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部分

1993. 4

카지모도 2016. 6. 24. 00:25
728x90

 

 

 

16855 1993. 4. 1 ()

 

어느새 4.

1/4 분기가 후딱 지나간 것이다.

어머니 전화 속의 쓸쓸한 목소리.

몸이 자꾸만 축이 난다고.

그리고 병원으로 자꾸 전화걸지 말라는 말씀.

이런 안부의 전화도 번거로우신거다.

일흔다섯의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흔일곱의 아들은 마음이 무겁다.

현실적인 어떤 부분에서도 지극히 무기력할수 밖에 없는 아들짜리는.

 

공직자 재산공개 마무리, 김영삼은 좋은 대통령이 될듯한 예감.

나부터 깨끗할테니 모두 나를 따르라는....

 

그러나 에리히 프롬을 인용한 조선일보의 칼럼은 이것을 경계하고 있다.

"도덕적 분노처럼 파괴적인 감정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없으며, 그것은 정의며 청렴결백이라는 탈을 쓴채로 질투며 증오의 감정이 발산되는 것을 용납한다"

 

요즘 SB-397 의 인도로 바쁜 현장.

그러나 나는 요즘 업무에 뜨악하다.

 

퇴근하여 내 방 책상 앞 앉아 술을 마시고.

 

16856 1993. 4. 2 ()

 

봄이다.

봄의 신비한 정다움.

창조주를 찬양하는 계절.

싹이 움트고 꽃망울이 영글고 개울이 풀리고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은 필경 만물을 만드신 어떤 존재를 향하여 계절의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

 

.

나이를 먹는다.

이윽고 늙는다.

그리하여 죽는다.

그래서 봄이라는 계절은 슬프도록 아름답다.

쇠락을 내포하고 있는 생명이기 때문에 봄의 생명은 그토록 아름다울수 있다.

가을을 겨울을, 죽음을 잉태하고 있는 계절, .

 

이 봄날, 어머니의 간밤은 어떠하였을까.

 

작취미성의 정신은, 일상을 매우 낙천적으로 받아들인다.

파격- 네모 반듯함의 正道에서 때로 벗어나는 것.

이곳에는 확실히 낙천의 에스프리가 빛을 낸다.

 

회의실, 나의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16857 1993. 4. 3 ()

 

요즈음 나는 어수선하다.

업무에 있어서도 게으를 뿐, 적극성을 잃었다.

중심을 잡지 못한다.

어머니의 쇠락을 바라볼 뿐인 무능한 자식이라는 의식 하나.

그러나 자식의 의식 속에는 어머니를 향한 관계의 지고함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 대한 회억, 어느 대목에서는 어머니를 향한 아픈 앙금과, 또한 어느 만큼 풀어주실거라는 뱀의 혓바닥.

 

글을 쓰자.

이십대 때의 잠꼬대를 오십 바라보는 고개에서 또 뇌까리고 있다.

 

16858 1993. 4. 4 ()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향한 어떤 신념없이, 마냥 스산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때, 나의 뇌리를 짓누르고 있는 그것은 죽음의 유혹이다.

성경의 말씀이 그저 공허한 헛소리로 느껴질 때 나는 자살의 충동에 사로잡힌다.

소멸함, 쇠락하여 차츰차츰 소멸로 향하는게 아니라 단번에 소멸하여 버리는 것.

하나님이 없다면 인간이란 이토록 허무하여 죽고 싶은 존재일뿐.

 

미시마 유키오.

그가 배를 가른 것은 국수주의적인 일본적 전통의 자부심에 사로잡혔기 때문만은 아니다.

허무하여 허무하여, 핑계거리가 없으니 쓰잘데 없는 하나의 주제를 만들어 그냥 죽어버린 것이다.

 

태어나서 미안하다는 다자이 오사무.....

 

맥이 하나도 없는 어머니 목소리.

그 음색에서 어머니의 눈앞을 어른거리는 소멸에 대한 두려움과 허무로운 빛깔이 묻어난다.

 

아아 어머니의 신앙, 주님의 손길을.

 

16859 1993. 4. 5 ()

 

초읍에서 PS, JN, KH근 만나 덕산선방.

선에 관한 관장의 강의는 이제 진부하다.

 

그곳에서 요가를 하고 성지곡 산등성이를 오른다.

바람불고 추운 을씨년스러운 날씨 속에서도 벚꽃은 환하게 피었다.

곳곳에 입산금지라는 팻말에 주눅이 들어, 등산다운 등산은 하지도 못한채 숲 속에서 덜덜 떨어가며 도시락을 까먹고 내려온다.

 

KH근의 아파트로.

거실은 이젤이 늘어선 아트리에다.

즐비하게 걸려있는 KH근이 그림들, 이제 제법 창작의욕이 솟는 모양이다.

