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部分

1993. 5

카지모도 2016. 6. 24.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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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85 1993. 5. 1 (토)


부차장 회식.

사직한 JJ호부장은 끝내 오지 않는다.

비싼 생선회도 너무나 흥청망청 푸짐하면 그만 기가 질린다.

모자란 듯 적당한 양이 입맛을 돋구는 법이다.

어디 비단 먹거리뿐인가.

모자란 듯 적당한 것이 스스로의 가치를 높인다.

知足의 樂.


논리의 비약이겠으나 이 원칙은 이 산업사회, 자본주의의 풍성한 상품들, 넘쳐흐르는 소비성향에게도 적용될수 있다.

하나의 상품은 그 상품 고유의 기능이 갖고 있는 가치효용의 문제들보다 부수되는, 또는 쓸데없는 쪽의 가치창출이 끝없이 시도되고, 그 부수되는 가치가 사람의 의식을 호도한다.


노래방, 또 맥주집.

어쨌거나 공금을 내 돈인양 뿌리는 총무 직책의 호기는 즐겁다.


16886 1993. 5. 2 (일)


PS곤 , JN영 , KH근 등에게 전화하여 천성산 산행은 순연키로 한다.

JN영 이는 학원 그만두었다고.

그래서 그런지 수화기 넘어 들리는 목소리가 풀이 죽어 있다.


새로 들어 온 여사원, 갓 여상을 졸업한 앳된 소녀.

필경 英이를 생각케 된다.


비 흩뿌리는 일요일 아침.


16888 1993. 5. 4 (화)


엇저녁 MBC의 슬프디 슬픈 다큐멘타리.

금정산 기슭에 움막을 지어 살고있는 모녀.

마흔넷의 어머니는 자궁암과 직장암을 앓고 있는 이혼녀.

열셋의 딸, 하루에 여덟 번씩 어머니에게 진통제를 주사하는 아이.

어머니는 그 외딸을 두고 죽을수가 없고, 딸은 그 어머니를 두고서 수학여행을 갈수가 없다.


그 모녀의 관계 속에는 생명을 넘어선 무엇이 있다.


내게는 그러한 행복대신 뱀의 교활과 곰의 우둔함을 주신 하나님.

내게 있어 나의 피붙이는 무엇이며, 나의 피붙이에 있어 나는 무엇인가.

목숨을 넘어선 무슨 관계인가.


헛되고 헛되며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솔로몬의 말이 아니더라도 보이는 인생이란 헛된 것이고, 보이는 인생 너머에 목숨보다 더 귀중한 무엇이 있음을 나는 알수 있다.


俊 방에 불 끄고 엎드려 눈물짖는...


16889 1993. 5. 5 (수)


인간이란 필경 나약하기 그지없는 피동적인 생명체가 아닌가.

나약한 인간이므로 그가 느끼는 행복이란 개개의 실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집단화에 있는 것이다.

자신의 나약함, 결정된 목숨이라는 걸 자각하고 있는 그 무서움을 집단 속에서 떨처버리므로써 행복을 가장하고 있다.


그런데 그 행복이란 과연 가장과 거짓일 뿐일까?

군거적 순종의 의미,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의미에서 그 자유란 진정 행복일까?

자유가 결코 이토록 나약한 인간에게 있어서 행복의 개념일까.


情-

모듬 살이, 그 살이에서 느끼는 안온한 행복감.


현대의 정글- 산업화 도시화 객체화 속에서 행복은 죽어 가고 있다.


어린이 날.

장인 생신.


16890 1993. 5. 6 (목)


거리에는 즐거운 아이들, 버스차창으로 보이는 사직운동장에 빼곡히 찬 아이들의 머리통들.

어린이를 사랑한다는 것.

어린이의 어떤 면을 사랑하라는 것인가.

어린아이의 모든 것이 아름답지는 않다.

아이다운 잔인함은 오히려 어른보다 지독할 때가 있고, 단순한 이기주의가 발호할때에는 인간이란 본시 악한 존재라는 선악설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아이들이로 해서 창조시의 순수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도 악하다.


처가- 이제 완연히 늙으신 장인, 장모.

중년의 두 처제들, 부쩍 어른스러운 T기 .


맥주잔을 비우고 한낮의 더위 속에 버스 타고 돌아온다.


요즘 나를 억누르고 있는 강박의 정체는 무엇?

내부에서 이글이글 타고 있는 그리움 하나.

여성스러움.


여성이 없는 나는 그저 취하여 쓰러져 잠들 뿐이다.

