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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4권 (27)

“말을 다 들었는데 무슨 이야기가 또 있소?”, “우리 그대루 같이 지내지 다른 데 갈 것 무어 있나? 내가 그 자식을 단속해서 이 담에는 그런 일이 없을 게니 염려 말구 같이 지내세. ”하고 정첨지는 오주를 달래었다. 오주가 위인이 만만치 않아서 휘어부리기가 어려울 뿐이지 힘이 많은데다가 일에 몸을 아끼지 아니하여 오주 하나면 장정 일꾼 몇 사람 폭을 당하는 까닭에 이런 머슴을 놓치 지 않으려고 정첨지는 중언부언 만류하여 놓고 나서 “내가 지금 그 자식을 불 러다가 자네 앞에서 사과시키구 또 장래 그런 일 못하두록 맹세시킴세. ”하고 곧 안에 와 있는 동네 여편네 하나를 불러다가 발매터에 나가서 아들을 데리고 오라고 일렀다. 오주가 한동안 더 정첨지 방에 앉아 있다가 “난 고만 집에 가 보겠소. ”하고..

임꺽정 4권 (26)

“이눔의 호랑이가 다리 병신이로구나. " “내가 뒷다리를 퉁겨놓았소. " 오주가 나무 위에서 꺽정이 말에 대답하였다. 꺽정이가 한 칼에 호랑이를 요정내지 않고 하는 꼴을 두고 보았다. 호랑이가 뛰 면 따라 뛰고 호랑이가 가만히 있으면 같이 가만있고 또 호랑이가 대어들면 피 하다가 호랑이가 피하면 대어들었다. 호랑이가 내빼는 것을 장사로 생각하였던 지 산으로 도망질치려고 뒷다리를 끌며 뛰어가니 꺽정이가 얼른 앞질러 막아서 서 서리 같은 칼날을 내둘렀다. 호랑이가 오도가도 못하고 한곳에 주저앉는데 뒷몸을 눕히고 앞몸만 세우고 아주 죽이라는 듯이 눈을 딱감았다. 이 동안에 오 주가 나무에서 내려와서 반 함통이를 들어다가 호랑이 대가리에 들씌워서 호랑 이가 함통이를 쓰고 한 바탕 곤두를 돌았다. 꺽정이가 이 꼴..

임꺽정 4권 (25)

술상이 굉장하였다. 집에서 잡은 도야지고기와 사냥해온 노루 고기와 벌이해 온 어물로 만든 진안주, 마른안주는 상 둘에 가득 놓이고 새로 뜬 독한 청주는 큰 양푼에 가득하였다. 갱지미 하나가 술잔으로 놓였는데 깊은 술잔 두어 곱절 이 넉넉히 들건마는 큰 그릇으로 마시기 좋아하는 오주 눈에는 너무 작아 보이 었다. 술이 첫순이 끝난 뒤에 꺽정이가 오가를 돌아보며 "대접 하나 가져오라시 우. " 하고 말하여 계칩아이가 놋대접 하나를 가져오니 오주가 먼저 받아들고 " 이것으루 술을 먹었으면 좋겠소. " 하고 그 대접을 꺽정이 앞에 놓으려고 하였 다. "거기 놓지 말구 술을 뜨게. " "자, 받으시우. " "자네 먼저 먹게. " 오주가 사양 않고 들어 마신 뒤에 다시 떠서 꺽정이를 주니 꺽정이가 한 대접 술을 한..

임꺽정 4권 (24)

오주가 유복이와 형제를 맺은 뒤로 거의 한 장도막 한 번씩 청석골 산속을 들 어다니는데 처음에 오주 오는 것을 진덥지 않게 알던 오가의 식구들도 강가의 풍파를 같이 치른 뒤부터 모두 한집안 식구같이 정다워져서 오주가 올 때쯤 되 면 유복이가 말하지 아니하여도 오가의 식구들이 음식까지 유렴하여 놓고 기다 리었다. 새해 된 뒤에는 오주가 정초에 와서 하룻밤 묵어가며 술을 먹고 가고 또 보름 전에 와서 하루 종일 놀다 가고 유복이가 양주 꺽정이 집에 가서 칠팔 일 있다 오는 동안에 한 번 와서 다녀갔었다. 그때 와서 말이 계집 하나 생기게 되었으니 생기거든 데리고 오마 하고 갔는데 그 뒤 벌써 두 장도막이 지나도록 다시 오지 아니하렸다. 유복이가 날마다 식전이면 "오늘은 이 자식이 오려나. " 하고 종일 고대..

임꺽정 4권 (23)

과부가 정첨지 집에 와서 몸져 눕는 길로 곧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앓았다. 정첨지는 며느리 시켜 구호를 극진히 하게 하고 과부 누운 아랫방에 여편네 한 둘은 밤낮 떠나지 않도록 하고 사내는 누구든지 범접 못하게 하였다. 정첨지의 며느리가 정첨지보고 "앞으로 과부를 어떻게 하실랍니까? " 하고 의향을 물으니 정첨지는 자기 마음에 작정한 대로 "병만 낫거든 곧 저의 집으루 보내줄 테다. " 하고 말하였다, 정첨지 아들이 이 말을 전청으로 듣고 몸이 달아서 구변 있는 동네 늙은이 하나를 중간에 놓고 아비 의향을 돌리려고 애를 썼다. 정첨지 아들 의 청을 받은 늙은이가 정첨지 집에 와서 겉으로는 그저 놀러온 체하고 정첨지 와 같이 담화하는 끝에 과부 말을 끄집어냈다. "그 과부가 병이 났다더니 대단치 나 않은가..