국민학교 6학년과 3학년의 예쁜 두 딸네미, 털털한 수학선생인 KH근 마누라.

거기서 맥주에 취한채 7시 넘어 택시타고 돌아온다.

 

KH근의 집에서 몇 년만에 WS규와 통화도 하였구나.

 

16861 1993. 4. 7 ()

 

허무와 스스로의 보잘 것 없음과 주위의 차가움과.

그러한 내 상황의 깜깜한 느낌에 요즘 나는 상당히 지쳐있다.

그 느낌의 축적이 무거운 납이 되어 마음을 짓누른다.

 

어머니의 불면, 나날이 줄어드는 체중.

그리고 의기소침하여 형편없이 옴추려든 어머니의 마음밭.

 

어제부터 어머니는 박조열 정신신경과에 다닌다.

그런 어머니에 대한 무력감, 또한 어머니를 향한 회억의 원망과 그에 대한 죄의식.

 

자괴감과 부끄러움... 그리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존재하는 모든 것은 헛되다하는 중얼거림 하나.

 

- 이와 아귀같이 피흘리는 싸움, 외갓집의 어떤 방에서.

아아, 관계들의 처절함, 처절함.

 

16863 1993. 4. 9 ()

 

어떤 외면적인 행동으로 내면을 변화시키는 것.

외면을 꾸밈으로 내면을 길들이는 것.

훈련- 훈련으로 습성을 고쳐서 내면을 길들이는 것.

 

꽃샘추위.

새벽의 냉기 속에 몸을 잠근다.

 

그리고 기도를 드리는 것인데..

 

16864 1993. 4. 10 ()

 

내 삶의 역정이 노엽다.

관계를 모독하는 상황이 노엽다.

관계들의 지혜없음이 노엽다.

스스로가 한없이 노엽다.

모욕받는 목숨이 노엽다.

 

노여운 마음밭에 술을 붓는다.

 

16865 1993. 4. 11 ()

 

내 정신의 원형질은 어디로부터 형성되었을까.

돌담의 어디선가 경험한듯한 그 기시감에서, 캄캄한 어머니의 자궁 속, 그 어떤 담백질의 세포 속에서, 어린 시절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 눈망울로 부터였을까.

 

지금 나를 나이게 하는 내 정신의 원형질의 근거는 어디?

 

16866 1993. 4. 12 ()

 

나의 타성은 이리도 지독하다.

산에 가려하나 가지를 않는다.

글을 쓰려하나 쓰지를 않는다.

글을 읽으려하나 읽지를 않는다.

성경을 펴려 하나 펴지를 않는다.

 

도무지 하여지지 않는 이것은 그저 게으른 타성만은 아니다.

P/C를 똑딱거리다가 퍼질러 앉아서 술을 마시고, JM교 에게서 전화왔으나 핑계를 대고 만나지 아니한채, 단절된 의식 속에서 그렇게 술만 들이 붓는다.

 

16867 1993. 4. 13 ()

 

끊임없이 반복되는 리듬.

경건과 방종, 긴장과 나태, 상승과 침잠, 아폴로와 디오니서스, 희망과 절망, 웃음과 눈물, 생명과 죽음의 의미가 투사된 이런 개념의 리듬타기를 반복하며 사람은 늙어간다.

 

이런 조울증의 그라프를 이루는 요인은 무엇일까.

이른바 생체리듬이라는 것은 아닐 듯.

자연이면서 자연이기를 거부한 호모사피엔스의 숙명.

자각하고 이성을 작동하여 상상력을 발휘하는 짐승. 절대적인 조화를 향하여 그의 정신은 상승하지만 그는 죽어야 할 육체를 입었다.

정신은 생명이지만 육체는 죽음이다.

꿈꾸고 좌절하는 반복이 그의 숙명이다.

 

어머니께 전화.

박조열 정신과는 주일에 한번씩.

서너시간씩 수면 가능.

 

모처럼 새벽, 내 방에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그 이의 향기를 맡으려 한다.

 

16869 1993. 4. 15 ()

 

어머니가 한사코 병원에 나가 근무하려 하는 마음.

그것은 어머니 나름대로의 삶을 위한 긴장이다.

 

한가함.

지극한 한가함을 꿈꾸는 나.

햇살이 고즈넉하게 비추이는 청결하고 고적한 뜨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한가함을 꿈꾸는 나.

절정의 한가함.

고로 아아, 나는 몽상가인가.

 

16861 1993. 4. 17 ()

 

열중, 열중이 중요하다.

산만하지 않을 것.

순간의 생명에 충실할 것.

공상하거나 상상하지 말 것.

열중하는 찰라의 연속이야 말로 가장 확정적인 영원.

 

J는 요즘 수지침이라는 동양의학 배우기에 열중하고 있다.

