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部分

1998. 5

카지모도 2016. 6. 26.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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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2  1998. 5. 2 (토)


옛 직장 대선조선의 해고바람.

CG준, KD철, LJ숙, HI수, KK선, JH국, KC수등... 의 생산부 면면들.

우스운 사실은 총무부장 HH기 씨가 그만두었다는 사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장의 아들 AJ용 과의 갈등구조로서 유추할뿐.


시계 이미지 작업.

영화 타이타닉에서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와 여주인공이 배의 선수에서 연출하는 유명한 장면에 英이 이미지를 합성하여 캔버스에다 출력한다.

졸지에 디카프리오의 가슴에 안긴 英이.


토요일 아침.

휘몰아치는 바람소리, 빗발은 가로로 나른다.


오늘 俊 오는 날.


18713  1998. 5. 3 (일)


俊 휴가.

서울 들러 제 고모집에 가 할머니와 고모식구들 뵙고 비행기로 12시 넘어 돌아오다.

할머니 어떠시더냐는 물음에 "마음이 아프지 뭐" 하는 자식놈의 대꾸가 아비의 가슴을 친다.


제대 7개월여 남겨 둔 아들.

전보다 훤해진 얼굴, 미남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본시 못생긴 손과 발은 귀공자풍 얼굴에 비하여 사못 막노동자의 형상이지만 아비에 비하면 진짜 사나이다운 손과 발이 아닐수 없다.

얼마나 성숙해졌는지. 어느 만큼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였는지. 자세히는 알수 없으되 확실한 것은 부쩍 어른스러워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때로 녀석의 포즈나 말투나 동작에서 철없는 구석이 아비의 눈에 느껴지는 것은 실은 아비라는 일반적인 성향인 노파심이며, 그 나이에 내게 없었던 것들에 대한 보상심리의 무엇일것.


잠이 오지 않는다.

어머니...

俊이...

경제...


18714  1998. 5. 4 (월)


일요일.

俊이를 비롯해 세식구는 곯아떨어져 있고, 밤을 꼬박 지샌 나는 가희에 나가 앉는다.

고교시절의 俊이가 활짝 웃고 찍은 사진과, 가수 그룹 H.O.T와 합성하여 실제 승준이가 그들과 어깨동무하고 찍은것처럼 캔버스에다 뽑는다.

철그물걸이를 밖에다 세워 갖가지 이미지들을 전시해 놓는다.

훨씬 풍성한 눈요기감이다.

아이들 가뭇없이 오며 가며 멈추어서서 재잘거리며 히히덕거리기는 하는데, 문을 밀고 들어서는 녀석은 없다.

좀 더 부담없이 들어올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만둘때 까지는 가희로부터 수입이 있어야 한다.


俊이와 가희.

부자 나란히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누나의 남자친구 A군 얘기며, 가게의 운영 얘기며, 아비의 생각들....


일요일, 俊이는 비디오 테이프 빌려다 가희를 지키고 나는 8시경 집으로 올라온다.

A군과 데이트하고 함께 가희에 온 英이, 피자를 시켜 함께 먹었다고.

아비짜리는 그런 세 젊은이의 그림이 상상만으로도 흐뭇하다.


에베소서.

기도.


18715  1998. 5. 5 (화)


부전동 옛 기독교 방송국이었던 기독교용품 백화점의 낡은 건물.

온성도 기획- JB천 사장 만나다.

시계 건.

카타로그 받고 그 중에서 주문하기로.

표시가격의 60% 선으로 얘기되다.


밖에 내건 울긋불긋함 때문일까.

쇼윈도우 앞 젊은 아이들은 꾄다.

그래도 들어서지 않는 것을 보니 가격이 부담인 모양이다.


정보지에 점포 임대 광고 내다.


18716  1998. 5. 6 (수)


화창한 어린이 날.

나는 어린이가 아니다.

그러나 화창한 오월.


장인어른 생신.

가게를 핑계 삼고 나는 가지 않는 것이지만 정작 장인 사위의 마주 봄이 피차 편편치 못할 것.

사위 녀석은 지금 이토록 힘이 드는 까닭이다.


형에게서 전화.

정식개업은 5월 11일이라고.


여호와의 증인 할머니, 그 할머니는 샘표간장 사장 누나인 이사직책의 할머니.

J와 나에게 말할수 없는 지극 정성이다.

한 30분 성경 얘기 나누다가 낡은 옛날 흑백사진 맡겨 복원을 주문한다.

