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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5권 (18)

이방이 방에 누웠다가 대청에 나와 앉으며 다른 사령을 불러서 밖에서 떠드는 놈들을 잡아들이라고 일렀다. 나간 사령이 둘을 데리고 들어와서 발명하여 주려고 "장난들 하는데 목소리가 좀 커졌답니다. " 하고 말하니 이방이 전 같으면 "함부루 떠드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이냐. 이담에는 조심들 해라. " 하고 약간 꾸짖고 말 것인데 "이놈들아, 아무데서나 함부루 떠드니 너놈들의 세상이란 말이냐! " 하고 호령을 내놓았다. 사령과 관노가 벌갈아 가며 "잘못했습니다. " 하고 비는 것을 이방은 “너놈들을 말루만 일러서 못쓰겠다. 좀 맞아봐라. " 하고 곧 다른 사령을 시켜서 둘을 끌어 엎어놓고 매를 십여 개씩 때려 내쳤다. 이방이 종일 질청에서 큰소리 잔소리 하다가 문루 위에서 폐문하는 삼현육각 소리가 날 때 집에를..

임꺽정 5권 (17)

유숙하는 집에 와서 저녁밥들을 먹을 때 유복이가 백가의 집 사위 고르는 이야기를 오가 마누라에게 들려주니 오가 마누라는 대번에 "딸을 얼마나 잘 두었기에 사위를 그렇게 굉장하게 고른담. 내가 읍내 가거든 한번 가보아야지. " 하고 말하였다. "색시야 출중하겠지만 선 한번 보는 것도 좋지요. " "선이라니 누가 그 색시에게. " 오가의 마누라가 말을 하다가 중동을 무이고 갑자기 말끝을 바꾸어서 "옳지, 황도령이 생각이 있군. " 하고 상글상글 웃으면서 천왕동이를 바라보았다. "아니요, 장기를 두어보러 간다구는 했지만 취재 보이러 간다구는 한 일이 없소. " 천왕동이가 발명하는 것을 듣고 유복이가 "발명할 게 무엇 있나. 이쁜 색시에게 장가들면 좋지. " 하고 말하였다. "그걸 누가 싫다우. 공연한 창피를 ..

임꺽정 5권 (16)

"읍내 갈라우. " "읍내는 내일 나하구 같이 가세. " "약물을 더 먹어야 할 사람이 읍 내를 같이 갈 수 있소. " "약물을 하루 두서너 차례씩 먹어야 맛인가. 식전에 한 차례 먹구 같이 가세. " "그래서 속병이 아주 낫지 못하면 내가 원망 듣게. " "누 가 원망한단 말인가? " "방금 마누라쟁이 말을 들어보지. 나중에 원망 아니할까. " "그럴 리두 없지만 설혹 내가 내일 하루 약물을 안 먹어서 속병이 낫지 못한 다손 잡드래두 내가 원망 안 하면 고만이지 다른 사람의 말까지 족가할 것 무어 있나. " "장기 두는 구경을 별루 즐기지두 안하면서 구태어 같이 갈 건 무어 있 소. 약물을 한 차례라두 더 먹는 것이 워낙 좋으니 고만두우. " "긴말할 것 없이 내일 같이 가기루 하구 오늘은 우리 술이나..

임꺽정 5권 (15)

그날 밤에 천왕동이가 오주와 같이 손가의 집에서 자고 이튿날 식전 일찍들 일어나서 방문을 열어놓을 때 "인제들 일어나? " 하고 손노인이 방으로 들어 왔다. 손가가 "꼭두식전 웬일이시오? " 하고 물으니 손노인은 "정신날 때 장기 한번 둘라구 왔네. " 하고 대답하며 곧 천왕동이를 보고 "한번 안 두려나? " 하 고 물었다. 천왕동이가 싫단 말을 하지 않고 곧 장기판을 벌이니 오주가 "장기 두구 언제 갈 테야, 아침들 안 먹구 기달리구 있을 텐데. " 하고 천왕동이를 나 무랐다. 손노인과 천왕동이는 다같이 말대꾸도 아니하고 장기를 두기 시작하여 만참 동안 서로 장군 멍군 하더니 손노인에게는 민궁에 마포가 남고 천왕동이에 게는 양상과 사졸이 남게 되었는데 손노인이 이길 포서는 없어졌지만 비길 수가 있을까 ..

임꺽정 5권 (14)

제 4장 황천왕동이 늦은 봄이다. 꽃 찾는 나비들은 멀리멀리 날아다니고 벗 부르는 꾀꼬리들은 여기저기서 노래하는 때다. 임꺽정이의 집 앞뒤 마당에 풀이 많이 나서 어느 날 꺽정이가 처남 황천왕동이와 아들 백손이에게 풀을 뽑으라고 말을 일렀다. 천왕 동이가 매형의 말에 상을 찡그리면서도 마지 못하여 생질을 데리고 풀을 뽑으러 나서는데 앞뒤 마당을 둘이 갈라 맡아 뽑기로 하다가 풀 적은 앞마당은 생질에 게 빼앗기고 풀 많은 뒷마당을 차지하게 되었다. 좁지 않은 마당에 풀이 무더기 로 나서 낱낱이 뽑지 않고 북북 쥐어뜯어도 한 나절이 좋이 걸릴 모양이라 천왕 동이가 얼마 뽑다가 성가신 생각이 나서 삽을 갖다가 쓱쓱 밀어나갔다. 이때 울 뒤에 섰는 느티나무에서 꾀꼬리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천왕동이가 꾀꼬리 노래..

