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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3권 (30)

3 꺽정이가 허담의 말을 타고 동구 밖에 나가서 주마 놓고 돌아다니다가 해가 설핏할 때 절로 올라와서 말을 마굿간에 들여매고 말갈기를 쓰다듬어 주며 “내 일은 작별이다” 하고 말한즉 말이 꺽정이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머리를 건 들거리었다. 꺽정이가 마굿간 앞에서 돌아설 때 말이 구유 너머로 머리를 내밀 어 꺽정이의 머리 동인 수건 끝을 물고 지극지근 잡아당긴 까닭에 꺽정이가 손 을 머리 뒤로 돌리어 수건 끝을 빼앗고 다시 말 앞으로 돌쳐서서 웃으면서 “이 자식, 버릇없는 자식 같으니, 머릿수건을 잡아당기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이냐.” 하고 한 손을 둘러매니 말은 얼른 머리를 한옆으로 피하였다. “맞을까 보아 무 서운 게구나.” 하고 꺽정이가 둘러매던 손으로 말 목을 뚜덕뚜덕해 주면서 “ 작별이 섭섭하냐..

임꺽정 3권 (29)

37 주인이 자리에 앉으면서 덕순을 보고 “무슨 이야기들 하시는데 불쑥 들어와 서 불안스럽습니다”하고 말하니 덕순이가 “아닐세, 관계찮아”하고 흔연히 말 하고 다시 대사를 향하여 “그래 난리가 어디서 날 듯하오?”하고 먼저 묻던 말 을 되거푸 물었다. 대사가 고개를 한옆으로 기울이며 “글쎄요”하고 대답을 밝 히 아니하여 덕순이가 또 재우쳐 물으려고 할 즈음에 주인이 “언제 난리가 난 답니까?”하고 물으니 덕순이는 “이 대사 말씀이 난리가 수이 나리라고 해서 난리가 나면 어디서 나겠느냐고 묻는 말일세”하고 대답하였다. “난리? 난리 나야지요”, “자네도 난리를 기다리는 사람인가?”, “난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야 어디 있겠습니까만 세상 되어가는 꼬락서니가 난리는 한번 나야지요”, “꼬 락서니가 어떻단 말인가..

임꺽정 3권 (28)

33 전배 하인들이 “에라”하며 지나가고, 사인교꾼이 “쉬”하고 어깨를 갈아가 며 사인교를 메고 지나가고, 후배 하인들이 떠들썩하게 지나가는데 괴상스럽게 요강망태를 걸머진 하인이 나귀를 타고 거들거리며 맨 뒤에 지나간다. 덕순이가 행차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하인의 탄 나귀를 가리키며 “저 오려백복 이 내것 아니라구?”하고 말하자 꺽정이가 “아이놈이 저 뒤에 따라오는구먼이 오.”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데 나귀 뒤에 조금 떨어져서 풀기 없이 따라오는 아이가 곧 덕순의 데리고 오는 아이이다. “아이놈이 못생겨서 나귀를 빼앗긴 모양이군.”“저놈들이 아이라고 만만히 보고 장난친 모양이오.”하고 꺽정이가 곧 일어서서 나귀 탄 자에게로 쫓아가더니 오고가는 말이 두세 마디를 넘어가지 못하여 꺽정이가 눈을 부라..

임꺽정 3권 (27)

30 저녁상을 치운 뒤에 덕순이가 대사를 돌아보며 보우는 전고에 드문 요승이라 고 말하고 “그자의 말로가 어떻게 될까요? 선생님은 짐작이 없지 않으실 터이 지?”하고 물으니 대사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이 없었다. 덕순이가 얼마동안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래, 그자가 제 명에 죽겠소?”하고 다시 물으니, 대 사가 말이 없이 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능지처참을 당하겠소?”“글쎄요.”“ 말을 좀 분명히 하시구려”“그까짓 것은 분명히 알아 무엇하시오.”하고 대사 가 말을 자르려고 하는데 꺽정이가 “중놈으로 그만큼 호강하면 이 다음에 제 명에 못 죽어도 좋지요.”하고 말하니 대사는 잠깐 눈살을 찌푸리며 “보우 다 음날 혹독한 형장 아래에 맞아죽을 것을 미리 안다면 지금 호강이 맘에 좋을 것 없으리.”하고 말..

임꺽정 3권 (26)

26 꺽정이가 덕순을 보고 "나는 먼저 갈 터이니 선생님하고 같이 뒤에 오시오. " 말하고 한 걸음 앞서 간 뒤에 대사가 앞을 서고 덕순이가 중간에 서고 아이가 나귀 끌고 뒤에 서서 노량으로 걸어서 양주읍내를 들어왔다. 꺽정이 집에 다 왔 을 때 아이들이 문간에 섰다가 한 아이가 먼저 안으로 뛰어들어가며 "아주머니, 아버지가 갓 쓴 손님하고 같이 왔다. " 하고 소리를 치니 먼저 들어간 아이보다 키가 작아 보이는 아이가 절름절름 걸어들어가며 "손님하고 같이 왔다. " 하고 먼저 아이의 말끝만 따서 소리를 질렀다. 대사가 덕순을 돌아보며 "먼저 들어간 아이는 꺽정이의 아들이고 뒤에 들어가는 절름발이는 꺽정이의 아우요.“ 하고 그 아이들이 누구인 것을 가르쳐 주니 덕순이는 "꺽정이가 어느 틈에 그런 큰 아들..