옛날 이화여대의 멋쟁이 여대생 사진, 그렇다.

젊었을때 누구나 자신은 가장 예쁘다.


그 복원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려니 S곤이 차를 몰고 마누라와 함께 찾아오다.

생선회를 한 보따리 사들고서.

가게 뒤편 상펴 앉아 소주와 회를 먹는다.

어두워 질때까지.

친정에서 돌아온 J도 함께 어울리고, 나는 S곤 부부의 사진을 찍고 정다운 포즈로 연출하여 뽑는다.

늦은 시각 술오른 마누라 싣고 S곤이는 돌아갔다.


18718  1995. 5. 8 (금)


자정 조금 지나 형에게서 전화.

어머니 용태 악화.

媛이는 어머니의 갑작스런 상항에 혼비백산하여 119까지 불러 병원행.


날이 밝으면 J 와 英이는 예약되는 첫 비행기로 서울로 올라갈 것이다.

앰블런스로 부산으로 후송.


어머니.

벌떡이는 핏줄의 용렬한 사내는 고작 잠을 이루지 못할 뿐.

부엌의 어둠 속, 바닥에 무릎 꿇어 엎드려 울부짖는 기도는 눈물이 되어 뚝뚝 떨어지는데.


하나님이여.

정결함으로 회복할수 있는 아주 조금의 기회를 주십시오.

이대로 어머니를 보낼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자, 옛날 옛적 꿈꾸었던 그 관계의 정결함을 회복한 연후에 소천케 하십시오.

제발 정결함을 되찾은 후에 우리 모자 이별하게 하십시오.

최후의 아름다움으로 우리 모자 헤어지게 하십시오.

주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립니다.

아멘.


18719  1998. 5. 9 (토)


어머니, 망가지는 육신과 흐트러지는 기력과 혼미한 정신으로, 媛이와 J와 英이 둘러 싼 앰블런스 실려 고속도로 타고 내려 오다.

두 아들이 있는 부산 영도로.


영도병원의 응급실, 해체되는 육체 속에 깃든 어머니의 마음 한줌 이 불효한 아들놈은 읽어낼 재간 없어 물끄러미 자식 놈을 치어다보는 어머니라는 이름의 눈빛을 내려다 본다.


새벽의 기도는 사악하고 이기적인 이 마음밭에 조금의 아름다운 넋이라도 깃들게 하는가.

어머니 최후의 순간, 진실로 아름다운 모자간 정결함의 회복없이 떠나 보낸다면 나는 내 삶의 가치를 확보할 아무런 근거도 갖지 못할 것이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아름다움으로, 오직 아름다움으로.


어머니, 그래도 아들놈들 보니 기력이 다소 좋아지신다.

감사. 감사.

하나님께서는 기회를 주신다.

나와 같은 자식놈의 용렬함 따위는 문제도 아니다.


밤 늦은 가희.

어머니 사진을 모니터에 올려놓고 그 어여쁜 어머니의 얼굴을 어루 만지며 화장해 드린다.

아마 이 사진은 언젠가 어머니의 영정 사진이 될 것이다.

불현듯 치미는 기쁨같은 눈물.


18720  1995. 5. 10 (일)


여기저기 전화하여 어머니 유택을 알아보는 자식이라는 이름의 놈.

냉정하기 이를데 없다.

나.


아름다움으로, 어머니.


영도병원의 8층.

쇠잔해 가는 생명의 촛불.

그 촛불을 가누시면서 어머니는 온갖 사념을 넘나드신다.


"나는 예수를 믿지 않아" 이 말씀은 예수 믿는다는 자식들의 추악함을 나무라시는 한마디.

"처량하다.... 처량한 것..." 이라고 자꾸만 되뇌이시는 그 영혼 속에는 역시 회환과 살아오신 생애의 허무함이 넘실대고 있을 것이다.


아, 지금 뉘라서 어머니의 영혼에다 안식하소서라고 속삭일수 있단 말가.

뉘있어 어머니와 함께 아프고 아픈 기쁘고 기쁜 그것들을 함께 할수 있단 말가.


그 볼을 부비면서 그저 뜨거운 눈물만 솟구치는대로 엄마, 천당을 생각하세요. 먼저 가 계세요. 뒤따라 곧 우리도 갈거예요하며 중언부언 흐느끼는 아들 놈들은 과연 지금 어머니의 저 신비한 의식 속으로 닥아 갈수나 있단 말가.


