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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4권 (7)

"강령서 나셨는가요? ” "아니, 내가 옹진서 이리 이사온 지가 한 이십 년밖에 아니 되었어. " "녜, 옹진 사시다 오셨어요? 그러면 나시기도 옹진서 나셨겠구먼요. " "그래, 옹진이 내 고향이야. " 유복이가 그제는 그 노인이 확실히 원수 노가가 아닌 줄을 알 고 의심이 풀리었다. 유복이가 다른 말을 물으려고 할 제 그 노인이 짚었던 지 팡이를 들면서 "내가 지금 둘째아들에게를 가는데 얼른 가야 할 일이 있어. " 하 고 말하여 "녜, 그렇습니까? 그럼 어서 가십시오. " 하고 유복이는 그 노인을 보 내고 그 뒤에 여기저기 다니며 물어보아서 읍내에 노가 성 가진 사람의 집이 칠 팔 호나 되는 줄 알았고, 또 그중에 본토 사람으로 자손 많고 농사지어서 요부 하게 사는 집이 단 한 집인 것을 알았다. 유..

임꺽정 4권 (6)

유복이는 불출이의 형편을 보고 늙은 어머니와 어린 자식즐 데리고 호구하려면 도적질이라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불출이는 유복이의 사정을 알고 종적이 생소한 서울 가서 면례 하는데 내기 시행이 아니라도 가서 보아 줄 성의가 생기었다. 이튿날 식전에 유 복이가 짐을 끄르고 보니 무명이 네 필이라 네 필 중에 한 필을 꺼내서 양식 바꾸어 먹으라고 불출이 어머니를 주고 불출이와 같이 서울로 떠나 왔다. 불출 이가 걸음이 본래 유복이만 못한데다가 무겁지 않은 짐이라도 유복의 짐을 대신 진 까닭에 동안 뜨게 뒤떨어질 때가 많아서 유복이는 노량으로 걸음을 걸었다. 같이 걷게 된 뒤부터 두 사람 사이에 이야기가 별로 그치지 아니하였는데, 불출 이가 재미나게 듣고 유복이가 신이 나게 하는 이야기는 대개 꺽..

임꺽정 4권 (5)

안진사의 일행이 다리 팔 접질린 하인들을 조리시키느라고 그날 밤 절에서 묵 는데 이참봉은 별당에서 대사와 같이 자려고 하였으나, 안진사가 좁은 처소에서 여럿이 자기 불편하다고 말하여 여러 양반들은 판도방에 나가서 자고 유복이만 대사의 별당에서 자게 되었다. 만일에 양반들이 별당에사 자게 되면 유복이는 선생과 이야기할 틈이 없을까 보아 속으로 은근히 걱정이 되던 차에 안진사가 고집을 세워서 판도방으로 나가게 되니 유복이는 안진사가 도리서 고마워서 여 러 양반들이 별당에서 나갈 때 특별히 안진사 뒤를 따라나오며 "안녕히 가서 주 무십시오. " 하고 인사까지 하였더니 안진사는 처소가 좁으니보다도 유복이 같은 사람과 한데 굴기가 싫어서 나가는 판이라 흘깃 돌아보고 나가면서 "주제넘은 손님이로군. " 하고 먼산바..

임꺽정 4권 (4)

"우리가 데리고 가서 치죄를 할 터이니까 하인들 일어나기까지 대사가 잘 맡아 두게. " "녜, 잘 알았습니다. " 안진사와 대사의 문답이 끝난 뒤에는 양반들끼리 도 별로 말이 없어서 자리가 버성길 때에 대사가 입을 열어 "이 늙은 것의 소경 력이나 한번 이야기하오리까. " 하고 말하니 여러 양반의 눈이 대사의 얼굴로 모 여들었다. "저는 근본이 함흥 백정이올시다. 이 장자 곤자 이찬성이 함흥으로 망 명하였을 때 저의 형의 집에 와서 계셨습니다. '백정의 딸 봉단이 정경부인 바쳤 다'고 아이들 노랫가락에까지 이름이 오른 이찬성 부인이 저의 질녀올시다. 제가 이찬성의 연줄로 서울 와서 동소문 안에서 갖바치 노릇을 할 때 조정암께서 어 떻게 아시고 저를 찾아다니셨습니다. 당시 정암으로 말씀하면 여러분이 다 잘..

임꺽정 4권 (3)

"누나는 다 아시지만 봉학 언니는 활을 잘 쏘구 여기 언니는 칼을 잘 부리는데 나만 아무 재주가 없어서 어머니에게 구박두 많이 맞았더니 꼬챙이 던지기를 익힌 것이 지금은 백 보 이내의 큰 짐생을 맘대루 잡을 추 있소. " "나무 꼬챙이로 어떻게 짐생을 잡나? “ 애기 어머니 말끝에 "나무 꼬챙이로 무슨 짐생을 잡아 새앙쥐나 잡을까. " 백손 어머니가 말깃을 달고 깔깔 웃기까지 하였다. "처음엔 나무 꼬챙이를 가지구 익히다가 나중엔 쇠끝으루 꼬챙이를 치어서 익혔는데 병을 고쳐주신 어른이 조그만 창끝 같은 병장기를 스무개 한벌 갖다주셔서 그뒤는 줄곧 그걸 가지구익 혔어요. " "지금 가졌거든 어디 구경 좀 하세. " 애기 어머니 말에 "보따리에 들었으니 이따 구경시켜 드리지요. " 유복이가 대답하는 것을 백..