임꺽정 5권 (13)

귀련이 아버지와 막봉이가 양옆에서 붙들고 가노라니 길이 자연 늦어서 떠나 던 이튿날도 해질 물에 간신히 발안이를 대어왔다. 그 날은 사처에서 자고 그 이튿날 신부례를 지내는데 말이 신부례지 폐백까지 없는 신부례라 거북살스러운 예절을 차리지 아니하여 잠깐 동안에 끝이 났다. 막봉이 부모는 새며느리를 하 루라도 묵히려고 하였지만 막봉이가 고집을 세워서 혼인날 떠나오듯이 신부롓날 도 점심 먹고 되떠났다. 귀련이 아버지가 딸과 사위를 데리고 돌아오는 길에 딸 내외더러 "형님은 반갑게 알거나말거나 우리 도리는 차려야 할 테니 이번에 아 주 가시리를 다녀가자. " 하고 말하였다. 귀련이가 그 동안 말에 익어서 갈 때보다 길이 좀 빨랐다. 발안이에서 떠나던 이튿날 늦은 점심때쯤 가사리를 당도하였다. 박선달 집 문앞에..

임꺽정 5권 (12)

이때까지 말이 없이 막봉이를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가 막봉이 앞으로 나 앉으며 "여게 총각, 나하구 이야기 좀 하세. " 하고 부드럽게 말하니 막봉이는 “녜. ” 하고 대답하는 것부터 공손스러웠다. "자네 성명이 무언가? " "길막봉이올시다. " "어디 사나? " "수원 삽니다. " "부모 다 기신가? “ ”녜. “ "몇 형젠가? " "사형제의 끝이올시다. " "자네 남의 집에 데릴사위루 갈 수 있겠나? " 귀련이 어머니가 "여보? " 하고 남편에게 눈을 흘기니 귀 련이 아버지는 "가만히 있게. " 하고 안해에게 손을 내젓고 다시 막봉이를 향하 여 "자네 부모가 허락하시겠나? " 하고 물었다. "내가 가구 싶다면 고만이지 부 모가 무어라겠소. " "자네가 불패천인 겔세그려. " "불패천이라니 못된 놈이란 ..

임꺽정 5권 (11)

막봉이가 관솔불을 화토바탕에 내던지고 봉당 같에 걸터앉아서 닭 쫓던 개 울 쳐다보듯이 한등안 삽작문만 바라보고 있다가 관솔불을 다시 들고 삽작 밖에 나 와서 사방을 돌아보았다. 혹시 어디서 대답이 있을까 바라고 "귀련아! 귀련아! " 하고 불렀다. 앞으로 대고 불러도 대답이 없고, 뒤로 대고 불러도 대답이 없고 오직 메아리가 되받아 울릴 뿐이었다. 계집애 편성에 혹시 자처나 하지 아니하 였나 샘 있는 곳도 찾아가 보고 늘어진 나뭇가지도 살펴보았다. 처녀의 부모가 오면 말썽스러을 것은 정한 일이고 잘못하다가는 무단히 악명을 쓰고 살인옥사 까지 당할는지 모르는 판이라 진즉 도망하는 것이 상책 같아서 도망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처녀의 부모를 보고 실상대로 말하고 밝는 날 처녀를 같이 찾아보고 가든 말든 결단하리..

임꺽정 5권 (10)

"나는 아까두 말했지만 소금장수다. 소금 팔러 적가리루 가는 길에 이 아래서 너의 어머니 아버지와 오껴가며 서루 만났다. 너의 어머니가 나보구 진 것이 소금이냐구 묻기에 내가 그렇다구 대답했더니 너의 어머니 말이 우 리 집에두 소금을 받아야 할 테니 내일 오라구 하구 집을 가르쳐 주더라. 내가 적가리 갔다가 다시 내려오지는 못하겠다구 말하구 지금 가는 길에 두구 가랴구 물으니까 너희 아버지는 이담 받자구 말하는데 너의 어머니가 이담 받을 것 없 이 지금 받아두자구 우기구서 나더러 집에 갖다두라고 말하드라. 소금값은 이담 행보에 와서 받기루 했다. 그래 내가 그러마구 하구 저녁밥 한 끼나 먹게 해달 라구 말했더니 너희 어머니 말이 우리 딸 귀련이가 집에 있으니까 가서 내 말 하구 얻어먹으라구 말하더라. 그..

임꺽정 5권 (9)

주선하여 주는 사람이 많이들 받으라고 권하건만도 한 되, 두 되 되풀이로 받는 집이 많아서 모두 합하여 소금 너덧 말밖에 펴먹이지 못하였다. 많이 팔게 해주마고 말한 사람이 미안한 생각이 있던지 막봉이를 하룻밤 쉬어가라고 붙들어서 자기 집에서 묵혀주고 봇들을 올라차면 흥성이 있을 듯하니 올라가 보고 봇들 가서 남은 소금을 못다 팔거든 적가리까지 가보라고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구브내에 서 봇들이나 봇들서 적가리나 다같이 몇 마장씩 안 된다는 말을 듣고 막봉이는 그 사람의 말을 좇아서 가보기로 작정하고 이튿날 아침 뒤에 구브내서 봇들로 올라왔다. 한나절 돌아다니며 소금 댓 말믈 못다 팔고 동네에 둘도 없는 주막집 에 와서 소금 주고 바꾼 곡식으로 다시 술을 바꾸어 먹는데 소금은 조금 팔고 술은 술명히 먹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