처량하다고, 처량하다고 끊임없이 되뇌이시는 어머니.

어머니 의식속 느낌이 처량한 만큼 어머니의 영혼은 처량하련가.


지난 밤, 어머니 숙면하시다.


18721  1998. 5. 11 (월)


어머니 한결 좋으시다.


엊그제 그 단절의 문턱에서 헉헉거리던 어머니는 이제 생의 이 쪽에 거하신다.

또렷한 의식.

고비를 넘기신 건가.

안심할 수는 없다.

워낙 쇠약해 지셨다.


서울서 珍이 아빠, 珍이 내려왔다가 어머니 상태 호전하심을 보고 밤열차로 다시 올라가다.

媛이는 그저 어머니 곁을 지켜야 하는 하나 뿐인 딸.


A군, 병실에는 들어오지 못하고 英, 俊, 彦이 데리고 나가 한턱을 쓴 모양.

彦이는 술을 많이 마셔 오바이트까지 하였다고.

이런 젊은이들의 어울림이 흐뭇하기 그지없다.


존재란 참을수 없는 가벼움인가.

밀란 쿤데라의 존재란 이런 경우를 얘기하는 걸까?

가장 사랑하는 것과의 단절위기 앞에서도 흐뭇함은 흐뭇함일지니.

존재라는 가벼움의 부침이 이토록 자심하다.


관계의 부박성으로 인한 피해의식은 나의 용렬함으로 인한 자의식.

이 자의식이란 놈은 관계의 절절한 순수에 대한 모독일 것인데.

그 모독이 밉고도 밉다.

하나 밖에 없는 형, 하나 밖에 없는 동생.


비바람.


俊이 오늘 귀대.

좀 전 어미와 누이와 집을 나섰다.


주님하고 부를때, 주님이시여 이 마음의 용렬함들을 씻어 주소서.


18722  1998. 5. 12 (화)


바람불고 종일 비.

가희에 들어 앉아서 종일 밀린 작업.

그림을 뽑고, 이미지 시계를 만들고, 주문받은 명함 만들고, 주문받은 사진을 복원하는등..


俊이는 홍천 무사히 귀대하여 전화하였고.


어머니 한결 좋으시다.

존재의 가벼움을 자꾸만 참을수 없어 하지 말라.

산 것들의 어쩔수 없는 살아가는 꼬라지인걸.....


용렬함은 그러나 나무라야 하리라.

어느 경우나 피해의식, 자의식이 슬몃 아픈 고개를 들때마다 주님 하고 불러서 능력의 손길로 잠재워야 한다.


어머니 한결 좋으시다.


비는 그쳤으나 하늘은 잔득 찌푸려있다.

늦잠.

모처럼의 깊은 늦잠.


18723  1998. 5. 13 (수)


어제 어머니께 가지 않다.

어머니는 많이 좋아지셨다고.

그곳서 밤을 지샌 J와 英이.


일취월장 하시라.

슬슬 몸을 추스르시고, 더욱 발전하여 슬슬 걸으시고, 신변잡사를 혼자서 아우를수 있을 지경만 되었으면.

더도말고 21세기 들어서는걸 보시라.

나의 노파여.


어머니의 고비를 넘기심.

나에 대한 교훈을 거기서 깨달아라.

이제 용렬함으로 하나님의 주신 관계를 모독하여서는 안된다.


포토아트를 주문하는 젊은 여인에게서 확 풍겨오는 화장품 냄새.

확 치미는 성욕 비슷한 느낌.

존재란 이런 것.

이토록 가벼운 것.

존재란.


18724  1998. 5. 14 (목)


나는 어머니 곁에 있는 동안 媛이는 가야숙모 차를 타고 가희 다녀온다.

다녀오고 나서 가희의 분위기에 대한 동생의 품평이 나쁘지 아니하여 기쁘다.


그런데 어머니는 힘이 없으시다.

당신의 신변잡사 하나 처리치 못하는 상태에 대한 우울함.


주님은 좁은 것은 넒혀주시고 저급한 것은 고급한 것으로 만들어 주신다.

내 용렬함과 저급한 정신을.

그리하여 주님은 나의 능력인 것이다.


18725  1998. 5. 15 (금)


PI서 씨와 통화.

KO훈 가희 방문.

대선소식을 들었는데 이번 대기발령은 스무나믄 명.

대기발령 받은 사원들이 이에 반발하여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 핵심 인물은 SM군, WS훈 이고 위원장에는 PS동.