임꺽정 4권 (2)

백손 어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루 끝에 와서 가로 걸터앉았다. 애기 어머니가 그의 걸터앉는 것을 미타히 생각하여 잠깐 눈살을 찡그리고 "어서 이리 올라와서 인사하게. " 하고 이르니 고지식한 백손 어머니는 어떻게 인사할 것을 배워 가지고 올라가려고 걸터앉은 채 "형님, 나도 절하리까? ” 하고 물었다. "누가 자네더러 절하라나" "글쎄, 절을 할지 안 할지 몰라 묻지 않소? “ "요전 이봉학이 왔을 때 인사를 어떻게 했나. 그대로만 하게그려. " "그 아재 왔을 때 무슨 인사했소. 저 아랫방 앞마당에서 그 아재가 허리를 굽신하며 저는 이봉학이올시다, 하기에 나도 허리를 굽신하고 저는 운총이올시다 하니까 형님이 웃 기까지 하지 않았소. " 애기 어머니가 "참말 그랬든가. " 하고 웃으니 백손 어머 니는..

임꺽정 4권 (1)

제 1장 박유복이 1 아침 저녁에 선선한 바람기는 생기었건만 더위가 채 숙지지 아니한 때다. 양 주읍내 임꺽정이의 집에는 반신불수로 누워 지내는 꺽정이의 아비가 더위에 병 화가 더치어 밤낮으로 소리소리 질러서 온 집안이 소요스러웠다. 꺽정이가 집에 있으면 그다지 심하지 아니하련만, 딸과 며느리는 만만하게 여겨서 더하는지 시 중을 잘 들어도 야단을 아니 칠 때가 드물었다. 꺽정이의 안해 백손 어머니는 길이 들지 아니한 생매와 같은 사람이라 당자가 시아비의 야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뿐 아니라, 병자 역시 한손을 접는 까닭에 꺽정이의 누이 애기 어머니가 말하자면 야단받이 노릇하느라고 머리가 셀 지경이었다. 이 날도 애기 어머니가 점심상을 들고 병자 방에 들어가니 병자가 말을 하기 전에 혀를 툭툭 차고 나서 ..

임꺽정 3권 (33,完)

남치근이 이것을 보고 한번 허허 웃고 김경석을 돌아보며 “영감, 자 어떻소? 내 말이 거짓말이오?”하고 오금박듯이 말하니 김경석이 “ 내가 언제 영감 말씀을 거짓 말씀이라고 합디까?”하고 조금 기를 내어 말하였 다. “영감은 아까 내말을 곧이듣지 않으시는 것 같습디다그려” “나는 영감의 하시는 말씀을 그저 듣고 있었을 뿐이오”하고 남치근과 김경석이 서로 재미없 이 말할 때에 이윤경이 웃으면서 “저 아이의 귀신 같은 활재주를 눈으로 보지 않고 이야기만 듣는다면 누구나 다 곧이듣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남치근과 김 경석의 얼굴을 한번 차례로 돌아보고 “세상에서 이 사람이 명궁이다, 저 사람 이 명궁이다 하지만들 저 아이 같은 명궁이야 희한하지 않습니까? 한량을 많이 겪어 보신 두 분 영감은 혹시 달리 보셨는..

임꺽정 3권 (32)

14 이윤경은 왜가 꾀어내려고 꾀쓰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여 군관 이삼 인과 같이 성 위에 서서 진토 일어나는 곳을 멀리 바라보고 있는 중에 석양 햇빛에 기치가 어렴풋이 보이었다. 군관 중에 눈 밝은 사람 하나가 이윤경의 옆으로 가까이 와 서 “방어사진의 선봉대가 분명합니다. ” 하고 아뢰자 다른 군관이 곧 그 뒤를 이어 “우리가 지금 왜적의 뒤를 엄습하면 성공할 것이 아니오이까? 곧 출전하 도록 지휘합시지요. ” 하고 품하니 이윤경이 고개를 가로 흔들며 “왜적이 물 러갈 때 뒤에 매복을 남겼기가 쉬우니 아직 동정을 보지. ” 하고 군관의 말을 좇지 아니하였다. “적병이 창황히 물러가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을 못했을 것 같습니다. ” “교활하기 짝이 없는 왜적이 우리가 뒤에 있는 것을 알면서 그만 생각을 ..

임꺽정 3권 (31)

7 봉학이는 외조모를 따라서 교하 낙하원 근처로 낙향한 뒤에 이삼 년 동안 이 웃 동리 글방에를 다니었으나 부지런한 활장난에 글공부가 뒷전 가서 책한권을 배우자면 예사로 일 년이 걸리었다. 나중에 그 외조모가 외손의 공부가 다른 아 이들만 못한데 애성이 나서 쓸데없이 강미만 없애지 말고 집에서 상일이나 배우 라고 글방에를 보내지 아니하여 봉학이는 한동안 등에 지게도 져보고 손에 호미 도 쥐어보았다. 그러나 상일은 글공부만큼도 성실치 못하였다. 그 외조모가 일시 애성으로 상일을 시키었지 원래 시키고 싶어 한 것이 아닌 까닭으로 봉학이의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시키지 아니하였다. 그 외조모는 남의 전장이나마 농권을 가진 까닭에 울력농사로 농사를 지어서 양식하고 남는 것으로 연년이 밭뙈기를 장만하게 되어 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