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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3권 (20)

3 대왕대비가 보우의 말을 믿는 품이 감나무에 배가 열린다 하여도 의심하지 않 고, 보우의 말을 좇는 품이 소금섬을 물로 끌라 하여도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대왕대비가 보우의 말을 듣고 한동안 침체한 불법을 진작하려고 하여 선종, 교 종의 구별을 세우고 양종 선과를 설시하기로 작정하였다. 대왕대비가 왕을 데리 고 정전에 전좌하고 영의정 심연원과 좌의정 상진과 및 우의정 윤원형을 함께 불러들이어 양종 구별할 일과 선과 보일 일을 문의하니 심연원은 "선종, 교종의 구별은 전에도 있던 일이올시다. " 하고 간단하게 말씀을 아뢰고 상진은 "계행 있는 중은 선과에 잘 응시하지 않을 듯하외다. " 하고 말씀하다가 대비가 "선과 에 응시하면 계행이 깨어지나? 나는 계행 있는 중을 많이 뽑게 할 작정이니 대 신의 말이..

임꺽정 3권 (19)

13 조식은 이름 높은 큰 선비라 나라에서 은일로 불러서 단성현감을 제수하였더 니, 권세 있는 윤원형이 나라를 그르치고 백성을 병들리는 때에 사환에 종사할 맘이 없어 조식은 곧 상소로 사직하고 부임하지 아니하였다. 조식의 사직 상소 에 시폐까지 말하였는데 그중에 "자전은 궁중의 한 과부요, 전하는 선왕의 한 아 들일 뿐이니 천백 가지 천재를 어찌 다 감당하며, 억만 갈래 인심을 어찌 다 수 습하시렵니까? 나라일이 그릇되고 백성이 병들게 되는 것이 근원이 어디 있는 것을 밝히 살펴서 맹렬하게 고치지 아니하면 나라가 장차 어찌될지 모릅니다. 흰 복색과 슬픈 노래가 늘어 가는 것도 심상한 징조가 아닌 줄로 생각합니다. " 하고 위태위태한 말까지 베풀어 놓았었다. 이때 왕은 나이 십팔구 세라 신하들 의 말을 들..

임꺽정 3권 (18)

9 명률 조문에 비추어 보면 부모, 조부모가 자손을 죽인 죄는 예사 살인과 달라 서 형벌이 중하지는 아니하나, 역시 인명에 관한 죄인 이상에 아무리 경하게 치 죄한다 하더라도 장일백은 의당향사일 것이고, 또 재상은 소민과 달라서 함부로 치죄하지 못한다 하더라초 법관이 논죄하여 해당한 견전을 물을 일이지마는, 원 형은 두리손을 죽이고 법관에게 논죄를 당한 일이 없었다. 법관이 원형의 죄를 몰랐 다느니보다도 원형을 논죄할 법관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도 여 차 일이다. 원형의 하인이 외방에 나서 살인하는 일이 있어도 시친이 하인의 기 세에 눌리어서 관하지 못하고, 수령이 원형의 세력을 겁내서 살옥을 일으키지 못하는 판이며, 또 살인과 같은 죽을 죄를 지은 범이라도 원형의 집에 들어가 있게만 되..

임꺽정 3권 (17)

5 원형의 안해 김씨는 원형에게 소박을 받아서 명색만 내외이지 사실로 남과 같 이 지내었다. 원형이는 난정의 집에서 거처하고 김씨에게 오지 아니하였다. 김씨 가 정실이지마는 원형의 식사 한 때와 옷 뒤 하나를 아랑곳하지 못하므로 정실 이 정실 같지 아니하고 김씨의 집이 큰집이지마는 원형이가 지차이니 제사를 받 들 까닭이 없고 원형이가 사랑을 쓰지 아니하니 손님을 대접할 까닭이 없으므로 큰집이 큰집 같지 아니하였다. 난정이가 원형의 집안 일권을 손에 잡고 휘두르 나 그러나 나라에서 내리는 정부인이니 정경부인이니 하는 부인 직첩은 김씨에 게도 내리고 난정이가 안에섯님으로 마마님 소리밖에 듣지 못하니 이것이 난정 의 맘에 부족하였다. 난정이 골이 날 때는 "제가 무슨 턱에 정경부인인고. " 하 고 김씨를 귀넘..

임꺽정 3권 (16)

2 원형이 원로를 미워하는 맘이 뿌리 깊이 박히어서 서로 대면하기를 싫어하게 되었다 원로가 이 눈치를 알고는 짓궂이 하루돌이로 원형을 찾아왔다. 원형이 한번 하인들을 불러서 "누가 찾아오든지 내 말 듣기 전에 들이지 마라. 큰댁 영 감이 오시더라도 거래하고 들어오시게 해라. " 하고 일러 둔 까닭에, 어느 날 하 인들이 상전의 분부대로 원로의 들어오는 것을 가로막고 거래하려고 하였다. "무 슨 일이냐? " "대감마님 분부에 누가 오시든지 거래하라셨습니다. " "너희가 눈 이 멀었느냐? 내가 누구인지 모르느냐? " "아니올시다. " "아니라니? 내가 이 집 에 손님이냐? " "아니올시다.“ "괘씸한 것들 같으니.” 하고 원로는 상전과 하 인을 휩쓸어 꾸짖고 앞 막아선 하인을 밀치고 들어와서 곱지 않은 눈으..