그런 조직의 리더가 PS동 이라니 뜻밖이다.


10시경 어머니께.

서울서 珍이 내려와 있고, 媛이는 오늘 저녁 6시 珍이와 함께 서울로 돌아간다.


기도.

아름다운 관계.

관계의 정결함, 순정함.

용렬함이라는 넝마 벗어던지기.

하나님께서 이번에 어머니를 데려가시지 않는 이유.

정결함으로의 회복 기회를 주시는 것.

못나고, 어리석고, 좁고, 물질적이고, 이기적인 가시가 솟아날때마다 철커덕하고 단숨에 잘라주시는 살아계신 손길.


18726  1998. 5. 16 (토)


가희 종일 작업 열중.

달걀을 사다가 점심으로 삶아 먹어가면서.


스승의 날이라 그런지 제법의 매출.

아, 늘 이정도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KS동 씨와 낯 붉힐 일 없이, 고정비 카바하고 생활비만 벌게 되었으면.


媛이는 珍이 와 함께 서울로 돌아가다.

어머니, 그나마 살갑게 편한 딸자식 보내고, 멀대같은 아들들과 며느리들 손에 남겨지시다.


가게 마치고 늦은 밤 병실에 들어선다.

J혼자 지키고 있는 그곳에 곤한 잠에 빠지신 어머니.

부기는 많이 가라 앉아서 자식놈은 마음이 좋다.


밤을 지킬 간병인.

반 10시부터 아침 10시까지.

일당 2만 5천원.


어머니의 이번 고비.

하나님께서 마지막 허락하신 기회.

용렬함 벗어던지기.

정결한 관계의 회복.

그리하여 아름다운 어머니의 죽음을 이루도록.

어머니의 영혼을 창조하신 그 분께 조금도 부스러뜨림없이 고스란히 가져 가실것.


감사와 간구.


18727  1998. 5. 17 (일)


저녁 4시부터 간병인 오기까지의 시간.

어머니와 단둘이 있는 병실.

혈압이 오르고 감기증세가 있는지 기력이 영 처지신 어머니.

조그만 스푼으로 떠드리는 죽도 반그릇을 비우지 못하신다.

그릉그릉 가래 끓는 호흡이 곁에서 수발이랍시고 드는 자식놈을 답답하게 한다.

간호원을 불르고 내과과장을 오게 한다.

X-RAY 결과도 별 이상없어 진찰하더니 아마 가벼운 감기증세인 것 같다는 말이다.


10시 못미처 온 간병부.

조그마한 몸체에 안경을 쓴 아주머니.

늙은 노파를 부탁하고 돌아온다.


일요일.

살아계신 그 분의 손길.

그리고 그 손길은 나를 못나빠지지 못하도록 지켜 주신다.


18728  1998. 5. 18 (월)


일요일.

가희에는 여러 사람이 찾아온다.


SJ엽 부부.

PS동, 노동조함 위원장 때려치고 결국 사직서를 내었다고.

느긋하게 낙천적인 그의 성격에도 실업이라는 고통의 표정은 없지 아니하다.

CS교 부부.

KMS도 매우 불투명한 전망이라고.


저녁에 병원에 간다.

어머니는 그만그만하시다.

소강상태.


손톱 발톱 깎아 드리다.

어린아이처럼 손 발을 아들놈에게 내 맡기시고는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신다.

아, 어머니가 웃었다.

좀 바투 깎이면 "얘, 아파!" 하시고 내 바싹 깎인 손톱을 끌어당겨 보시고는 "하여튼 너는.."하신다.

손톱 발톱을 바투 깎는 내 버릇을 지적하시는 말씀.

어머니의 발은 퉁퉁 부어 발목과 정강이의 구분이 없다.

어머니는 침대의 등을 높히고 편안한 포즈, 아들놈은 그 곁에 의자를 끌어 앉는다.

모자는 도란도란 길고도 긴 얘기를 나눈다.

어떤 얘기를 하실적에는 뾰르퉁한 표정도 지으시고, 또 어떤 에피소드를 얘기하시고는 호호 웃으신다.

모자는 끝없이 호호 하하 얘기를 나눈다.


그러다 "똥"하시면 나는 급히 변기를 받처드리고 뒷수발에 바쁘다.

아기.

어머니...


18729  1998. 5. 19 (화)


성큼 더워지다.


내 병실 당번은 7시부터 10시까지.


낮에 두 번 대변을 보셨다는데 나 당번일때도 세 번을 보신다.

