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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3권 (10)

3 대체로 사약할 때 주는 약이 먹고 죽으라는 약이지만 인삼, 부자와 같은 순한 약이지 비상과 같은 독약이 아니므로 약 먹인 뒤에 뜨거운 방에 두거나, 약 먹 인 위에 독한 술을 먹이거나 하여 약기운을 한껏 발작시키더라도 용이하게 죽지 않는 사람이 많아서 도사가 약사발을 연거푸 안기다가 진력이 나면 수건, 말고 삐, 활시위 같은 물건으로 목을 졸라 죽이게 하여 사약이 교살로 변하는 것이 흔히 있는 일이었었다. 이때 도사가 임형수의 소망을 좇아서 약을 술에 타서 한 사발 가득히 부어 주니 임형수가 공손히 받아들고 "이 술은 주인으로 손님에게 권하지 못하는 괴상한 술이라 나 혼자 먹소. " 하고 허허 웃고 나서 한숨에 들이 마시었다. 임형수는 본래 주량이 한정없는 사람이라 한 사발 술로는 술 먹은 기 색도 ..

임꺽정 3권 (9)

13 임형수가 이황을 찾아왔을 때 자리에 다른 손이 없었다. 임형수가 "서용 처분 은 감축한 일일세. " 하고 올곧게 인사하지 아니하고 "자네는 제법 시비를 아니 까 쓸 만한 사람이야. " 하고 농으로 말을 붙이니 이황이 웃고 대답이 없었다. 주객이 잠자코 한동안을 지낸 뒤에 주인의 도리를 차리려는 것같이 이황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인산 발인날 반차에 참예하지 못하게 된 것이 비록 나의 죄가 아 니라 할지라도 황송한 맘을 지금껏 금할 수 없어. " "자네가 그날 문밖에 나가서 망곡하였다데그려. " "안연히 집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문밖에 나갔었지. " " 그러면 도리는 다하였지, 황송할 것이 없네. " "원래 재능 없는 위인이 환로에 나서기가 불찰이니까 수이 시골로 내려가서 문 닫고 들어앉을 작정이..

임꺽정 3권 (8)

10 이때 이기는 칠십 늙은이라 무엇을 구할 것이 없으련만 대왕대비께 아첨하는 품이 임백령이나 정순붕보다 조금이라도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아니하였다. 이 기가 대왕대비의 비위를 맞추려고 말씀 아뢰기를, 대행왕은 즉위한지 일 년이 못된 임금이라 대왕의 예를 쓸 것이 없으니 다섯 달을 기다리지 말고 곧 인산을 지내자고 하여 대왕대비가 마땅히 여기고 원형의 무리가 옳다고 떠들어서 시월 보름 께 인산을 지내기로 작정되었다. 처음에 병조정랑 정황이 상소하여 무고히 갈장 하는 것이 예법이 아니라고 다투고, 다음에 예문관 검열 윤결이 상소하여 대행 대왕의 신하는 오직 정황이 한 사람뿐이라고 정정랑을 칭찬하고 나중에 태학 유 생들이 상소로 갈장 주장한 대신들의 죄를 의논하였다. 그러나 이 상소들은 모 두 비답이 내리지..

임꺽정 3권 (7)

7 생때 같은 사람 여섯을 가슴을 짓찧어서 물고를 올린 뒤에 참새새끼같이 발발 떠는 모린이를 다시 앞으로 끌어냈다. 이기가 모린이를 내려다보며 “아까 그년 들은 하나도 편지 받았다는 말이 없으니 혹시 다른 사람들을 주었느냐?” 하고 말을 물으니 모린이는 대답이 없었다. 제가 횡설수설 지껄인 말 몇 마디에 사람 여섯이 눈앞에서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 무섭고 두려운 맘이 가슴을 눌러서 입 이 저절로 봉하여졌던 것이다. “다른 사람이 또 있다느냐?” “그년이 넋이 빠 졌느냐, 어째 말이 없느냐?” “그년 정신 차리게 귀싸대기를 한번 때려라.” 모 린이가 함부로 불어서 애매한 사람들을 죽인 것을 군사 중에 밉게 생각하는 사 람이 있어서 그 사람이 큼직한 손바닥에 침을 뱉어가지고 모린의 뺨을 두서너 번 연거푸 후..

임꺽정 3권 (6)

4 민제인과 김광준이 여러 대간들을 보고 누누이 이해를 타서 말하였으나, 여러 사람들은 점점 더 격앙할 뿐이라 마침내 하릴없이 회의를 파하고 일어서게 되었 다. 대간들이 중학 대청에서 회의할 때, 임백령의 아우 임구령이가 대청 밑에 엎 드려서 누가 무슨 소리 하는 것을 샅샅이 엿들었고 대간들이 흩어져 돌아갈 때 정순붕의 아들 정현이와 정순붕의 사위 이만년이가 그 또래 젊은 것들을 데리고 중학 대문 밖에 숨어 있다가 누가 어디로 가는 것을 각각 보살피었다. 그날 저 녁에 김광준이 회의 상황을 이야기하려고 원형에게 와서 본즉, 원형이가 임백령, 정순붕, 이기 등과 같이 앉았는데 회의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민제인까지 끼여 들어 가며 무능하다고 책망들이 분분하였다. 김광준이 무색하여 돌아간 뒤에 원 형의 무리가..