임꺽정 3권 (15)

13 순붕이 명에 죽지 못한 것을 그 집에서는 깊이 숨기고 말이 밖에 나가지 아니 하도록 안팎 하인들을 단속하였다. 조객이 와서 "무슨 병환에 그렇게 졸지에 궂 기셨소? “ 하고 물으면 상주들은 "약주가 좀 과히 취하신 중에 동풍이 되셔서 갑자기 상사가 나셨습니다. " 하고 대답하고, 겉 풍문을 듣고 와서 체면없이 "무 슨 하인의 변이 있었다니 참말이오? ” 하고 묻는 사람이 있으면 "손버릇 사나 운 아이종이 매맞은 끝에 죽은 일이 있습니다. " 하고 대답을 하였다. 순붕의 졸 곡이 지난 뒤에 어느 날 이기가 상주들을 보러 와서 "선대감 작고하신 뒤에는 무슨 일 하나 서로 의논할 사람이 없네그려.“ 하고 한탄하듯이 말하니 정렴이 는 속으로 불쾌히 여기며 잠자코 앉았고 정현이는 "대감께서 소인의 선친과 좀..

임꺽정 3권 (14)

10 상가에서 장전에 유명한 무당을 불러다가 넋두리를 시키었다. 그 무당이 고리 짝을 긁으며 망자를 청하더니 얼마 아니 있다가 늙은 망자가 내렸다고 넋풀이를 시작하여 저승 사자에게 구박받는 슬픔을 이야기하고 집안 식구를 면면히 찾고 또 이 세상에서 품고 간 원한을 말하는데 그중에 가다가 "내가 죽을 것을 죽은 줄 아느냐? 내가 죽고 싶어 죽은 줄 아느냐? 내가 아들이 없는 사람이냐? 내가 재물이 없는 사람이냐? 그런 내가 죽을 때에 의원 하나를 보았느냐? 약 한 첩을 먹었느냐? 수청 자는 것들이야 살붙이냐? 뼈붙이냐? 잠이 들면 고만이지 죽는 줄이나 알 것이냐? 전후좌우 널려 있던 사람 중에 마지막길 떠날 나를 보내 준 사람이 누구이냐? 어, 허무하지그려! 어, 원통하지그려! 날 잡아간 귀신이 벼개에 있..

임꺽정 3권 (13)

7 계놈이가 그 뒤에 틈틈이 갑이를 보고 눈으로 뜻을 말하면 갑이도 두서너 번 에 한 번씩으로 대답하는데, 아리땁고 열기 있는 눈이 말로 하지 못할 말까지 말하는 듯할 때 계놈이는 온몸이 그 눈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계놈이 가 갑이의 혼자 있는 틈을 엿보고 지나는 중에 어느 날 밤에 순붕이 이기와 같 이 윤원형에게 가서 오랫동안 무엇을 공론하고 밤늦게 들아왔다. 아들들의 저 녁 문안을 받고 자리에 누워서 갑이에게 발바닥을 문질리다가 갑자기 "안에 더 운물이 있겠지? “ 하고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발을 씻으시렵니까? ” "뒤를 볼까 하고 물었다. 벌써 여러 날 뒤를 못 보았는데 아까 윤판서 집에서 뒤 마려 운 것을 참았더니 지금 다시 마려운 듯하구나. " "하룻밤이라도 참으시면 내일 더 괴..

임꺽정 3권 (12)

4 정현의 흉한 심장이 말할 수 없었다. 낭속을 시켜 저의 형을 욕 보이고도 오 히려 부족하여 또 달리 욕보일 것을 생각하였다. 정렴이가 아침 자리 속에서 말 하기 전에 약 한 첩을 먹는 버릇이 있으므로 정현은 이것을 기회삼아 형을 약으 로 욕보이려고 작정하고 파두를 구하여 몸에 지니고 틈을 엿보다가 어느 날 식 전에 상노가 약을 안쳐놓고 뒤를 보러 간 틈에 그 파두를 약에 넣었다. 정렴이 약을 먹고 나서 뒷맛이 다른 것을 괴상히 생각하여 상노를 불러서 "무슨 약을 달였느 냐? “ 하고 물은즉 상노는 도리어 그 묻는 것을 괴상히 생각하며 "일상 잡수시 는 약이지 무슨 약이에요. " 하고 대답하였다. 얼마 아니 지나서 정렴이는 복중 이 괴란하기 시작하여 일상 먹는 약이 아닌 것을 짐작하고 상노더러 약 찌끼..

임꺽정 3권 (11)

6 이황이 형의 옥사를 지낸 뒤로는 환로에 나설 맘이 찬 채 같이 사라지고 산림 에 숨을 뜻이 반석같이 굳어서 예안 고향에 문을 닫고 들어앉아 학문을 힘쓴 까 닭에 유림의 종장으로 이름이 일국에 떨친 것은 뒷날 이야기다. 꺽정이가 그 부 친의 즐겨 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우기어 이해의 썩은 시체를 수시하여 입관한 것이 이해의 친족에게 덕을 보이려는 의사가 아니었지만, 이황이 앉아서 보자고 부를 때에, 또 찾아와서도 문안에 발을 들여놓지 아니할 때에 덕 보인 값으로 욕본다는 생각이 없지 아니하였다. "양반과는 일체로 상관을 말아야지. 상관만 되면 이래도 욕, 저래도 욕이란 말이 제기. " 하고 꺽정이가 메어부치는 소리 하 는 것을 돌이가 "양반이 우리네 집을 찾아오기가 조만한 일이냐? 찾아온 것만 해도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