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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4권 (17)

"여게 자네 술 먹을 줄 아나? " "사내자식이 술 못 먹을까. " "그럼 한잔 먹으려나? " "주면 먹지. " 총각은 쇠고삐를 쥐고 걸음을 멈추고 유복이는 술병과 홍합을 손에 들고 내려왔다. 총각이 남은 술을 병으로 들이켜고 홍합 서너 개를 한꺼번에 입에 넣고 꺼귀꺼귀 먹었다. 유복이는 총각이 무식하게 먹는 것을 서서 보다가 흘저에 오가 의 이야기가 생각나서 혼자 웃었다. "왜 웃소? " "그까지 웃는 곡절은 말할 것 없구 인사나 하세. 나는 박서방이란 사람일세. " "나는 곽도령이란 사람이오. " " 이름은 무엇인가? "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오? “ ”내 이름은 유복일세. " " 내 이름은 오주요. " "고향이 어딘가? " "황해도 강령 이오. " "나두 고향이 강령 일세. " "거짓말 마우. 말이..

임꺽정 4권 (16)

총각이 오가의 욕은 탄하지도 아니하고 유복이더러 "강아지 아니구 박아지라두 좋다. 박아지는 개울물에 엎어놓구 박장구치지 걱정이냐. " 말하고 다시 흥이 나서 웃었다. 유복이가 오가를 돌아보며 "여기서 구경만 하시오. " 말하고 혼자 내려오니 총각이 "두 놈 다 한꺼번에 내려와두 좋다. " 하고 횐목을 썼다. 유복이가 언덕 위에서 내려와서 총각과 마주섰다. "네가 떼밀기를 잘한다지. 나두 떼밀겠느냐? " "너는 별놈이냐? 막이 도둑놈이지. " "아무더러나 함부루 도둑놈이라구, 그래 이놈아. " "도둑놈의 앙갚음해 주러 온 놈두 도둑놈이겠지." "도둑놈이건 말건 그건 고만두구 한번 나하구 떼밀기 내기하자. “ "어떻게 하잔 말이여? " "요전에 두 팔을 치켜들구 떼밀었다지, 그 시늉을 내보자꾸나. 너하구 나..

임꺽정 4권 (15)

제 2장 곽오주 1 금교역말은 강음현 땅이니 금교역말서 우봉현 홍의역말로 가려면 반드시 탈미 골을 지나가고 탑거리로 나오면 청석골을 오게 된다. 탈미골도 도적의 소굴이요, 청석골도 도적의 소굴이라 말하자면 금교역말은 도적 소굴 두 틈에 끼여 있는 셈이었다. 금교역말 장날 장꾼들이 탈미골이나 청석골을 지나갈 사람이면 다 일찍이들 나가는 까닭에 금교역말 장은 어느 때든지 중장만 지나면 다른 장터 파장머리와 같이 흩어져 가는 장꾼이 많았다. 금교역말 장날이다. 벌써 중장이 지나서 장꾼 이 많이 풀렸을 때 우락부락하게 생긴 거무무트름한 총각 하나가 쌀자루를 걸머 지고 탑거리 편에서 장으로 들어와서 바로 시겟전을 찾아왔다. 말감고가 쌀을 보고 "이거 산따다기로군. 액미가 너무 많은걸. " 하고 쌀을 타박하니 그 ..

임꺽정 4권 (14)

유복이의 안해는 사지를 오그리고 누워 있고 유복이는 아주 일어 앉아서 방문을 바라보고 있는데, 방문이 버썩 열리며 칼빛이 번쩍하였다. 유 복이가 손에 들고 있던 표창을 얼른 내쳤다. 칼이 쨍그랑하고 떨어졌다. 유복이 가 일어서는 결또 발길을 날리어서 그자의 가슴을 내지르고 쿵하고 마당에 나가 자빠지는 것을 뒤쫓아 뛰어나가 한 발로 가슴을 밟고 서서 "이놈, 네가 죽고 싶 어 성화냐! " 하고 호령하니 그자는 셈평 좋게 활개를 벌리고 누워서 "에라 발 치워라. 가슴이 답답하다. " 하고 핀등핀등 말하여서 유복이는 도리어 어이가 없 어졌다. 이때 안방에서 주인마누라가 뛰어내려오고 아랫방에서 유복이 안해가 쫓아나왔다. 희미한 별빛 아래 주인마누라가 한번 살펴보고 영감의 가슴을 밟고 섰는 유복이에게로 가까이 오..

임꺽정 4권 (13)

처음 얼마 동안은 서관대로로 오다가 동이 트고 날이 밝아서 사람이 드문드문 눈에 뜨이니 유복이 내외는 대로를 버리고 소로로 잡차들어서 북쪽을 향하고 올 라왔다. 유복이 내외가 소로로 들어선 뒤 오리 길을 채 못와서 안해가 발을 끌기커 녕 다리를 절기 시작하였다. 그 소로가 그다지 험한 길이 아니건만 발이 아픈 사람에게는 편편한 대로를 걷기보다 더 힘이 들어서 "다시 큰길로 나갑시다. " 하고 안해가 조르니 "우리 처지가 어디 펼쳐놓구 큰길루 갈 수 있나. " 하고 유 복이는 말 막았다. "큰길만 못해서 발이 더 아픈 걸 어떻게 해요. " "피나무 안 반을 찾는 셈인가. " "인정도 없소. " "여기 앉아 좀 쉬어나 가세. " 하고 유복이 가 먼저 안해를 길가 정한 자리에 앉히고 그 다음에 짐을 벗어놓고 ..