임꺽정 3권 (5)

제 2장 살육 1 나이 어린 경원대군이 임금의 위에 오르게 되매 대신들이 빈청에 앉아서 백관 을 모아놓고 대비 수렴할 일을 의론하였다. 영의정 윤인경이 먼저 입을 열어 "지 금 대왕대비전과 왕대비전이 계입시니 어느 전에서 정사를 들으셔야 하겠소?" 하고 좌우를 돌아보니 좌의정 유관이부터 말이 없이 잠자코 앉았는데, 우찬성 이언적이 자리에 나앉으며 "모자분이 같이 정사를 듣는 것은 옛 전례가 있지마 는 어디 수숙간에 자리를 같이 하는 법이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여 마침내 다른 의론이 없이 대왕대비가 수렴청정할 것을 작정하고 대신들이 서계를 올리었다. 대왕대비가 권세자루를 쥐게 되니 원로, 원형 형제가 드날릴 판을 만났으나, 다 같이 간사스럽고 또 다같이 방사스러운 중에 원로는 원형이만큼 조심성이 부족 하..

임꺽정 3권 (4)

8 상감이 쑤시는 증세로 닷새안 밤에 눈을 붙여보지 못하다가 그날 밤에 잠이 들어 한숨을 지고 난 뒤로 그 증세가 거짓말같이 없어져서 이튿날부터 친히 대 비전에 문안 다닐 만큼 기동하게 되었다. 대전 환후가 평복되어서 이런 경사가 없다고 기뻐하는 소리가 궁중에 가득할 때 대비는 남몰래 입맛을 다시고, 전하 하는 말씀이 조반에 분분할 때 원로 형제는 집에서 이를 갈았다. 그러나 대군만 은 마마를 치른 뒤로 몸이 내리 깨끗치 못하여 누워 있던 아이가 대비의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일어나서 기쁨에 넘치는 낯으로 대전께 나와서 보입고 들어가는 길에 고전에 와서 진하하니 대전에서 차마 사랑함을 못이겨하는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고, 곤전이하 여러 궁인들까지 모두 귀히 여기고 칭찬하였다. 상감이 환 후 평복된 뒤에..

임꺽정 3권 (3)

5 윤가 형제가 점을 친다는 것이 헛말이 아니었다. 그 형제는 새상감이 등극한 뒤로 상감의 수명을 점치고 상감을 두고 방자하는 것을 성사로 여기었다. 주부 이건양이란 자가 숙덕거리었다. 어느 날 원형이 대비전에 승후하러 들어갔다가 한동안 밀담하는 중에 대비가 말하였다. "수십 년 전에 소격서 안에 와서 있던 유명한 술객은 일생의 길흉화복을 눈으로 내다보는 것같이 알아맞히더니 그런 술객이 다시는 없는 게야. 내가 그 술객에게 유년을 낸 것이 있었는데 어디로 갔는지 대전 환후 중에 우연히 생각이 나서 찾아볼랬더니 아무리 찾아야 찾을 수가 있어야지. 정녕 없어진 게야. 그 유년 속에 종사지경은 일왕사주란 귀가 있 었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 일찍 죽은 인순공주까지 수에 치면 공 부 넷, 대군 하나 ..

임꺽정 3권 (2)

4 동궁 화재 나던 해 겨울에 대전에서 병환이 났었다. 처음에 상한 기미로 조금 미령하던 것이 불과 며칠에 증세가 심상치 않게 변하여 내의원 의관들이 정성으 로 약을 드리었으나 약효험이 나지 아니하였다. 동궁에서는 주야로 시측하여 친 히 의약을 보살피는데 초민한 맘에 침식까지 폐하여 며칠 동안에 형용의 수척한 것이 병환 중 대전과 별로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대전은 고통중이라서 알지 못 하고 중전은 심란하다고 모르는 체하고 오직 나이 어린 대군이 때때로 죽이나 미음을 지성껏 권하여 동궁이 곡기를 끊게 되지 아니하였다. 대전 환후가 더욱 침중하여 큰일이 조석에 날 것 같으니 동궁은 목욕재계하고 내전 뒤뜰에 내려서 서 하늘을 우러러보고 몸으로 대신하기를 축원하는데, 찬바람을 무릅쓰고 겨울 긴 밤을 선 채로 ..

임꺽정 3권 (1)

제 1장 국상 1 동궁의 외삼촌인 윤임은 중전을 곱게 생각지 아니하고 중전의 오라버니 되는 윤원로, 윤원형 형제는 동궁을 미워하여 처음에 알력이 두 윤가의 집에서 생기 며부터 차차로 유언비어가 세상에 돌기 시작하고, 마침내 시비의론이 조정에까 지 나타나게 되었다. 이때 영남 예안 사람 이황이 서소문 안에 와서 우거하며 교리 벼슬을 다니는 중이었는데, 어느 날 수찬 임형수와 지평 정희동이 각각 이 교리를 찾아왔다가 서로 만나게 되어 주인, 손 세 사람이 고금치란을 말하던 끝 에 윤가 알력이 미치었다. 임수찬이 소매를 걷어치며 “그것이 하등 큰일이기에 조정에서까지 의론이 분분하단 말인가? 한두 놈에게 형장 맛을 알리기만 하면 곧 지식될 것이니. ” 하고 말하니 한두 놈이라고 하는것은 원로 원형 형제를 가리키..