임꺽정 4권 (22)

정첨지 아들이 곽오주를 돌아보며 "여게, 자네가 내 대신 저 사람들 데리두 집에 가서 슬그머니 술을 퍼내다 먹게. " "내가 어떻게 슬그머니 퍼다 먹어. " "술독 있는 데 알지 않나? “ "그러지 말구 우리와 같이 가서 술을 내다 주구 다시 오지. " 오주의 말에 여러 사람이 뒤쫓아서 "여게, 그래 보세. " "자네는 곧 일어서게그려. " "기절한 사람 가만히 두면 절루 펴나네. 염려 말게. " "자네 고모님이 어련히 잘 보아주시겠나. " 중구난방으로 조르는 바람에 정첨지 아들은 기절한 과부를 그 고모 에게 부탁하고 곧 여러 사람을 몰고 자기 집으로 왔다. 여러 사람을 머슴방에 들여앉히고 정첨지 아들이 안에 들어가서 안해를 깨웠다. "인제 왔소? 지금이 어 느 때요? ” "샐 때 다 되었어. 고만 일어..

임꺽정 4권 (21)

두서너 사람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모양이더니 그중에 하나가 저벅저벅 아랫방 을 향하고 와러 방문을 왈칵 열어젖혔다. 이때까지 곤히 잠든 아이까지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너희가 다 누구냐! 이리들 나오너라. " 산수털벙거지의 호령이 떨어지자, 어머니가 선뜻 일어서서 딸을 가리키며 "이 딸자식이 지금 앓아 죽게 되어서 걸음도 잘 걷지 못합니다. " 하고 사정하여 보았다. 이때 날이 이미 환하게 밝아서 방안에 있는 얼굴들이 방 밖에서도 보이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았던 딸이 그 어머니 말끝에 고개를 들고 밖을 바라보는데 해쓱한 얼굴이 소복에 얼빠져 보이기도 하고 더 돋보이기도 하였다. 겁을 먹고 떠는 양이 흡사 배꽃 한 가지가 몹쓸 비바람에 부대껴 떠는 것과 같아서 누가 보든지 애처로운 생각이 날 만하였다...

임꺽정 4권 (20)

강가 처남 매부 두 사람은 이 세상을 영결하고 강가의 외사촌 두 사람은 오금 아 살려라 하는 격으로 장달음을 쳐서 오가의 집에서 멀리 나왔으나, 길을 몰라 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두석산 속에서 해를 거의 다 보내고 무진 애를 쓴 끝에 간신히 산속에서 나오게 되었다. 날은 어둡고 길은 험하고 배는 고프니 업친데 덥친 셈이라 죽을 고생 다하고 한밤중이 지난 뒤에 갈여울로 돌아왔다. "형님, 바루 집으루 갑시다. " "그럼 집으루 가지 어디루 가. " "고모부 아저씨 집에 들 어가지 말잔 말이오. " "네나 내나 이야기할 기운이나 있어야지 들러 가지. " "그 렇기에 말이오. " "지금쯤 다 자겠지? " 형제가 다같이 드문드문 풀기 없는 말을 주고 받으며 동네 안으로 들어오는데 동네 개가 컹컹 짓더니 들어 가지..

임꺽정 4권 (19)

유복이의 안해가 손에 체를 쥔 채 계집아이 손가락 가는 곳을 바라보니 과연 산 위에 사람이 섰는데 하나도 아니요 여럿이다. 체를 내던지 다시피 놓고 일어서서 발에 신을 꿰며 말며 아랫방으로 쫓아내려와서 사람들이 앞산 위에 나섰다고 말하였다. 오가는 "사람이야? “ 하고 먼저 일어나 나오고 유복이는 오주를 향하여 "잠깐 혼자 앉아 있거라. " 하고 그 뒤를 따라나왔다. " 사람이 셋이지? " "셋 같지 않소. 넷인가 보우. " "손에 무엇들을 든 사람이 셋 아니야? " "사냥꾼들인가 보우. " "요즈막 송도 군관이 자주 나오더니 냄새를 맡 구 밟아 들어온겔세. ” "수상하우. " "큰일났네. " "어떻게 할라우? " "도망질치 지 별수 있나. " 오가와 유복이가 마루에 서서 서로 수작하며 바라보는 중에 산..

임꺽정 4권 (18)

유복이와 오주는 형제의를 맺은 뒤 오주가 새로 생긴 형수인 유복이의 안해를 같이 가서 상면하겠다고 말하여 유복이는 오주를 데리고 산속에 있는 오가 집으 로 들어오게 되었다. 유복이가 오주를 대문 밖에 세우고 먼저 집에 들어와서 오 가 내외와 자기 안해를 보고 오주 데리고 온 사연을 말하니 오가는 "자네가 처 음부터 그 총각을 사랑하더니 그예 아우를 만들었네그려. 이왕 데리구까지 왔으 니 불러들이게. " 하고 선선히 말하나 오가의 마누라는 자기 남편을 골탕먹인 것 이 종시 마음에 맺혀서 "쇠새끼 같다는 위인을 만나러 다니는 것도 부질없는 일 인데 형제의를 맺은 것은 생각 덜한 짓일세. " 미타하게 말하고 유복이 안해는 자기가 도망꾼이라 외인을 만나는 것이 마음에 좋지 아니하여 "요전에 내 말 했 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