어린애 주먹만큼씩.

그 똥묻은 엉덩이를 거스로 닦아 파우다를 두드리고, 시트를 갈아드리며 뒤처리를 하는데 어머니 똥이라고 왜 더럽지 않으랴.

똥 누겠다는 신호없이 느닷없이 여기저기 똥칠갑을 하는 어머니에게 신경질을 부리는 아들 놈.

"엄마, 똥마려우면 똥! 하세요 똥!"

부모 병구완 1년 효자가 없다는데 나는 고작 며칠만에 이 지경이다.


18730  1998. 5. 20 (수)


급격한 악화.


의식을 놓으시다.


그런 중에도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어머니.

그것은 기도다,

어머니의 기도.

때로 알아들을수 있는 언어있으니.

"믿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아, 엄마 그래요.

그렇게 살고자 해야 돼.

살고자 해야 하나님이 살려 주시는거야.

기회를 달라고 기도를 해.

살아나. 엄마.


18731  1998. 5. 21 (목)


J가 지키는 오후에 가래가 끓어 호흡이 곤란해진 어머니.

간호사 쫓아오고 내과과장 쫓아와 응급조치, 가래를 뽑아내고 일단 진정.


내가 갔을 때는 의식도 말짱하시고 풀썩 웃기까지 하시고.

일으켜 침대에 앉혀드린다.

띄엄띄엄 내게 많은 말씀을 하신다.

자포하시는 말씀, 회하시고 스스로 자책하시는 어머니.. 어머니...

때로 정신이 혼미해지셔 여기가 서울인지 부산인지도 모르시고...

..그때 갔어야 했어... 이대로 살면 무얼하니...


아 어머니는 가시려고 하는 것이다.


새벽.

기도와.. 기도와.. 눈물.


18732  1998. 5. 22 (금)


어머니, 의식을 놓다.


헛소리.

다리는 다시 붓기 시작한다.

소주 들이키면서 어머니 손을 뺨에 대고 흐느끼건만.

어머니는 가시려고 한다.


18733  1998. 5. 23 (토)


어머니, 이대로 쇠잔하는가.

일년만 딱 일년만 더 살수는 없는가.

관계는 아직 정결하지 아니하였다.

어제부터 J는 밤을 꼬박 어머니 곁에서 보낸다.

밤새 가희 들어 앉아 큰소리로 성경을 읽는다.

하나님

창조하신 그 분을 다시 느껴..  느껴...

흐느껴...


18734  1998. 5. 24 (일)


어머니는 언어를 잃어 버렸다.

눈동자도 초점을 잃었다.

가쁜 숨만 몰아 쉴 뿐이다.

때로 두 팔을 춤추듯 허공을 휘젓는다.

초점없는 눈동자는 허공의 한 점을 뚫어지라고 응시하고 있는데.

누구를 그토록 뚫어져라 바라보는가.

죽음의 사자인가, 당신의 하나님인가.

어머니.

가셔야 할 길이라면 그저 가소서.

아아 주님.

도우소서.


18737  1987. 5. 27 (수)


엄마 죽었다.

5월 24일 오후 3시 30분.

작은 아들놈은 임종도 못하고.


18738  1998. 5. 28 (목)


양산 신불산 자락.

5월 26일 12시 묻다.

한평도 못되는 땅속에 꽁꽁.

엄마는 죽었다.

내 엄마는 죽고 나는 가벼운가.


18739  1998. 5. 29 (금)


산록은 우거지고 푸르름 온누리 가득한데.

까막 까치는 종종거리며 낯선 비석 근처를 종종거리는데.

어머니 꽁꽁 땅 속에 묻혔다.


남아있는 형제들의 징그러움은 이토록 가벼운데.

내 엄마는 죽었다.

추상이 되었다.


18740  1998. 5. 30 (토)


죽은 몸뚱이를 닦아드리던 감촉, 손끝에 그대로 살아있는데.

볼은 아기처럼 말랑하고 손톱이 조금 검어졌을뿐 고운 손은 그대로.

그 볼에 뺨을 대니 온기도 느껴지던데.

솜으로 목욕한 엄마, 고운 수의로 호사하고 좁은 상자에 누우셔 뚜껑을 닫고 꽝꽝 갇혀 버려...


18741  1998. 5. 31 (일)


가희 문 열다.

가희로 장장로님과 사모님 찾아 오시다.

어머니 얘기.

그동안의 어머니 얘기 들려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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