 

슬슬 노사갈등의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16872 1993. 4. 18 ()

 

'새롭게 하소서'

전 서울중부경찰서장, 교회탄압의 선봉인 그가 돌연 예수를 영접하여 변화한다.

이제 장로가 되어서 간증을 한다.

한 인간의 살아온 것들의 뿌리를 뒤흔드는 믿음이라는 것.

감정모체가 전체를 기울여 받아들이는 신앙이라면 그것은 엄청난 인간개조.

 

16873 1993. 4. 19 ()

 

예년같으면 학생들의 함성이 거리를 누빌텐데 대학가는 조용하다.

이슈가 사라진 젊은이들.

이슈가 없으니 공동체의식은 점점 엷어지고, 극단의 개인주의가 팽배하여 진다.

소비문화의 창궐.

자식을 대학에 보낸 부모로서 한편 다행스러운 바도 없지 않으나 감각적으로만 흐르는 젊은이들의 정신세계는 미상불 걱정스럽다.

 

'창조적인 삶'을 강조하는 아빠의 말을 이는 어떻게 받아 들이는지.

 

MBC '별이 빛나는 밤'에 출연하였다.

대학생다운 청결한 화음.

전공의 공부와 동아리 활동을 균형있게 하여 준다면 얼마나 좋으랴.

 

요즘 읽는 책.

양귀자 '한계령', 자린고비 지나간 인생의 세월의 애틋함.

김영현 '고도를 기다리며' 붕괴되는 이념, 군대의 젊은 맑스 레닌주의자들.

유순하 '폭풍경보' 물질, 쾌락주의의 만연을 그린다.

표성흠의 장편대하소설 '토우'는 작가 기량의 한계가 있어, 2권째 읽고 읽기를 포기한다.

 

16875 1993. 4. 21 ()

 

퇴근하여 어머니께.

상태가 너무나 호전.

싱글거리며 소녀처럼 재잘거리시는 어머니.

마음이 그만 확 편해져버리고 만다.

 

이 시험중.

이는 독서실 가서 12시 넘어 돌아온다.

육체의 곤함을 이기는 의지.

힘을 내거라. 내 아들.

 

하루가 새롭게 일어나는 사건.

정신병동이 불이 나서 수용된 30여명 소사.

서울 도심에서는 탈영병이 난동을 부려 시민이 죽고 다치고.

 

이런저런 사건속에 죽는 사람은 죽는 사람이고, 산사람은 산사람대로 새 세상을 꿈꾸고 있음.

 

16876 1993. 4. 22 ()

 

사람의 감각중에서 어떤 느낌, 심층심리의 창고에 감추어진 옛날 기억의 조각-그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것은 아마도 후각 쪽이 제일인 듯.

나뭇잎타는 매캐한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내 눈 앞에는 금새 훈련소 아침 구보때의 그 시골 들판이 펼처지고, 어떤 싸구려 화장품 냄새에서는 어느 땐가 술상을 두드리던 작부의 방안풍경이 떠오른다.

과일이 썩어가며 내는 달콤하면서도 퇴폐적인 그 냄새에서는 정능의 어떤 여름날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봄가뭄.

빗방울 조금 흩뿌리지만.

 

어머니에 대하여는 그제 뵙고 온후로는 마음이 편하다.

 

이 시험중.

잘 치르고 있는지.

딸네미 대학생활은 크레물린.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6877 1993. 4. 23 ()

 

김영삼 '나의 정치 비망록' 단숨에 읽는다.

실제로 그가 손수 쓴 책은 아닐 것이지만 그가 걸어온 정치역정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그리고 23일간의 단식 또한 예사로운 용기가 아니었다.

 

나는 전에 말하기를 이 시대에는 존경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 존경 할만한 사람을 찾는 것보다는 존경받는 쪽이 되는 것이 차라리 더 쉽겠다고 건방을 떨었는데, 얼마나 자가당착의 말이었는지.

세상에는 존경할만한 사람이 많이 있는데, 나의 범상한 눈에 그들이 존경의 요소를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퇴근하여 P갑 이 차타고 하리 횟집.

SJ, KM철등과 마시다.

 

LD찬 씨, 어제 亡妻의 사십구제 마치다.

 

작취미성의 금요일 아침.

할렐루야 합창곡 들으면서 머리를 숙인다.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으면 안될 당위성.

시편에 나타난 그 찬양의 의미.

 

16878 1993. 4. 24 ()

 

이제 돋보기는 필수 휴대품.

특히 화장실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물건이다.

 

J는 며칠째 목에 마후라를 감고 지낸다.

감기.

급속히 쇠락하고 있는 사십대 후반의 가시버시.

 

이제 지는 해를 바라보는 우리는 무언가 정리하는 지혜를 찾아내야 한다.

새로운 가치를 찾아 거기에 헌신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생은 초라하고 헛될 것이다.