그리하면 밤의 세계가 열리고, 꿈의 파노라마가 펼처지고.


그저 나는 취하여 잠들 뿐이다.

여성스러움이 없는 이 황량한 정신.


16892 1993. 5. 8 (토)


PY식이 사무실로 찾아오다. SEA CRANE관계로.

몇 십년만의 만남인지.

그나 나나 이제 늙었다.

함께 점심먹으며 옛 고등학교적 친구들 얘기.

정삼이, 길용이, 용균이, 철근이, 원이....

그 때 그 시절이 아무리 유치찬란하여 부끄러운 기억일지라도, 이제 깨닫건데 나는 그 것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내 인생의 한부분인 것들.


내게 주어졌던 것들- 그것이 나의 의지였건, 운명이었건, 강요였건, 선택이었건 간에 내 생명의 흔적들을 나는 소중하게 보듬어 안아야 하는 것이다.


J, 英이,俊이 미리 가 있는 큰집, 퇴근하여 가다.

어머니와 형네.

관계들 속에 이제는 형해화 된 서걱거림만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내게 역시 사랑이지 않아서는 아니되고 아니된다.


어머니라는 모음의 입술 움직임.

그 발음에는 관계의 영원한 어여쁨이 묻어 있지요.


영선동 레코드점에서 정경화 '바이올린 소품집' 구입.

남포동에도 없던 레코드를 여기서 구하다.


애정이 넘치는 단정하고 그윽한 곡 엘가의 '사랑의 인사'가 들어있다.


16894 1993. 5. 10 (월)


일요일.

SJ엽 과 둘이서 범어사지나 북문을 지나 동문까지.

비보라치는 능선을 걷는다.

함빡 젖어버린다.

비가 후드득 뿌리는 숲속, 소나무 아래 쪼그리고 앉아서 도시락을 먹고 가지고 간 브랜디를 홀짝인다.

비 속의 산행, 청승스러운 사람들은 우리말고도 제법 있다.


하산하여 지하철타고 남포동.

거리는 온통 젊은이들 것이고 젊은이만을 위한 공간이다.


늙은이들을 위한 문화공간은 어디에도 없구나.

하릴없이 생맥주집 앉아서 맥주나 들이키고 돌아온다.


집에 돌아 와 진흙투성이인 몸뚱이 씻어 행구고.


월요일 아침, 날씨는 청량하게 개이다.

하나님의 균형....


16895 1993. 5. 11 (화)


무라카미 하루키.

이동도서관에 이문열의 '변경'을 반납하고 무라카미 하루키 '일각수의 꿈'을 빌린다.

이문열을 읽고나서 읽는 이 소설에서는 어쩌면 문학의 향기가 난다.

원제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세계의 끝'.

책장을 펼치자 말자 매우 감각적인 문체가 환상을 넘나든다.

이런 것이 이른바 포스트 모더니즘인가.


발행한 출판사는 '모음사'인데 발행인의 이름에 박지열이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에게 넘어간 모양이다.

모음사의 발행인.

옛 친구, 시인 박지열.


16897 1993. 5. 13 (목)


'새롭게 하소서'에 김한조씨 출연하다.

코리아 게이트의 장본인인데 당당하기 그지없다.

모든 건 국익때문이었고, 자신은 한국 정부로부터 돈 한잎 받지 않았다고.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가 기도하는 대상의 하나님.

내가 기도하는바 그 대상인 하나님.

기도하는 사람에 따라 그 스케일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안개처럼 미세한 분자의 분무처럼 흐르는 비.

퇴근하며 PY식 만나서 함께 하리 횟집 마주 앉는다.


그의 역정과 나의 역정.

녀석은 호남정유의 간부.

아이들도 나와 비슷한 또레고, 살아가는 산업사회 생활인들의 모습과 술마시는 폼은 어디서나 엇비슷하기 마련.

결국 집에 까지 데려와 J와 인사시키고 맥주를 또 마신다.


俊이, 월요일부터 시험.

퀭한 몰골의 토끼새끼.


16899 1993. 5. 15 (토)


무라카미 하루키 '세상의 끝,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上卷 읽다.

SF도 아니고, 환상소설도 아니고, 무슨 의식의 흐름 수법같지도 않고, 어떤 상징체계를 구축하는 것 같지도 않고, 정신분석적 어프로치같기도 한... 이상한 소설.

그러나 독특한 색채와 냄새의 분위기, 그리고 재미도 잇다.

그의 감수성은 독특하다.

