끌한 작금의 세상, 역사가 발전하는 과정인가.
아니면 역사의 배후에 음험한 세력이 은밀하게 교사하고 있는 중병을 앓고있는건가.
16178 1991. 5. 25 (토)
어제, 다소 일찍 사무실 나와서 俊이 생일선물 사려고 시내 나가다.
안개처럼 미세한 분말이 되어 스며드는 비.
젖은 비의 냄새를 맡는다.
옛날 방황하던 시절, 그 혼돈하였던 시절에 코지코너가 있는 남포동의 골목길이나 부평짐 부근에서 맡았던 비의 냄새를 후각은 기억해 낸다.
삭막한 일상 한 소시민의 좁은 울타리 속에서, 못났지만 그리운 자유로우며 엑조틱한 그 정서에 잠시 잠겨보는 것도 나쁠 것은 없다.
俊이 다트를 사다.
좋아하였으면.
16179 1991. 5. 26 (일)
퍼붓듯 쏟아지는 비.
SB-381 경사시험은 어쩔수없이 순연.
토요일 돌아와 俊이와 다트 놀이.
英이는 제 반에서 10등정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하위에 맴돌고 있을 것이다.
노상 학교에서만 보내고 있은 英이.
제대로 하고있는 것인지,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으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태백산맥'은 이제 마지막 한권을 남겨두고 있다.
이 책이 운동권에서는 필독서로 되어있는 반면에 이문열의 '영웅시대'는 보수 반동이며 개인적 감상주의로 배척을 받는다.
문학적인 감동에서도 '태백산맥'은 '영웅시대'에 비할바가 아니다.
아마 운동권에서는 다자이 오사무따위의 문학세계 역시 용납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16180 1991. 5. 27 (월)
알요일, '언터처블' 비디오 빌려다 본다.
캐빈 코스트너, 숀 코넬리.
무척이나 재미있게 만든 일종의 갱영화인데 로버트 드 니로가 알 카포네 역을 연기한 것이 인상적.
俊이와 오른팔이 아플정도로 화살을 던지는 다트게임.
"태백산맥에 눈 날린다 총을 메어라 출진이다.
눈보라는 밀림에 우나 가슴 속에 피 끓는다.
참고 견디는 고향 마을 만나러 가자 출진이다.
고난에 찬 산중에서도 승리의 날을 믿었노라.
높은 산을 넘어넘어 눈에 묻혀 사라진 길을 열고.
빨치산이 영을 내린다 원수를 찾아 영을 내린다."
16181 1991. 5. 28 (화)
예수님과 마르크스 레닌주의.
이것은 전혀 대립된 개념일까.
다만 신비주의와 과학주의, 감성주의와 이성주의, 유심론과 유물론, 유신사관과 유물사관, 정신과 물질, 역사에 대한 불신과 역사에 대한 신뢰, 인간의 불완전함의 자각과 인간의 무한한 능력에 대한 자각, 인간본질은 피조물이라는 각성과 책임과 권리와 자유를 보유한 인간주체로서의 각성.
다만 이와 같은 이원론으로서 영원히 합일할수 없는 개념일까.
이 두 개념에서 나온 동일한 무엇이 있지 않을까.
순결한 열정, 자신의 온 존재를 투사하는 극진한 헌신, 무작정의 이타주의, 이기주의의 극복. 자기개혁을 위한 혁명성.
인간을 역동시켜 고양시키는 정신적인 그 무엇이 이 두 개념에는 공통적으로 있다.
俊이 성적도 뚝 떨어져서 학급 48명중 10등을 맴돈다.
아이들 교육문제, 이를 어째야 쓸거나.
꿈, 꿈의 잔치.
신성일 엄앵란 등장하는 60년대식 군상들, 어머니는 웬 불구 아이를 데려다 키우고, 비가 퍼붓는데 바닷가 외딴 집에는 툇마루까지 물이 넘쳐난다.
데모대가 행진하는 서울거리를 나는 이방인으로서 걷고있다.
아, 꿈 속에서의 나의 캐릭터는 무엇이었을까?
아마, 그것은 울고있는 나, 울고 있는 리비도, 영원히 소외된 자로서의 자각, 파묻히지 못하는 영원한 구경꾼으로서의 삶의 양태....
쇼팽의 발라드.
오늘 아침 내 기분에 맞는다.
엑조틱한 가락, 말랑말랑한 정서속에 관능적이며 악마적인 분위기.
그러나 지극히 아름다운 흐느낌.
관능적이며 악마적인 것은 본래 어여쁜 법이다.
16183 1991. 5. 30 (목)
인간사 새로운 것이 무엇이냐?
어제와 오늘이 같고, 작년과 올해가 같고, 전세대와 지금세대가 같고.
고대 이짚트의 파피루스에서도 '요즘 젊은 것들이란' 문자가 발견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전도서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인간사가 변하는 것 같으면서도 기실 그 본질에 있어서는 똑 같을 뿐이다.
보혁의 갈등, 노소의 갈등, 진부한 인생에 대한 권태, 열정과 후회.
반복.
俊이 반 아이가 자살하였다.
이 놈의 세상 너도 나도 자살한다니까 이 어린아이에게도 전염된 죽음.
16184 1991. 5. 31 (금)
내일이면 6월의 초하에 접어드는데 날씨는 요 며칠 흡사 초가을의 날씨다.
드디어 '태백산맥' 마지막을 읽다.
책장을 덮으며 눈시울을 뜨겁히며 한참을 그대로 있는다.
염상진은 자폭하여 죽고, 그 무덤을 이제 곧 죽게 될 하대치는 찾아간다.
그리고 그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봉우리마다 솟아오르는 봉화를 보고, 또 무수히 하늘 자락에 흩어져 있는 별을 본다.
이 우직한 빨치산은 그것을 혁명의 밝음으로 인식하여 가슴 뜨겁게 그것들을 끌어안는다.
염상진과 하대치.
같은 곳을 바라보는, 같은 것에다 목숨을 내걸은 사람끼리의 정, 이념으로 뭉친 그 정은 아름답고도 아름다워서 눈물이 흐르지 않고는 못견디게 만든다.
작가 조종래는 염상진과 하대치의 이 마지막 묘사로서, 거친 주제의 소설을 문학적 향기 그윽하게 종장을 장식하였다.
안창민, 천점바구, 솥두껑, 외솔댁, 조원제...
'태백산맥'은 참으로 한동안 나를 사로잡았으며, 감동을 주었고, 내 역사 인식에 영향을 주었다.
그들은 정의의 편에 서서, 역사를 신뢰하여 자기희생의 피를 흘렸지만 역사는 그들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는지.
그 후의 북쪽 정권의 신격화, 또는 작금의 남한쪽 죽음의 전염병.
확실히 역사는 염상진 하대치가 확신하였던 그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아니하였다.
새로운 생각들, 사로운 사상들, 새로운 가치관들, 새로운 시대정신, 새로운 모랄, 새로운 질서...
아, 꽃잎처럼 화려하게 죽어간 그들의 화려함은 이 시대에 있어서 무어란 말인가.
5월의 끝.
임금협상은 답보를 거듭하고.
몰개성, 이 자본주의의 세상에서는.. 내사 슬퍼하는바 그것은 존경할만한 인격이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