임꺽정 3권 (25)

22 보우야 소리 한마디에 휘둥그래진 눈쓸이 바라다보고 돌아다보고 또 치어다보 는 중에 늙은 객승이 보우를 향하여 손가락질하고 내려오라는 군호와 같이 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보우가 곤두박질을 치듯이 주홍상에서 뛰어내려오며 진둥한둥 마당으로 내려왔다. 그 늙은 객승이 보우의 내려오는 것 을 보고 한번 허허 웃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니 보우는 달음질로 그 뒤를 쫓아 나갔다. 처음에 놀랐던 여러 중들이 나중에는 궁금한 생각이 나서 쫓아나가 보 려고 한즉 상투바람의 속인이 두 팔을 벌리고 길을 막았다. 앞에 섰던 중 몇 사 람이 굳이 나가려고 하는데 그 속인이 "성가신 것들 다 보겠다. " 하고 소리지르 며 장난하듯이 슬쩍슬쩍 뒤로 떠다미니 그 중들이 짚으로 만든 사람같이 허무하 계 나가자빠지..

임꺽정 3권 (24)

18 경복궁의 큰 화재가 난 뒤에 왕은 대왕대비와 왕대비를 뫼시고 창덕궁으로 이 어하게 되었다. 이어하던 이튿날 왕이 삼정승을 탑전에 불러들여서 경복궁 중수 할 일을 의논하는데 왕이 먼저 입을 열어 "내가 나이가 젊고 덕이 없는 탓으로 조종조 백여 년간 전하여 오는 궁궐을 일조에 태반 불에 태우고 황송한 맘에 침 식이 실로 불안한 고로 하루바삐 중수하려 하니 경들은 어찌 생각하오? “ 하고 정승 들의 의견을 물으니 윤원형이 앞으로 나서서 "지금이라도 곧 중수도감을 앉히고 역사 준비에 착수하는 것이 좋을 줄로 생각합네다. " 하고 대답을 아뢰었다. "영 상, 좌상도 의견이 우상과 같소? ” 하고 왕이 심연원과 상진을 차례로 돌아보 고 다시 윤원형을 바라 보며 "그리하자면 도감당상은 사람을 골라야 하지 않겠..

임꺽정 3권 (23)

14 대비가 머리를 동이고 벽을 안고 누웠다가 밀장지 열리는 기척을 알고서 돌아 눕지는 아니하고 "누구냐? “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난정이 걸음을 사뿐사뿐 걸어 대비의 발치에가 서서 나직한 목소리로 "난정이올시다. " 하고 고하니 대비가 돌 아누우며 "어째 또 들어왔느냐?" 하고 물었다.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 "어째 서 또 들어왔느냐니까? “ "말씀 사뢰기 황송합니다만. " 하고 난정이 잠깐 말을 그치고 방글거리다가 "내외 말다툼을 했습니다. " 하고 말하였다. "왜 말다툼은? ” "저녁때 수시가 생겨서 안으로 들여보냈삽기에 두서너 개 맛보았삽더니 마마 께 드리기 전에 먹었다고 지각없다고 야단을 치와요. 그 생각 못한 것이 불민한 일인 줄은 알지요만 하인들 소시에 그만 일을 가지고 야단치는 것이 조..

임꺽정 3권 (22)

11 왕대비와 왕비도 맘대로 쓰지 못하는 내탕고 재물을 보우가 저의 사사 재물과 같이 쓰고 싶은 대로 함부로 쓰니 무엄하기 짝이 없는 일이건마는, 대왕대비가 보우의 하는 일은 사사이 모두 신통히만 보는 까닭으로 꾸지람 한 마디가 없었 다. 이런 것은 궁중, 조정의 권세를 한손에 쥐고 흔들던 윤원형으로도 감히 바라 저 못할 일이었다. 윤원형은 제 손에 있는 권세를 찢어 나눠 갈까 하여 젊은 왕 비 심씨의 본곁을 다소 염려하였으나, 심연원이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맘을 놓은 뒤에는 다른 염려가 없거니 태평으로 믿고 지내던 중에 의외 중놈 하 나가 궐내에 들어오며 권세가 뿌리로부터 흔들리게 되니 원형은 보우를 미워하 지 않을 수 없었다. 원형이 보우를 내쫓으려고 맘을 먹고 있었으나, 대왕대비의 눈치를 ..

임꺽정 3권 (21)

7 토정이 남명에게서 묵는 동안에 보우가 역적으로 몰렸다는 소문이 있었다. 남 명이 이 소문을 듣고 "궁중에 거처하는 놈이 역적질을 하려고 했다면, 만분 위태 한 일이 있었을 터인데 첫째 대전께서 무사나 하신지? “ 하고 왕의 몸에 변고 나 있지 아니할까 하고 걱정하니 토정은 "보우가 시역을 꾀하였다면 대왕대비께 서 미리 모르셨을리 없을 것인즉 다른 변고면 모르되 그런 변고는 당저에 없을 것일세.” 하고 왕의 몸이 무사할 것을 말하였다. 그러나 진적한 서울 소식을 몰 라서 궁금히 생각하기는 남명이나 토정이 다름이 없었다. 대체 보우의 역모하였 다는 초문이 터무니없는 소문은 아니나 일이 소문과는 같지 아니하였다. 처사별 과 같이 한구석에 숨어 있는 조남명과 상서별과 같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이토정의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