그 이상스런 감수성이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감수성을 만들어 낼수있는 그것이 작가의 능력...


토요일, 5월의 태양이 빛난다.

머리 숙여 침묵의 기도.


나의 균형이시여.


16900 1993. 5. 16 (일)


토요일, 김연걸차장 장남 결혼식.

대연동 문화회관 영빈관 홀.

예식장보다 엄청나게 좋은 분위기의 결혼식이다.

고려대학과 이화여대를 나온 신랑신부, 그들은 무슨 선교회 소속의 기독교인들이고 시종 독특한 기독교의식으로 식이 진행된다.

식의 종장에 하객들도 모두 함께 부르는 노래를 부른다.

'사랑으로'

그리고 호화판 뷔페음식.


대연동 문화회관 주변, 문화의 냄새 물씬 풍기는 동네.

나는 필경 英이를 생각하게 된다.


공영식 차장과 택시타고 동삼동 들어와 맥주 마신다.

공실장의 인생역정을 듣는다. 육군을 병으로 제대하고 걸린 폐결핵, 산속에서 움막을 짓고 홀로 투병하여 병을 극복하고 해군 장교로 재입대. 해군 중령제대.

함께 집에 까지 와 맥주를 마시고 둘이서 대취한 채로 J가 정성스레 차려준 저녁밥을 먹고 그는 돌아간다.


16901 1993. 5. 17 (월)


훌륭한 인격이나 훌륭한 성품의 사람 앞에 서면 공연히 주눅이 든다.

또는 정녕 좋아하는 대상 앞에서도 주눅이 든다.

이것은 열등감이 아니다.

스스로 그를 존경하여서 겸손하여 겸손한 것이다.


고급취향의 부르조아의 포즈나 세련된 매너를 구사하는 돈쟁이 앞에서도 주눅이 든다.

이것은 스스로 부끄러워서 열등하여 열등해 지는 것이다.

어제 그러하다.


초저녁 쓰러져 잠이 들어 10시 넘어 일어나 밥 한술 우겨넣고 다시 잠 속에 빠져든다.

그야말로 잠의 뿌리를 뽑는다.


나의 균형이신 그 분.


俊이 오늘부터 시험.


16902 1993. 5. 18 (화)


감상은 흙이 되어 메말라 부숴졌다.

빛바랜 감성은 삭풍으로 남아 마음 벌판을 휘돈다.

아아, 열정은 어디에 있는가.

내게 열정이나마 있었던가.


잎새에 반짝이는 핵빛의 노래는.

바람부는 거리의 가로등, 그 감흥의 흔적은 작은 뇌세포의 어느 모서리에 생채기로서 남아 있을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런 장식들을 희석시키는 과정인 모양이다.

화장을 지워 기미와 땀구멍이 보이고, 그 너머 해골바가지를 보는 것인가 보다.

그 해골의 노래를 듣는 이제 그것에 귀 기울여야하는 그런 것인가 보다.


그러나 나는 갖고 싶다.

부푼 감성을, 반짝이는 장식물들과 그 열정을.


俊이 어제부터 시험.

英이는 줄기차게 10시 넘어 귀가하고 있다.


16903 1993. 5. 19 (수)


근로자 소득정산서, 媛이의 재촉전화 받는다.

세금회피를 위하여 내이름으로 주식을 분산한,그 소명자료로 필요하여 그런 것이지만 마음은 되우 좋지 아니하다.

성가시기보다 일종의 불쾌한 기분이 앞선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기분.

내 일년의 소득 내역을 고스란히 동생한테 보고하고 신고하는 듯한 기분.


드디어 박철언이라는 왕년의 권력가.

슬롯머신건으로 올가미에 걸리다.


16904 1993. 5. 20 (목)


무라카미 하루키 '일각수의 꿈' 완독.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말하자면 현상의 세계이고 '세계의 끝'이라는 것은 심층심리의 숨겨진 세계일듯.

동전의 앞 뒷면과 같아서 상대를 의식하지 못하는 전혀 별개의 두 세계.

기묘한 천재과학자 노인, 뚱뚱한 그의 손녀딸, 계산사와 기호사의 조직, 도서관에 근무하는 위확장증의 여인, 지하세계의 야미쿠로, 또 한 쪽의 문지기, 꿈읽는 도서관의 소녀, 대령, 발전사, 그리고 그림자....

동화같기도 하고, 유치한 공상과학 소설같기도 하고, 썩 빼어난 연애소설같기도 한 괴상한 소설.


그렇지만 그곳에는 문학이 흐르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느끼는 감수성을 나도 느낄수 있을거 같구만.