임꺽정 4권 (12)

"그런데... “ 하고 남자는 말머리를 고치었다. "내가 살인하구 도망해서 숨어 다니는 사람일세. " "사람을 죽였어요? ” 하고 여자는 말소리가 떨리어 나오는데 “그래, 바루 아흐레 전에 내가 사람 하나를 죽였어. " 하고 남자는 말하는 것이 예사로웠다. 여자가 남자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려고 한동안 외면하고 앉았다가 "내가 사람을 죽이게 된 내력을 이야기할 것이니 들어보게. " 하고 남자의 말하는 것을 듣고 비로소 고개를 돌리어서 남자의 입을 바라보았다. "나는 박유복이 란 사람인데... "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여 자기 아버지가 노가의 모함에 죽은 것을 이야기하고 자기 어머니가 남편 원수를 못 갚아서 한을 품고 죽은 것을 이야기하고, 또 자기가 앉을뱅이로 세월을 허송한 까닭에 부모의 원수를 일찍 갚지 ..

임꺽정 4권 (11)

다섯째거리는 제석풀이다. 무당이 머리에 고깔을 쓰고 몸에 백포 장삼을 입고 목에 염주를 걸고 흰 부채를 손에 쥐고 나서서 삼불 제석을 청배하여 단바탕 춤 도 추고 공수도 주고 그 다음에 잠깐 쉬었다가 곧 여섯째거리 전왕놀이로 뒤를 대었다. 무당이 제석풀이 때와 같은 복색으로 춤추고 공수 준 뒤에 바라타령을 시작하여 "바라를 사오. 바라를 사오. 이 바라를 사옵시면 없는 애기 점지하고 있는 애기 수명 장수" 이와 같은 덕담 노래를 장단 맞추어 노래하면서 바라 시 주를 거두러 다니고 굿자리에 돌아와서 바라를 치며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찾 아 염불하고 나서 곧 삼불 제석 송덕하는 제석 노랫가락을 가지고 선 무당과 앉 은 기대가 서로 "얼씨구 좋다, 절씨구 좋다" 하며 하나는 먹이고 하나는 받았다. 전왕놀이는 ..

임꺽정 4권 (10)

한다리에서 사령 둘이 하나는 면상에 생채기가 과히 났을 뿐이고 또 하나는 머리가 조금 깨어졌었는데, 저희들은 죽어간다고 핑계하고 한다리 주막에 편히 누워 있고 사람을 대신 읍에 들여보냈었다. 배천 관가에서는 이 소식을 듣고 홍 살문 안이 발끈 뒤집히다시피 되어 수교 장교와 사령 군노가 한다리로 쏟아져 나갔는데 그날 저녁때 범인이 버드내 근처에 숨어 있단 소문이 들리어서 한다리 서는 곧 버드내로 내려가서 우터버드내, 비선버드내로 돌아다니며 가가호호 적 간들 하고 벽란나루서는 밤에 삼거리로 을라가서 길목을 지키게 되었었다. 삼거 리 간 장교들이 밤들도록 술타령하고 늦잠을 자고 있어서 벽란나루는 비었었는 데, 유복이가 마침 이틈에 와서 말썽없이 배를 타고 나루를 건너게 되었다. 유복 이가 배 안에 있을 때 이..

임꺽정 4권 (9)

유복이가 그 늙은 할머니에게서 점심 한 끼를 든든히 얻어먹고 되돌아서 큰골 로 나오는 중에 찬찬히 앞에 할 일을 생각하느라고 길가에 앉아서 늑장을 부린 까닭에 큰골 앞에 왔을 때 해가 이미 설핏하였다. 유복이가 동네에 들어와서 노 첨지가 어느 집에 있는 것을 알아본 뒤 동네집과 동네길을 다시 자세히 눈살펴 두고 노첨지 있는 산밑 새집을 울 밖으로 돌아보고 남의 눈에 뜨이지 않도록 산 기슭 으슥한 곳에 숨어 앉아서 준비를 차리었다. 보따리에 싸가지고 다니던 표 창과 짧은 환도를 꺼내어서 표창 너덧 개는 손에 쥐고 그 나머지는 유지에 싼 채 괴춤에 넣고 환도는 허리띠에 지르고 고의적삼만 다시 보에 돌돌 말아서 배 에 차고 신들메를 단단히 하고 그리하고 노첨지 집 삽작문께로 걸어왔다. 노첨 지는 칠십 늙은이가..

임꺽정 4권 (8)

3 유복이가 고서방의 장인 큰골 노첨지란 자가 빈틈없이 자기의 원수인 것을 알 고 맘에는 곧 그 시각으로 큰골을 쫓아가고 싶었으나 급한 맘을 가라앉히고 천 연스럽게 앉아 있었다. 밤이 이슥한 뒤 놀러왔던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 이 다 각기 돌아가고 유복이와 김서방과 단 두 사람이 같이 자게 되었는데, 김 서방은 누우며 바로 잠이 들어 드르렁드르렁 코를 쏠고 유복이는 이 생각 저 생 각 조각 생각이 머릿속에 오락가락하여 잠을 잃고 어두운 속에 눈을 뜨고 누워 있었다. 한밤중이 지나서 사방이 고요한데 어디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어서 유 복이가 귀를 기울이고 들으니 말소리가 안에서 나오는 것이 분명하였다. 사내 소리와 여편네 소리가 섞이어 나오는데 사내 소리는 나직나직하고 수가 적으나 여편네 소리는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