그 영원한 가치의 본령은 이곳 현세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습기를 머금은 안개가 흐른다. 산자락과 바다 위를....

 

새벽 일어나 모처럼의 목욕.

이 어제 시험 끝나고.

6시 넘어 깨워서 일어나는 이 얼굴에는 부족한 잠에 지쳐있는 몰골..

 

토요일, 나의 평정, 나의 균형이신 주님.

 

16879 1993. 4. 25 ()

 

參禪에 의하여 영혼의 안식을 얻는 것.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인하여 안식을 얻는 것.

이 두 개는 진실로 배리한 것인지.

그 배후에 숨어있는 진실은 어쩌면 동일한 것은 아닐까?

기독교인 중에서도 내면을 궁구해 들어가 참선함으로 얻는 성령의 은혜가 있을것이고 禪僧중에서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해탈에 이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진정한 가르침은 도그마에서 벗어나라는 것.

 

옛날 영화 지지 (GIGI).

레슬리 캬론, 모리스 슈바리에.

빈센트 미넬리 감독.

초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과 같은 파리의 풍경화.

부르조아의 사랑 이야기.

 

오랫만에 J와 함께 새벽 태종대 길을 걷는다.

 

16881 1993. 4. 27 ()

 

한 편의 소설을 쓰고자 하여 조금 궁리를 해보면 금새 주제가 파악되고 만다.

소설 주제의 주제가 아니라 나의 주제, 꼬라지말이다.

거짓되고 과장되고 허영스럽고 자기변명적이다.

진정한 진실이 결핍되어 있다.

상상력에 의존한 자기미화, 자기현시에 급급하여 결국 작품이란 허황된 거짓 궁전에 지나지 않는다.

 

환골탈퇴.

거듭 난다는 것.

모든 대상에 있어서 진실하게 어프로치한다는 것.

솔직해 진다는 것.

진실을 겁내지 않는 것.

자기장식에서 벗어나는 것.

 

'인간시대'

고려대 총학생회장 허인회는 장사꾼으로 변신.

서울대 총학생회장 김민석은 정치계 데뷔.

이제 깃발은 쓰러지고,

한때 그 젊음들을 사로잡았던 이념은 이제 페이소스로 남아....

 

이 간밤, 지석이집 갔다가 새벽 돌아와 제 방 쓰러져 잠들어 있다.

 

나의 주님.

 

16882 1993. 4. 28 ()

 

주름진 얼굴, 커단 눈망울.

완연히 늙어 있다. LD찬씨.

내일 모레면 정년 퇴직.

그나마 붙잡아 주던 긴장마저 스러지면 그의 늙음은 가속화될 것인데.

그저 자식들 눈치나 보고...

그와 술.

그의 집에 까지 갔다 왔지만 마음이 안쓰럽다.

 

깨어난 수요일 아침.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요즈음 나는 노력한다.

성숙과 균형.

균형감각이 마음을 지배하라고.

성숙된 이성... 성숙된 이성.....

나의 주. 나의 하나님.

 

16883 1993. 4. 29 ()

 

이문열이 스스로 자신의 기념비적 작품이라고 평가하는 '변경' 4권째를 읽었다.

역시 느껴지는 서걱거림.

논리는 뼈대를 드러내고 감수성은 도식적이고 언어는 생경하다.

이문열의 소프트웨어적 한계는 분명하다.

 

극심한 봄가뭄에 내리는 비는 촉촉하게 봄이 움트는 대지를 적신다.

 

김영삼, 사정의 칼날을 이제 으로 들이댄다.

- 그 장막에 가려진 세계, 특수집단의 은어로서만 통할수 있는 그 세계에서는 오히려 감추어진 흑막은 더욱 캄캄할 것이다.

 

- 어느 시절인가.

이와 꼬집고 꼬집히고 하는 티격태격.

 

.

영어는 역시 계열에서 1, 국어는 22, 수학은 100등을 넘어섰다.

 

16884 1993. 4. 30 ()

 

LD찬 씨, 오늘로써 직장생활을 마감하다.

부쩍 늙어버린 얼굴.

한밤중에 귓가에 '찰칵 찰칵'하는 시계의 촛침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려 잠을 이룰수 없다는 그.

불과 2달 전에 마누라를 먼저 보내고, 다 자란 아이들은 저들 앞가림에 바빠서 늙은 아버지는 일단 뒤로 제껴놓고, 이제 직장은 정년으로 쫓겨나고.

 

그러나 이형, 이형의 성격적 낙천주의가 형을 웃게 하리다.

건승하십시오.

 

이 오늘 소풍, 마침 날씨는 활짝 개다.

'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 > 部分'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93. 6  (0) 2016.06.24
1993. 5  (0) 2016.06.24
1993. 3  (0) 2016.06.24
1993. 2  (0) 2016.06.24
1993. 1  (0) 2016.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