이러하면 소설은 성공이 아닌가.


감수성이 그려내는 그 환상의 우물은 나도 갖고 있을법 한데.

깊고 깊은 그 우물, 깊이깊이 묻혀있은 그 우물, 때로 아주 조그마한 두레박으로 퍼올릴수 있는 그 우물.


일각수들이 인간의 마음을 흡수하여 어스렁거리는 세계의 끝,

음산한 그 그림, 달리의 그림같기도 한.


무라카미 하루키적 감상에 젖은채 마루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16905 1993. 5. 21 (금)


JN영 아내, 소영이 엄마 자궁암 수술.

대학병원 입원중인데, 대범한 편인 JN영의 목소리에는 걱정스러움이 배어있다.


왼종일 P/C 앞을 떠나지 못한다.

그러던중 어찌어찌하다가 애써 만들어 놓았던 스프레드 시트의 자료가 그만 일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죄절하지 않고 그 많은 자료를 새로 입력하고 출력까지 마치고 만다.

이런 것을 보면 분명 내게는 집착력과 집중력이 있다.

그리고 어떤 근성도 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돈과 관계없는 쪽이니 탈이다.


퇴근하여 뚱집 2층에서 맥주마시며 고스톱판이 벌어졌는데 봉급쟁이들 주머니에서 시퍼런 배추잎이 예사로 들락거린다.


안개 아침.


16906 1993. 5. 22 (토)


서울서 내려 온 LG선에게서 전화.

장인 별세.


그들 부부는 왕년에 어머니의 덕을 입은바 적지 않다.

그런데 부산 내려와 한번도 어머니의 안부를 묻지 않는 굇씸함.

깜깜 무소식이다가 불쑥 내려와 제 장인 죽었으니 문상오라는 격인데 좀 경우가 아니다.

LG선이란 놈의 교활이라기 보다도 인간적인 품질의 문제로 느끼는 것은 나의 비좁음이기도 할것.

나의 비좁음은 문상을 가지 않기로 한다.

옛날 그토록 죽네사네 하고 친했던 것 또한 허망하다.

이것은 전적으로 나의 편협한 마음.

그러나 녀석의 그 비정한 이기주의에 대한 굇심함은 어쩔수 없다.


토요일 새벽.

비를 머금은 안개 자욱하다.

오늘 JN영의 와이프 문병가려고.


마리안 앤더슨, 영혼의 낮은 현을 울리는 SPIRITUAL.


16907 1993. 5. 23 (일)


토요일 오후, J와 만나서 함께 대학병원으로.

소영이 엄마, 자궁암 대수술.

수술이 잘되어 생각보다 혈색이 좋다.

JN영 은 모처럼 아내의 병상 곁에서 간호에 지친 몰골을 한 지아비의 모습 완연하다.


초여름 징조가 느껴지는 일요일 아침.

몸에는 어딘지 모르게 몸살끼가 배어있다.


16909 1993. 5. 25 (화)


'일각수의 꿈' 반납하고 하근찬 '금병매'빌리다.

노신이 최대의 문학작품으로 평가한 '금병매'

물론 나는 도색소설로서 읽고자 하는 것인데 하근찬이란 삼류소설가는 너무나 형편없게 옮겨 놓았다.

무릇 도색적인 표현에도 향기가 있는 법, 게다가 잘하면 품위까지 넘볼수 있으며 그 심리의 세밀한 묘사는 예술적이기까지 할 것인데.

'차타레이 부인'이나 옛날 할아버지 방에서 훔쳐 읽은 원전의 '금병매'나 '장길산'의 어느 부분이나 하다못해 백시종의 어떤 소설에서도 품위있는 도색이 있는데.

그러나 하근찬의 '금병매'의 도색은 방인근과 다름 아니다.

방인근은 차라리 까발린 적나라함이라도 있었지만.


俊이 열일곱번째 생일.


새벽.

아아, 주 나의 하나님.

이 신앙고백이 늘 아침마다 새롭게 하소서.

아내의 영혼을 이끄소서.

俊이를 진리로 키우소서.

무엇보다도 이 마음을 다스리소서.


16910 1993. 5. 26 (수)


안성도장의 안수봉 사장, 여행중 홍콩의 호텔방에서 심장마비로 숨지다.

사장의 사촌, 59세.

불과 며칠전 그토록 활달하던 사람이.


설계부 전장설계의 GT규 부장, 정년을 불과 2년 앞두고 보따리를 싼다.

도태되는 기성세대.


간밤.

뒤척이는 J의 기척에 잠이 깬 2시부터 잠 못이루다.

잠이 오지 않으면 차라리 벌떡 일어나 내 방 불밝혀 경건한 독서라도 하면 좋으련만, 나의 미련함은 5시까지 그저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고만 있는다.


英이 오늘 SEA SOUND 공연.

화창한 날씨.


16911 1993. 5. 27 (목)


모처럼 생산관리부의 공정 공무 파트와 QC 파트와 연석하여 회식.

스무명 남짓의 떠들썩함.

부서장, 또한 가장 연장자인 나는 서른에서 마흔안팍이 대부분인 그 젊음들에게는 아무래도 후즐그레할 것이다.

우두머리의 폼보다 그들의 에너지에 주눅이 들어버리는 꼴.

12시 넘어 돌아와 쓰러지다.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모른채.


여태 작취미성.


16912 1993. 5. 28 (금)


설계부 GT규부장 송별회식.

급하게 마련한 감사패와 금반지 전달하고 삼계탕 한그릇씩 먹고, 그렇게 직장인들은 만나고 헤어진다.


俊이 주민등록증 발급 신청.

俊이도 성인이 되어가는 구나.


석가탄신일.


16913 1993. 5. 29 (토)


세수도 하지 않은채 뒹구는 휴일의 불건강함.

俊이 빌려온 비디오 테이프.

'배트맨 2'

헐리웃적인 상상력과 물량동원의 오락영화.

팽귄 맨의 지하제국. 어딘가 모세를 빗댄듯한 팽귄 맨은 구약을 모독하는 듯 하다.


몸살기운.

J에게 수지요법의 뜸을 맞는다.

무언가 배우고자 하는 태도는 J의 좋은 점 가운데 하나.

몇 개월 습득하여 시술해 준 J의 실력은 아직까지는 돌팔이인지 몸살기는 똑 떨어지지 않는다.


바람소리는 으르렁 거리는데, 먼데 바다에서 파도는 일지 않고 있다.


16914 1993. 5. 30 (일)


93년의 5월, 마흔여섯의 오월도 스러져 지나간다.

하루하루 시간은 흘러가는데 나는 그저 길목에 선채로 과거에 먹었던 그것들을 되새김질만 하고 있구나.

이렇게 늙어 늙어서 이윽고 그냥 스러져 가려느냐.


회색수면-

순결하고 무구한 하나님의 수면이 아닌 회색수면.

깨다가 자다가, 자다가 깨다가.

온갖 미망의 심층심리의 늪 속에서 살고있는 벌레들은 신의 순결한 수면을 어지렆히고 만다.

죄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 단순한 순결함의 명명백백한 자연현상를 거스르는 것, 즉 기억 심리 반추 행위...가 아닌지?

꼭두새벽 벌떡 일어난다.


J를 들깨워 새벽의 태종대를 간다.

새벽이라지만 5월의 5시는 이미 해가 불끈 솟아있는 아침이다.

태종사 못미처서 숲으로 빠지는 샛길.

포장도로를 조금만 비껴 들어서면 이토록 좋은 숲길이 있었다니.


초여름 표정 완연한 가득한 태양과 바다.

태종대를 걷는 사람들은 건강하다.


주님께 기도드린다.

'드린다'와 '한다'의 차이.


16915 1993. 5. 31 (월)


71년도 그 무렵.

내 나이 스물서넛.

제대하고 복학을 하지 못하여 방황하였던 시절.

그때 JN영 , WS규, KH근 등과 교제가 이루어졌고 J와의 관계가 재설정 되었지.


그 때, 인생은 내게 있어 무엇이었던가.

무위로서 인생을 파악할수 있다고 믿었던 오만함.

그 무위는 영감이었을까.

그러나 오만함 뒤에서는 항상 열등의식과 불안감이 떨고 있었다.


소주와 오징어를 옆에 가져다 놓고 그 시절 썼던 습작들을 P/C 에다 집어 넣는다.

중 고교때의 소설들과 습작들.

생각컨데 그 때에는 쉽게 글이 씌어졌던 것 같은데, 지금은 한줄 글쓰기가 이토록 힘에 겨웁다.

년조가 깊어진 신중함 때문일까? 아니다. 아니다.

겁쟁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시나브로 소주 두병을 비우고 만다.


따스한 5월의 끝날 아침.

신록의 냄새가 물씬 날것만 같은 바다와 숲을 내려다 본다.


시편 38.

주 나의 구원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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